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20년 전에 분노한 일이 떠올랐다. 난 기질적으로 심리치료를 잘 받아들인다. 그런데 모든 장점에는 단점도 있어, 나의 경우에는 분노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가끔씩 울컥하며 분노할 때가 자주 있다.
종교에서는 믿을 수 없을 때 믿는 것이 신실함의 기초다. 즉 믿음이 강한 사람은 그냥 잘 믿는 자다. 요즘 법정 스님의 법문집을 읽는데, 용서에 관한 내용도 많이 나온다. 스님은 마음을 활짝 열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려야, 수행자다운 모습이라고 했다.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용서하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은 아주 힘든 경우에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자, 라고 말한다. 먼저 용서를 하지 않으면 당사자의 삶이 피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큰 상처를 겪고 나면, 사람은 표독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철학자 스피노자의 삶이 딱 이랬다. 그도 아주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그는 다행히도 온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도 상처를 깊이 겪어 보아서 이것의 힘듦을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표독스럽게 살아가려고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의 경우에는 그때마다 훌륭한 사람들이 곁에 있어줘서 이것을 극복한 케이스다.
존경했던 구본형 선생님이 나를 끝까지 믿어주신 경험을 한 듯하다. 스승의 존재는 영혼의 단위에서 영향을 받는다. 즉 끝이 없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과 선생님의 포용은 나를 상처로부터 딛고 일어서게 도와주었다. 친한 지인들과 소통하며 치유받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말이 쉽지 당사자에게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괜히 달라이 라마가 <용서>라는 책을 출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분의 책을 읽어 보면, 용서의 중요성에 관해 배우게 된다. 불교에서는 자비가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용서하지 못하면 자비를 베풀 수 없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승려 중에 한 명이 있었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오랫동안 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런데 이분의 말이 인상 깊다. “제 마음속으로부터 중국인을 미워할까봐 고생이 많았다.” 자비를 행하면서 사는 사람의 경지를 보여준다.
용서는 심리치료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면 상대와 세상을 탓하는 상태이다. 이것은 신경증을 넘어서 성격장애의 모습이다. 신경증은 치료가 쉬운데 반해, 성격장애는 잘 치료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심리적 상처가 낫고 싶은 사람은, 결국 용서를 해야 한다.
필자도 20년 동안 용서했다, 분노했다 이 행동을 수천 번 반복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도 현실에서 용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인생을 잘 살려면 용서해야 할 것이다. 법정 스님의 명상 수필이 좋은 이유가, 좋은 삶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스님은 마음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는 인생을 말했다. 또한, 삶은 지금 이 순간에 이뤄지므로 용서를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은 종교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모두 나의 큰 탓이로다.’ 이 말이 맞는 게 따지고 보면, 모두 자신이 지어 스스로 받는 것이다. 인생은 공짜도 없고, 거저 되는 일도 없다. 또한, 종교는 역설을 강조한다. 죽으려 하면 살 것이요, 살려 하면 죽을 것이다. 용서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 타인을 용서하면, 결국 나의 마음이 활짝 깨어난다. 매 순간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종교를 비롯해 인생을 잘 사는 아주 주요한 방법이다.
김신웅 심리상담연구소
첫댓글 그러므로 얻고 잃는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얻었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고, 잃었다고 해서 기죽을 것도 없습니다. 다 한때 입니다. 그 당시에는 괴롭고 참기 어려웠던 일들도 지나고 보면 그때 그곳에 나름의 의미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일도 세월이 지나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 법정 스님 법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