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제사 때 흙으로 빚은 동물 바쳐… 새는 풍년 상징했어요
입력 : 2022.11.17 03:30
고대 영산강의 문화
사슴 뼈와 뿔 등으로 도구 만들고
동물 뼈에 구멍 뚫어 장신구로 사용
뼈 갈라진 모양으로 미래 점치기도
▲ 해남 군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도구와 점뼈예요. 동물의 뿔과 뼈로 만들었어요. /국립나주박물관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내년 2월 5일까지 고대 영산강 유역에 살았던 사람과 동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소개하는 '고대 영산강 사람과 동물' 특별전을 열고 있어요. 영산강은 전남 담양군 병풍산에서 시작돼 광주광역시와 나주시, 영암군 등을 지나 영산강 하굿둑에서 서해로 흘러가는 총 150㎞ 정도 강인데요. 고대 영산강 유역에 과연 어떤 동물이 살았고, 인간은 동물과 어떻게 공존했는지 알아볼게요.
동물을 사냥하고 뼈 도구를 만들다
인류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순록과 사슴의 뿔, 매머드 이빨 등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었어요. 한반도에서는 함북 종성 동관진 유적에서 사슴뿔을 이용한 도구가 발견됐고,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과 단양 구낭굴에서 동물 뼈 등으로 만든 긁개와 찌르개가 발견됐어요. 구석기인들이 암석이나 광물뿐 아니라 가공하기 쉬운 동물 뼈로 도구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동물을 사육하거나 사냥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예요. 약 1만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온난한 후빙기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따뜻한 환경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물을 사냥하고 개를 사육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동물의 뼈와 뿔, 이빨 같은 부산물로 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도구를 만들었는데요. 신석기시대 쓰레기장이라 할 수 있는 조개무지에서는 호랑이와 표범·곰·꿩·오리·갈매기 뼈 등이 발견되는데, 그중 사슴과 멧돼지 뼈가 가장 많이 나와요.
특히 사슴 뼈와 뿔은 여러 도구와 장신구를 만들 때 가장 폭넓게 활용됐어요. 사슴은 1년에 한 번씩 새로운 뿔이 나는데, 이 때문에 오래된 뿔을 떨어뜨려요. 굳이 사냥을 하지 않더라도 쉽게 뿔을 구할 수 있어서 다양한 도구의 재료가 됐어요. 화살촉이나 작살·찌르개·쐐기·바늘처럼 단단한 뿔이나 뼈를 직접 가공해 만든 도구도 있지만, 사슴뿔을 잘라 칼 손잡이로 만들어 쇠로 만든 작은 칼날에 결합시키기도 했어요. 영산강 유역에서 칼 손잡이는 뼈나 뿔로 만든 도구 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데 당시 손칼은 야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만능 도구로 여겨졌기 때문이에요.
동물 뼈를 이용해 장신구를 만들기도 했어요. 완도 여서도 조개무지에서는 가느다란 새의 뼈를 대롱 모양으로 잘라 목걸이를 만들었고, 해남 군곡리 조개무지에서는 개 송곳니에 구멍을 뚫어 목걸이나 옷을 장식하는 데 사용했어요. 점이나 삼각형·사각형 무늬를 정교하게 새겨넣은 비녀나 빗처럼 생긴 머리 장신구도 발견됐는데요. 동물 뼈로 만든 장신구들은 뼈 고유의 상앗빛 색깔과 세밀하게 새긴 기하학적 문양들이 어우러져 다른 재료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주고 있어요.
떠난 사람 위해 동물 제물로 바치기도
고대 영산강 유역 사람들은 떠난 사람을 보내는 마지막 여정에 동물을 희생(犧牲·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바치는 것)으로 사용하는 제사를 지냈어요. 소와 말·돼지·개와 같이 길들여진 동물이 희생으로 사용됐는데 무덤 내부뿐 아니라 무덤 밖 도랑에서도 그러한 흔적이 확인돼요. 중국의 역사책에는 삼한의 풍속을 전하면서 "소와 말을 탈 줄 모르고 모두 장례에 사용한다"고 하여 죽은 사람을 위한 장례식에 소와 말을 사용했음을 알려주고 있어요.
나주 복암리 3호분 1호 돌방 안에서는 각종 부장품과 함께 한 마리분의 말뼈가 묻혀 있었고, 복암리 7호분 서쪽 도랑에서는 한 마리분의 소뼈가 발견됐어요. 도랑에서 발견된 소뼈는 머리가 없고 앞다리와 뒷다리가 가운데로 모인 채 묶여 있었어요. 소뼈 주변에서 식물의 씨앗이 뭉쳐 있는 채로 발견돼 제사와 관련된 공헌물로 사용됐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반드시 살아 있는 동물을 제물로 바치지는 않았어요. 예컨대 고대 영산강 유역 사람들은 소·말·돼지·새와 같은 다양한 동물을 흙으로 만들거나 만든 것을 토기에 붙여 장식했는데요. 흙으로 만든 동물들은 정교하지는 않지만 단순하면서도 각 동물이 가진 특징을 절묘하게 표현했어요. 집터·무덤 등지에서 발견된 말 모양 흙 인형에는 안장이나 재갈·발걸이 같은 말갖춤이 모두 표현돼 있죠. 이러한 동물 모양 흙 인형은 제사를 지낼 때 실제 동물을 대신해서 바친 것으로 추정돼요.
함평이나 영암의 거대한 무덤 주변에서는 사람이나 동물 모양을 본떠 만든 각종 상형 토기가 발견돼요.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에서는 사람·말·닭 모양 토기가, 영암 내동리 쌍무덤에서는 사람·사슴·돼지 모양 토기가 출토됐어요. 이 상형 토기들은 테라코타 방식(점토로 형상을 만들어 구워낸 것)으로 구워져 붉은색을 띠는데요. 신라나 일본의 고분에서도 이와 비슷한 동물 모양 토제품이 발견되지만 그 제작 기법이나 형태가 달라 영산강 유역의 독특한 미의식이나 제사용 토기로서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영산강 유역에서는 새 모양의 토기나 목제품, 새 무늬나 새 발자국 무늬가 새겨진 토기도 자주 발견돼요.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오가며 날아다니는 새는 신성하게 여겨지는 동물이었어요.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각종 씨앗과 함께 발견된 새 모양 목제품은 새가 풍년을 기원하는 상징이었음을 알려준답니다.
무덤에서 발견된 새 무늬 청동기와 새 발자국 무늬 토기는 죽은 사람이 새와 함께 다음 세상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묻은 것이라 여겨져요. 하늘은 사람이 죽은 뒤에야 갈 수 있는 곳으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의 전달자인 새의 안내를 받아 하늘에 오른다고 생각한 거예요.
해남 만의총 1호분에서는 정교한 모양의 상형 토기가 발견됐는데요. 한쪽에 용이나 뿔 달린 말 모습의 상서로운 동물이 장식돼 있고, 다른 한쪽에는 동물 등에 올라탄 남자의 모습이 표현돼 있어요. 동물의 목이나 몸통에는 갈기 같은 것이 음각으로 표현돼 있어서 마치 갈기를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동물이 연상돼요. 이 상형 토기에는 용이나 천마(天馬·옥황상제가 하늘에서 타고 다닌다는 말)와 같은 상서로운 동물이 무덤 주인공의 영혼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상징이 담겨 있답니다.
[미래를 점치는 데 사용한 점뼈]
영산강 유역 사람들은 동물의 뼈를 불에 달군 도구로 지져 균열의 흔적으로 앞날을 점쳤어요. 이렇게 점을 칠 때 사용한 뼈를 '점뼈[卜骨]'라고 해요. 중국에서는 점을 치고 나서 뼈에 글자를 새겼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문자를 새기지 않았어요. 점뼈는 동물의 어깨뼈나 갈비뼈, 아래턱뼈 등으로 만들었는데 멧돼지와 사슴의 어깨뼈가 주로 쓰였어요. 특히 어깨뼈는 넓고 얇아 잘 갈라지기 때문에 점을 칠 때 가장 많이 활용됐죠.
부여에서는 전쟁을 하게 되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길흉을 점쳤는데, 발굽이 갈라지면 흉하고 발굽이 붙으면 길하다고 여겼다는 기록이 있어요.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된 점뼈의 균열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지금은 짐작할 수 없지만, 제사장들은 점을 쳐서 앞으로 닥칠 일을 예견하며 사람들을 통합시키고 자신의 권위를 높일 수 있었답니다.
▲ 영암 내동리 쌍무덤에서 발견된 동물 모양 흙 인형으로, 위에서부터 각각 사슴, 돼지, 닭 머리 모양으로 추정돼요. /국립나주박물관
▲ 나주에서 발견된 각종 말 모양 흙 인형. /국립나주박물관
▲ 동물의 어깨뼈로 만든 점뼈. /국립나주박물관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