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관촌수필＞ - 李文求 연작소설집

[강진철]

독후감: <관촌수필> - 李文求 연작소설집, 문학과지성사, 초판 1977년, 3판 1996년

이 책은 1972년 5월부터 1년 반 동안 1.日落西山 - 2.花無十日 - 3.行雲流水 - 4.錄水靑山 - 5.空山吐月 순으로 쓰여진 이문구의 연작 씨리즈 소설들과 1976~1977년에 쓰여진 세편의 소설들을 묶어 만든 소설집이다. (뒤의 세편은 없어도 무방하다)

위의 5개 소설들은 이문구가 유년기에 겪은 충청도 시골 마을의 세태들을 묘사해 놓았는데, 1941년 태생이니까 저자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 1946~47년경부터 전방에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52년경쯤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니까 이문구가 1972년에 이 소설들을 썼으니까 그로부터 약 20년 전에 자기의 고향 충청도 대천 근처의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쓴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쓰여지고 약 45년 후에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있다. 이 소설집이 1977년에 처음 발행될 때는 ‘세로쓰기’였다니 참으로 隔世之感(다른 세대를 만난 것처럼 몹시 달라진 느낌)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들은 고향을 오랜만에 방문한 주인공이 자기 고향마을을 돌아보면서 벌써 1972년 그 당시에 밀어닥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산업화, 도시화가 몰고 온 부정적 양상들에 대하여 아주 치열한 묘사하고 있으면서 자기의 그 좋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아주 풍부한 충청도 토속어를 사용해서.

1950년 한국전쟁 전에는 우리나라에는 관촌마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통적인 미풍양속과 풍습과 제도가 그대로 이어내려 오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양반(주로 지주계급) - 일반 농민 - 소작인이나 머슴, 식모와 같은 위계(位階)적인 신분제도다.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은 그런 신분사회의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신분사회의 특징은 자기의 본분을 알고 다른 계급을 넘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식모도 행랑아범도 머슴도 자기의 처지에 불만을 느끼거나 반역을 꾀하지 않고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주인댁에 해당되는 주인공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어머니는 지주-양반의 위치에서 저 사람들의 의식주를 책임지었다. 물론 이 시대는 조선시대나 그 이전 시대의 신분제도와 달리 저 사람들에 대한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았고 대체로 약한 의미의 계약에 의한 종속적인 신분을 유지하였다. 전통적인 신분질서는 공식적으로는 조선말기에 깨지지만 일본강점기시대에도 근근이 이어졌고 1948년 토지개혁을 통하여 지주계급이 좀 흔들리다가 한국전쟁으로 일시에 붕괴되고 만다.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구시대적인 신분질서가 일시에 완전하게 깨진 나라도 없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이는 사회학자들이 공동적으로 하는 얘기다. 이 책에서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소용돌이치면서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이 나온다.

이 소설들은 그러한 전통사회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담고 있으면서 그런 사회의 미덕을 일구어내려는 의도를 내보인다. 한산 李씨의 명문가 집안이 한국전쟁과 그 후유증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출신성분이 양반이었던 이문구는 그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 보인다. 이문구는 천자문을 가르쳐 준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와 선진적으로 좌익의 길을 간 아버지와 자상함과 후덕함을 겸비한 어머니를 양반가의 아주 전통적이고 근엄한 미덕을 모두 완벽하게 갖춘 인물들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옹점이나 대복이나 신현석처럼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자기의 처지에 자족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출신성분이 양반가의 자손이었던 이문구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일도 안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도 하대하고, ‘에헴!’ 하면서 살던 그 양반집 사람들에게 어찌 그렇게 완벽히 조화로운 모습만이 있었겠는가? 주인집 사람들의 과한 요구와 욕심(요즈음 말로 갑질) 때문에 겪는 괴로움도 있었을테고 천하다고 여겨지는 여자들에게 행하는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하는 남성들도 있었을터인데... 나의 공연한 老婆心(노파심-남의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일까?

이 책에서는 주인공이 자기 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을 추억해 내면서 향수를 달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최대의 장점은 토속적인 언어로 1950년 전후의 그 시절을 증언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리를 떠나서 이렇게 글로 그 시대를 증언해 내기가 쉽지 않은데 이문구는 그 시절 충청도 시골마을의 세태를 아주 정겹게 묘사해 내고 있는데 이는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미덕이자 값 진 수확이다. 1년 반만에 이러한 글을 집중적으로 쓴 것은 작가가 많이 성실했다고 하더라도 아주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문구는 이렇게 독특한 소재를 개발하고 특출한 문학적 역량을 발휘한 것을 인정받고 문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각종의 문학상을 휩쓸었는데, 2003년에 62세로 타계했다니 아쉽다. 이 관촌수필은 드라마로도 각색되어 많은 시청률을 자랑했다.

이문구는 이 책에서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千字文과 童蒙先習을 바탕으로 한자어를 많이 쓰는데 나도 어느 정도 한자를 아는 사람이지만 어떤 것은 너무 어려워서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예로 白首風塵(백수풍진), 切等(절등), 埋頭沒身(매두몰신-일에 파묻혀 헤어나지 못함) 등등. 여기에 나오는 충청도 사투리는 나와 같은 경기도 출신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설다. 그렇지만 그러한 토속어 자체가 요즈음에는 커다란 문화적인 자산으로 각광받는다. 제주도에는 제주도 사투리 경연대회도 있다.

여하튼 이 책은 1940년대 후반의 오랜 된 시골마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얘기들이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보다도 더 험악하게 살아간 사람들도 많았을 테지만 이문구는 그렇지 않았으면 묻혀버릴 수도 있었을 한 시대의 민중들의 모습들을 소중한 기록으로 이렇게 아름답게 소설의 형식으로 후세에게 남겼다. 문학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제대로 보여준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