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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부모님을 공경하고 복을 받으십시오!”
+ 본 문 : 에베소서 6장 1절 - 4절 (신약 316쪽)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아멘!
오늘 이 예배에 참예한 사랑하는 우리 모든 믿음의 가족들의 가정과 생업,
사랑하는 자녀 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옆의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기도한대로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 어버이 주일에 인사 하나 더합시다. /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아멘!”
오늘 주일은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가정의 달 5월 둘째 주일 -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은 “부모 공경하고 복을 받으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이 어버이 날인데, 우리 어버이들께서는 자녀들에게 용돈은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아주 재미있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딸이 주는 돈은 서서 받고, 아들이 주는 돈은 앉아서 받고,
영감이 주는 돈은 어떻게 받아요?” 그렇습니다. “누워서 받습니다.” 영감이 제일 만만하고 편합니다.
그런데 할 수 있다면, 며느리가 주는 돈을 뒹굴며 받도록 고부간에 좋은 관계를 가지기 바랍니다.
초등학교 영어시간에 자석에 대해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선생님이 퀴즈를 냈습니다.
“M으로 시작하고, 여섯 자의 낱말로 되어 있는,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물건의 단어는 무엇이죠?'
선생님이 이 힌트로 학생들에게 바라던 대답은, 자석이라는 단어 “마그네트(magnet)” 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선생님의 물음에, 전원이 ‘mother' '어머니’ 라고 큰 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기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것은,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어머니였습니다.
“자녀를 끌어당기는 강한 어머니” 그러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번지 점프 아시지요? 번지 점프는 뉴질랜드 퀸스랜드의 해캐트라는 사람이 처음 개발하였습니다.
그는 1986년 파리의 에펠 탑에서 뛰어내리는 번지점프를 했던 사람으로도 유명한 번지 점프가입니다.
그래서 그가 처음 시도한 뉴질랜드 카와라우 강의 다리 위의 번지점프는, 번지점프의 원조입니다.
이 곳에서 우리나라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 를 촬영했는데, 카와라우 강의 다리 높이는 43m입니다.
점프가격은 뉴질랜드 화폐로 150달러입니다. 어느 한국 여학생이 엄마와 함께 그 곳에 갔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번지 점프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뛰어내리지 못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환불은 안 됩니다. 환불이 안 된다는 말에 엄마가 “아까운 돈” 하더니 대신 뛰어내렸답니다.
영국 여왕이 자기나라를 국빈으로 예방한 몽고의 왕에게 강아지 한 마리 선물했습니다.
나중에 몽고 왕을 만난 자리에서 영국 여왕이 강아지 안부를 물었습니다. "강아지가 잘 있느냐?"
몽고의 왕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주신 그 강아지 참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애완용 개를 선물로 주었는데, 맛있게 먹어버린 그 일로 양국 간의 외교상 금이 가고 말았답니다.
서양 사람들은 개를 끔찍이 사랑하잖아요. 사람보다 더 사랑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젠 그렇습니다.
요즘 교회들에서는 개를 집에 떼어놓고 교회를 올 수 없는 애견가들을 위해서, 수유실이나,
유아실이 아니라, 애견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주고 있을 정도입니다.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옷을 입히고 침대에 베개까지, 미장원, 목욕탕, 병원, 영양제까지 맞힙니다.
실제로 강아지에게 거액의 유산을 물려주고, 그러다가 죽으면 무덤에 묘비까지 세워 줍니다.
솔직히 개는 보신용으로 생각하고, 지독한 욕설마다 개가 등장하는 사람들에겐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애완견은 은혜를 잊지 않고, 배신하지도 않는다."
이 말에 들어 있는 의미는, 부모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개만도 못한 자식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토방 끝에 걸터앉아 자식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계실 어버이가 생각나는 어버이주일입니다.
이제 막 철이 들어 효도할까 했더니, 어버이가 내 곁에 아니 계시더라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효도해야 할 줄 알면서도,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다보니 마음뿐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효도, 부모공경” 이라는 말에 죄송하고, 마음 아픈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효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으므로 부모님께 안 드려도 된다." 는 것이 "고르반" 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했습니다. 부모 공경은 무조건적이요,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부모님들을 공경하지 않게 된, 오늘날 문화와 사회적인 이유는 있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삶의 지혜와 지식을 부모님께 배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님은 스승이었습니다.
옛날엔 목수 아버지로부터 목공일을 배워서 목수가 되었고, 농사일을 배워 농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는 급변합니다. 모든 지식을 밖으로부터 배우고 경험합니다.
오히려 부모님들이 자식들한테 배워야 합니다. 이렇다보니 부모님들은 권위를 지키기가 어렵고,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배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해서,
연세 많으신 부모님의 말씀은 옛 지식과 경험들이기에, 그대로 순종하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급변하는 현실과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고집스럽게 옛것들을 강조하십니다.
부모들이 제일 많이 상처받는 말이, 자식들로부터 "말이 안 통해" 라는 말을 들을 때라고 말합니다.
물론 부모님들의 입장에서 이런 점은 고려해야 하지만, 자식들 편에서는 들어주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불효의 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효도하라 하지만, 기독교는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하라 가르칩니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효도가 가능하지만, 돌아가시고 나면 효도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예수님 믿고 먼저 가신 부모라면, 이미 천국에 계시니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제사가 아니라,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추도예배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의미는, 하나님 곁에 계신 부모님, 잘 돌봐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가 추도예배입니다.
둘째는, 부모님의 뜻, 아름다운 인격, 자식위한 축복기도를 기억하는 시간이 추도예배 시간입니다.
셋째는, 천국 가신 부모님 곁으로 언젠가는 나도 달려가 만날 소망으로 드리는 예배가 추도예배입니다.
음식 한상 잘 차려놓고 그분들께 절하면, 그 분들이 살아오셔서 그 음식 드십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5월 8일을 어머니날이라 했는데, 언젠가부터 어버이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버이가 누구입니까? 신학적으로 보면 궁극적이고 영원한 어버이는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에베소서 6장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은 육신의 부모도 어버이기에 부모님과의 관계가 바로 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전적인 부모님의 은혜로 살 수,
있었고, 부모님의 품안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육신의 어버이인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될 때에, 영적 어버이인 하나님의 은혜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요. 부모님에게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불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나 부모공경하지 않는 타락한 사회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도 타락하였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조건 없이 사랑하는 부모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똑같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항상 손해만 보는 짝사랑을 부모님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심지어 잘못된 부모조차도 자식만큼은 잘되길 소망합니다. 술꾼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항상 술에 얼근히 취해 돌아오면, 자녀들을 앉혀놓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일장 훈계를 합니다.
"이놈들아, 너희들은 절대 술을 마셔서는 안 돼. 한잔이라도 술을 마시면 내 자식이 아니다. 알겠어.
개새끼야, 개새끼! 술 먹고 술주정하는 놈이 인간이냐! 인간이 아니지. 그럼 인간이 아니고말고."
그리고 인간이 아닌 그 인간은 쓰러져 잠이 듭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자식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여러분! 친구 간에도 질투가 있고, 형제간에도 질투가 있고, 부부간에도 질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에는 질투가 없습니다. 자식을 칭찬하면 부모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 땅에 부모들은 자식 사랑에서만은 잃고도 좋아하고, 손해보고도 좋아하고, 눈이 멀어도 좋습니다.
어느 훈련병의 어머니가 아들이 사열하고 있는, 훈련소 연병장으로 참관을 갔습니다.
많은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사열하는 모습을 본 다음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바보 같은 놈들, 그렇게 발도 하나 못 맞춰! 발이 맞는 놈은 내 아들 하나 밖에 없었다니까."
자기 아들밖에는 아무도 안 보이는 어머니의 눈, 그런 눈을 가진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일본 신화에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청상이 되어 외아들을 길러,
청년이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사랑하는 애인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속설에 사람의 간을 먹이면,
낫는다는 말을 듣고, 홀어머니의 간을 빼어 들고 달려가는데, 어머니의 혼이 계속 말을 합니다.
"얘야, 천천히 가라. 조심해서 가라. 넘어져 무릎 깨질라." 이게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린 부모의 간을 먹고 자란 자식들입니다. “애간장 녹는다.” 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우리 부모는 애간장을 녹이며 자녀인 우리들을 길렀습니다. 그 말이 애간장이 녹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부모의 사랑은 애간장, 간을 녹여 자식들에게 먹여 길렀고, 우린 그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과 피를 머금고 태어나, 부모의 눈물과 땀을 먹고 성장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게 자녀를 축복하는 축복권을 주셨습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축복한 대로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축복했습니다. 축복한대로 이삭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그의 열 두 아들들에게 축복했습니다. 축복한대로 됐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축복한 대로 됩니다. 믿습니까? 부모가 기도한 대로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그 축복을 받은 우리 또한, 부모의 축복권을 가지고 자녀들을 안수하며 축복하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저는 해마다 한 번씩 지내는 어버이 주일이면 많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자식으로서 부모공경 다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입니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 부모 책임을 다했다고 자신할 사람 없고, 자녀의 임무 다했다고 말할 사람도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 부모는 자식으로부터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 산답니다.
율법대로라면 돌에 맞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며, 온전히 생명이 붙어 있을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자식들에게 진정으로 효자가 되는 길과 목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우리도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 시골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서울 용산 2동사무소에 임시 채용된 큰아들의 전갈을 받고,
추운 겨울 아들의 졸업증명서를 직접 들고, 기차를 타고 난생 처음 서울에 올라와 아들을 만났습니다.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아들의 임시거처인, 아들이 근무하는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나는 벽 쪽에 자야 잠이 잘 온다." 고 우기면서, 온 몸으로 찬바람을 막아주며 엄마가 건네는 말,
“너는 내가 낳은 첫애야.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많아. 네 모든 게 나한티는 처음이제.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어. 너를 임신해 배가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 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고단헐 때면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 보고,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 나한티 올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를 어디다 비교하겄니.
어서어서 자라라 내 새끼야. 매일 노래 불렀제. 그러다 언제 보니, 이젠 니가 나보다 더 크더구나.
어서 자라라 했음서도 막상 니가 나보다 더 커버리니, 니가 자식인데도 이제는 뭐라할까. 두렵당께.”
여러분! 이 모든 부모의 말을 딱 한마디로 요약하면 뭡니까? “사랑한다. 내 아들아, 내 딸아!”
성경에는 부모에게 최대의 효를 이룬 모리아 산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모리아 산에 올라갑니다.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억장이 무너졌던 아브라함!
그러면서도 아버지 아브라함 "아들아,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하는 것 알지? 네가 번제할 양이란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제단 나무단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러나 아들 이삭은 반항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제물로 바치라 말씀하셨군요." 순종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 이제야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줄을 알았노라." 아멘!
모리아상의 사건은 효도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효자였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 효자였습니다. 이런 효자끼리 만난 모리아산에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부모에게 효도하는 저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저들의 몸을, 저들의 가정을, 저들의 삶을 통하여,
이 땅에 복을 펼치기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원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늘의 엄청난 보화를 준비하시고, 효자들을 통하여 이 땅에 복을 펼쳐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류의 구원과 이 땅의 효를 완성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마리아를 통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일찍 아버지 요셉을 잃고 가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목수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그리고 구원자의 사역을 위해 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우리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험한 고통을 다 당하시며 죽으시게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상에서 자식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눈과 마주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아들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끝까지 다 행하셨습니다.
효도를 완성하신 예수님! 부모와 자식의 허물을 화해시키신 예수님! 십자가 화해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화해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사건이었고, 사람과 사람의 화해 사건이었는가 하면,
이 땅의 모든 부모와 자식들 간의 무거운 짐, 자식의 도리를 다 못한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자녀들아, 네 부모를 공경하라!” 는 말씀은, 부모를 불쌍히 여기라는 동정이 아닙니다.
우러러 받들고, 존경하며 사랑하고, 자녀가 된 것을 자랑과 긍지로 여기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 효도가 무엇입니까? 한자어는 이 효도에 대해 퍽 재미있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옛날 닷 새 만에 열리는 장날이 되면, 아들은 그 동안 해놓은 나무단을 지게에 싣고 장에 갑니다.
저녁이 되면 어머니는 밥상을 준비해 놓고서, 아들이 나무를 다 팔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해가 서산에 넘어가는 데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 집에 있을 없어서,
동구 밖까지 나가 아들을 기다립니다. 드디어 사람들이 멀리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애틋한 심정으로, 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서 동구 밖 나무위로 올라갑니다.
그 모습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자로 묘사합니다. 어떻게 씁니까? 설립(立)자 밑에 나무 목(木)자,
그리고 오른쪽에 볼 견(見)자, 나무 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한편 아들은 준비해 간 나무를 모두 팔고, 그 돈으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반찬도 사고,
또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들을 사서 집으로 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동구밖까지 나와 기다리십니다.
그 모습에 아들은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어머님! 왜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그러면서 등에 진 빈 지게에 어머님을 업고 집으로 옵니다. 그 모습이 한자로 효도 효(孝)자입니다.
효도 효자는 늙을 노(老)자 밑에 아들 자(子)자, 아들이 연로하신 어머님을 등에 업은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친(親)이 있고, 효(孝)가 있는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 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히 없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께 불효하셨다면, 이제부터라도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십자가상의 효도를 본받아, 우리도 부모공경을 잘 하므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