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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의 산중산담 山中山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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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 산행기 스크랩 초보산꾼의 발길 닫는 곳 : 순천 조계산 - 길에서 만나는 역사는 언제나 진행형이다
초보산꾼 추천 0 조회 66 15.07.27 15:5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초보산꾼의 발길 닫는 곳 : 순천 조계산  (曹溪山 884m)

 

일시 : 을미년(15년) 견우직녀달 스물닷새         

인원 : 호남정맥 식구들과 함께

어딜 : 선암사 ~ 선암 굴목재 ~ 보리밥집(점심) ~ 배바위 ~ 조계산(장군봉) ~ 접치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2609 에 있습니다

 

이제 7월도 중순을 지나 중복을 막넘기고 말복을 향해 달려가는 중에도 더욱 힘을내는 더위와의 한판

그렇게 가뭄이 심해 타들어가는 대지만큼이나 걱정속에 농심까지 함께 타들어가게 만들더니

이젠 장마와 함께 몰고온 태풍까지 곳에 따라서는 다시 넘치는 물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런 중에도 밖을 나가면 여름의 전령사이면서 나라의 꽃인 무궁화가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제는 도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무궁화꽃과 함께 여름을 즐기는 꽃들을 응원하면서 길을 떠나 본다 

 

선암사 조계산 접치 등로 - 참고용

 

순천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무었일까? 우리 세대라면 아마 인물자랑하지마라 돈자랑하지마라 주먹자랑하지마라

급속도로 우리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생긴 사회적 분위기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거기에 우린 전국을 무대로 하는 산꾼들이니 여기에 순천만 정도는 기억해 두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동양 최대의 갯벌 새만금이 돈먹는 하마로 변해가고 있는 사이 돈벌어주는 힐링의 대명사가 된 순천갯벌

때론 무직한 것이 좋은 것이여... 거기에 조계종(송광사)와 태고종(선암사)을 품고 있는 조계산으로의 여행은 어떨까?

이 초보산꾼과 함께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이면서 나그네의 갈 길을 재촉했던 송광사와 선암사를 이어준 굴목재길로 떠나본다

 

호남정맥팀을 먼저 고동치에 내려주고 추억을 남겨 본다 - 바시님 작품

 

그렇게 도착한 선암사 주차장

 

느림여행, 2천원을 지불하고 주차장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태마팀의 인증사진을 남기면서 선암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한국 최고의 명상길로 선정된 선암사까지의 들머리 길

선암사 들머리

참나무와 삼나무 숲이 한낮에도 새벽분위기를 주는 1㎞ 남짓 걷는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까지의 거리를

한국관광공사에서  전국 최고의 '명상로'로 선정할 만큼 울창한 숲이 만들어 내는 평탄하고 널따란 호젓한 길이다

 

세월의 무게를 우린 존중하고 이렇게 배려해 주어야 한다. 고령화 사회로 들어서면서 느끼는 단상이다

 

부도밭이 나오면서 아름드리 나무들이 한여름의 생명을 맘껏 마시고 또 뿜어내고 있었다

 

천년고찰인 만큼 또 하나의 부도밭과 선덕비를 지나 순천전통야생차 채험관 갈림길을 지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일반적인데... 여기 목장승은 특이한 모습으로 우릴 반기고 있다

 

민간신앙을 전통사찰에서 도입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해설이 원조 보리밥집에 걸려 있었다

 

첫 승선교가 나오면 다리 아래로 내려가 두개의 강선교를 담아 본다

 

작은 승선교 또는 하승선교라 부르는데 상승선교와 함께 쌍승선교라 부른다. - 지나치기 쉬우므로 잘 기억해 두시길...

 

두번? 상승선교 아래에서 담아 본 강선루 - 비가 더 많이 오면 위험할 듯, 이렇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면 행복

승선교(昇仙橋)(보물 제400호)와 강선루(降仙樓)

선암사로 드는 길목에 아치형 반원형 석조다리인 보물 제400호인 승선교와 강선루를 만날 수 있다 

조선 숙종 39년인 1713년 호암대사가 6년에 걸쳐 완공한 전통 석조 홍예교(무지개다리)로 성스러움의 상징이다.

선암사를 찾는 이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 오욕과 번뇌를 씻고 선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라고 한다

특히 홍예 아래의 물가에서 바라본 승선교와 강선루(降仙樓)의 절묘한 어울림은 선암사를 상징하는 풍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강선루는 승선교와 더불어 선계(仙界)를 연상케 하여 도가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물이다

 

승선교을 지나 각종 불심을 담은 각자된 바위군을 강선루와 함꼐 볼 수 있다

 

옥의 티, 어렵게 생명을 어어갔을 나무를 단지 바위에 각자된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이렇게 잘라 버렸다.

 

강선루 자료 : 선암사 홈피 http://www.선암사.org/bbs/board.php?bo_table=02_2&wr_id=14

강선루는 선암사에 오르는 이들에게 출입용 문루역할을 하는 팔작지붕의 중층누각이다.
승선교와 더불어 선계(仙界)를 연상케 하여 도가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물로  누각형태의 건물은 아니다.
강선루 상량문에 의하면 강선루는 불기 2959년(1929년)에 지어 졌으며 화주는 이월영(李月永)스님이다.
건물은 잘 보이지는 않지만 매우 좁은 계류위에 선원교라는 작은 돌다리를 두고 그 위에 세워져서 일종의 누교인 셈이다.
승선교와 쌍으로 이루는 풍광은 선암사뿐 아니라 국애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절경이다.

 

찻집 우측과 안내판 좌측이 송광사 가는 길이고 안내판 우측이 선암사 올라가는 길 그리고 앞에 삼인당 연못

 

송광사 가는 갈림길인 찻집앞에 놓여 있는 인공호수인 삼인당

삼인당(三印塘)   도선국사가 팠다는 작은 연못 인공섬 
찻집앞 연못가엔 아름드리 젓나무(전나무) 세 그루가 키자랑을 하고 있고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연못안에 긴 알모양을 하고 있는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이라고 산암사 사적에 나와 있다

삼인 三印은 제행무상 ( 諸行無常人 ), 제법무아 ( 諸法無我人 ), 열반적정 ( 涅槃寂靜印 ) 의 삼법인으로

모든 것은 변하여 머무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음으로 이를 알면 열반에 들어간다는 불교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선암사로 올라가는 길 옆 위에 어디서 많이 본 하마비가 놓여져 있다

하마비(下馬碑)  초보산꾼 구미 금오산 채미정 여행기중에서  http://blog.daum.net/kmhcshh/2290

 

선비들은 이곳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 예를 올리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다
이곳에서는 경건함을 잃지 말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내가 제일 존경하는 스승이라면 더 무슨 말이 필요하리요

자꾸 교육의 현장에서 스승의 설자리가 없어지는 현실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다가 온다

 

선암사 일주문

선암사 일주문은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의 전화를 입지 않은 유일한 건물로 조선시대 일주문의 양식을 잘 보전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그런데 이 일주문은 다른 사찰과 달리 사천대왕상이 없는데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의 호위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과 대웅전

선암사 仙巖寺            전각소개 http://www.선암사.org/bbs/board.php?bo_table=02_2

선암사는 신라시대 아도화상의 ‘비로암’ 창건설과, 도선국사 창건설을 가진 사찰로서,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중창되면서 천태종 전파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상봉 장군봉 코밑의 선암사는 옥 같은 미녀가 잔을 올리는 옥녀헌배형(玉女獻杯形) 명당이라고 한다.

그래서 들머리 유천부락 앞에는 옥녀봉이, 뒤에는 배봉(盃峯)이 있는데

근래 주암댐이 건설되면서 동네 앞에 조정지댐의 상사호가 만들어져 미녀가 잔을 올린다는 전설이 더욱 설득력있게 됐다.

선암사는 매화와 동백을 시작으로 영산홍, 금낭화를 연이어 피어내 사계절 꽃이 지지 않는 도량이라 해서 ‘꽃절’이라 불린다

또한 배바위전설에는 신선이 이 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었다하여 신선바위 즉 선암(仙巖)이라 부르게 된데서 선암사의 유래를 찾기도 한다

 

대웅전 위?으로 돌담길과 선암매 길이 운치를 더해 준다

 

 

돌담길 좌측으로 가면 선암매 고목을 만날 수 있다

 

선암매(仙巖梅)  

선암사의 무우전과 팔상전 주변 20여 그루의 매화 중 고목으로 자란 백매와 홍매 2그루는 아름다운 수형과 양호한 수세를 보이고 있고,

고려 때 중건한 선암사 상량문에 바로 옆의 와룡송과 함께 매화 관련 기록이 남아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큰 나무이다.

대웅전을 지나 무우전으로 가는 길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 매화 '선암매'가 있다. 수령 300∼600년 묵은 고매(古梅)가 향기를 뿜어낸다.
수령 600년의 선암매는 단연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토종 매화다.

 

 

선암매가 꽃을 피우면 그 향기 저 산 너머 화엄사로 건너가 각황전 홍매를 깨운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인데

매서운 겨울 추위를 이기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나무들이 들려주는 3월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세상사 그렇듯 꽃망울을 흐드러지게 터뜨릴 봄에 이곳을 찾는 것 또한 언제일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기에

천년고찰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을 고목이 담아내는 기상만큼은 배우고 왔다는 생각이다

 

 

선암사의 또 하나의 명물 뒤깐 - 왜 굳이 근심을 털어내는 곳이라는 해우소라 하지 않았을까?  옛글자를 그대로 옮긴 명패에 답이 있다

 

 

답을 식후경하기 위해 들른 보리밥집(주막)에서 얻었다

 

뒤깐을 나와 편백나무숲길 가는 이정표를 따라 송광사 가는 길로 들어간다

 

대승암 갈림길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굴목재길인 숲길이 이어진다

 

편백나무숲에서... 바시님 작품

 

특별한 풍경이 없어 길의 모습만 놓고 보면 우리 집 뒷산길과 그다지 다를게 없는 그저그런 길이다

오늘 들리지 못한 송광사 직전 홈통계곡과 선암사 뒤편의 편백나무 숲만이 그나마 눈을 즐겁게 해 줄 뿐이다

그러나 이 길은 알고보면 두 고찰의 스님들이 만고의 진리를 얻기 위해 걷고 또 걸었던 깨달음의 길이다

깨달음의 길이 따로 정해져 있으면 좋으련만 어디에도 없기에 걷고 또 걸었던 것이며 바로 이길이다

 

송광사 가는길의 유일한 볼거리

 

스님들이 삶과 죽음의 화두를 생각하면서 욕망과 번뇌를 벗어나기 위한 길이다고 생각하며

스님들이 남기고 발자취를 따라 남겨졌을 얘기들을 이곳의 주인인 저 나무는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잠시 신록의 나뭇잎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얼굴을 맡기며 나무를 물끄르미 쳐다보았지만

지금까지 그랬듯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오늘도 그 자리에 있을뿐 한줄기 빛만 남긴다

 

엊그제 내린 비가 계곡물소리를 더욱 청아하게 만들어 주어 귀까지 즐겁게 해 주고 있다

 

그런 중에도 때마침 비까지 내려줘 많아진 골짜기의 물이 재잘거리며 산속으로 새를 불러 함께 합창하며 동행을 자청하고

물이 오를데로 오른 청춘의 녹음이 여름 한 낮 열기를 조금이라도 더 호흡하기 위해 숨가쁘게 뿜어내는 숲길이 있어

나도 어느세 세속을 떠나 중생을 구한다는 높은 뜻을 가질 수는 없지만 나를 잠시 내려 놓을 수는 있지 않을까?

맘이 부처라 했는데... 행복도 불행도 내맘속에 있는데... 내가 하지 못한 스님들의 채취라도 좀 느끼고 싶을 뿐...

 

아치형 다리를 만나면서 다시 한번 계곡을 담아 본다

 

스님도 승복을 벗으면 우리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지고 똑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범인일 것이다

세속적 사연들을 모두 떨쳐버려야만 했기에 승복을 벗을 수 없었던 스님들의 성불을 향한 발자취가 남아 있는 길

그래서 이길을 사람들은 천년불심의 길이라 부른다

같은 길을 걸어도 이렇게 불심이 살아있는 길을 걸으니 갇혀있던 시야도 풀리고 오감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숱가마터도 지나고

 

그러고 보면 여기는 스님들만 오갔던 길만은 아니었다 . 먹고살기 힘든 우리 이웃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던 곳이기도 하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이 곳에서 구워진 숯이 순천과 보성, 벌교를 거쳐 서울까지 열차 타고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나 김신조 청와대 피습사건은 이곳까지 서슬퍼런 반공이데올로기에 걸려 다 사라졌다고 한다

화전을 일구며 불심에 의지해 많은 산에 있었던 작은 암자들이 미신타파라는 모 정권의 이상한 논리로 모두 사라졌듯이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전설이 깃든 호랑이턱걸이바위도 지나고

 

오늘 나는 스님의 바랑대신 배낭을 메고 이렇게 힘들게 오르면서 무슨 생각으로 깨달음을 얻었을까? - 바시님 작품

 

돌탑이 나오면서 조정래의 소설속 태백산맥의 조계산에대한 설명이 있다

 

화전민의 아픔을 지나자 이젠 이데올로기의 상처가 남긴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빨치산의 총사령부가 있는 지리산에서 전남 서부 지역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였던 조계산은 빨치산의 중요활동무대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특히 이곳 빨치산들은 1948년 여수항쟁이후 급격히 무너지면서 최후의 저항을 하다 목숨을 바친 곳이기도 하다

굴목재길은 길을 잃은 중생들을 품어 주었지만 근현대사의 거친 풍량은 결국 모두를 사라지게 했떤 것이다

 

호남정맥 능선과 만나는 쿤굴목재(선안굴목재)를 만나다

선암굴목재(큰굴목재)

굴목재는 선암사쪽의 선암굴목재와송광사쪽의 송광굴목재로 나뉘는데 선암굴목재를 큰굴목재라고도 한다.

두 절을 이어주는 산길이 굴목재인데 숲이 그윽하고 길은 험하지 않아 연인?가족산행지로 알맞다.

전남 순천의 고찰 송광사와 선암사에서 수도하던 스님들이 걸어 다니던 6.5㎞의 산길로 깨달음의 길이기도 하다

'골목'은 골짜기를 가로막는 나무에서 왔다는 유래가 전해지지만 조계산 동쪽과 서쪽에 상사호와 주암호를 만들어

서로 연결하는 수로를 만들었다고 하니 '지하로 뚫릴 목'이라는 재밌는 유래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울창한 숲이 굴을 만들어놓은 모습을 보고 '굴목재'라 불렀다고 전한다.

 

큰굴목재를 지나 늦은 점심을 하기 위해 송광굴록재로 내겨가다 보면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야 원조보리밥집에 갈 수 있다

선암사와 송광사 스님들의 왕래길

 

선암사-송광사 두 절을 잇는 6.8㎞의 숲길인 굴목재는 선암사와 송광사의 스님이 산문을 깨치기 위해 수시로 왕래하며 수행한 길이다.

우리같은 일반사람들이 보기에는 두개의 큰 절이 있기에 서로 교류하며 잘 지낼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기울거나 종파라도 같으면 그다지 문제될 것 없을 것 같은데 두 절 다 천년고찰에 위세도 비슷하니 라이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반목과 갈등은 결국 해방후 조계종(송광사)와 태고종(선암사)의 종단간 갈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려놓으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붓다의 말씀은 결국 최전선인 사찰에서 조차 밥그릇싸움으로 얼룩지기 일쑤이니...

 

다리를 건너 작은굴목재 갈림길을 지나 화장실을 지나면 원조 보리밥집이 나온다

 

늦은 만큼, 거기에 주인장의 친절과 값싼 먹음직스런 반찬에... 다시 한번 추천하고 싶은 원조 보리밥집에서

 

이제 조계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 다시 되돌아 와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작은굴목재 방향인 좌측으로

 

帳幕洞에서 유래를 찾는 장박골 다리를 3개를 건너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 우틀 - 배바위를 갈려면 우틀해야 한다

 

다시 호남정맥 능선인 작은굴목재에서 태마팀 단체사진을 남기고... 바시님 자굼

 

선두는 보내고 조금 있으니 드디어 호남정맥팀인 향로봉님과 북한산님이 열심히 올라오고 있다

 

진행상 난관을 만나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점심도 거르다 이제야... 수고했습니다

 

배바위 - 오르기 위한 밧줄이 전설속의 고리를 묶기 위한 밧줄로 상상되어 진다

배바위
우리가 보았던 옥천 고리산의 고리나 이슬봉, 그리고 지리산의 고리봉, 100대명산팀과 함께 했던 창녕 화왕산의 배바위등

이름만 다를 뿐 모두 우리의 꿈을 담은 전설같은 신화를 담은 이름들이다

아득한 옛날 세상이 온통 물에 잠기는 어마어마한 홍수가 발생하자 사람들이 커다란 배를 지어 이 바위에 묶고

몇 날 며칠을 견딘 끝에 홍수가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더불어 “선암사라는 절의 이름은 신선이 이 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었다하여 신선바위 즉 선암(仙巖)이라 부르게 된데서 유래했다는

또 다른 전설과 장군봉장군의 도장이라 하여 인장'바위 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배바위에 올라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 옆으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고 하여 혹시나 했지만 구름만이 무심타

 

선암사와 상사호 그리고 날씨만 좋으면 좌측 멀리 고흥만을 볼 수가 있다

 

상사호를 당겨보고

 

호남정맥팀이 걸어온 희미하게 보이는 고동산 방향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호남정맥팀과 단체사진

조계산(曹溪山 884m)

전남 순천시 5개면을 감싸고  있는 조계산은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부른 명산으로  불교 사적지가 많으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9년)되었다

원래 이름은 송광산(松廣山)인데, 고려 희종이 조계산으로 바꾸었다고 하고 호남정맥의 말단부에 있는 산으로 광주의 무등산 영암의 월출산과 삼각형을 이룬다

산자락에 한국 불교의 양대 산맥이라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었다. 선암사는 태고종 태고총림, 송광사는 승보종찰 조계총림이다.

조계종 삼보사찰로 이름난 송광사가 있어 '국내 불교문화의 요람'이라는 曹溪라고 얻엇다고 한다

 

조계산 정상에서 본 모후산과 구름에 가려진 무등산

 

당겨보면 모후산과 우측으로 멀리 구름에 가려진 무등산

 

오늘의 날머리 접치로 가기 위해 계속 북쪽으로 진행하면 연산봉 갈림길에서 접치로

 

542봉은 우회하고

 

철탑을 지나고

 

철탑하나를 더 지나면 바로 접치

접치(接峙210m   순천시의 주암면 행정리와 승주읍 두월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

호남고속도로와 22번 국도가 고개를 지나가며 서쪽으로는 주암천, 동쪽으로는 두월천 지류가 발원한다.

고개 서쪽 사면에 고개의 이름을 딴 접치 마을이 있다. 처음에는 학동이라 부르다 1914년 접치로 개칭되었다

남쪽의 조계산도립공원과 북쪽에는 오성산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버스도 있다

 

기사님의 알바로 늦게 승주 i/c 굴다리로 나와 기사식당에서 뒤풀이

 

호남정맥팀과 함께 한 태마산행 건배로 함께 하루의 피로를 풀어 본다

 

지금 전국은 둘레길과 각종 태마를 겸한 옛길을 찾아 누구나 손쉽게 하루 즐길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열풍속에 살고 있다

어느정도 성과도 있어 처음 그것도 산길이냐며 외면하던 소위 산꾼들도 서서히 힐링의 맛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것은 지방자치단체의 힘이 아니라 근본인 자연이 주는 힘이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 이상이기 ?문이다

그렇게 사람이 개입되어 길을 열다보니 옆집의 자료를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도 많아 개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천년 불심이 살아있는 의미에다가 다른 길과는 다른 인공이 거의 가미 되지 않은 굴목재길

버리고 비우고 놓는 법을 배우는 산실인 산사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며 비우는 법을 남겨 놓았을 것인데

그것도 천년고찰인 선암사와 송광사, 공(空)의 세계를 향한 스님들의 발자욱을 따라 걸을 수 있어 그저 행복했다

비록 굴목재길의 반쪽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나를 낮추고 비우고 버리는 법을 조금은 얻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숯가마터에서 생산된 숯가마를 가지고 외지로 나가가 위해 넘나들다 잠시 쉬기 위해 들르던 곳

빨치산이들이 관군의 감시망을 벗어나기 위해 밤을 벗삼아 걷다가 잠시 몰래 들어 탁배기 한잔하기 위한 곳

스님들도 공양미를 핑계삼아 잠시 툭배기 한사발로 허기를 채웠을 것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지금이나 옛날이나 객들의 발을 잡아 놓는 곳이 바로 길위의 주막집이다

이제 세상은 바뀌어 가난의 대명사였던 보리밥이 새로운 영향식으로 태어나면서

지금은 산객들의 쉼터 역활과 주막의 역활을 하고 있는 보리밥집이 굴목재길에 남아 있어

그것도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옛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주막이라 더욱 정감이 있었던 것 같다

 

굴목재를 벗어나 다시 현실속으로 들어가는 조계산으로의  힘든 오름길 위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나도 모르게 다시 잔뜩 힘이 들어가고... 

그렇게 욕심으로 오르려하니 맺힌 땀방울 속으로 들어온 바람이 전하는 말,

내려놓으라...

수없이 반복하고 반복했을 스님들의 바램을 바람이 이제야 나에게로 전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알든 모르든 떠나야 하는 모양이다

 

떠나지 않으면 뒤늦게 바람이 전해 주었던 깨달음의 진리도 얻어 들을 수 없으니...

 

거의 종착역으로 가고 있는 호남정맥팀과 함께 했떤 태마산행

호남의 젓줄인 섬진강의 근원인 호남정맥길의 여정에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가끔 이렇게 서로의 각자 다른 산길을 걸으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호남정맥 종주대와 보물상자 대장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함께 해 주신 산우님 모두 수고했습니다

 

 

 

             초보산꾼   도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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