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8월 하순 초
▶ 대성마을 정류장 - 대석저수지 - 홍룡폭포 - 원효봉 / 922m - 무지개폭포 - 마을버스 종점
◐ 대성마을 정류장 - 20분 "대석저수지" - 25분 "주차장" - 20분 "홍룡폭포" - 50분 "원효암 갈림 이정표" -
- 40분 "(화엄벌)화엄늪 갈림 이정표" 20분 "원효봉" - 40분 "은불암" - 20분 "무지개폭포" -
- 15분 "계곡" - 10분 "무지개산장" - 10분 "마을버스 종점" ◑
◆ 5시간 30분 정도
"온천장역정류장 / 12번. 12-1번" 승차
"대성마을정류장" 하차
"대성마을" 주변- 1
"대성마을" 주변- 2
"홍룡성" 옆으로 올라간다.
▶ 지도를 참고하여
"대석저수지" 까지 간다.
1분 후
"덕운육교" 를 건너면서
"통도사" 방향
"양산" 방향
2분 후
도로표지판을 지나고
2분 후
"원효암 8km"" 갈림길
좌측 11시 방향으로 들어간다.
6분 후
도로표지판을 지나면서
희뿌연
"영축지맥" 라인
■ ~ ~
■ ~ ~ ~
잠시후
"당산공원" 지나고
"성산교" 를 건너면
우측으로 간다.
● ●
"대석마을 숲 안내도"
"대석마을의 유래"
"대석마을의 유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나주 정씨 정덕이 어머니를 등에업고
김해에서 낙동강을 건너 피란와서
홍룡폭포 갯들 밑에서 생활하다가,
현재의 대석마을로 내려와서 정착했다
당시 마을 이름을 돌실이라고 하였다.
대석마을은 이때부터 생기게 되었다.
그 후 담양 전씨, 김해 허씨 등
3개 씨족이 와서 살았다고 한다.
그 후 김해 김씨, 영일 정씨, 밀양 박씨, 안동 권씨,
경주 조씨, 동래 정씨, 김녕 김씨 등이 입주하여
대석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 뒤쪽에 아들 낳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제일강산" 큰 바위가 있어 대석이라고도 하였다.
500년 된 회나무 뿌리에서 물이 나오는 장수우물이 있다.
천성산 기슭에 신라 석탈해 왕 후손인 석씨왕들 중
가장 마지막 왕인 흘해왕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진다.
상해임시정부 재무총장, 외무총장, 의정원 부의장, 국무령을 지낸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투사인 백농 이규홍 선생이 태어난 마을이다.
이규홍 독립투사의 부 친인 가선대부 이재영, 그의 친구 권순도가
1918년 홍룡사 주변의 풍광을 즐기기 위해 가홍정을 건립하였다.
현재의 대석저수지는 이규홍 선생의 아들인 이종문 씨가
사재를 털어 축조하였다.
권순도는 부산 해관장 헌트의 딸 리즈 헌트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타까워하며
"세계인환영" 이라는 비석을 세웠다.
권순도는 면암 최선생(최익현), 제일강산, 상용추 등의 글자를
바위에 새겼다.
"천성산의 사계"
4분 후
둑방 아래에서
우측 다리를 건너간다.
3분 후
"대석저수지" 둑방에 올라
뒤돌아 보면서 ~
시계 방향으로 ~
쭈~ 욱 둘러본다.
"영축지맥" 은 뿌옇다.
■ ~ ~
"원효봉" 이 살짝 보인다.
대석저수지의 반영
■ ■
둘러본 한 바퀴
당겨본 "원효봉"
〓 대석저수지 〓
둑방을 지나오면
"대석저수지 수변 산책로"
데크를 빠져나가면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오늘은 수량이 찰랑찰랑!
5분 후
뒤쪽에서 바라본
"대석저수지"
3분 후
주차안내 현수막
완만하게 걸어간다.
5분 후
"원효봉 (임도경유) 5.55km"
"화엄늪 4.25km" 갈림길
계속 도로따라 →
"원효봉 4.25km"
"원효암 2.9km"
"대석마을주차장 0.4km" →
4분 후
"홍룡교" 를 건너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수량!
당겨본 "원효봉"
2분 후
보호수인 듯 하다.
물놀이 온 사람들이 있는데
앵앵거림들이
땀 냄새를 맡고 달려드니
꼼짝않으면 달려들지 않을까?
잠시후
우측에 있는 주차장
종 모양의 화장실
"양산 대석마을 주차장"
대석마을은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丁得(정득) 羅州丁氏(나주정씨)가 모친을 업고
金海(김해)에서 落東江(낙동강)을 건너
피난차 홍룡폭포(虹龍瀑布) 갯들밑에서
피남생활을 하다가
현재의 大石(대석)마을로 내려와서
정착을 했으며
당시 마을 이름을 들실이라 하였다고 한다.
대석마을이 이때부터 생기게 되었으며,
大石(대석)마을 인근에는
홍룡폭포(虹龍瀑布), 홍룡사(虹龍寺)등
계곡의 물이 맑고
元曉山(원효산) 기슭의 元曉寺(원효사)등으로
사계절 관광객이 떨어지는 날이 없다
현위치 안내도
주변경관
이번 달 초순에
"화엄늪" 에서 내려왔는데
오늘은 미흡하지만
수량이 괜찮다.
에어건
양산시 관광안내도
유라시아 대륙 첫 일출
천성산 종합안내도
■ ■
이정표 - 1
이정표 - 2
"홍룡사 (도로) 0.95km"
"홍룡폭포 (도로) 1km" →
잠시후
"千聖橋" 를 건너간다.
6분 후
옆에 보이는
편백지대
6분 후
"일주문" 을 지나고
1분 후
좌측에 있는 화장실
우측에 있는
"가홍정(駕虹亭)"
가홍정은 천성산 자락 홍룡사 앞쪽에 위치한 정자로서
양산 대석에 살던 가선대부 석은(石隱) 이재영(李宰榮)이
노병이 치유되고 난 66세이던 1918년에
자신의 소유지였던 홍룡폭포 아래에
죽우(竹友) 권순도(權順度)와 같이 정자를 세우고
많은 이들이 함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재영이 남긴 가홍정원운병서(駕虹亭原韻幷序)에 따르면
내가 병고를 견디다가 늙어갈수록 더욱 무료하여,
맑고 한가한 구역 하나를 얻어
자취를 끊고 이름을 숨기고자 생각하였는데,
일찍이 살펴보니 살고있는 동네 뒷산에 홍동(虹洞)이 있었다.
골짜기가 깊어서 수십 구비가 됨직하고
구비 진 상류에 폭포가 있는데,
무릇 상,중, 하벽의 세 절벽으로,
위의 절벽은 높이가 20길 정도이고,
가운데와 아래 절벽은 위의 절벽의 반 정도이다.
예전에는 아래 절벽 곁에 기우단이 있어서
날씨가 가물면 당시 군수가 와서 제사를 지냈다.
그 영험이 예전부터 그러하였거니와
또한 천 길 푸른절벽이 좌우로 둘러싸고,
수많은 수목들이 위아래를 둘러 푸르게 에워싸고 있다.
그러다가 산에 햇빛이 막 비치고
무지개 그림자가 번뜩거리며,
골짜기의 바람이 한바탕 뒤흔들면
우레소리가 펑펑 울리니 참으로 절경이다.
이에 무오년 봄에
폭포 곁에다가 몇 간 정자를 얽어서
이름을 가홍정이라 하였다.
가홍정은 당시 지어진 건물은 없어지고
1970년대 콘크리트로 모임 지붕형태로
사방이 뚫린 모양으로 헐린 자리에 다시 지어졌으며
유서깊은 정자인 가홍정을 복원하고자 하였으나
철거되기 전의 자료가 사진한장을 제외하고는 전무하여
옛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여
사진을 토대로 최대한 옛모습과 비슷한 누각형태로
2011년 현재의 모습으로 양산시에서 건립하였다.
가홍정 뒷 모습
"천성산 홍룡사 (千聖山 虹瀧寺)"
■ ■
잠시후
"홍룡폭포 하단"
〓 홍룡폭포_ 하단 〓
"홍룡폭포 중단"
● ●
〓 홍룡폭포_ 중단 〓
"홍룡폭포 상단"
◆ ◆
◆ ◆ ◆
◆ ◆ ◆ ◆
〓 홍룡폭포_ 상단 * 〓
〓 홍룡폭포_ 상단 ** 〓
다시 "가홍정" 으로 내려와서
통계단과 야자매트길을
제법 빡시게 올라가야 한다.
"원효봉 3.4km"
"원효암 1.75km" →
11분 후
자연친화형 의자
잠시후
바위길도 지나가는데
▶ 이후 등로는 완만하기도 하고
조금 가파르기도 하면서
닥오하면 된다.
1분 후
7분 후
등로 좌측의 바위군
잠시후
9분 후
바위의 형태가
십자가를 연상시킨다.
♣ 나머지 사진은 2페이지로 ~ ~ ~
보고 걷고 | 대성마을 - 대석저수지 - 홍룡폭포 - ★원효봉 - 무지개폭포 2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