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가족애, 소박하고 고운꿈
-손설강 디카시집 「가족사진」
손설강의 디카시집 『가족사진』을 참 기꺼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는 이 시집의 머리말에서 자신의 문학을 키워준 스승 두 분에 대해 말했다. 아름다운 일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가르침과 배움을 나눈 관계를 잊지 않고 잃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시인은 또한 이 시집이 결혼 40주년을 맞는 자신의 부부가 큰 의미를 부여한 결과라고 썼다.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시집의 제목 '가족사진'에서부터 4부로 구성된 시편들이, 모두 가족 간의 사랑과 그로 말미암아 생성하는 삶의 보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고 소박하지만 이처럼 결이 고운 꿈의 행렬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우리의 영혼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한다.
1부 맨 앞에 수록된 「가족사진」은 정말 좋은 디카시다. 우선 이시의 사진이 너무 '신박'하다. 색색 단풍잎이 낙엽이 되어 이룬 바탕 그림에 온 가족이 한발씩 내밀어 산뜻하고 집중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시적 화자는 '초상권도 문제없는 신'과 함께 가을 소풍 길에 나섰다고 덧붙인다. 이 짧은 시간의 경과를 통해, 그리고 이렇게 소락한 가족사진을 통해, 시인은 마음이 한데 모이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하나의 상징이나 예표처럼 보여준다. 이러한 압축적인 시적 표현법은 「정월대보름」이나 「청계천」 그리고 「특집」같은 빼어난 시들에서도 잘 나타난다. 손설강 시인이 디카시를 쓰고 디카시 강의를 하면서 축적해 온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증거 하는 대목들이다.
2부의 소제목이 된 「흔한 남매」는 사진에 아직 어린 남매의 발걸음이 올라와 있다. 이들은 종종걸음으로 문밖을 향한다. 시적 언술을 보면 아마도 어떤 리조트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나오는데, 둘이 약속이나 한 듯 풀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길지 않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야 할 시간에, 휙 돌아서서 딴 길을 가는 남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인은 그 엄마일 시 분명하다. 그러하니 이 돌발행동이 오히려 대견해 보이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그 가운데 숨어있다. 이는 인지상정이니, '흔한 남매'라는 호명이 가능하다. 2부에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시는 「불멍」 「상형문자」 「좋은 날」 「틀깨1」같은 작품들이다.
3부에 수록된 「동화의 나라」는 그야말로 동화가 현실이 되고 현이 동화가 되는 마법의 상상력을 불러오게 한다. 기차의 벽면을 열고 들어가는 간단한 상상력으로 해리포터는 마법의 세계를 구성한다. 사진은 단풍 든 나뭇잎의 틈새로 두 아이가 개울물을 밟는 광경을 포착하고 '일등과 꼴등이 없는 동화의 나라를 매설한다. 이렇게 일상의 모습을 앞세워 새롭고 뜻깊은 의미망을 발굴하는 것이 손설강 디카시가 가진 힘이다. 다른 시들 바라던 바다」 「신고전주의」 「어른의 책무」 「퍼포먼스」 「휴휴암에서」 등의 시편들이 모두 이렇게 참신한 순간 포착의 영상과 그에 걸맞는 촌철살인의 시를 결부한, 이른바 잘 제작된 디카시의 모범이다.
4부 맨 앞에 있는 「엄마 손」은 휠체어의 어머니가 북한강 변 대성리에서 몸을 숙여 '소녀처럼' 꽃을 따던 장면을 붙들었다. 4부의 시를 일관해서 읽어보면, 여기에서의 작품들이 지금은 유명(幽明)을 달리한 어머니를 위한 '사모곡(思母曲)'임을 알 수 있다. 이 시편들 중에 사모곡」 「엄마손」 「벚꽃처럼 스러지다」 등의 작품은 딸이 어머니에게 바치는 수작(秀)의 헌사임을 보게 된다. 이 주제는 시집의 표제인 '가족사진'의 넓이와 깊이를 한층 더한다. 주마간산 격으로 짧게 살펴보았으나, 손설강의 디카시는 우리 시대 첨예한 문예 장르로서 이 문학 형식이 가진 장점을 잘 발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