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물젖이 영양가가 없다고?
모유에 대한 두 의사의 다른 소견에 지옥과 천당 오간 채윤 엄마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재용 기자
지난 12일 오후 6시 아내와 나는 깜짝 놀랐다. 4개월된 채윤이의 대변에 제법 굵은 고추가루 만한 피가 보인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가는 소아과로 문의하고 아이와 아이의 용변을 챙겨서 서둘러 달려갔다. 주치의는 변을 관찰한 후, 설사와 피라고 이야기 하면서 이런 용변상태가 얼마나 되었는지 물었다. 그러나, 그런 변은 4개월 내내였다. 모유를 먹어서 묽게 나오는 변이러니 했는데, 그것이 설사와 구별이 안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채윤이의 신장은 평균보다 약간 위지만, 몸무게는 항상 부족했는데, 같은 또래의 평균보다 1킬로그램 정도 작았다. 그러자 의사선생은 우리 부부에게 채윤이가 둘째 아이냐고 물었다. 첫 아이라고 이야기하자, 그 때부터 일장 훈계가 시작되었다.
참으로 배짱 좋은 부모라는 것이다. 모르면 자주 병원에 달려와서 물어야지 아이가 설사를 하는데도 내버려 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1킬로그램의 몸무게 차이는 얼마 안되는 차이이지만 4개월 아기에게는 큰 차이이며, 그대로 지속되면 큰 일이라고 이야기 한다. 아울러 모유알러지(알레르기)로 인한 설사로 보이니 당장 모유수유를 중단하고 분유로 바꾸어 먹이라고 말하며, 약을 처방했다.
우리 부부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고,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먹였다. 그리고 모유대신 몇 시간 굶기면서 거부하는 분유를 먹이고 밤 9시쯤 채윤이를 재웠는데, 처음에 잠깐 자는가 싶더니 밤 12시까지 구토를 하면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다가 채윤이는 축늘어진 몸으로 지쳐서 잠든 듯 보였는데, 입가에 이상한 것이 있어 살펴보니 위액까지 섞여서 게운 우유가 입가에 있어서 숨도 쉬지 않는 것이다. 빠르게 입속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숨을 쉬게 한 후 밤새 채윤 엄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채윤이의 변은 그런대로 괜챦은듯 보였고, 의사의 주문대로 병원에 다시 갔다. 우리 부부는 전날의 분유 트러블을 이야기했는데, 의사의 소견은 모유만 먹이다가 분유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법이고, 혹시 분유알러지도 있으면 특수분유 단계로 넘어가면서 조절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같은 약 이틀 분을 더 처방하고, 장염일 가능성이 높으니 치료는 계속되어야 하며 대개 열흘에서 2주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집에 돌아왔지만 나의 아내 채윤 엄마의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밥을 차리지도 않았고, 걱정된 마음에 밥을 해서 차려놓아도 먹지 않고 오직 채윤이에게 신경이 쏠려있었다. 채윤이는 계속 분유를 거부했고, 아내는 채윤이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 알러지라는 모유를 조금 수유했지만, 채윤이는 배를 곯았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일요일인 다음 날 오후, 채윤엄마는 또다시 놀랐다. 이번에는 가래침같은 변에 피가 더 많이 고여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부부에게 비상이 걸렸고, 소아과에 문의했지만 휴일이라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소아과와 함께있는 채윤이를 낳은 병원으로 전화를 했더니, 마침 채윤이를 받은 의사 선생님(이 분도 아기엄마이시다)이 받으셨고, 오히려 더 걱정스러운 말투로 일요일에 진료하는 병원을 추천하시면서 당장 달려가라 하신다.
대학병원은 아니지만, 광주에서 유일하게 일요일에도 진료를 하며 소아과와 관련하여 종합병원 수준의 병원인 M아동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은 진료를 받으러온 아이들과 부모들로 복잡했고, 40여분 기다려서 진료를 받았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채윤이가 먹은 약을 물어보시더니, 세상에나 채윤이의 변에 섞인 것은 피가 아니라 채윤이가 먹은 딸기향의 시럽 약이라고 말씀하신다.
순간적으로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그동안의 저간의 사정을 들으시더니 웃으시면서 모유알러지가 아니니 안심하고 모유를 먹이고 분유가 오히려 채윤이 잡을 뻔 했다고 하신다. 아내의 얼굴은 확 펴졌다. 하지만 이전의 소아과 선생님의 진단도 있고해서 다시 문의하니, "나도 목숨이 아까우니까, 목에 칼이 들어오면 모유알러지라고 말하겠는데, 목에 칼이 들어오기 전에는 모유알러지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하고 농담까지 건내신다. 원인은 유당이 많은 젖 때문에 채윤이가 소화를 다 시키지 못해서 발생한 것인데, 바쁘니 화요일에 자세히 설명하신다면서 약을 처방해주었다.
하지만 나오면서 뒤돌아서서 다시 문의했다. "채윤이 몸무게가 평균보다 1킬로그램이 작은데 괜챦나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 왈, "학교에서 70명의 학생이 있고 키 순서로 번호를 매긴다고 할 때, 채윤이는 10번쯤 됩니다. 키가 아주 작은 1번에서 3번 정도는 정상보다 많이 작아서 조금은 문제가 있겠지요만, 채윤이는 체격이 열번째 쯤 되니까 조금 작은 편이어도 이상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겠지요?" 하고 반문하신다. 그런데 오히려 뜨끔한 것은 나였다. 고교시절 1-3번을 오가는 작은 키였으니….
얼굴이 확 펴저서 집에 돌아온 아내는 감자탕에 밥을 두 공기나 비우고선,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말한다. "채윤 아빠, 젖이 안나오면 모를까, 젖이 나오는데 딸에게 먹일 수 없는 젖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인 줄 알아? 난 채윤이에게 젖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 글구, 분유트러블이 심한 채윤이에게 더이상 분유 안먹여도 되는 것이 너무 기뻐!"라고.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았을까? 채윤이는 젖도 잘 먹고 약도 잘 먹었고 변도 조금은 좋아진 것 같았다. 화요일인 어제 병원에 다시 갔다. 원무과에서 접수를 하며 처음 의사 선생님 성함을 알았다. 박기원 선생이셨다. 박기원 선생은 약속대로 자세히 설명해주셨는데, 작은 이면지에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신 것이었지만, 그것은 브리핑에 가까웠다.
채윤 엄마의 젖은 흔히 물젖이라고 말하는 젖인데, 할머니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영양가가 없어서 아기들이 설사하고 안 자라는 젖이 아니라, '유당'이라는 영양분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아기의 소화기관이 분해하여 흡수하지 못하고 항문으로 내보내는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삼투압 효과가 생겨서 수분을 끌어당기면서 설사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물젖은 아시아계 여성의 40%가 만드는 젖이라고 덧붙이셨다.
분유와도 비교해주셨는데, 분유는 모유에 비해 유당이 적어서 모유는 수분이 많은 묽은 변이며 분유는 된 변이 된다고 한다. 또 설사를 하는 아기의 분유인 특수분유는 유당을 제거한 분유라고 이야기하시면서, 유당이 적건 많건 모유는 분유보다 영양이 많고 좋은 것이며, 열 달동안 엄마 뱃속에서 탯줄로 엄마와 함께 영양을 섭취한 아기가 모유알러지에 걸릴 확률은 지극히 희박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처방하시는 약에 대해서도 설명하셨는데, 바로 그 유당을 잘 분해하도록 도와주는 효소를 처방하니 먹이라고 하신다.
참으로 친절하고 원했던 의사선생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야기 도중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점심 약속을 하는데, 기름 한방울 안나는 나라이니 중간에 만나서 한 자동차에 타고가자고 하신다. 친절함 못지않게 존경할만 했다. 그런데 더 그 분께 고맙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언제 다시 병원에 와야 하냐고 물었더니, 괜찮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고, 병원 아래층의 약국에서 처방전을 내밀었더니 약사가 달려나와 놀라면서 효소만 일주일 분 맞냐고 묻는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병원에 오게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채윤 엄마는 이제는 희색이 만면에 가득차서 자랑스럽기까지 한 표정으로 채윤이에게 젖을 먹이고, 집안 분위기도 얼마 전 방귀 사건이래로 더욱 환해졌다. 채윤 엄마의 지옥과 천당을 동시에 본 시간들이었다.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의사 선생님들도 천차만별이라고 느꼈다. 첫번째 의사 선생님은 채윤이를 낳은 산부인과에 함께 있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인데, 산부인과가 워낙 좋았고 의사 선생님들도 친절해서 무심코 선택했던 것이었다. 물론 그 의사 선생님도 나름대로 소신껏 소견을 밝혔겠지만, 서비스의 질로 봐서도 공룡인형으로 청진기를 만들어 아기를 진단하시던 두번째 주치의 선생님이 마음에 들고 신뢰가 갔다.
아내도 공교롭게도 두 주치의 선생님을 경험했는데, 첫번째 선생님은 너무 좋은 분이셨지만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서 일반 산부인과의 낙태수술이 싫으셔서 기독교 계통 병원으로 옮기셨고, 두번째 선생님은 채윤이에게 M병원을 추천하신 분인데 같은 아기엄마 입장에서 처음부터 병원에 들르지 않는 지금도 문의하면 친절하게 답변을 주시는 분이시다. 아내에게 어떤 분이 더 좋은 의사 선생님이셨는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여하튼 이 땅의 아기들 부모님들에게 권유하노니, 물젖이 오히려 영양이 많으며 사정이 허락하면 개의치 말고 모유수유를 하시라는 것과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말씀을 하시더라도 실망하지 마시고 더 좋은 병원에 가보시라는 것이다. 가족 중 어느 한 사람의 지옥과 천당은 가족 모두의 지옥과 천당이니….
좀 전에 내 방에서 내가 글 쓰는 것을 지켜본 나의 아내가 이 글에 채윤이가 제대로 처방받도록 해주신 두 의사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라고 채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