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이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
1.샤머니즘의 정의
아시아의 동북방 일대는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일종의 무당 신앙이 민속 종교를 지배하 왔다. 이 샤머니즘의 어원은 퉁그스(tungus)족이 무당이나 의약사(醫藥師) 또는 주술사를 샤먼이라고 호칭한데서 유래 된 듯 하다.샤머니즘은 애니미즘을 기초로 한다. 애니미즘(animism)은 모든 물체에 정령(精靈)이 존재한다고 믿는 자연 숭배 또는 정령을 숭배하는 원시 종교이다. 고대인들은 죽 죽음을 계기로 육체에서 떠나간 영혼들을 상상하고 그것이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러므로 천지(天地) 사이에는 이러한 정령들로 가들 차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인간의 모든 질병, 재난, 그리고 불행과 때로는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다. 애니미즘에 기초를 둔 사머니즘은 일종의 원시 다령신(多神靈)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이 다신령들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매체(媒體)가 요구되는데, 그 일을 맡아서 행하는 자가 곧 샤먼인 것이다.
2.신앙으로서의 샤머니즘
샤머니즘을 무교(巫敎) 또는 무격 신앙(巫覡信仰)이라고 할 때 이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정의한 말이다. 샤머니즘은 주로 시베리아 중심의 엑스타시(ecstasy)와 인격 전환을 수반하는 원시 종교의 한 형태를 말하는 것인데 넓은 의미로는 관념적으로 이와 유사한 모든 원시 종교를 일컫고 있다.
신령이 실제로 샤먼이라고 부르는 주술자에게 붙어서 악마와 요정을 쫓아내고 그 부하인 인간에게 복을 가져온다는 샤머니즘은 자연 숭배사상과 우주에 편재해 있는 초월적 신격에 대한 경배 사상이 포함되어 있는 다신교라고 볼 수 있다.
샤먼은 도무(跳舞) 곧 방울이나 북을 흔들어 미친 듯이 춤을 추어 접신하며, 곡식을 풍족하게 하는 것과, 질병을 고쳐주고, 액땜 등을 해주며, 떼로는 신에게 희생을 바치고 미래를 예언하며 귀신을 부르고, 영계를 살피게 하며, 흉한 일과 악한 일을 주도한다.
3.한국 샤머니즘의 역사
한국 무교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동북아시아의 시베리아에 있던 샤머니즘을 한국무(巫)의 연원으로 삼는다. 이는 고대 한국 민족과, 신라, 고려, 조선을 이어 내려오면서 우리 민족의 의식구조 속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도 무속은 한국의 민간 신앙에 깊이 뿌리 박고 있다. 이는 귀신 사상, 점복 사상(占卜思想), 풍수 사상 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여타 종교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4.한국 샤머니즘의 신관(神觀)
한국의 샤머니즘은 다령숭배,(poly-demonism) 또는 다신론(polytheism)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무속에서 신앙하는 신은 273종에 달한다고 한다. 샤마니즘은 신과 인간과의 개인적 구원관계라든지 신을 향한 신앙적 결단보다도 생활상의 당면한 현실 문제를 초월적인 신의 능력에 의지하여 해결해 나가려는 것이 샤머니즘의 목적이다. 즉 소원성취로 행복과 복을 불러들이고 액땜을 하고, 병을 고치는 등의 극히 현실적인 문제들로 집약되는 것이다. 또한 기도 방법도 정신적이라기보다는 신에게 제물을 바침으로써 그 제물의 양과 질에 비례하여 신의 응답을 기대하는 공의적(公儀的) 신앙에 의존하고 있다.
5.무당의 역할
무당은 일정한 신령을 몸주로 모시고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 보통 자신의 집 방 한 칸에 신당(神堂)을 마련하고, 그 신령에 해당하는 그림이나 물건을 걸어 놓고, 매월 초하룻날이나 보름날에 또 각각 필요한 상황 때 신령에게 정성을 드리고 도움을 청한다. 카톨릭의 제사가 매일 한 번씩은 하느님께 미사를 올리는 것과 같이 정성을 바친다는 면에서는 다를 게 없다.
신령과의 관계가 하늘이나 영계와 같이 위로 향한 일이라면 무당은 땅의 매개자로서 인간의 일에도 관여한다. 무당이 일반인들에게 하는 봉사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무꾸리"라고 하는 점치는 일이다. 남편의 사업 문제나, 자식의 대학 입시문제, 꼭 아들을 낳고자 할 때, 무당을 찾아 해결을 구하는 것이다. 이때 무당은 해답을 알려주거나 부적을 써서 준다. 부적에는 모든 질병을 막고 재액(災厄)을 막으며 심지어 남편의 첩을 없애주는 것까지 수많은 종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점괘가 조금 더 심각하게 나와 부적만으로 안 되겠다 할 경우에는 치성(致誠)을 드린다. 푸닥거리'나 '살풀이'도 일종의 치성이다.
또 치성만으로 안 될 때 즉 죽은 조상이 몹시 노했다든지, 집안에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있다든지 하는 등으로 귀신들을 직접 불러서 달래야 할 경우처럽 사안(事案)이 심각해지면 무당은 굿을 권한다. 굿판을 벌여 한 판 잘 차려놓고 춤과 노래로 원한이 맺힌 귀신들을 위로해야 그들로 인해 생긴 액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무교에 의하면 인간계의 모든 일은 신령계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계의 힘든 일은 신명 혹은 신령 혹은 귀신들의 맺힌 한이 풀려야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굿의 최대 관심사는 현실의 복을 구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데 있다. 곧 현실적 생활상의 문제로 집약되는 것이다.
샤먼은 영계와 인간 사이에 있어서 중개적 역할을 하는데 정령과 직집 교통하는 자로서 영계를 탐지하고 영력을 행사할 수 있어 제사, 주술 등으로 재액을 없이하며 복을 가져오는 제사인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목사를 샤먼의 사제처럼 육신의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고, 장래를 아는 신령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 현상은 샤머니즘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또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를 입신(入神)이라고도 하고 엑스타시(ecstasy)라고도 하는데, 엑스타시 속에서 무당은 신령과 직접 교제하며 그 신령의 힘에 의한 화복의 조절을 목적한다. 이러한 무교의 제의(祭儀)가 기독교에 침투하여 노래하고 춤추고 북치는 굿 형식에 따르는 부흥집회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들 말하기도 한다.
6. 샤마니즘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
한국의 샤머니즘은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문화사 속에 흘러온 역사적 종교 현상이다. 또한 한국의 샤머니즘은 문화사 속을 흘러 오는 동안 외래 종교 문화와 혼합 변질된 것이라기 보다는 외래 종교를 샤머니즘화 하는 강한 용해력을 나타내 보여 주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불교의 변질이나, 도교의 샤머니즘적 요소, 유교의 특성 등이 변질되고 심지어는 전래된 지 1세기 밖에 안 되는 기독교의 변질마저 초래할 정도로 샤머니즘의 영향은 지대하다.
무속신앙은 기독교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왜냐하면 무속신앙이 다신령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신관은 성경적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지금도 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어느 종교나 최고의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샤머니즘이 한국교회에 끼친 공로는 성도들로 하여금 열심 있는 신앙 태도를 갖게 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정화수를 떠놓고 지성을 드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평소에는 어떻게 살든지 지성을 드릴 때에는 온갖 정성을 다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신앙 태도는 교회의 신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새벽기도를 한다든지, 작정 기도를 한다든지, 수요 예배 철야기도까지 하게 한 것이다.
1). 교회에 미친 영향
(1) 기복신앙(祈福信仰)
한국교회가 샤머니즘적 기복 신앙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많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기복사상은 철저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다. 복의 개념을 육신 생활에필요한 것들을 얻는 것이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교회의 복사상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사상으로 치중되고 있어서 그 문제가 실로 심각하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적인 복사상을 너무 세속적으로 별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① 교회 출석
한국 사람 중 많은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간다. 교회를 부적처럼 생각한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간다"는 말은 본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교회에 출석만 하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혹 교회를 빠지는 날이면 혹시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지 않을까 하고 두려운 생각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공교롭게도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는 지난 주에 교회를 안 나가서 일어난 사건으로 결부시키기도 한다. 무속에서 신의 노여움을 사면 벌을 받는 다는 생각이 삼위 일체의 하나님을 무당의 신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치 불교인이 절에 가서 복을 빌 듯이 교회에 가서 복을 빌고 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가는 것이다. 교회의 개념을 무속과 그리고 불교에서의 절의 개념처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② 예배
예배를 드리는 목적도 기복적인 것을 떠나지 않는다. 예배는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라(요4:23-24, 벧2:5)라고 했다. 이 말은 우리 자신의 전체 곧, 우리의 지성과, 감성, 태도, 소유를 모두 정성껏 드리는 것인데 한국 일부 교회의 예배는 목사는 예수의 이름으로 굿을 하고 성가대가 찬양을 드리면 성도들은 그 굿판을 구경하고 감상하다 오는 것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찬양은 공연이 아니다. 어느 교회에는 찬양을 할 때 눈물을 흘리면서 박수를 치고 신들린 사람처럼 울고불고 야단이라는데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곡조 있는 기도요 예배인 것이다. 자기도취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설교 따로, 성가대의 찬양 따로, 기도 따로가 되고, 성도들은 잠시 앉았다가 박수치고 구경하고 감상하고 나오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와는 실로 거리가 멀다.
③ 설교
설교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기복적인 설교이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성령의 도구로 사용하여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를 매개체로 삼아 특별 계시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현대 교회에 산 진리로서 증언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기복적 신앙이 일반화됨에 따라 구속의 복음을 전하는 강해 설교보다는 돈 벌고 병 낫고 축복받는다는 신비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설교가 교인들로부터 더 환영을 받고 있고, 또 설교자는 교인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기복 설교를 많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교회에서는 축복론을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만 설교를 한다고 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축복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목사에 의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영혼의 구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성공과 육체의 건강까지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일부 목사들은 가난과 질병과 저주는 구원받기 전의 상태요, 믿는 자는 마땅히 영혼 육신 범사 에 걸쳐 축복을 받아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누려야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이러한 축복과 구원을 누리고 사는 삶이라고 주장한다. 이 축복을 얻기 위하여 약한 자는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때로는 아우성을 치며 열광적인 태도로 복을 기구(祈求)한다.
하나님을 삶의 자원으로 삼고 긍정적 적극적 창조적으로 현실을 살고 끊임없이 생에 도전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하는 성공 의식 축복 의식은 소외된 민중들에게 희망을 불어놓고 힘을 얻게 하여 괴로운 현실 생활을 극복할 수 있게 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종교적 축복이란 바로 현실 생활에서의 육체적 건강과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께 대한 믿음으로 오는 것이다. 하나와 내 가족만이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이런 기복 위주의 신앙은 무속신앙의 형태와 큰 차이가 없게 된다. 예수의 생애와 죽음은 세속적이고 무속적인 축복의 길로 가게 하기보다는 하나님 나라와 그 의의 실현을 위하여 주를 따르는 자들이 희생과 봉사와 사랑의 정신으로 사는 참 삶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함이었다.
④기복 기도
기도는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갖는 귀한 특권 중의 하나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기도할 것을 성도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특권이 남용되어 있거나 오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기도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이방인과 같은 기도를 드리기 때문이다 기도를 축복하여 달라고 올리는 결재 서류로만 보는 경향은 비복음적 무속적 경향이다. 그래서 문제를 저질러 놓고 하나님보고 해결사가 되어달라고 간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