문 5: 우리나라에서는 의무교육 아닌가요?
답: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함께 반드시 행하여야 할 의무에 관하여 규정해 놓고 있다. 그 가운데 교육(제31조)은 근로(제32조), 납세(제38조), 그리고 국방(제39조)의 의무와 함께 소위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하나로 규정되어 있다. 물론 교육은 국민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헌법 제31조 1항) 국민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교육 관련 법률에서는 의무 교육을 의무 취학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일정 연령의 아동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설치․운영할 의무가 있고, 부모는 일정 연령의 자녀에게 의무적으로 학교에 보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과 학교의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교육은 공교육을 위한 ‘학교’라는 사회적 기관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던 활동이다. 학교가 생기기 전에도 가정에서, 또래집단 사이에서, 직장에서, 동네에서, 그리고 교회 등 종교기관에서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교육의 행위가 있었다.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많은 나라들이 의무취학을 법으로 규정하여 공립학교를 대대적으로 세워 나가기 시작했다. 공립학교 체제가 국가 교육의 핵심을 이루게 되면서 사람들은 ‘교육’ 하면 곧 ‘학교’를 연상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적 공교육의 역사가 긴 나라가 200년, 짧은 나라가 100년에서 50년, 이러한 기간 동안 학교가 교육을 독점해 오면서 '학교=교육'이라는 신화가 형성되어 왔다. 교육은 학교에서 담당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채 이 신화는 세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재생산되어 왔다.
미국에서도 공교육 주장이 처음 나온 것은 토마스 제퍼슨(1743-1826)때이지만, 아이들에게 의무적으로 학교에 다니도록 한 것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다. 1852년 매사추세츠 주(州)가 처음으로 8-14살의 아이들에게 1년에 12주 동안 의무적으로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는데, 이것은 1910년경에 이르러서야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그러나 이런 의무교육 규정을 집행할 정부 기관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겨우 마련되었다. 예컨대 공교육에 앞장섰던 뉴욕 주(州)도 1904년에나 와서 교육부를 신설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런 의무교육 규정은 주로 남자아이들에게만 적용되었다.
이처럼 의무 교육이 의무 취학으로 전환된 것은 그다지 오래된 역사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굳이 의무 교육을 의무 취학으로 좁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사실 최근 들어 일부 나라에서는 의무 교육을 의무 취학과 똑같은 것으로 보지 않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많은 학부모들이 취학적령아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르치고 있다.
홈스쿨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린이의 교육은 원래 학부모의 책임이자 권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교육을 정부의 손에서 가족의 손으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와 학교의 분리를 통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출석, 교과내용, 교사의 자격, 학교 인허가, 재정지원 등에 있어서 정부의 개입을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 가운데 의무 교육을 의무 취학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독일과 일본 정도인데 이 나라들에서는 프리스쿨을 다녀도 출석으로 인정한다든가 제도권 밖의 다양한 교육 기회를 인정하고 있다.
현행 교육법(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중등교육법)이 의무 교육을 의무 취학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제도 학교를 넘어서 새로운 교육의 장들이 펼쳐지고 있고 이 흐름은 갈수록 더 거세질 것이다. 이러한 자발적인 움직임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생명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북돋워주는 것이 장래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초·중등교육법 제13조의 법규 마지막 글귀 '…취학시킬 의무가 있다'를 '…취학시키거나, 또는 다른 방법으로 교육을 할 의무가 있다'라고만 고쳐도 우리 교육의 앞날이 얼마나 밝아질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