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서 《WIND》를 출간한 후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정진 씨를 구기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업실 창 너머로 북한산과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내다보인다. 북한산도, 그의 작업실 마당도, 마당에 서 있는 나무들도 연초에 내린 폭설을 그대로 쓰고 있다. 50대에 접어드는 작가 어디에도 군더더기란 없다. 군더더기 살은 모두 덜어내고 뼈대만 남은 것같이 마른 몸, 접대성 멘트라곤 할 줄 모르는 말투, 직설적인 눈빛까지. 그의 작품 역시 그러하다. 장엄한 풍경 대신 그 거대함에서 이탈해 나온 사소한 풍경 속 오브제를 근접 촬영했는데, 그게 우리 마음을 깊숙이 찌른다. 풍경 속에, 사물 속에 깃든 ‘절대 고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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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에 실린 작품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뉴멕시코 사막과 한국의 전국 각지를 헤매 다닌 산물들. 2008년 암실에서 마무리 작업, 2009년 책 출간 준비를 거쳐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버석버석 마른풀들로 가득한 황무지에 버려진 스쿨버스, 땅에 버려져 이제 연주될 수 없는 피아노 건반, 낡은 집의 지붕을 뚫고 자라난 헐벗은 나무, 바람을 맞아 가볍게 떨리는 벼룩시장의 흰색 천 칸막이…. 하늘과 땅, 구름은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한데 엉켜 추상적으로 보인다.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하던 자연은 수수께끼처럼 비밀스러워지면서 시적 메타포를 띤다. 〈뉴욕타임스〉에 10여 년째 글을 쓰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진 평론가 비키 골드버그는 “이정진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꿈의 끄트머리에서 희미하게 떠오른 것 같기도 하고, 자연이 감춰 둔 비밀을 꿰뚫으려 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평한다.
그에게 “당신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무들 중 잎이 무성한 것은 별로 없다. 대부분 헐벗은 나무들이다”라고 하자 “아,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라고 말한다. “작품들이 적막하고 쓸쓸하다”고 하자 “제가 그래요”라고 답한다. “왜 흑백을 고집하느냐”고 묻자 “흑백의 농담이 시적이라 감정이입이 더 잘 돼요”라고 한다. 자신의 작품이 호응을 얻는 것에 대해 “세상에는 쓸쓸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라며 희미하게 웃는다. 그가 사막에 처음 매혹된 것은 1991년, 미국 중서부 사막을 혼자 여행하면서였다. “이제까지 본 풍경 중 가장 슬프도록 아름답고, 초인간적인 그곳의 기운에 내 영혼이 빨려 들었다”고 한다. 사람은 왜 사막에 매혹되는 것일까. 모든 군더더기를 던지고, 자신의 내면 속 심연으로 곧장 들어갈 수 있기 때문 아닐까. 《WIND》 작업을 위해 찾은 뉴멕시코 사막도 “대지에서 울리는 느낌이 너무 강렬했다”고 한다. 뉴멕시코 사막은 미국의 유명한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은둔하며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다. 그의 작업은 내면을 울리는 장면을 렌즈로 포착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힘들고 복잡한 노동을 요하는 ‘후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전주의 장인이 만든 한지 위에 감광액을 일일이 붓으로 칠해 인화한다. 테두리가 똑 떨어지지 않고 까슬까슬하고 텁텁한 감촉이 살아 있는 한지에, 감광액을 바른 붓 자국을 그대로 남기는 그의 작품은 ‘무한 복제’가 가능한 사진이라기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미술품으로 보인다. 붓 자국이 깊이를 만들어 더욱 회화적으로 보이는데, 하나하나 인화할 때마다 붓 자국이 다르고 흑백의 농도가 달라진다. 20년 전부터 한지로 작업해온 그는 “130호짜리 대형 작품이 많은데, 작업이 힘들어 몸이 많이 망가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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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사진과 만난 것은 1980년 홍익대 공예과에 입학한 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였다. 1981년 대학 사진대전에서 입상하고, 1983년 파리 국제사진대전에 한국대표작가로 선정될 정도로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았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뷰파인더를 통해 직감적으로 잡아내는 사진이 자신과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는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 사진기자를 한 후, 울릉도의 심마니 할아버지를 1년여 촬영해 1988년 첫 사진집 《먼 섬 외딴 집》을 냈고, 다음해 뉴욕으로 떠나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수묵화 같기도 하고, 때론 오브제 같기도 한 그의 사진 작품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익힌 동양화와 서예, 대학시절 전공한 도자기의 미학을 읽을 수 있다. 뉴욕으로 떠난 것에 대해 “사진을 시작한 지 10년 가까이 되자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허물고 싶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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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는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살다 보면 남들이 나를 보는 이미지니, 경력이니 더덕더덕 붙잖아요? 발목에 찬 묵직한 모래주머니처럼, 알게 모르게 생긴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해요.” “작가로서 절실히 하고 싶은 것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으로 인정받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고도 그는 말한다. 그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유일하게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한국 사진작가다. 이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처음 구입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뉴욕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몇몇 미술관에 제 작품 포트폴리오를 접수했는데, 이름 없는 작가라고 뜯어보지도 않더라고요. 그런데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작품을 찾으러 갔더니 디렉터가 ‘네 작품 리뷰하면서 너무너무 인조이(enjoy)하고 있다. 작품이 독특하고 신선하다’고 하는 거예요. 작품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보고요. ‘집세 내라’며 작품 가격의 절반을 개인 수표로 미리 끊어주기까지 했지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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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은 《WIND》에 실린 작품 3점을 최근 구매한 것을 포함해 그의 작품 9점을 소장하고 있고, 휘트니미술관, 휴스턴미술관, 뉴올리언스미술관, LA카운티미술관, 산타페미술관, 포틀랜드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경주선재미술관 등 국내외 굴지의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2층에 가면 2009년 10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열리고 있는 특별 전시회 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요즘 그는 자신이 딛고 있던 땅을 또다시 허물고, 새롭게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세상은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는 그중 그림자(陰)만 봐온 것 같아요. 제가 워낙 그림자에 민감한 사람이고, 세상의 본질을 ‘절대 고독’으로 봤으니까요. 요즘 밝은 쪽을 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요. 제가 먼저 변화해야 하고, 그걸 작업으로 풀어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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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의 피사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사람의 영혼을 훔치는 것 같아 사람을 대상으로 작업하는 것이 불편했다는 그다. 《WIND》는 결국 그의 과거 작업의 종지부와 같은 작품집이다. “미련이나 아쉬움이 없느냐?”고 묻자 “작품을 끝내고 나면, 깨끗이 떠나보내 마음에 두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한다. “몸과 마음이 다 해체되도록 혼신을 다하고 나면, 다 쏟아부으면 그럴 수 있어요. 사랑도 그렇지 않나요?” 그는 2월 초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카페 ‘무이무이’에서 출판기념회를 한 후 다시 뉴욕으로 떠나 전시회를 준비하고, 새 작업에 들어간다. 사진 : 김진구 사진제공 : 이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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