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 8,12)
교회는 오늘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타니아에 살며 예수님과 가까운 친분 관계를 갖고 있던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 그리고 성 라자로 세 남매를 기념합니다. 본래 2020년까지는 이 세 남매 가운데 마르타만을 기억하며 7월 29일인 오늘을 성녀 마르타 기념일로 지냈으나, 2021년 1월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결정에 따라 성녀 마르타 뿐만 아니라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를 함께 기억하며 기념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처럼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남매 가운데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극진히 대접하는 성녀이며, 마르타의 누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좋은 몫을 택한 인물로 여겨지며,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 라자로는 죽어 무덤에 나흘이나 묻혀 있었음에도 그를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의 기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이 세 남매는 예수님과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었던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성인성녀를 기억하는 오늘 우리에게 들려지는 하느님의 말씀은 독서와 복음 모두 사랑의 사도 요한의 말씀을 통해 사랑의 하느님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복음의 말씀은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는 마르타와 예수님의 일화, 그 가운데에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기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 읽은 복음의 내용 안에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오늘 복음의 바로 이전의 말씀에는 마르타와 마리아가 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오빠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그를 구해 주십사 청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평소 자신들 오누이와 각별한 관계를 갖고 있던 예수님께 아픈 오빠의 사정을 전하고 예수님께서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주시기를 청하는 마음에서 그녀들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듣고서도 마치 일부러 그러시는듯 머물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고 나서야 뒤늦게 라자로가 있는 유다 지방 베타니아로 향해 가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나 있었습니다. 이에 마르타는 자신의 집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 분을 맞이하기 위해 바로 뛰어나가지만 예수님을 만난 직후 그녀가 예수님께 하는 말 속에는 그녀의 예수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21)
마르타의 이 말에서 왜 더 빨리 오지 않으셨냐며 예수님께 대해 인간적으로 서운해 하며 섭섭해 하는 그녀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이 같은 서운한 마음을 표현한대 이어 바로 주님은 우리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시는 분이심을 굳게 믿음을 고백합니다. 비록 오빠의 죽음은 서운하고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하느님은 지금의 이 그녀의 슬픔을 이겨낼 희망을 언젠가 주실 분이라 마르타는 굳게 믿으며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마르타의 말에 예수님은 라자로의 다시 살아남을 이야기하시며 마르타의 부족한 믿음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평소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그 분이 하시는 말씀과 행적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마르타는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이 보내주신 메시아이며 그 분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넘치도록 베풀어질 것임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르타조차도 예수님이 곧 부활이며 생명이라는 믿음은 아직 부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마르타의 대답에서 드러나듯 그녀는 부활의 삶을 믿었지만 그녀가 믿는 부활이란 죽음 이후 마지막 날에 모든 이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먼 미래의 종말론적 부활만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은 먼 미래의 부활이 아닌 예수님을 믿은 이들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그 부활을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 체험하게 될 것이라 이야기하며 부활의 현재성을 이야기하십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한 현재적 사건으로서의 부활 사건
오늘 복음이 전하고 있는 이 진리를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은 짧게 그러나 핵심의 내용을 잘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 8,12)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먼 미래의 언젠가 받게 될 희망을 약속해 주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분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기 위해서, 아니 이미 그 사랑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풀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모른 채 거부하는 우리들에게 그 사랑의 깨닫도록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메시아입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요한 사가가 전하듯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고 계심을, 또 당신의 영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심으로서 우리가 그 분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 주시고 그 사랑을 깨닫도록 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믿고 깨닫도록 하십시오. 오늘 화답송의 시편 저자의 외침처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우리가 그것을 맛보고 깨닫는다면 우리에게 기쁨이 넘치고 우리 얼굴에 부끄러움은 사라지며 아쉬움이란 없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이 사랑을 맛보고 깨달아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 역시 여러분 안에 머무름으로서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그래서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사랑의 사도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시편 34(33),2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