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군 문화 답사(2025. 10. 21) 안내자료 1. 서천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둘 다 장군국가산업단지 사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서천을 위해 건립한 시설이다. 국립생태원은 99만 8,000㎡의 부지에 3,400억 원을 들여 세계 최대 규모로 만들어졌다. 동물 240종 8,000마리와 식물 4,865종 110만 그루를 기른다. 핵심 시설은 ‘작은 지구’로 불리는 에코리움(전시시설)이다. 열대관·사막관·지중해관·온대관·극지관 등 5개 관으로 꾸며 지구의 기후대별 생태계를 재현하고 있다. 상설주제전시관, 4D입체영상관, 어린이 생태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상관의 최첨단 4D 영상은 에코리움 탐방의 즐거움을 더한다. 5대 기후관 열대관은 환경 파괴로 인해 점점 사라져 가는 지구촌의 열대우림을 온실에 재현한 공간이다. 사막관은 척박한 사막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을 전시한 공간이다. 지중해관은 지중해성 기후의 생태 환경을 재현한 공간이다. 온대관은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의 기후 환경과 생태계를 재현한 공간이다. 극지관은 남극과 북극의 극지기후를 체험할 수 있다. 상설주제전시관은 생태학의 기본 개념, 생태계 및 생물군계(biome)의 정의, 생태계 서비스, 생태자원 보전의 의미를 전시하고 있다. 4D입체영상관은 외래종으로부터 우리 토종 동물들을 지키는 [강산이의 모험], 연어의 일생을 통해 생태계의 순환을 알려주는 [엄마숲], 남생이가 습지로 돌아가는 모험을 그린 [남생이 날다]를 4D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어린이 생태글방은 영유아 및 어린이, 청소년 대상 생태도서(자연과학, 기초과학, 생태환경 등) 1만 2천여 권을 구비하고 디지털 검색 및 오디오북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서천 국립생태원 세계 각 기후대의 자생 식물이 가득한 재배 온실 단지, 한반도 숲, 고산생태원, 습지생태원, 금구리못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온실의 창틀 난방 시스템, 자연 친화 하수처리 시스템, 천장 복사패널 등 첨단 환경시설도 살펴볼 수 있다. 다음 달 정식 개관하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1,279억 원을 들여 33만㎡ 부지에 지어졌다. 실내생태관과 해양생물연구동 등으로 꾸며진다. 5,200 여종의 우리나라 바다생물 표본이 전시된다. 해양생물의 다양성을 전문적으로 연구, 해양생물에 대한 국가 주권 기반을 다지고 21세기 해양생물산업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곳이다. 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은 각각 마서면과 장항읍에 있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5㎞ 안팎에 불과하다. 한편 서천군은 코레일과 손잡고 지난달 5일부터 ‘서해금빛 관광열차’ 운행에 들어갔다. 서울 용산역에서 장항선을 이용해 충남 아산, 홍성 등을 거쳐 내려오는 열차로 이를 타고 와 서천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한산모시관, 금강하굿둑, 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 서천특화시장, 솔바람길, 문헌서원 등이 주요 투어코스다.
서천 국립해양생물자원관 2. 문헌서원 고려 말 충신 목은 이색과 가정 이곡의 학문적 업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기산면 영모리에 세운 서원이다. 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으나 1969년 문중과 지방 유림이 복원했다. 정부와 서천군이 2007년부터 5년여간 재정비에 들어가 2013년에 전통 한옥으로 새로 탄생했다. 경내에 효정사, 진수당, 목은 영당, 장판각, 목은 신도비 등이 있다. 입구에 ‘서원으로 들어서려면 말에서 내려라’라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가까운 기린산에 이색과 셋째 아들 양경공의 묘가 있다. 이색의 묘터는 풍수지리의 대가인 무학대사가 정했다고 전한다. 기린이 풀을 뜯어 먹는 명당으로 알려져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이들이 많이 찾아온다. 서원에서 이색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지혜로운 삶과 진취적인 창의력을 전파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아늑한 기린산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서원을 거닐며 고결한 선비정신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문헌서원 문헌서원에는 이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한산이씨 명조 선현 8위를 제향하는 서원으로 기산면 영모리에 있다. 기록상 창건은 1594년(선조 27)으로 전해지며 처음 이름은 ‘효정사(孝靖祠)’이다. 1611년(광해군 3)에 『문헌(文獻)』이라 사액 받았으며, 제향 인물은 이곡(李穀), 이색(李穡), 이종덕(李種德), 이종학(李種學), 이종선(李種善), 이맹균(李孟畇), 이개(李塏), 이자(李耔)이다. ㅡ이종덕(李種德) : 이색의 장자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우왕 때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지냈으며 1373년 성균관 대사성이 되었다. 1387년(우왕 13) 지밀직(知密直)으로서 문하평리 이구(李玖)와 함께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388년 이성계파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위시켜 귀양 보내고, 최영(崔塋) 장군을 죽이는 과정에서 그 부당함을 꾸짖고 반대하다가 이성계파의 노여움을 받고 투옥되어 장형(杖刑)으로 죽었다. ㅡ 이종학(李種學) : 이색의 차자로 1374년(공민왕 23) 성균시에 합격하고, 1376년(우왕 2)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장흥고사(長興庫使)에 제수되었다. 1392년 4월 청주옥에서 방면되기도 하였으나, 조선이 개국 되자 고려의 유신(遺臣) 56명을 외방에 축출하여 후환을 없애려는 조처로 원방에 유형 되었다. ㅡ이종선(李種善) : 이색의 3자로 1382년(우왕 8) 15세 때 문과에 급제해 좌랑·정랑을 지냈으며, 부친상을 당해 3년간 여묘(廬墓) 살이를 해 효자로 일컬어졌으며, 뒤에 나라에서 효자비를 세우고 정문을 내렸다. 강원도관찰사·충청도관찰사, 한성부윤 등을 역임하나 신흥 세력에 의해 귀향 살이하다 병사한다. 사육신 이개의 조부이다. ㅡ이맹균(李孟畇): 이종덕의 아들로 조선 전기에, 예조참판, 경기도관찰사, 공조판서, 형조판서, 이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ㅡ이개(李塏) : 직제학을 역임하다 사육신으로 거열형을 당함. ㅡ이자(李耔) : 이색(李穡)의 來孫(5세손)으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 이색의 현손, 이종덕의 증손)의 아들이다. 조선 전기 한성판윤,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목은 이색 문헌서원의 최초 창건연대는 정확한 기록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이성중(李誠中)이 재임하던 1580년대 초반이라고 보여지나, 기록상 창건연대는 1594년(선조 27)으로 전해진다. 이 효정사는 그 후 정유왜란으로 소진되어 겨우 사우만이 남아 있었는데 1610년(광해군 2)에 관찰사 정엽(鄭曄)과 정언 이경탁(李慶倬: 명곡 이산보의 아들)등이 이를 애석하게 여기고 이건을 계획하여 이듬해에 동재, 다음 해에 강당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색(1328~1396), 정몽주(1338~ 1392), 길재(1353~ 1419) 이 같은 서원의 재건과 때를 같이하여 1611년(광해군 3)에는 ‘문헌(文獻)’으로 사액을 받게 되는데 이경함(李慶涵), 이덕형(李德馨), 이경준, 이경전, 이현영(李顯英), 이경탁, 이임 등등의 협조와 지원이 컸었고 이때 이종학(李種學)과 이자(李耔) 2위를 추배하여 모두 4위를 제향하게 되었다. 惕 두러워할 척 이러한 일련의 서원 재건은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문묘 배향 논의와도 때를 같이하고 있었으며, 특히 이 과정에서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은 이색의 행적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를 역설하면서 이 서원의 운명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헌서원지에 의하면 창건 후 원장으로 송준길, 윤증(尹拯), 남구만(南九萬), 권변(權忭)등이 기록되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은 ‘문헌서원’이라는 액호를, 진수당(강당), 존양재(동재), 석척재(서재) 글씨는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이 썼다고 한다. 1713년(숙종 39)에는 백옥헌 이개(白玉軒 李塏)를 추가로 추배하여 모두 5현이 제향되게 된다. 문헌서원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되었고, 1891년 옛터에 단을 설치하고 제향하였다. 서원구지(書院舊誌)에 의하면 이 설단 당시 한산 향현사에 제향되던 ‘한산 6군자(현암 이종덕, 어성 신담, 남강 이임, 과묵당 홍미, 복천 강학련, 지족당 권양)’을 함께 제향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100여년이 지난 1967~1968년에 종족들에 의하여 중건이 발론되고 후손들의 합력으로 영모리 동쪽의 현재위치로 1969년에 이건 하게 된다. 이 해에 현암 이종덕(玄巖 李種德)을 추배하여 모두 6현을 제향하게 되었다.
문헌서원은 1969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된 이후, 정부와 서천군의 전통 역사 마을 조성 사업계획에 따라 2007년부터 기산면 영모리 문헌서원 일대 19,847㎡ 부지에 5 년여간의 재정비 절차를 거쳐 2013년에 기와 색감이 아름답고 곡선이 부드러워 볼수록 아름다운 전통 한옥으로 새롭게 단장되었으며, 2013년 4월 이맹균(李孟畇), 이종선(李種善) 2위를 추가로 배향하여 현재의 제향 인물은 가정 이곡(稼亭 李穀), 목은 이색(牧隱 李穡), 현암 이종덕(玄岩 李種德), 인재 이종학(麟齋 李種學), 양경공 이종선(李種善), 문혜공 이맹균(李孟畇), 백옥헌 이개(白玉軒 李塏), 음애 이자(陰崖 李耔) 등 8현이다. 문헌서원 재실 문헌서원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서원에서 보유중인 문화재로는 『가정목은선생문집판(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77호, 1978.3.31.지정)』, 『목은이색영정(보물 제1215호, 1995.3.10.지정)』, 『목은선생신도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 1984.5.17.지정)』가 있으며, 『이색선생묘일원』도 충청남도 지정기념물 제84호로 등재되어 있다. 문헌서원의 향사일은 매년 음력 3월과 9월 중정일(中丁日)이다. 문헌서원 효정사 위패 봉안도(文獻書院 孝靖祠 位牌 奉安圖)
효정사 봉행 서차(孝靖祠 奉行 序次) ①文孝公 稼亭 : 李穀 : 목은(牧隱)의 부(父) ②文靖公 牧隱 李穡 ③文襄公 玄巖 李種德 : 목은(牧隱)의 장남(長男) ④麟齋公 李種學 : 목은(牧隱)의 차남(次男) ⑤良景公 李種善 : 목은(牧隱)의 삼남(三男) ⑥文惠公 漢蘇齋 李孟均 : 목은(牧隱)의 손(孫) ⑦忠簡公 白玉軒 李塏 : 목은(牧隱)의 증손(曾孫) 집현전 지제학 ⑧文懿公 陰崖 李耔 : 목은(牧隱)의 오대손(五代孫) 茶後小詠 다후소영- 차를 마시고 나서 작게 읊다 小甁汲泉水소병급천수ㅡ 조그마한 병에 샘물을 길어다가 破鐺烹露芽파쟁팽로아ㅡ 묵은 솥에 노아차를 끓이노라니 耳根頓淸淨이근돈청정ㅡ 귓속은 갑자기 말끔해지고 鼻觀通紫霞비관통자하ㅡ 코끝엔 붉은 놀이 통하여라 俄然眼翳消아연안번소ㅡ 잠깐 새에 흐린 눈이 맑아져서 外境無纖瑕외경무섭하ㅡ 외경에 조그만 티도 보이질 않네 舌辨喉下之설변후하지ㅡ 혀로 먼저 맛보고 목으로 삼키니 肌骨正不頗기골정부파ㅡ 기골은 바로 평온해지고 靈臺方寸地영태방촌지ㅡ 방촌의 마음 밝고 깨끗하여 皎皎思無邪교교사무사ㅡ 생각에 조금의 사도 없어라 何暇及天下하가급천하ㅡ 어느 겨를에 천하를 언급하랴 君子當正家군자당정가ㅡ 군자는 의당 집부터 바루어야지 *고려사람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시다. 3. 장항 스카이워크 전망대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송림리에 있는 전망대로 군장국가산업단지 장항지구는 1989년 군산 지구와 함께 산업단지로 지정되었으나 갯벌 매립에 관한 환경 단체 및 일부 정부 중앙 부처의 반대로 18년간 표류 중이었다. 2007년 6월 서천군과 정부는 갯벌 매립 계획을 취소하고 내륙에 장항 생태산업단지로 축소 조성하는 대신 국비로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을 설립하는 서천 발전 정부 대안 사업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서천군은 관광객 유치 및 인프라 확대를 위하여 정부 대안 사업과 연계한 사업으로 장항 재창조 프로젝트를 추진하였고, 송림 어뮤즈 스카이워크 조성 사업으로 장항 송림산림욕장 일원에 ‘하늘 길’ 장항스카이워크를 조성하였다. 장항스카이워크는 기벌포 해전전망대라고도 부른다. 장항스카이워크 전경 장항스카이워크는 2015년 준공하였다. 서천군은 2025년 충청남도 관광 자원 개발 공모 사업에 선정될 경우, 2027년 연말까지 총사업비 40억 원을 들여 장항스카이워크를 연장하는 높이 15m, 길이 100m의 ‘맥문동 하늘길’을 조성하고, 중간에 높이 3m의 전망대 원형을 확장한다는 신규 사업 계획을 발표하였다. 또한, 장항스카이워크를 무장애길로 조성하기 위하여 장항스카이워크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추진하고 있으나, 환경부와 환경관리공단에서 오염 물질 이동 등 환경 문제 관련 우려를 표명하였다. 스카이워크 전망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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