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한국천주교 서울 순례길 3코스(4)
(용산성당∼삼성산성지, 2023년 2월 8일)
瓦也 정유순
용산성당에서 한강 쪽으로 맞은편에는 성심여자중·고등학교 교정이 있고, 옛 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이 있다. 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학교와 그 부속성당이었다. 지금도 꽤 높은 언덕인 이곳은 원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함벽정(涵碧亭)이 있던 곳이다. 파리외방전교회는 1887년 한·불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이 땅을 매입했는데, 이곳은 기해박해(1839) 때 교도들의 순교 현장이었던 당고개와 병인박해(1866) 때 성직자들이 참수당한 새남터가 가까이에 있다.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예수성심성당 내부>
용산신학교의 역사는 지금의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등평리에서 1885년에 개교한 예수성심신학교가 1887년에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전 후 초기 교육은 한옥에서 이루어지다가 신학교 신부들이 뜻을 모아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교인 용산신학교를 세우게 된다. 용산신학교는 1891년 5월 정초식을 갖고 약현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와 감독을 총괄했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하여 1892년 6월에 완공되었다.
<서울 용산신학교>
그 뒤 1928년 신학교가 혜화동으로 옮겨가면서 이 건물은 성직자 휴양소로 이용되었는데 1956년 한국에 진출한 성심수녀회의 수녀원에 양도되어 지금까지 수녀원 사무실로 이용되고 있다. 용산신학교 건물은 현재 원효로성당과 성심여자중학교, 성심여자고등학교와 일군을 이루고 있는데 각 건물은 독립된 공간으로 존재하면서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고, 또한 건물의 외형이나 공간 구성이 안정된 개성을 유지하고 있어 주변의 혼잡한 풍경과 대비되는 평온한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성심여자중학교>
<성심여자고등학교>
원효로예수성심성당 건물은 1899년 6월 9일 착공하여 1902년 4월 14일 축성식을 올렸다. 이 건물의 특이한 점은 지형을 이용하여 전면 일부는 언덕 아래에 3층으로 언덕 위는 단층으로 되게 하여 작은 건물이지만 당당한 외관을 보여주고 있으며, 내부의 천장구성과 장식은 고딕 양식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고 소박하지만 커다란 장엄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원효로예수성심성당은 용산신학교와 함께 사적으로 지정 되었다.
<원효로 예수성심성당(측면)>
<예수성심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성심여고 정문으로 나와 용문동에 있는 <남이장군 사당>을 들러본다. 남이(南怡, 1441∼1468)는 본관이 의령(宜寧)으로 1460년(세조 6) 경진무거(庚辰武擧)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며, 1466년(세조 12)에 실시된 발영시(拔英試)에도 급제하였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여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1468년(예종 1) 유자광(柳子光)의 고변으로 역모의 혐의를 받아 저자에서 거열형을 당했다.
<남이장군 사당 - 네이버캡쳐>
병조참지(兵曹參知) 유자광은 남이의 북정시(北征詩)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波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백두산석마도진 두만강파음마무 남아이십미평국 후세수칭대장부 ;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다 없애라.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어찌 대장부라 하리오) 중 男兒二十未平國을 男兒二十未得國으로 바꿔 역모를 꾀했다고 모함하여 남이를 죽게 하였다.
<남이장군사당 충무문>
이곳에 사당이 생기게 된 사연은 500여 년 전 남이장군이 이곳 용문동에서 병사들을 육성했는데 그 부하가 후세에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했다는 설과, 1818년(순조 18) 억울한 누명을 벗고 충무공 시호를 받았을 때 함께 국봉서원에 배향된 후 추모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셨다는 설이다. 매년 10월이면 남이장군사당제가 열리는데, 행사 중 하나로 산천동 부군당에서 사당까지 행사의 일환으로 꽃받기 행진하고 사당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남이장군 추모비>
이곳에서 약2㎞쯤 떨어진 용산구 용산동5가에 있는 <왜고개성지>로 도보 이동한다. 서울용산우체국 옆 한강대로 변에 있는 <왜고개>는 조선시대 500여 년간 기와와 벽돌을 공급하던 와서(瓦署)가 있던 곳으로 명동성당과 중림동 약현성당도 이곳 벽돌을 사용했다고 한다. 왜고개성지는 1846년 병오박해(丙午迫害)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신부가 미리내 성지에 묻히기 전 잠시 머물었던 곳이다.
<왜고개성지 표지석>
<왜고개성지 성당>
1866년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베르뇌 시메온 주교, 성 도리 신부, 성 볼리외 신부, 성 브르트니에르 신부, 성 우세영 알렉시오 등은 현재 절두산 성지에, 시복이 되지 않은 프티니콜라 신부와 푸르티에 신부는 용산 성심신학교에 이장되었다가 현재 명동성당 지하에 안치되었다. 또한 같은 병인박해 때 서소문에서 순교한 성 남종삼 요한, 성 최형 베드로도 이곳에 43년간 묻혀 있다가 1909년 명동성당을 거쳐 현재 절두산성지에 모셨다.
<열 분의 순교자비>
따라서 왜고개는 순교한 성인들이 머물고 간 장소로서 교회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으로, 순교자들의 삶과 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왜고개성지에는 군종교구 주교좌성당과 함께 순교자 현양비, 십자가의 길 14처, 십자고상, 기도처 등이 마련되어 있다.
<군종교구 주교좌성당>
왜고개성지에서 서울 관악구에 있는 삼성산성지로 이동하기 위해 한강대로로 나와 구 KT용산지사 정류장에서 152번(수유동∼경인교대)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는 한강대교를 건너 사육신묘원 앞과 장승백이를 지나 신림동교차로 등을 경유하여 한 시간 쯤 지나서야 삼성산성지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길 건너 삼성산성당으로 들어서면 두 팔을 벌려 맞이하는 예수님 상과 눈 맞춤을 하고 삼성산성지(三聖山聖地)로 올라간다.
<삼성산 성지 예수님 상>
삼성산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여 노고산에 묻혔던 세 분이 1843년(헌종9)에 박 바오르 등에 의해 다시 발굴되어 박 씨의 선산인 이곳에 안장되었다. 앵베르는 1837년에 제2대 조선교구 주교에 임명되어 1838년 조선에 들어와 전교활동하다 수원에서 체포되었다. 모방신부는 1836년 조선에 들어와 한국교회사 최초의 서양인 천주교선교사로 여겨지는데 충청도 홍성에서 체포되었다. 샤스탕신부는 앵베르주교를 따라 서울에 잠입하여 전교활동하다 충청도 홍성에서 체포되었다.
<삼성산 성지>
<삼성산(三聖山)>이란 명칭은 신라 때의 고승 원효(元曉)·의상(義湘)·윤필(潤筆) 등 3명이 수도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고려 말 명승 나옹·무학·지공이 수도한 곳이다. 그 후 이곳에 세 선교사의 유해가 안장되고 그들이 시성되어 성인품에 오름에 따라 천주교회 안에서는 <삼성산>을 ‘세 명의 성인 유해가 안장된 성지’로 설명하게 되었다. 현재 삼성산 성지는 삼성산성지 성당에서 관리하고 있다.
<천주교 삼성산성지 표지석 - 2019년 6월>
천주교 서울 성지 24곳을 순례하면서 “혹시 천주교 신자가 아니냐?”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특히 문지기가 있는 곳을 방문하면은 대뜸 받는 질문이 “어느 교회에서 오셨느냐?”하는 질문이다. 그 때마다 “나는 비신자”라고 답하면 좀 이상한 눈초리가 나에게 꽂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순례를 하는 이유는 천주교가 처음에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이 땅에서 엄청난 문화충돌을 겪으면서 정착하게 된 역사를 보기 위해서다.
<삼성산순교자 성지>
그러면서 외래종교가 정착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신채호선생의 말을 떠올려 본다.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의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
<여순감옥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과 - 2018년 8월>
끝으로 천주교 서울성지 순례를 마무리 하면서 1838년 앵베르 주교가 번역한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조용히 읊어본다.
“마리아 지극히 정결하신 성모여
내 마음과 몸을 조촐케 하시고
나를 도우사 사욕을 이기어
모든 죄를 멀리 떠나게 하소서”
<앵베르주교가 번역한 말씀>
https://blog.naver.com/waya555/223012034077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