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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지난 2004년, '양병집-넋두리'음반을 복각, 재발매하면서 쓴 음반 해설의 전문(全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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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집ㅣ슬프고도 아름다운 아메리칸 포크의 한국화(韓國化)
70년대를 거칠고 쓴 목소리로 풀어낸 '넋두리'
'양병집/넋두리'
(성음/SEL 20-0028/74.3.20)
SIDE 1.
01. 서울하늘 1
02. 잃어버린 전설
03. 타복네
04. 아가에게
05. 나는 보았지요
SIDE 2.
01. 너와 나의 땅
02. 소낙비
03. 서울하늘 2
04. 역
05. 그녀
이 음반을 듣고 있노라면 아직도 70년대 내 감성의 '떨림판'은 여전히 요동친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반전운동'의 확산과 함께 히피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을 때 우리에게 있어
70년대는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로 일컬어지는 '청년문화'가 있었고,
동시에 그 반대 켠엔 이농현상과 더불어 '공돌이' '공순이'로 일컬어지는 '또 다른 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양병집의 노래들은 이러한 우리의 70년대, 그 앞면과 이면을 정확히 관통한다.
해서, 그의 이 앨범 '넋두리'에 실린 노래들은 일종의 '메시지 송'이자,
포크송에서 보다 진보적이고 저항적인 요소가 많은 '프로테스트 송(Protest song)'이다.
'삶을 직시하는 노래, 현실을 꿰뚫는 노랫말'-.
이 앨범엔 70년대의 소리인 Woody Guthrie, Pete Seeger, Bob Dylan, Peter Paul & Mary가 도사리고 있고
어릴 때 우리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전래가요 '타복네', 그리고 자작곡인 '아가에게'까지 담겨 있어 그 음악적 깊이를 더한다.
그는 당대의 현실을 '거친' 말로, 그리고 특유의 '쓴' 목소리로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 음반을 듣고 있노라면 난 아직도, 70년대의 한복판에 있다.
-이 글은 내가 2000년도에,'Windbird'에 올린 글이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이 음반 '넋두리'와 원곡들이 수록된 음반들을 찾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1.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70년대 우리나라 3대 저항가수 중 하나로 일컬어지지는 양병집의 첫 음반 '넋두리'는
1974년 3월 20일, 성음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다.
이 음반에 담겨 있던 노래 '서울하늘'과 '역'을 내가 처음 들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무렵 방송들, 즉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던 프로그램 등에서는 어김없이 이 노래들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이 노래들은 당시 70년대의 유신정권 하에 갖은 억눌림과 억압으로부터 일탈을 꿈꾸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매우 그럴싸한 해방구, 아울러 꽤나 그럴듯한 해독제도 되어 주었다.
허나 양병집이 번안해 발표한 이 노래들은 원곡을 찾아 듣기가 쉽지 않았던 터라
유감스럽게도 당시 나는 양병집의 노래들과 원곡을 서로 비교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렇듯 양병집은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이 접하기 결코 쉽지 않았던 피트 시거와 우디 거슬리,
그리고 밥 딜런을 들고 70년대 한국 대중들 앞에 마치 '개간꾼'처럼 나타났다.
그가 처음 대중들 앞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가 명동의 한 증권사에서 말단직원으로 근무하던 72년 초,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 당시 '월간 팝송'이 주최한 '제1회 포크 콘테스트'의 포스터를 퇴근길에 접하고
이 대회에 참가하면서 부터이다.
물론 이보다 몇 개월 전인 71년 10월, 아마추어로서 미 문화원 무대에 섰던 적은 있었다.
중앙고 시절인 10대 때부터 음악감상실 디쉐네나 미도파 살롱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기웃거렸던 타고난 음악광에다가
서라벌예대 음대 작곡과에 입학, 음악에의 길을 스스로 택했으나 부친의 반대에 부딪혀 휴학을 하고
장남으로써 부친의 뜻에 따라 가업을 잇고자 곧바로 증권회사에 입사한 지, 1년여만의 일이었다.
본명은 양준집(楊準集).
그러나 그는 이 포크 콘테스트에 세살 터울의 동생 이름, '양경집'으로 참가한다.
이 무대에서 그는 Bob Dylan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에 스스로 노랫말을 붙인 '역(逆)'을 들고 참가한다.
상당한 수준의 독해 능력을 요구하는 은유적인 서술, 삶의 다양한 아이러니를 역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노래 역(逆).
이 역설을 한바탕 풍자로 풀어내고 있는 그의 입담은 앞으로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에너지가
내면에 충분히 잠복해있는 가객임을, 심사위원들이 눈치 못 챘을 리 없다.
그는 당시 노랫말에 쉽게 끌어들일 수 없다고 생각되는 단어들을 절묘하게 배합해 현실과 허구를 뒤섞어 놓는다.
역설이었으되 그 안에는 진상과 허구를 뒤죽박죽 섞어놓고 어느 것이 진짜 현실인지를 되묻는다.
다분히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역설, 그리고 독설을 통해 그는 현실을 재 각인시킨다.
그러한 그의 메시지가 적중했을까, 그는 이 콘테스트에서 3위로 입상한다.
참고로 이 대회의 1위는 '내 님의 사랑은', '한사람'의 작곡자 겸 가수 이주원이,
그리고 2위는 김민기와 더불어 ‘도깨비 두 마리’ 즉 '도비두'의 멤버인 김영세의 동생, 김준세가 각각 차지했다.
그 때 그는 입상자 발표 때 이름이 '양병집'으로 잘못 호명되는 해프닝을 겪게 되는데
이에 이름을 아예 '양병집(楊柄集)'으로 바꾼다.
노래 '역', 그리고 포크가수 양병집은 그렇게 등장했다.
그는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가요평론가 최경식의 추천으로 72년 6월,
당시 대학생가수들의 산실이자 포크가수들의 '못자리'였던 제1회 맷돌공연 무대에 김민기, 양희은, 송창식 등과 함께 서게 된다.
이 무대에서 그는 박시춘 곡인 '고향초', 이 4분의 3박자의 모데라토 리듬을 자기 식으로 바꿔 부른다.
점차 일부 가요관계자들과 팬들에게 주목 받기 시작하면서 명동의 오비스 캐빈이나 네쉬빌,
그리고 르 실랑스 같은 무대에서 노래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는 것도 이 무렵이다.
이러한 무대를 통해 그는 아메리칸 포크, 즉 밥 딜런과 우디 거슬리를 주로 부른다.
아울러 조병제, 유명숙, 최성원, 임용환 등과 함께 트리오, 혹은 4인조를 결성해 무대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즈음 그는 자신이 채보한 전래 가요 '타박네'를 가수 서유석이 부르는 것을 허락한다.
이 노래는 서유석의 음반 'YU SEOK SUH/I Want To See My Mother(타박네/성음 Fontana/72년)'에 실려 발표되었다.
이 노래가 제법 알려지기 시작하자 애써 찾아온 가수 이연실로부터 노래를 만들어 줄 것을 요청받고
이에 번안곡, 또는 개사곡인 '역'과 '소낙비' 그리고 '잃어버린 전설', '참사랑', '이 밤' 등 다섯 곡을 건네준다.
이 노래들은 이연실의 목소리에 실려 음반 '이연실(성음/73년)'을 통해 발표된다.
가수로서보다 작, 편곡자로 먼저 존재를 알린 양병집 역시 그 이듬 해, 음반 출반을 제의 받고 첫 독집음반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1974년의 일이다.
대부분 번안 곡으로 구성된 이 음반의 수록곡들은 그가 직접 선곡했다.
그가 첫 음반인 이 '넋두리'는 두 달 간의 편곡 작업, 그리고 연습과정을 거쳐 74년 3월 20일 출반된다.
음반 타이틀은 '양병집/넋두리'.
우선 이 음반은 음반의 컨셉을 그대로 드러낸,
그가 부르고자 했던 노래들의 성격을 함축성 있게 제시하고 있는 자켓 구성이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도수 높은 안경,
삐딱하게 꼬나문 꽁초담배만으로도 그가 내는 소리와 철학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의 시력은 실제로 0.04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안경을 써야 했을 정도였다.
이 사진은 사진작가 허종태가 찍은 작품이다.
재킷 뒷면, 벤죠를 들고 찍은 사진은 70년대 한양대 옆 한적한 성동천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음반들에 담긴 노래들의 원곡을 살펴보자.
첫 수록 곡 '서울 하늘'은 Woody Guthrie의 'New York Town'을 모티브로 해 그가 개사한 노래다.
'잃어버린 전설'은 Peter Paul & Mary의 'Weep For Jamie'를 개사한 곡이며 앞면
다섯 번째 곡으로 실린 '나는 보았지요'는 Pete Seeger의 'I Can See A New Day'를
그리고 '너와 나의 땅'은 Woody Guthrie의 'This Land Is Your Land'를 각각 원곡으로 하고 있다.
'서울 하늘 2'는 Pete Seeger의 'Lou Marsh'를 개사해 부른다.
그리고 '소낙비'와 '역'은 각각 Bob Dylan의 'Hard Rain's A-Gonna Fall'과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을
원곡으로 하고 있다.
마지막 곡 '그녀'는 Pete Seeger의 'The Thresher'를 우리말로 개사해 부른 것이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타복네'와 '아가에게'를 제외하고 모두 아메리칸 포크 류이지만 양병집이라는 필터를 통해
당시 한국의 현실이 절실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가 새롭게 편곡하고 노랫말을 입힌 이 노래들은 원곡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아메리칸 포크라고 느껴지기 보다는 되려 한국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대부분의 원곡들을 애써 찾아 듣지 않고 악보만을 기준으로 악상을 터득해
그만의 감성으로 해석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해서 당시 유신정권 하에 등장한 한국의 이 젊은 가객(哥客), 양병집을 주목했던 이들에겐 한 편 다행스럽기도 하다.
때문에 '양병집의 노래들은 우리의 70년대, 그 앞면과 이면을 정확히 관통한다.',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소낙비'만이 원곡의 가사에 준했으며
나머지 곡들은 모두 아메리칸 포크의 뼈대에 당시 한국 현실을 빗댄 가사를 붙여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노래들이 더욱이 번안 곡, 특히 아메리칸 포크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의 '판소리'를 닮은 거친 창법이 한몫을 한다.
때문에 원곡들과 비교해 전달되어지는 느낌이 한결 다르다.
만일 지금까지 이들 원곡을 들어보지 못한 곡이 있다면 이 기회에 원곡들을 찾아 비교해 들어줄 것을 반드시 권하고 싶다.
특히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의 레게리듬이 '역'에서 어떻게 바뀌어져 있는지 비교해 들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연주는 기타리스트 강근식이 이끄는 '동방의 빛'이 맡아 주었다.
세션에 참여한 '동방의 빛'은 강근식을 비롯해 조원익(베이스), 이호준(키보드), 유영수(드럼), 황천수(섹서폰)가 가세한
5인조 그룹으로 이 음반에 섹서폰 주자, 황천수는 참여하지 않은 듯하다.
이 음반 전체를 듣고 있다 보면 'New York Town'에서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그리고 '타복네'까지
각각의 장르를 취하고 있지만 양병집이 이 음반에 부여한 성격에 일관된 흐름을 느낄 수 있고
그래서 그가 프로듀서로서의 능력과 감각을 이미 겸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만의 독특한 창법과 현실을 심도 있게 헤집고 들어가는 메시지,
그리고 음반의 완성도를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주의적 정신이 다분히 엿보인다.
그러나 1975년 7월 5일, 수록 곡 중 '서울 하늘'이 공연윤리위원회와 방송윤리위원회로부터 각각 금지곡,
그리고 방송 부적격 판정(금지번호 655호)을 받는다.
사유는 '가사와 창법, 방송 부적격'.
이 음반이 출반된 지 1년 4개월만의 일이었다.
이렇듯 '저주받은 걸작-양병집/넋두리'는 세상에 나온 지 불과 1년4개월 만에 금지되면서 대중들로부터 묻혀졌다.
2.
음반 '넋두리'는 '서울 하늘'로부터 시작된다.
Woody Guthrie의 'New York Town'을 개사한 A면 첫 곡인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왜 이 음반의 타이틀이 하필 '넋두리'인지 쉽게 납득할 수 있을 듯하다.
'집시법'조차 엄연히 법으로 존재했던 당시 있는 그대로의 것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던 시대에
현실을 직설적 화법으로 노래할 줄 아는 그의 배짱이 그가 노랫말에서 취하고 있는 '존대어' 표현으로 인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내 안경이 졸도할만한 서울'에 올라와 '사람도 집도 많지만 아무데도 갈 곳이 없어' 방황하다가
'나도 한 번 벌고 싶어서' 헤매 다녔으나 모든 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습디다'는 푸념,
그가 던지고 있는 70년대의 화두, '이농(離農)'의 드림과 좌절... 그래서 '두 번 다시 안 올랍니다'하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나 한 번 불러보자'는 식의 자조 섞인 그의 넋두리가
바로 70년대의 한 켠에 무리지어 있던 우리 젊은이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산업사회로 넘어가던 과정, 결국 '벽'이 되어버린 '문턱'에서의 어쩔 수 없는 70년대식 '넋두리'인 셈이다.
특히 Woody Guthrie의 원곡 'New York Town'에서는
시골 출신 촌놈이 뉴욕거리에서 두리번거리며 인사하듯 반복하는 'Hey, hey Hey Hey'의 밝은 음률이
양병집을 거쳐 오면서 넋두리하듯 '헤이, 헤이 헤이 헤이'라는 푸념소리로 바꿔놓는 순발력,
그리고 원곡에서의 감탄사 '오---'가 '오호 통재라' 식의 비탄조로 뒤바뀌어지는 이 가사 부분에서의 양병집의 재치는 압권이다.
이 부분에서 함께 하모니를 이루는 멤버들은 김광진, 손정우, 박일순, 그리고 안창걸. 즉 남성 4중창단 '별넷'이다.
두 번째 곡, '잃어버린 전설'은 미국 구전민요에 Peter Paul & Mary가 섬뜩하리만치 아름다운 가사를 붙여 발표한 곡
'Weep For Jamie'를 전혀 다른 내용의 우리말로 개사한 곡이다.
양병집의 걸러지지 않은 탁하고 거친 목소리의 질감이 투박한 질그릇 무늬처럼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 노래는
처연하게 전개되는 무그 신서사이저의 단조로운 소리로 시작되어 간결하게 어우러지는 기타와 더불어
연주와 노래, 양자가 결합한다.
비장한 감정을 담은 목소리가 주는 무거운 분위기가 원곡과 확연히 비교되는 이 노래는
당시 '민청학련' 등에 연루되어 투옥되는 등, 이미 최루탄이 가득한 거리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젊은이들을
애도하는 노래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동시에 70년대 벽두, 우리 사회 전반에 드리웠던 월남 파병 문제, 그리고 산업화의 그늘을 떠올리게 한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참다 참다 스러져간 꽃...', 이를테면 그 꽃은 월남으로 파병되었다가 전사한
젊은 병사를 위한 진혼곡일 수도 있고
'스러져간 향기 안고 웃다웃다 지쳐버린 꽃...', '그늘에서 피다 지친 아름다운 꽃...'에서는
70년대 시골서 올라와 '뒷골목의 영자'가 되어 버린 우리네 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쓰인 곡처럼 들려지기도 한다.
지금은 '잃어버린 전설'이 되어 버린 70년대의 넋들은 과연 '누굴 위해' 피어난 꽃송이였는지를 묻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무엇 때문에 스러져 갔는가?'를 이 사회를 향해 아프게 되묻고 있다.
다음 곡은 전래가요 '타복네'로 이어진다.
'타복네'의 본래 우리 말 표기는 '타박네'이다.
문학박사 이어령은 그의 저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서 이 이름의 유래를
'타박타박 걷는 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타박네'라고 주장했다.
허나 양병집이 채보해 비로소 완성한 이 노래의 제목은 '타복네'이다.
50년 12월, 부산 구포에서 출생한 그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이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어머니가 평양시 하수구리 출신이라 '타박네'를 평안도, 또는 함경도 등 이북 사투리로 '타복네'라 발음했다.
타박네는 다소 밝은 느낌의 어감이지만 타복네는 약간 투박하긴 해도 대신 따듯한 정감이 묻어난다고 양병집은 말한다.
어린 시절의 그에게 이 노래를 '철부지 교육용' 혹은 '자장가'를 대신해 들려준 어머니, 김경패(金景貝)여사는
정태춘 곡인 '양단 몇 마름'의 2절 가사를 직접 만들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후에 '다시 부르고 싶은 노래들(예음/88년)' 음반에서 다시 '엄마 엄마 아 엄마' 그리고
독립군가였던 '부활가' 등 구전가요를 채보, 발표하기도 했다.
이 노래들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특히 구전가요를 많이 알고 계셨는데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녀의 부친은 평양의 지주로써 독립운동가 조만식 등에게 독립자금을 대어주던 분이었다.
가끔 집으로 몰려들어 이따금씩 부르던 노래들을 역시 귀동냥으로 배웠다가
후에 소중한 패물 건네듯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음반 수록 곡 중 '아가에게'가 그의 유일한 창작곡이다.
그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음직한 음악적 인자를 어렴풋이나마 드러내 보인 그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노래 역시 어머니에 대한 시각,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담고 있다.
'당시는 싱어 송 라이터 시대였기 때문에 나도 작곡 좀 해봐야겠다' 싶어
'마른 수건 짜듯해서 만들어본 노래'라고 스스로 털어놓는다.
그가 이후에 발표하는 '바둑', '아침이 올 때까지', '어느 날 오전이었지' 같은 노래들 역시 많지 않은 그의 자작곡들이다.
'나는 보았지요'는 Pete Seeger의 'I Can See A New Day'를,
그리고 '너와 나의 땅'은 Woody Guthrie의 'This Land Is Your Land'를 각각 번안, 개사하여 부른다.
'나는 보았지요'는 벤조의 밝은 악기소리로 시작되는 칸츄리 웨스턴 풍의 원곡을 슬로우 락으로 편곡,
그가 직접 치는 통기타 반주만으로 들려준다.
'너와 나의 땅'의 원곡, 'This Land Is Your Land'는 한 때 '새로운 미국국가'로 추천되기도 했던 유명한 곡이다.
원작자 Woody Guthrie에 의해 40년 2월, God Blessed America(미국에 은총을...)'라는 가사가
'This Land Is Your Land'로 개작되기도 했던 이 노래는
명성에 걸맞게 지금까지 미국인들에 의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불리어졌던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 'This Land Is Your Land', 즉 '이 땅은 너희들의 땅'이 분단국가, 한국의 젊은이 양병집에게로 와서는 '너와 나의 땅'이 된다.
이 노래는 70년대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분단국가, 70년대의 남한은 어땠는가.
거리마다 마을마다 나붙은 구호는 온통 반공, 방첩이었고 분골쇄신이었다.
'빨갱이'라는 용어가 그러했듯 온 국민 전체가 집단으로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때였다.
이남과 이북에서 제각기 불리어지는 노래는 똑같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으되
그 '통일'에 깊이 박혀 있던 서로간의 공통된 저의는 '이 땅은 내 땅, 저 땅도 내 땅'으로
백두산은 물론 한라산까지 모두 '함께 공유할 수 없는 땅'이라는 절대적인 전제를 밑바닥에 깔고 있다.
해서 '백두산에서 제주도까지, 너와 나의 땅'...이라는 외침은
'이데올로기'라는 또 다른 이념 아래 묻혀 누구에게나 금기시된 논조였고 금지된 언어였다.
그러나 74년, 양병집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그리고 ' 옛날부터 먼 훗날까지 너와 나의 땅'을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소낙비는 Bob Dylan의 ''Hard Rain's A-Gonna Fall' 번안한 곡으로 이 음반에서 비교적 원곡의 가사에 충실하고 있다.
이 노래는 가수 이연실에게 주어 먼저 취입시킨 곡으로 이연실이 부른 가사와는 조금 달라져 있다.
양병집은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비가 내린다'에서 '비-----ㅡㅡ'를 12초 동안 길게 늘려 부름으로써
'아주 무섭고 큰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는 상황'을 청각적, 시각적으로 형상화시켜 강조하고 있다.
'서울하늘 2'는 Pete Seeger의 'Lou Marsh'를 개사해 부른다.
다소 냉소적으로 들리지만 어둠이 내리는 70년대 서울의 밤풍경을 결코 냉소적이지만은 않은 구도로 담담히 그리고 있다.
'어여쁜 아가씨들의 짧은 치마'와 '신문 파는 아이들의 외침 소리'
그리고 '잘생긴 아저씨들의 히히덕거림'과 '과일장수 아줌마의 돈세는 소리' 등
지극히 일상적인 단편들이 같은 서울하늘 아래에 있지만 '풍요와 빈곤'으로 대칭되면서
서로의 무관심, 그래서 각각 '단절'되고 '소외'된 일상적인 편린들을 밤이 깔리는 어두운 풍경 속에 슬그머니 감춰놓고 있다.
2절이 끝난 뒤 시니컬한 분위기로 깔리는 양병집의 휘파람소리가 70년대 공허한 거리,
그 삶의 갖가지 풍경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마지막 후렴구에서 '골목으로 바삐 사라지는 어여쁜 아가씨들의 짧은 치마'와
'과일장수 아줌마가 여전히 돈세는 소리'를 다시 한 번 대비시키며
'요정의 밤 문화'와 '거리의 삶'을 통해 산업화에 몸살을 앓던 70년대의 비정한 서울,
그 빈부의 차를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대비시켜 부각시킨다.
반면 이 '서울하늘 2'의 원곡인 'Lou Marsh(원제/Ballad Of Lou Marsh)'는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비정한 도시 뉴욕의 갱과 관련된 'Lou Marsh'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역'은 Bob Dylan이 선보인 레게리듬의 곡,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을 원곡으로 하고 있다.
양병집은 ‘역’을 통해 현실과 가상의 상황을 교묘하게 배치시켜 진실과 허구를 뒤섞여 놓고 가상의 현실을 역설하고 있다.
이 노래는 '기-승-전-결'로 잘 짜인 네 컷짜리 시사만화 보듯 재미있는 가사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짠 콘티는 '기-승-전-그리고 반전'이다.
상식으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나열, 역설에 역설을 거듭하다가 한 순간, 수수께끼 같은 의도를 드러낸다.
'태공에게 잡혀온 참새',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라는 표현을 통해
'힘 가진 자에게 구속되어 있는 한숨과 눈물의 삶'을 서로 엇갈려 배치해 '역(逆)'으로 그리고 있고
이윽고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이라는 설정을 통해 강자와 약자의 위치를 교묘하게 뒤바꿔놓은 것이
바로 그가 숨겨놓은 날카로운 비수이다.
그 의도는 얼핏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다. 왜냐 하면 제목이 ‘역(逆)’이기 때문에...
허나 그 것은 이미 전제된 제목으로부터 주어진 상황, 즉 '역'으로부터 다시 한 번 '역'으로 전환했으되
결과는 또다시 '정(正)'이 되지 못한 채 여전히 '역(逆)'인 것이다.
이것이 스물두 살 당시 그의 눈에 비친 세상살이의 모순이며 비극이다.
그리고 마지막 곡 '그녀'는 Pete Seeger의 'The Thresher'를 우리말로 개사해 부르고 있다.
이 노래는 날씨가 여느 날보다 화창하던 1963년 4월 10일,
고도의 심해에서 연습 도중 사고로 침몰된 3천 톤 급 규모의 미(美) 핵잠수함 Thresher호를 소재로 한 노래이다.
당시 심해 고도실험에 희생된 129명을 애도하면서 비아냥 가득한 표현으로 반전(反戰)을 부르짖고 있다.
양병집은 이 곡조를 '그녀'라는 제목으로 개사, 음반 '넋두리'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읊조린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기타를 집어 들고 그 다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라고. 그리고 이 음반을 맺는다.
이 음반은 '노래나 불러보자'는 '서울하늘'에서의 넋두리로 시작되어 풍자, 관조, 역설 등을 거친 뒤
'...그래서 나는 다시 기타를 집어 들고 그 다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자조 섞인 말로 끝맺는다.
과거형의 시제어(時制語)를 사용했지만 노래들이 다시금 현재진행형이 되어주길 바라는,
그래서 우리 모두를 집단 무기력증에 빠뜨린 이 사회를 향해 노래나마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다분히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와는 달리 결국 그는 쓴 소리를 이즈음에서 접어야 했다.
유신정권은 이러한 그의 넋두리를 결단코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3.
양병집은 신랄한 언어의 풍자가다.
그의 노랫말은 이전 노래들과 판이 다르고 창법 또한 판이하다.
내가 양병집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귀를 번쩍 트이게 하는 느낌을 받은 것은
그가 던지는 메시지에 결코 뒤지지 않는 독특한 창법 때문이었다.
양병집은 노래의 각 행 끝을 짧고 격하게 발음하면서 서두르듯 종료시킨다.
마치 목이 눌리기라도 하듯 목을 조이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른바 '토해내는' 소리다.
이 독특한 '양병집 풍(風)의 창법'은 우리 판소리에 근원하고 있다. 이미 그의 창법은 낯설지 않다.
실제로도 양병집은 우리의 모던 포크에 토속적 요소를 도입하기 위해 수고를 기울였던 인물이다.
밝고 맑은 태양의 혜택 받은 이탈리아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그 기질에 맞게끔 이탈리아의 노래들은 고음인 소프라노나 테너라야 걸맞다.
명 테너인 카루소나 마리오 란자, 스테파노, 도밍고가 이탈리아 사람인 것은 그 때문이다.
이에 비해 대낮에도 부엉이가 우는 숲의 나라 독일의 가요는 거의 예외 없이 바리톤이나 알토에 걸맞다.
바흐의 칸타타나 슈베르트의 음악은 피셔 디스카우트나 하마리 율리아 같은 저음가수가 불러야 제 맛이 난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 춥고 눈보라치고 밤이 길고 음산한 러시아에서는 베이스의 최저음 소리가 걸맞다.
샤리아 핀의 '볼가강의 뱃노래'나 크리스토프의 '보리스 고도노프'가 아니면 들을 맛이 안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처럼 밝지도 못하고 또 러시아처럼 음산하지도 못한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걸 맞는 목청은 어떤 것일까.
명창 송만갑이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자주 말했다던 바로 '높낮이'의 소리다.
소리는 높은 듯 하지만 그늘이 끼게 하고 낮은 소리에도 거칠고 탁한 소리를 배합하는 것이 바로 높낮이의 창법이다.
그 걸고 탁한 소리를 얻기 위해 명창들은 폭포 아래에서 혹은 동굴 속에서 피를 토해 가며 몇 년 독공(獨空)을 한다지 않던가.
이렇듯 한국인의 소리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판소리라면 공교롭게도 양병집의 독특한 창법은 그 판소리와 많이 닮아 있고
또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선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의 인자(因子)도 찾아볼 수 있다.
서양음악은 '신에 감사하고 축복하는 교회음악이 온상'이기에 장중하고 쾌조(快調)인데 반해,
한국의 서민음악은 벼슬아치에 억눌리고, 가난에 억눌리고, 일에 억눌리고, 윤리 도덕에 억눌리는 '억눌림이 온상'이기에
한이 맺힌 애조 혹은 절규에 가까운 그 무엇이다.
그래서 이 [양병집/넋두리]는 유신 정권 젊은이들이 '억눌림의 문화'에 대항했던 70년대의 몸짓을 지름길로 다가와 공감케 하는
그 '뭣'이 있다.
이러한 양병집 식 창법은 바로 정통포크가 담고 있던 당대의 정신과 그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전달하는 작용을 한다.
이 넋두리 음반은 74년, 1500장 정도가 발매, 800여장이 팔리고 나머지는 모두 회수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음반은 금지되어 묻혀지는 수난을 당하지만 그러나 이 음반에서 후에 '너와 나의 땅'은 투코리언즈에 의해,
그리고 '그녀'는 임장욱에 의해 '긴 노래'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역'은 김광석에 의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노래로 다시 살아나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는 75년 7월, '서울하늘'이 금지곡으로 묶인 것과 때를 같이해
당시 연예가를 뒤흔든 대마초 파동의 시점에서 양병집은 기타를 내려놓고 무대를 떠난다.
그 무렵 그는 첫 음반 [넋두리] 이후 두 번째 음반을 준비 중이었다.
때 마침 그를 찾아온 정태춘으로부터 얘기, 양단 몇 마름, 보리 고개, 겨울나무 등 악보를 받아 녹음까지 마쳤으나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이 음반 제작 또한 무산된다.
당시 한국 연예계를 강타한 이 대마초 파동으로 우리는
당시 그가 두 번째로 시도해 취입한 노래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때를 같이해 70년대, 젊은이들로부터 사랑받았던 포크는 휴면기에 들어간다.
양병집 또한 기타를 내려놓고 다시 증권회사에 재입사, 증권분석가로 변신한다.
물론 그 역시 대마초 파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나 가수가 아닌 회사원이라는 신분으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 후 그가 80년, 두 번째 독집앨범 [아침이 올 때까지]를 발표하며 다시 대중 앞에 등장할 때까지
그는 한, 두 번 산발적인 활동을 시도하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미완성이자 미지칭인 채 남겨졌다.
그러나 양병집 역시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활동을 접고 나서야 비로소 젊은이들,
그리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평가 받기 시작했다.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유신 정권 아래 재갈이 물려지고 이름조차 금지된 이름, 양병집.
이때까지 비록 [넋두리]라는 단 한 장의 독집음반만을 발표한 그였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완성도 높은 그의 노래와 더불어
두고두고 파장을 일으킨다.
[넋두리]-. 이 음반이 그가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70년대 3대 저항가수라고 평가되는 이유에 대한 결론이다.
그는 증권회사 직원으로 근무한지 또 얼마 되지 않아 사표를 던지고 신촌으로 향한다.
70, 80년대의 신촌은 청년문화의 메카였다. 그는 이곳에서 라이브 카페를 차려 운영한다.
그가 새롭게 손을 댄 이 까페들이 바로 당시 신세대 뮤지션들의 산실이자 아지트였다.
이곳에 최성원, 조동익이 있었고 전인권과 허성욱이 만났으며 해바라기의 이주호와 유익종도 함께 거기에 있었다.
그는 1986년 호주로 이민을 떠나 자동차 세일즈, 교포식당 경영, 그리고 신문기자 생활 등을 전전하다
1999년 10월, 호주에서 귀국했고 2001년에는 영주권마저 반납했다.
그동안 그는 80년 두 번째 독집 [아침이 올 때까지]를 비롯해 여섯 장의 독집음반을 발표했다.
이 음반들을 통해서 여전히 그는 무뎌지지 않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세월에 따라 그가 내뱉고자 하는 메시지는 때론 이솝우화만큼이나 더욱 쉽게 감지된다.
그 중 그가 88년 말에 발표한 음반, [부르고 싶은 노래들/70년대 통기타 노래 모음(예음/YERD 7005)]에 실려 있는
'세 마리 까마귀'의 가사를 보자. 이 노래는 Peter, Paul & Mary의 '3 Ravens'에 노랫말을 붙인 것이다.
새까만 까마귀 세 마리 나무 위에 앉아서
자기들끼리 웃으며 하는 말
오늘 아침 식사는 무슨 고기로 할까
내려와 내려 내려 내려와 아----
새파란 풀밭 사이로 지나가던 망아지
까마귀를 보면서 하는 말
그렇게도 썩은 고기가 맛이 있단 말인가
내려와 내려 내려 내려와 아----
1년 2년이 지난 후 15년이 지나고
나무 위에 찬 바람 불어도
까마귀는 내려올 생각조차 않누나
내려와 내려 내려 내려와 아----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찾아와
졸고 있는 까마귀 머리에
온화하고 따스한 빛을 부어주누나
내려와 내려 내려 내려와 아----
이 음반이 타이틀 그대로 [부르고 싶은 노래들/70년대 통기타 노래 모음]이라 함은
그가 군사정권을 향해, 그리고 이 사회를 향해 '아직도 할 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다시 서울하늘 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후 동서남북, 16년 차이, 그리고 최근에 BJ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김하용덕과 손지연 같은 후배 가수들의 음반을 제작, 포크의 맥을 잇는데 주력하고 있다.
1년 4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 [저주 받은 걸작/넋두리].
이 음반은 70년대의 가객, 양병집의 치열한 몸짓이자 기록이다.
동시에 70년대 사회의 모순, 그 앞면과 이면을 정확히 관통한 피 묻은 화살이다.
[넋두리]는 70년대의 또 다른 얼굴이자 사회적, 음악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30년도 더 훌쩍 뛰어 넘어 세기를 바꾼 이 시점에서라도 반드시 재 발굴되어야 하는 충분한 이유다.
허나 정작 가수 양병집, 그는 아직도 자신의 노래보다 이름이 먼저 거론되는 걸 부끄러워한다.
더구나 걸러지지 않은 스무 몇 살의 자신의 목소리가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 다닌다는 게 한 편 두렵다고도 했다.
허나 소수의 마니아들로부터 '명반'으로 회자되고 평가되어온 이 음반이 생생히 재현, 복원될 수 있음은
매우 다행스런 일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양병집의 메시지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설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글ㅣ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Copyright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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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7,8년 전에 양병집, 이 분과 함께 했던 명동의 밤이 떠오릅니다. 그즈음에 전 넋두리의 복각음반을 구하기도 했지요. 청개구리 공연에서의 양병집은 대단한 입담이었습니다.
긴 글 씹듯이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양병집에 대해 시험 보면 만점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글을 올리면서 다시 읽어 보니 2000년도에 첫 리뷰를 시작해 2004년도에 본격적으로 마무리한 글이었네요...^^
아무래도 '바람새 시절'이었던 40대 때는 여러모로 지금보다 집중력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요. 늘 감사.
박성서님의 글을 읽다보면 70년대 초반 대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낌니다 짝짝짝 보석같은 글에 이 새벽 감동이 밀려오네용 건강하시구 늘 행복하세염 글구 항상 웃으며 삽시다용
감사합니다.
반가운 자료군요.
들을수록 더 좋아진다는 느낌
이런 느낌을 주는 작품은 별로 없는데
양병집 그이름 만으로도 반갑지요.
^^행님,
좋은자료 , 고맙씸미더.
양병집 일대기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자료네요.
감사...^^
담아갑니다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