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7>
해방 후에도 서울대 사학과 교수들 지도한 스에마쓰 야스카즈
임나일본부설 ⑥
제국주의 역사학을 반성했던 일본 사학자들
전 호에서 사례를 들었지만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에 대한 대한민국 강단사학자들의 존경심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중에서도 조선총독부 직속 조선사편수회 간사였던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1904~1992)에 대한 존경심은 남다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일본인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반성의 기운이 일었다. 일본의 역사학이 침략전쟁의 도구로 전락한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제국주의 역사학을 황국사관(皇國史觀)이라고도 하는데, 대표적인 이론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평양설’과 고대 야마토왜(大和倭)가 가야를 약 200여년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었다. 또한 백제와 신라는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논리도 있었다.
그러나 굳이 역사학자가 아니라도 '임나일본부설'이 허구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369년에 야마토왜는 국가가 아니었고, 철을 만드는 제철기술도 없었기 때문이다.
야마토왜(大和倭)에 대해서 <일본사대사전>은 "옛 국가의 이름이자 현재의 나라(奈良)현(지역)"이라고 설명하지만 언제 건국했는지는 쓰지 못하고 있다.
일본극우파들은 물론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열렬히 추종하는 <일본서기>는 야마토왜가 서기전 660년에 건국했다고 쓰고 있지만 이는 실제 건국연대를 1천년 정도 끌어올린 것이란 사실은 일본 극우파들도 안다.
국가도 아니었고, 제철기술도 없었던 야마토왜가 369년에 철의 왕국 가야를 점령하고, 백제와 신라를 속국으로 삼는다는 것은 소설로 쓰더라도 3류 판타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학습원대학이라는 곳
패전 후 일본으로 쫓겨 간 스에마쓰는 1947년 학습원(學習院) 교수로 초빙된다. 학습원은 1949년 학습원대학으로 개편되는데, 스에마쓰는 같은 해 <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를 발간해 일본 역사학자들의 반성에 찬물을 끼얹는다.
같은 식민사학자지만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는 임나 강역을 경상남도 김해라고 한정했다.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이를 경상북도까지 확장시켰다. 그런데 스에마쓰는 <임나흥망사>에서 임나일본부의 강역을 충청·전라도까지 크게 확대했다.
▲ 스에마쓰 야스카즈와 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 스에마쓰는 일제 패전 후에도 대한민국을 들락거리며 서울대 사학과 교수들을 지도했다.
스에마쓰의 남한경영론
이런 스에마쓰의 <임나흥망사>에 대해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스에마쓰 야스카즈는 기존의 지명 고증을 비롯한 문헌고증 성과에 의존하면서 한국·중국·일본 등의 관계사료를 시대순에 따라 종합함으로써 고대 한일간 대외관계사의 틀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최초로 학문적 체계를 갖춘 이른바 「남한경영론(南韓經營論)」을 완성시켰으니, 그 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한경영론’이란 야마토왜가 남한을 모두 식민지로 경영했다는 뜻인데, 이것이 “최초로 학문적 체계”를 갖춘 스에마쓰의 학문적 업적이라는 극찬이다.
위 글에서 홍익대 교수 김태식은 국사편찬위원회를 대신해서 스에마쓰의 논리를 무려 일곱 가지로 정리한 후 형식적 비판을 가했다(자세한 내용은 원본 기사 참조).
간단하게 “야마토왜가 369년 가야를 지배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것은 허구다”라고 하면 될 것을 ‘최초로 학문적 체계를 갖춘 남한경영론’ 운운하면서 무려 일곱 가지로 설명해 독자들을 헷갈리게 한 것이다.
해방 후에도 서울대 교수들 지도했던 스에마쓰
일본학자들도 일부 극우파를 제외하고는 스에마쓰 학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거꾸로 스에마쓰 학설을 정설로 추종하고 있다.
스에마쓰가 해방 후에도 국내를 들락거리면서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들을 지도했고, 일본 극우파들이 한국 유학생들에게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대 주면서 황국사관(皇國史觀)을 교육시킨 후 귀국시켰기 때문이다.
서울대 사학과에 재직하다가 연세대에서 정년을 마친 김용섭 교수의 자서전을 보자
“노크를 하기에 문을 열었더니, 김원룡 교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제 때 경성제대에서 내가 배운 스에마쓰(末松保和) 선생님인데, 김 선생 강의를 참관코자 하시기에 모시고 왔어요".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 간사 출신 스에마쓰가 광복 후에도 국내를 들락거리면서 서울대 사학과 교수들을 지도했다는 이야기다. 역사학계는 여전히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지도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달라졌는가? 이 분야를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면 안다. 대한민국 강단사학은 여전히 조선사편수회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해방 후에도 서울대 사학과 교수들 지도한 스에마쓰 야스카즈 - https://www.kgnews.co.kr/mobile/article.html?no=59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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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광복후 어떤 식으로 하던간에 친일파들을 정리 하지 않은게~ 천추의 한이 되었네요^^
안타깝지만 지나간 일은 어쩔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현재죠. 어떤식으로든 최근 정권에서 친일파에 대한 정리를 한 적이 있나요? 단순히 친일인명사전 발간 같은 것이 아닌, 국민들에게 보다 널리 알리고 실상을 소개하려는 노력을 엄청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자료여서
살짝 모셔갑니다.
널리 전파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