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장 명초의 비밀 1
공주 고청봉의 용화사에서는
마침 방장 명초의설법이 열리고 있었다
수좌 여남은 명, 그리고 그뒤로 신도 몇이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정휴는 설법이 열리고 있는 법당의 문을 열었다.
설법을 하던 명초와 법당에 들어서던 정휴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정휴는 합장을 하고 삼배를 올렸다.
정휴를 잠깐 돌아본 명초는 설법을 계속해 나갔다.
"환신(幻身)이 나고 죽는 것을 따라 옮겨다니는것이
사람의 한 평생이라.
평생 싸움질만 하다 가는것 같소이다.
업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오고 나는악착같이 도망치려 하고…
잘들 있으시오.
내가 죽은 뒤에 요란하게 장사를치르거나
세속에서 하는 대로 예를 갖추지말아주시오.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거나 남의 조문을받아서도 안 되오.
그런 사람은 내 제자가 아니니…"
명초는 죽음을 앞두고 최후 설법을 하고 있었다.
정휴는 고개를 뚝 떨구었다.
화담 산방을 떠날 때들었던 예감이 맞은 것이다.
명초는 정휴를 깨우치기 위하여 얼마나 애썼던가.
정휴는 지난 날 명초가 휘둘렀던 매서운 채찍이그리웠다.
그러나 명초는 지금 대중에게 임종을고하고 있었다.
한 수좌가 일어나 명초에게 문답을 청했다.
"큰스님, 돌아가시면 어디로 돌아가시는 것입니까?"
"생도 사도 없는 곳, 시작도 끝도 없는 곳,
그런곳이라고 이르는 게 고인들의 말씀이었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네.
평생 공부만 하고도 성불을 하지못했으니
어느 신도집 황소로나 태어나야겠네.
그래서이생에서 평생 시주만 받아먹고 살며 지은 빚을
갚아야 할 걸세."
제자들은 죽음을 선언한 명초에게 다투어 질문을퍼부었다.
한 수좌가 나섰다.
"큰스님, 보따리를 다 풀고 가십시오."
"내가 가진 보따리를 다 풀으라고?
이리 오게.자네에게만 몰래 전해 줌세."
질문을 던졌던 수좌가 법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명초가 그의 귀에 입을 대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 수좌에게 물었다.
"들었는가?"
"예? 아무것도 못들었는데요?"
"자, 그럼 다시 한번 들어보게."
명초는, 이번에는 그 수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눈을 꿈쩍거렸다.
"보았는가?"
"아무것도 못 보았습니다. 말씀을 해주셔야 듣고,
무언가 내보이셔야 보지요."
"예끼, 이놈!"
명초가 주장자를 들어
그 수좌의 등줄기를 철썩내리쳤다.
"자, 그만들 두거라. 설법을 마치련다."
명초는 법상을 내려 섰다.
시자승이 어깨를부축하여 법당을 나갔다.
명초는 법당을 나서다가뒤를 돌아보면서
정휴를 찾았다.
"못난 것. 방장으로 오너라."
명초가 방장으로 돌아가자
수좌들은 다비 준비다제물 준비다 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정휴는 방장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래, 서암에게서 도를 구했느냐?"
"아직 미망이 깊습니다."
"못난 녀석. 내가 갈 길이 머니 네 녀석에게 말해주마."
"···"
"난 네 삼촌이니라."
"예?"
"놀라지 말고 들어보거라.
끝까지 말을 하지않으려고 했다만,
기왕에 네 녀석이 여기에 나타났고,
또 서암이 지극하게 가르쳐주는 도마저 받지 못하는
찌그러진 그릇이니 할 수 없이 토설한다.
신분에연연하여 제 공부 하나도 못 하는 어리석은 녀석.
네가 심충익을 알렷다."
"예. 저의 주인이셨습니다."
"주인? 네 주인은 너니라."
"하오나…"
"그 자는 너의 원수니라."
"예?"
"중종 반정이라고 들어보았느냐?"
"연산군을 몰아낸 사건 말씀이시옵니까?"
"그렇다. 정민(丁民), 네 아버지의 함자다.
의금부도사였던 네 아버지는 그때 모반 사건을 알고
대궐을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연산군을 지키려는사람이 없었다.
신하들이 일제히 돌아서버린 것이다.
그러나 네 아버지는 끝까지 왕에게 충성해
연산군을지켰다."
"···"
그때 중종의 인척인 심충익,
그러니까 너의옛주인인 그가
반역의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반역, 그렇다. 그때까지는 그것이 반역이었다.
네아버지는 끝까지 싸우다 심충익의 칼에 맞아 죽었다."
"···"
정휴는 그의 출생 비밀이 풀리고 있다는 놀라움과
아버지 정민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감정이 뒤엉켰다.
그 뒤 심충익은 오히려 우리 집안을
반역의무리라고 지목하여 모두 잡아들였다.
그때 나는 이미입산한 몸이라서
잡혀가지 않았다.
그러나 너와 너의어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모두 끌려가 종이되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느 집인가 권신의집에 하사되었는데
아직도 어디 계신지 찾아내지못했다.
이미 이 세상을 뜨신 지 오래 되었을 게다.
너와 네 어머니는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십수 년만에야 찾았다.
내가 용화사에 있으면서 시주를다니다가
우연히 보령에서 너희 모자를 보았던것이다.
네 얼굴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네 어머니얼굴은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뒤로 보령에 자주 다니면서 네 소식을 물어보곤했다.
네가 심충익의 배려로 공부를 한다는 것도
이미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너도 알아야겠기에 하는 말이지만…"
"무엇 말씀이십니까?"
"심충익의 막내딸을 아느냐?"
"아옵니다. 심명 애기씨요."
"그 아이는 네 동생이니라."
"예?"
"그걸 심충익이 말해 주지 않더냐?
네 어머니도말하지 않았을 텐데
그 사람인들 말했을 리 없다만…
그래도 심충익 그 사람이 대인은 대인이니라.
원래종에게는 성도 내리지 않는 법인데,
그 이가 네이름은 원래 쓰던 대로 내버려두었다.
또 네 동생의이름은 네 아버지가 쓰는 대로
외자로 지어주었으니하는 말이다."
"그래서 심충익 대감이…"
"그 이가 무슨 언질을 주었더냐?"
"아닙니다.
심 대감이 임종을 눈앞에 두고 저를불러서는
막내딸을 따로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을 하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가 하여 미진했었는데
지금듣고 보니…"
"심충익이 네 어머니를 취하여 그 딸을두었느니라."
명초가 눈을 감았다.
죽음을 눈앞에 둔 노승이건만
조금도 쇠하지 않은모습이었다.
정휴와 마주앉은 명초는
서슬퍼런 방장의기개는 간 데 없고,
인자한 삼촌의 얼굴로 정휴를바라보고 있었다.
"휴야."
"예. 큰스님."
" 삼촌이라고 부르거라."
"… 삼촌."
명초의 두 눈에 물기가 비쳤다.
"이 일을 들어 행여 무슨 일을 도모하지는 말거라.
네가 누구의 자식이든, 누구의 조카이든
그것은 다 환영에 불과하니라.
너는 단지 너일 뿐이다.
자, 그만하자.
나는 더 이상 세상에 머물 수가 없구나.
나를따라오너라."
명초는 주장자를 들고 일어나 방장을 나섰다.
정휴도 명초의 뒤를 따라 방장을 나왔다.
용화사는 명초의 임종을 준비하느라 몹시 분주했다.
명초는 경내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자."
명초는 고청봉으로 올라갔다.
가는 길에 커다란바위를 만난 명초는
바위 위에 앉아 잠시 쉬었다.
"휴야. 난 이 산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이 산의덕을 그렇게 많이 본 게지.
내가 비록 신도집 황소로태어나서
일을 하겠다고 말하였다만
그건 다음 생의몸이고,
이번 생의 몸은 따로 보시할 데가 있다."
임종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렇다."
"물은 강으로 바다로 흐르고, 나는 내생으로흐른다."
"그러면 어디에서 임종하실 겁니까?"
"산으로 올라가 반석이라도 있으면 누워 있을란다.
그러면 까마귀도 와서 나를 먹을 것이고,
벌레도 와서 나를 먹을 것이다.
고청봉에 터를 잡고 사는 온갖짐승들이 와서
나를 먹고 주린 배를 조금이나마 채울것이다.
그게 참으로 보시다운 보시니라."
"삼촌."
"마지막으로 내가 너에게 오계를 내리마.
이로써비구 250계를 받아라."
"하오나…"
"하오나, 뭐냐? 어리석은 것.
아직도 미망을 떨치지못해서 주저하느냐?
평생 행자로 보낼 것이냐?
계를받겠느냐, 받지 않겠느냐?"
정휴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정휴의 머리 위로 명초의 오계가
준엄하게떨어져내렸다.
"첫째, 생명을 죽이지 말라."
"예. 받들어 지키겠나이다."
"생명을 죽이지 말라 함은
함부로 정을 움직이지말라는 뜻이다.
하늘이 낸 생명은 저마다 업을 가지고있는 것,
제 스스로 존재하는 이치가 있으니
함부로생명을 끊어서는 안 된다.
호랑이가 짐승을 잡아먹는 것도 제 이치이고,
악한사람이 착한 사람을 못살게 구는 것도
다 저희끼리 이치가 있는 법,
함부로 나서서 생명을 다치게 해서는안 된다.
그러므로 생명의 문제는 절대로 소홀히판단하거나
결정하지 말아야 한다.
하물며 네 손으로생명을 다치게 하거나 죽여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렇게 지키겠습니다."
"심충익의 집안에 원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예."
"둘째, 훔치지 말라."
"예. 받들어 지키겠나이다."
"훔치지 말라 함은 네 죄를 쌓지 말라는 것이다.
너 아닌 것은 하나도 가질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네가가진 것이 많을수록 네 업이 자꾸 무거워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네가 가질 것이라곤 도밖에 없다
나머지는다 쓸데없는 것이니라.
다른 것을 지니면 그것은도적질이니라."
"그렇게 지키겠습니다."
"그 다음 세번째. 음행하지 말라."
"예. 받들어 지키겠나이다."
"마음이 삿되어 행하는 것은 다 음행이니라.
목이말라 물을 찾고,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것도
지나치면 음행과 다를 바가 없느니라.
제 여자가아닌 사람을 취하는 것만이 음행이 아니다.
남녀의교접이란 번식을 하기 위함인즉,
그것을 쾌락으로쓰는 것은 다 음행이니라."
"그렇게 지키겠습니다."
"다음 네번째. 거짓말하지 말라."
"말을 거꾸로 하거나 뒤집는 것만이 거짓말이아니니라.
제가 터득하지 못하고 남이 깨달은 것을
입으로만 전하는 것도 다 거짓말이니라."
"예. 받들어 지키겠습니다."
"마지막 다섯번째. 술을 마시지 말라."
"예. 받들어 지키겠나이다."
"이는 한 순간도 정신을 놓지 말라는 것이니라."
"그렇게 지키겠습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계를 금강 같은 의지로지키겠느냐?"
"예. 명심하여 받들어 지키겠나이다."
"이로써 비구 250계를 준 것으로 한다.
그만내려가거라. 나는 간다."
"스님."
명초는 산꼭대기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갔다.
정휴는 두어발 따라가다가 그만두었다.
명초는 이미 자기가 죽을 날까지 알고
스스로 육신보시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명초의 숭고한 뜻을
하찮은 인간의 정으로써 방해할 수는 없었다.
정휴는 명초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있었다.
마침내 명초가 숲속으로 사라지자,
정휴는용화사 계곡을 내려갔다.
용화사에 이르자 주지가 정휴에게 달려와
방장명초의 거취를 물었다.
"이보게, 정휴 행자. 큰스님은 어디 계신가?"
"저도 모릅니다."
"모르다니. 자네하고 함께 고청봉으로올라가셨다는데?"
"그래도 저는 모릅니다. 큰스님은 떠나셨습니다.
어디로 가셨는지 저도 모릅니다."
" 그러면 아주 가셨단 말인가?"
"돌아오시지 않습니다."
정휴의 말을 듣고 난 주지는 허겁지겁 수좌들을불러모아
고청봉으로 올려보냈다.
명초의 시신이라도찾으려는 것이었다.
정휴는 승방으로 들어가 바랑을 풀었다.
아무래도내년 봄까지는 용화사에서 나야 할 것 같았다.
지함이운수를 떠났다고 덩달아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러기보다는
차라리 용화사에서 차분히 경전이나탐독하다가
때가 되면 화담 산방으로 올라가리라 하고작정했다.
밤이 늦어서야 고청봉으로 올라갔던 수좌들이
빈손으로 내려왔다.
이튿날,
주지는 또다시 수좌들을 고청봉으로올려보냈다.
정휴는 승방에 앉아
육조단경(六祖檀經)>을 펴놓고읽었다.
그러나 글씨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억지로 몇 줄 읽어도 뜻이 파악되지 않았다.
수좌들은 여전히 명초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명초는 열흘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았다.
그동안에 정휴는 경전을 보아도 심란하고,
좌선을해도 잡념만 계속 들어
마음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명초가 어디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짐승의 밥이되었는지,
열흘이 지나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정휴의 머리 속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심충익과 심충익의 막내딸
심명에 대한생각으로 복잡했다.
그때 문득 정휴는 화담 서경덕이
지함에게전해주라던 책이 머리에 떠올랐다.
책의 주인이 비록따로 있긴 했지만
정휴는 그 책의 내용이 궁금하기도하고,
자신의 혼란스런 마음을 가라앉혀 보리라생각해
조선종이에 꼭꼭 싸두었던 책을 꺼냈다.
홍연진결(洪然眞訣)>,
이지함에게 주는 책'이라고
겉장에 씌여 있었다.
정휴는 책의 겉장을 넘겼다.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