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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축복사역(18) / “면류관을 쓰는 상을 받으라!”
+ 본 문 : 디모데후서 4장 6절 - 8절 (신약성경 345쪽)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아멘!
옆의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기도한 대로 됩니다.” “축복한 대로 됩니다.”
골드로 격상된 대구국제마라톤대회가 지난 4월 2일에 성황리에 거행되었습니다.
남자부문 상위권 입상은 에디오피아, 케냐, 에레트레아,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선수들이 휩쓸었고,
여자부문도 아프리카 국가들인 에디오피아, 케냐 선수들이 대부분 상위권에 입상을 휩쓸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우리한국 선수 중에서는, 여자부문 최경선 선수가 5위로 입상을 했을 뿐입니다.
마라톤선수가 되기에 그만큼 신체적인 조건이나 환경이 뒷받침 되지 못했다는 것이 원인입니다.
시상대 위에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의 상을 받는 선수들은, 상 받을 만큼의 땀을 흘린 결과입니다.
이것은 육상 선수들 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메달과 트로피라는 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며 수고의 땀방울을 흘렸고, 그를 위해 함께 수고한 사람들의 열매로 받은 상급입니다.
가만히 있다가 시합에 나가고 싶다고 해서 시합에 나간 사람에게, 금메달의 영광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놀고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단체도 없습니다.
일 없는 상 없습니다. 반대로 상 없는 일도 없습니다. 일 잘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며 수고의 땀방울을 흘렸고, 그를 위해 함께 수고한 사람들이 상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에는 특이한 상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몇 가지만 소개를 하겠습니다.
페르샤 왕은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상을 주었습니다. 용감하게 공로를 세우고 싸운 군사들을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입을 될 수 있는 대로 크게 벌리게 합니다. 그리고 입을 벌린 것만큼 금으로 채워 넣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배경에서 시편 81편 10절의 말씀이 나왔다고 합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로마 황제들도 전쟁터에서 이기고 돌아 온 군인들에게 상을 주었습니다.
특별히 부상병들에게는 한 명 한 명을 부상 정도를 조사해서, 잃어버린 것만큼 금으로 상을 주었습니다.
팔이 없어진 병사에게는 금으로 팔을 만들어 주었고, 다리를 잃은 병사에게 금으로 다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병사는 두 다리를 잃어버렸습니다. 황제는 그 병사를 으스러져라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큰 상을 주고 싶어서 말했습니다. “자네에게는 내가 특별히 더 큰 상을 주겠네.” 그 병사가 말했습니다.
“황제님! 저는 황제님의 눈물을 받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 병사의 말을 들은 로마 황제는 너무나 감동해서, 잃어버린 것보다 몇 배 더 많은 금으로 상을 주었답니다.
13세기 몽골의 징기스칸이 인구 200만 명으로 수백 배나 더 큰 중국과 러시아와 동유럽을 점령했습니다.
그 비결이 있습니다.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몽골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으면,
가장 탁월한 기마병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그들을 만나서, 그들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징기스칸이 대제국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상 가장 큰 대국을 이룬 후, 자기를 생명을 걸고 도와준 이들을 모아 타르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 승리의 공로자들이었던 타르탄들에게, 징기스칸은 다음과 같은 특권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첫째, 당신들은 언제든지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내 집에 자유롭게 들어 올 수 있다.
둘째, 당신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면, 전쟁 노획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먼저 골라 가질 수가 있다.
셋째, 앞으로 세금이 면제된다. 넷째, 당신들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지어도 9번까지 용서받을 수 있다.
다섯째, 당신들은 우리가 점령한 몽골제국 안에서, 가지고 싶은 땅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여섯째, 당신들의 이러한 특별한 권리는, 앞으로 4대까지 자손들에게 이어 갈 것이다.
그렇습니다. 일하지 않고 상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엄히 명령을 하셨습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까?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서 답을 얻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잘 싸우는 사람 -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에게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복음 전한 그 일로 인해서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순교당할 날이 얼마 안 남았음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장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입니다. “전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아멘!
전제란? 제사를 드릴 때, 포도주를 붓는 제사를 말합니다. 바로 이 전제는 제사의 마지막 순서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강복기도라는 축도로 예배를 마치듯이, 유대인들은 이 전제로 예배를 마치게 됩니다.
이제 인생의 마지막을 칼로 목 베임을 당하는 순교를 앞두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고백한 사도 바울은 자기 일생을 돌아보면서, 선한 싸움을 싸운 일생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아멘!
이렇게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헬라어로 ‘아고나’ 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이종 격투기 선수들이, 온 몸으로 혼신을 다하여 싸우는 모습을 말할 때에 쓰는 고백의 말씀입니다.
콜로세움이라고 하는 로마 원형 경기장은, 2000년 전에 세워진 어마어마하게 큰 운동장입니다.
그 운동장에는 5만 명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운동장에서 사자와 같은 맹수와 사형수를 싸우게 합니다.
그러면 사자의 밥이 되느냐 살아남느냐 둘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맹수와 싸워서 이기면 살려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건 결사적인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5만 명의 군중들은 그런 잔인한 싸움을 보면서 즐겼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살았으니까, 이런 경기를 보았거나 들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렇게 생명을 건 잔인한 싸움을 생각하면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한 싸움을 싸웠으니, 하나님 나라에 가면 의의 면류관이라는 상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의의 면류관이라는 상을 받게 되는, 사도 바울의 싸움은 어떤 싸움이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아, 자기가 죽어지기를 원하는 자기와의 싸움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어지기를 원하는, 자기와의 싸움을 잘 싸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상대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아멘!(잠 16:32, 4;23)
여러분에게 하나 물어볼께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가장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아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여행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50cm 밖에 되지 않는 거리인데도, 평생 이 짧은 여행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떠납니다.
지금 이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저나,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나 머리로는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가슴으로는 정말 뜨겁게 감동이 됩니다. 그런데 머리의 이해와 가슴의 감동이 하나로 만나야 하는데,
서로 떠나는 50cm의 여행이 너무나 멀어서, 서로 만나지를 못합니다. 서로 만나기 전에 식어 버립니다.
그래서 교회 문을 나서서 세상에서 살아가다보면, 이해가 되고 감동되어졌던 말씀과 전혀 다른 삶을 삽니다.
그래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말씀의 기적도 안 일어납니다. 말씀의 축복도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이라는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 무슨 감동을 주며, 세상에 무슨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사역하면서 성령의 임재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성령의 임재 가운데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사역을 통해서, 항상 자기반성과 회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영접함으로 우리 심령 한 가운데, 나의 주인으로 거하시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가고, 그래서 머리의 이해와 가슴의 뜨거운 감동의 여행이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만나면 우리의 심령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닮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예수님께 맡기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평안이 찾아오게 됩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느껴집니다.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잘 되고 행복하게 되어 집니다.
믿습니까?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되고, 우리가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게 되고,
감동을 주고, 그런 우리를 통해서 날마다 믿는 사람들이 더하여지는 부흥의 불길도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한 싸움을 싸웠으니, 하나님 나라에 가면 의의 면류관이라는 상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사도 바울은 마귀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하였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 13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여러분! 확실하게 아멘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걸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삶입니다.
이 인생의 의미를 알았던 어느 철학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피할 수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영국의 제임스라는 사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전쟁이다. 우리 인생들이 하는 전쟁은,
연극에서 가짜로 싸우는 것과 같은 가짜 전쟁이 아니라, 우주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진짜 싸움이다.”
로마의 유명한 세네카라는 사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날마다 싸우는 군인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우리는 날마다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싸우면 상이 있습니다. 운동경기의 승리자가 받는 금메달이나 우승 트로피도 대단한 상이지만,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받게 되는,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에 비하면, 그런 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 선한 싸움을 잘 싸워, 하나님 나라에 가서 의의 면류관이라는 상을 다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달려 갈 길을 잘 마치는 사람에게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그 다음에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사도 바울은 자신은 선한 싸움을 잘 싸웠을 뿐만 아니라, 나의 달려갈 길도 잘 마쳤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치고”라는 말은 목표가 분명하였고, 그 목표를 잘 마쳤다는 것을 고백하는 완료형 표현입니다.
등산하는 사람의 목표는 산 정상입니다. 그래서 산 정상에 도착하면 뭐라고 말합니까? “다 왔다.” 고 말합니다.
여러분! 목표가 없으면 마침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 마쳤는지 못 마쳤는지 모르는 사람은 목표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나의 달려 갈”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목표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목표가 분명하였습니다. 그 목표는 우리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셨고, 마지막 대속의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방인의 선교사로서 최종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에 복음을 심는 것입니다.
당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온 세계를 향하여 길을 닦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복음이 그 길을 타고 온 세계를 향하여 뻗어 나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믿음의 생각은 그대로 맞았습니다. 로마 복음화는 온 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지름길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목표인 로마에서 복음을 전한 후, 할 일을 마치고 하나님께 가는 행복감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달려가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상 받을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달려 갈 길을 잘 마치고, 마침내 선한 목표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목적지에 이르러,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믿음의 선진들처럼 당당하게,
나의 달려 길 길을 마쳤다고 외치시고, 주님이 주시는 의읜 면류관이라는 상급을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길 - 오직 믿음을 잘 지킨 사람에게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선포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아멘!
이 선포는 “나는 오직 한 길 - 오직 믿음 하나 지키려고 지금까지 수고하였다.” 는 신앙 간증이었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믿음을 지키고 죽기까지 걸어가는 삶은 아름다운 삶입니다.
날라 다닌다 해서 날치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가 있습니다. 날치라는 물고기는 수면 위로 뛰어올라,
가슴과 배의 지느러미를 쫙 펴서 공중으로 미끄러지듯 날아올라, 비행기처럼 활주하는 물고기입니다.
놀랄 이야기입니다. 한번 나르는 데 4. 5km 를 날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떤 때에 그런 힘이 생기는 것일까요?
두 경우에 그렇게 멀리 나른답니다. 하나는 다른 큰 물고기가 잡아먹으려고 따라올 때 그런 능력이 나옵니다.
또 한 경우는 즐거울 때에 떼를 지어 그렇게 자유롭게 공중을 비행하며, 그렇게 멀리까지 나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아멘!
오직 한 길 - 그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오직 믿음을 지키시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나는 구원 얻었고, 내 삶의 모든 일도 이루었다.” 고,
“나의 하나님이 내가 좌절할 때마다 나에게 새 힘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작하자마자 포기했을 것이라.” 고,
“나는 오직 한 길 - 그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에도, 오직 믿음을 지키므로 승리했다.” 고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믿음을 지키고 죽기까지 걸어가는 삶은 아름다운 삶입니다.
어느 나이 드신 할머니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임종예배를 드리러 온 목사님을 붙들고 말했습니다.
43년 전,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점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에, 만원을 주머니에 넣고 집에 온 적이 있었답니다.
주인 몰래 주머니에 넣고 온 그 만원이 평생 자기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에 꼭 쥔 10만원을 주면서,
“목사님! 만원에 이자까지 10만원을 드릴 터이니, 그 분을 찾아서 꼭 갚아 주시면 원이 없겠습니다.”
목사님이 그 돈을 받자, 그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내가 평생 믿음을 지켜 왔는데, 그 것 하나 잘 지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시원합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시면서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킨 이에게 의의면류관 상급이 주어집니다.
김성한 씨의 “바비도” 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습니다. 동인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무대가 영국입니다. 기독교가 부패하여 종교재판이 성행할 때 이야기인데, 주인공 바비도는 재봉직공이었습니다.
그는 성실하게 신앙생활 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가 이단 재판에 회부되어 화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이였습니다. 황태자 헨리가 나타나서 바비도의 마음을 바꾸어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비도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화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바싹 마른 장작 위에 바비도를 묶어 올려놓고 불을 질렀습니다. 그 때 헨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불을 꺼라.” 그리고 헨리가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까지 양심이라는 것은 비겁한 놈들의 겉치장이요.
정의는 권력의 버섯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것들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네가 무섭구나!” 그리고 풀어 주었습니다. 믿음을 지킨 주인공 바비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었습니다.
오직 한 길 - 오직 믿음으로 승리한 이야기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미국 남북 전쟁이 치열할 때였습니다.
프레드릭스버그 전투가 가장 치열하였습니다. 양편이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가운데 부상자들이 즐비하였습니다.
남군과 북군 쌍방은 일단 뒤로 후퇴하였습니다. 그 때 북군 병사 한 명이 가운데로 막 달려 나왔습니다.
남군 지휘관은 사격을 명령하였습니다. 총을 겨누는 데, 그 북군 병사가 물병을 가지고 와서 부상병들에게,
돌아다니면서 정신없이 물을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북군이거나 남군이거나 관계없이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적이거니 아군이거나 모두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그 광경을 본 양쪽에서 모두 다 사격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 부상병을 데려가기 위하여 1시간 휴전이 선언되었습니다. 남군 지휘관이 용감한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 북군 병사였던 그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예, 제 이름은 크리스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이름을 자신 있게 “크리스챤” 이라고 말했던 그 북군의 병사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고 고백한 진정한 크리스챤입니다.
오직 한 길 - 그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오직 믿음을 지키시고 승리한 용감한 크리스챤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 바울처럼 이렇게 외칠 수 있는 크리스챤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 고 당당하게 외쳤을 것입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믿음을 지키고 죽기까지 걸어가는 삶은 아름다운 삶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주님이 주신 사명, 영혼구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오직 한 길 - 오직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던 복음전도자입니다.
그는 로마에서 순교하기 직전에 고백하며 선포했습니다. 우리 다함께 나의 고백으로 오늘 본문을 고백하겠습니다.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아멘!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크리스챤입니까?”
그렇다면 고백하십시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오직 한 길 - 그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오직 믿음을 지키시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나는 구원 얻었고, 내 삶의 모든 일도 이루었다.” 고,
“나의 하나님이 내가 좌절할 때마다 나에게 새 힘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작하자마자 포기했을 것이라.” 고,
“나는 오직 한 길 - 그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에도, 오직 믿음을 지키므로 승리했다.” 고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오직 한 길 - 오직 믿음을 지키고,
죽기까지 달려가므로 아름다운 삶의 목표를 이루시고, 주님이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쓰시기를,
우리를 잘 되고 행복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