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니 르콩트는 9세 때인 지난 1975년 한국에서는 돌봐 줄 가족이 없어 프랑스로 입양됐다. 그리고 43세인 올해 〈여행자〉라는 영화로 한국을 찾았다. 〈여행자〉는 1975년,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한 소녀가 보육원에 맡겨진 뒤 입양될 때까지의 짧은 시간, 소녀의 가슴 속에 새겨진 이별과 상실을 기록한 영화다. “어린 시절 기억에 남은 여러 이미지들이 있어요. 서울에서 살던 동네 풍경도 희미하게 기억이 납니다. 옛날 집, 옛 흙길, 좁은 골목. 아주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느낌. 할머니가 저를 키워 주셨는데 집 앞에서 채소를 다듬으면서 옆집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던 모습이 생각나요.” 이미지는 남았지만 감독은 모국어를 잊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픈 기억 때문에 소녀의 무의식이 애써 모국어를 밀어낸 것은 아닐까. 우니 르콩트 감독은 “정신과 의사라면 알까, 내 무의식에 물어볼 일”이라며 질문을 웃어넘겼다. 지난 10월 열린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최고영화상을 수상한 직후 한국으로 돌아온 길,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르콩트 감독은 프랑스어 통역 없이는 대화가 불가능한, ‘전형적인 파리지엔’으로 보였다. 명함을 건네며 물어보니 “한글은 읽을 줄만 안다”고 말했다. 발음은 하지만 뜻은 모른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어른의 입장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관점을 원했어요. 단순하고 친밀한 시선이요. 사실 한국에서 해외 입양아 얘기가 픽션이나 다큐멘터리로 많이 다루어져 왔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이 영화는 1970년대가 배경이지만 단순히 과거를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린 소녀가 삶의 어떤 순간들을 겪어 나가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행자〉는 한 중년의 사내가 딸과 함께 보내는 즐거운 한때로 시작한다. 소녀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환한 웃음을 짓고, 아버지 술잔에 술을 따라 주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 시골로 향한 여행. 종착지는 보육원이었고, 아버지의 뒷모습은 닫힌 철문 저편으로 사라진다. 아버지 앞에서 “당신은 모르실거야, 얼마나 사모했는지…”를 부르던 소녀는 웃음을 잃고 말문을 닫는다. 보육원에서 파란 눈의 양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 속에 섞이지 못하던 소녀는 언니뻘의 또 다른 소녀를 만나 어렵사리 마음을 열지만, 유행가 가사처럼 만남은 또 다른 이별이었다. ‘석별의 정’과 ‘고향의 봄’을 불러 주며 친구를 떠나보낸 소녀는 원생들이 불러 주는 그 노래를 들으며 공항으로 떠난다. 영화는 파리 공항에 내리는 소녀를 보여주며 끝난다.
영화 초반부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아버지의 얼굴은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자전거 뒤에서 껴안은 아버지의 따스한 등, 헤어질 때 밤공기처럼 서늘한 뒷모습 등 뒷모습으로만 묘사된다. “어린 소녀의 눈높이에서 묘사한 겁니다. 진희(여주인공 이름・김새론 분)가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생생한 감각과 이미지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싶었죠.” 우니 르콩트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이었다. 원래는 바닷가에서 아버지를 잃고 시신도 찾지 못하는 한 프랑스 소녀가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았다. “15페이지 정도 쓰고 덮어 둔 시나리오를 나중에 다시 읽었죠. 어차피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소녀의 이야기라면 직접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자전적인 체험을 영화화하는 데 대한 부담보다는 영화적인 표현을 찾는 데 더 어려움을 느꼈어요.” 왜 아버지일까. “어린아이에게 아버지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성(姓)을 물려준 사람이고, 자신이 불륜이 아닌 정당한 사랑의 결과인지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파리에서 임순례 감독 만난 후 영화에 입문 모국어조차 잊은 우니 르콩트가 아버지의 나라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대가 되면서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학 한국어과정을 잠시나마 다녔고, 주불한국문화원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입양아들은 자연스럽게 모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왜 그런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죠.” 그때 파리에서 만난 생애 첫 한국인 친구가 바로 임순례 감독이었다. 임 감독은 당시 파리에서 영화 공부 중이었다. 우니 르콩트 감독은 패션을 전공했는데, 임 감독과의 만남을 계기로 영화에 발을 들여 의상을 담당하기도 했다. 1991년엔 임 감독의 소개로 한국영화에 배우로 출연할 기회까지 얻었다. 끝내 완성되진 않았지만 〈서울 메트로폴리탄〉이라는 작품에 입양아 출신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처음 서울을 찾았다. 이때 우니 르콩트의 사연이 신문에 소개됐고, 이를 본 친모가 연락해 와 상봉이 이루어졌다. “(친모는) 어떻게 지내시느냐”는 질문에 우니 르콩트 감독은 “잘 살고 계시다”고만 짧게 대답했다. 우니 르콩트 감독은 “아버지께 영화를 꼭 보여드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아직 친부는 찾지 못했다. 이번 영화는 이창동 감독이 제작을 맡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밀양〉이 파리에서 개봉했을 때 이창동 감독을 만나 시나리오의 초고를 건넸더니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창동 감독과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시나리오를 다듬고 완성해 갔다. 에이전시와 오디션을 통해 아역 배우를 캐스팅했고, 김새론(9) 양과 박도연, 고아성 등 주요 배우를 제외하고는 촬영장인 청평 인근의 어린이들을 보육원생으로 출연시켰다. 현장에선 조감독, 스크립터와 영어로 대화하며 연기를 지시하고 촬영을 진행했다. 영어에도 능통한 파리지엔. 생김새는 한국인, 언어는 프랑스어, 그리고 정서와 무의식의 어디 쯤에서 찾은 한국. 우니 르콩트는 “경계인이라는 자각은 사실 뒤늦게 왔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서른 이후에는 여행할 때마다 ‘내 집은 어디일까’ ‘여기가 내 집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죠. 그럼 나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결국 문제는 환경이나 지역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있었던 거죠. 내 스스로 찾아서 정착해야 하는구나, 깨달았고, 그곳은 파리가 됐어요.” 한편, 영화 속에서 파리 공항에 내린 소녀, 진희는 어떻게 됐을까. 무수한 소년 소녀들을 쫓아내듯 바다 건너 보낸 우리 사회. 그 속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모자’의 죄의식을 나눠 가진 때문일까.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쯤, 앞으로 소녀에게 닥칠 신산한 삶을 예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우니 르콩트는 담담하고 당당했다. “저는 입양(된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왜냐하면 사랑받기 위해 선택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저는 프랑스에서 잘 성장했고 잘 적응했습니다.” 사진 : 김진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