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학개론36강/우리들의 뮤즈 다선 민 경 옥 지금도 사랑이라는 말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진한 여운을 남기는 말일까? 어쩌면 현대는‘왠 사랑 타령이야’ ‘사랑이 밥 먹여줘’라는 말이 더 세력을 얻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에서 동물로 가까워질수록 짝을 고르는 기준이 사랑 보다는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으로 바뀐다. 동물은 싸움에서 최후 승리를 얻은 가장 강한 수컷과 암컷이 짝짓기를 한다. 강한 새끼를 얻기 위한 자연의 섭리이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이 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살아왔다. 가문도 좋고 사회적으로도 지위가 높은 사람이 보잘 것 없는 집안의 여자와 결혼을 하기도 하고 황태자가 왕위 계승을 포기하고 이혼녀와 결혼을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건강한 미모의 여인이 장애를 가진 남자와 결혼하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남편의 휠체어를 밀고 공원을 산책하기도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사랑도 동물적 사랑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래서 일까 우리들 마음속에서 뮤즈도 상실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뮤즈는 원래 예술의 여신으로 춤과 노래, 문학을 주관하는 신이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과 음악가, 화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신으로 회자되어 오다가 중세 이후에는 어떤 예술가의 정신적, 육체적 사랑을 지배하면서 작품의 주된 주제로 등장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음악가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뮤즈는 슈만이 사랑한 클라라이다. 슈만하면 클라라, 클라라 하면 슈만을 떠올릴 만큼 두 사람은 서로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클라라의 아버지는 1800년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프리드리히 비크이다. 어린 시절 슈만은 클라라의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제자로 들어갔다가 클라라와 사랑에 빠진다.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을 하려 했지만 당시만 해도 슈만이 별로 유명하지 않은 평범한 음악가였기 때문에 클라라의 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한다. 하지만 클라라는 18세 성인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상대로 법원에 결혼허가 소송을 벌여 결국 슈만과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하던 해에 슈만은 클라라를 생각하면서 수많은 가곡을 작곡한다. 그래서 후세 음악평론가들은 슈만이 클라라와 결혼했던 1840년을 슈만의 가곡의 해로 부르기도 한다. 이후에도 슈만은 클라라를 뮤즈로 하여 수많은 곡을 썼고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는 슈만의 곡을 연주 하였다. 슈만은 자신의 곡을 클라라가 연주해 줄 때마다 행복에 잠겨 듣곤 했다.
슈만은 나이가 들어 심신이 병약해지면서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클라라는 슈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간병을 하면서 끝까지 그 곁을 지켰다.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클라라를 연모했던 음악가 브람스가 그녀의 곁에 있기를 원했지만 클라라는 거절하고 가슴속 슈만의 빈자리를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은 채 슈만의 음악으로 자신의 가슴속 슈만의 빈자리를 채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외에도 음악가 중에는 베토벤이 작곡한 월광소나타의 주인공인 줄리에타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 베토벤에게 불멸의 연인이 된 요제피네가 있었고, 쇼팽에게는 강아지왈츠라는 경쾌한 곡을 작곡하게 한 샹드가 있었으며, 모차르트의 뮤즈였던 콘스탄체가 잘 알려져 있다. 화가들 중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연인이자 뮤즈 였던 마르게리트가 그리고 르누아르에게는 수잔이라는 뮤즈가 있었으며 걸어가는 사람으로 유명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에게는 캐롤린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뮤즈가 있었는데 윤항기씨의 장밋빛스카프를 탄생시킨 정경신도 그런 경우이다.
예술가와 뮤즈의 관계는 행복한 만남의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짝사랑이거나 아니면 가난한 예술가와 유명 가문의 여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죽었지만 지금도 그들은 살아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모든 육체적 기능정지를 의미하지만 사실 육체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잊혀 졌다면 그 사람은 그 누군가에게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죽었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잊혀진 사람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누군가가 누군가의 낡은 시집을 집어 들고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시를 읽다가 그 시인을 기억한다면 그 시인은 여전히 살아 있고 작품 속에 시인의 뮤즈 또한 시인과 영원히 함께 살아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예술가 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가 아닐까 싶다.
|
첫댓글 오늘 글 감사합니다~^^
다선님은 호사를 누리실 충분한 분이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된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포함한 것 같습니다. 예술가로서, 스승으로서, 연인으로서, 부모로서, 업적으로서, 저서로서... 그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노력의 결과인것 같습니다. 그저 강함이 아닌 진정한 마음에서 오는 감정으로 기억됨을 이루는 삶이 되기를저도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