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아파트! - 아파트로 들어 온 한옥
우아하고 넉넉하며 친환경적인 한옥의 장점을 살리면서 아파트의 편리함도 취한다.
한옥 아파트의 취지는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과연 아파트와 한옥을 결합할 수 있을까? 층고를 높이고 내부에 툇마루와 중앙정원을 설치하고 한지로 창과 문을 만들면 비록 겉은 아파트지만 안에 사는 사람은 마치 한옥에 사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한옥에 사용하는 나무와 황토를 사용하고 거실을 대청 마루로 바꾼 뒤 안방과 문간방을 만들면 더욱 완벽하게 한옥의 조건을 갖추게 되는데, 이런 설계와 디자인을 아파트에도 실현시킬 수 있을까? 이런 의문과 관련해 올해 1월 구(舊) 대한주택공사(지난 10월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통합돼 한국토지주택공사로 바뀌었음)는 의미 있는 자료를 발표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韓)-스타일 육성 정책’에 따라 개발한 한옥 아파트의 모습을 전격 공개한 것이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실현된다면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한-스타일 육성 정책’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옥 외에 한글과 한식, 한복, 한옥, 한지, 한국음악 등 6가지 대표 상품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1 한옥 아파트 주동 디자인
2 한옥 아파트 주거동 저층부
이날 발표된 한옥 아파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
여러 부문에서 한옥과 아파트의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한옥 아파트 마을을 구현하고 전통적인 옥외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을 비롯해 주거동의 기단부와 외벽, 단위 세대의 평면과 인테리어, 부대시설에 한옥의 특성을 접목했다. 우선 전통 한옥 마을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건물 외관을 한옥과 유사한 모양으로 설계했다. 각 세대의 발코니를 앞마당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고 모든 건물 옥상을 기와지붕으로 덮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기와 집들이 옆으로 즐비하게 붙어 있는 전통 한옥 마을의 모습을 연출한다. 아파트 각 동의 하단부는 한옥 대문의 디자인을 모방하고 있으며 문주 역시 한옥 스타일을 따랐다. 한옥 아파트인 만큼 옥외 시설물로 열주와 전통적인 모양의 담장 등을 설치하고 단지에는 한옥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골목길과 공터를 조성해 놓았다. 단지 내 바닥도 밋밋한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이 아니다.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어 한옥 마을의 푸근한 느낌을 전달한다. 주거동의 외벽 역시 사괴석과 전통 벽돌을 사용해 한옥 마을을 재연해 놓은 모습이다. 노인과 마을 어른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사모정(네모 반듯한 정자)을 비롯해 전통 놀이시설 등도 단지 안에 들어선다. 외관 측면에서 건물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 외에 한옥과 다른 점이 별로 없는 셈이다.
1 한옥 마을 조감도
2 실내로 들어온 누마루
하지만 한옥 아파트의 매력은 단지 외부보다는 내부에 있다.
일반 아파트와 달리 내부를 나무, 황토와 같은 자연 친화적 자재를 사용한 것은 물론이고 거실과 발코니 공간에 마당 개념을 도입했다. 또 사랑방과 대청 마루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고 문과 창문 등에 전통 문양을 넣었다. 화장실이 멀고 부엌과 거실이 분리되어 불편한 한옥의 단점들은 발전적으로 극복된다. 주택공사 관계자는 “우아하고 넉넉하며 환경친화적인 한옥의 장점을 살리면서 생활의 편리함이 강점인 아파트의 이점도 취하는 것이 한옥 아파트 설계의 목적”이라며 “한옥과 아파트의 발전적인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주거 문화의 진화라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주택공사는 경기도 시흥 목감 택지개발지구 B-1블록에 11~20층 고층형 722가구의 한옥 아파트 시범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사업 승인을 받았으며 올해 말까지 기본설계를 끝내고 내년 상반기 실시 설계에 이어 하반기 착공에 들어간다. 이와 함께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 400번지 일대에는 저층형 한옥 공동주택 마을을 조성하기로 했다.
한옥 아파트가 풀어야 할 과제
그러나 한옥 아파트가 보편적인 공동 주택 단지로 자리 잡으려면 상당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인 문제다. 일반 아파트를 건설할 때에 비해 최소 10%, 최대 50% 이상 건축 비용이 높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업체가 일방적으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수요자의 요구에 따른 주문 제작이면 건축비가 2배 이상 들어갈 수도 있다. 건설사가 일괄 시공한다 해도 다양한 평면과 디자인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싼값에 공급하기는 불가능하다. 관리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통 정자나 담장은 기존 아파트 단지 내 시설에 비해 원형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런 시설을 잘 보존하고 유지하려면 적지 않은 관리비가 들어갈 것이고 이는 입주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옥 아파트에 대한 개념도 아직 확실하게 정립돼 있지 않은 상태다. 주택공사에서 내놓은 청사진이 그럴 듯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이런저런 문제점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개념과 설계를 바꾸다 보면 한옥 고유의 특성이 결국 희석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옥 아파트는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 공동주택 문화에 일대 혁신을 줄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예상되는 문제점을 감안해 좀 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대응해 나간다면, 한옥은 우리 조상들에게는 생소했던 아파트와 결합해 한국인의 주거공간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경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