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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핸드볼연맹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 정상에 오른 한국 여자 주니어 핸드볼 대표팀이 지난달 1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
한국 여자 핸드볼계가 '황금 세대'의 출현에 들썩이고 있다.
한국 20세 이하 여자 핸드볼 대표팀(U-20)이 지난달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U-18 여자 대표팀이 4일 마케도니아에서 막을 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5위에 올랐다.
이계청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은 지난달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제19회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러시아를 34-27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아무도 우승을 차지할 것이란 예상을 하지 못했기에 더욱 놀라운 쾌거였다.
오세일 감독이 지휘했던 U-18 대표팀도 비록 8강에서 독일에 패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 러시아 등 강호들을 내리 꺾으며 8승 1패의 성적을 올렸다. U-18 대표팀은 오 감독 부임 이후 국제 무대에서 19승 1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 중이다.
사실 한국 핸드볼에서 '우생순'은 빼놓을 수 없는 단어지만 빛과 어둠을 상징한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덕분에 한국 여자 핸드볼을 널리 알릴 수 있었지만 동시에 여자 핸드볼은 우생순이란 벽에 매번 가로 막혔다.
매년 열리는 대회마다 수많은 언론에서 '제2의 우생순'과 같은 단어를 쏟아내지만 이미 10년도 지난 옛 이야기다. 협회 관계자는 "우생순 덕분에 핸드볼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이로 인해 어려움도 많았다"며 "핸드볼이 배고프고 힘든 운동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각인됐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핸드볼은 구기 종목 중에서도 굉장히 거칠고 체력 소모가 큰 운동으로 꼽힌다. 때문에 최근 들어 어린 선수들이 핸드볼을 꺼려했던 것이 사실이다. 인프라가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도 하락했다. 올림픽 효자 종목이었던 여자 핸드볼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4위에 올라 아쉽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고, 지난해 12월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2위에 머물렀다.
이러한 침체기를 딛고, 국제 대회에서 성적을 올리고 있는 선수들은 2009년 SK가 핸드볼에 집중 투자를 시작한 이후 핸드볼을 시작한 또래라 눈길을 끈다. 최태원 전 회장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를 했던 것이 조금씩 결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U-20 정상을 이끌었던 이계청 삼척시청 감독은 황금 세대에 대해 한마디로 "발랄하고 끼가 넘친다"고 표현했다. 그 동안 선배들과 감독들의 눈치를 보면서 힘들게 운동했던 세대가 아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성장했다는 것.
U-20 대표팀은 크로아티아에서 '강남스타일'에 맞춰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여 국제핸드볼연맹(IHF)의 극찬을 받았다. IHF는 "경기 내내 강남스타일처럼 신나는 경기를 펼쳤던 한국 선수들이 경기 후 숨겨둔 끼를 발휘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예전에 비해 너무 다르다. 정해진 원칙 속에서도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황금 세대가 나오기까지는 대한핸드볼협회의 아낌없는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9년 최 전 회장 부임 이후 전략을 수립하고 단계별로 성과를 도출하는 기업식 경영 방식을 핸드볼에 접목시켜 '핸드볼 장기발전전략'을 수립했다.
이른바 '2020 프로젝트'를 세운 협회는 ▲기반 구축기(2010~2012 런던올림픽)▲시스템 정착기(2013~2016 리우 올림픽)▲지속 발전기(2017~2020년) 등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협회는 2020년까지 핸드볼을 '국내 3대 인기 스포츠 진입'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유망주 육성에 힘썼다.
그 결과 황금 세대로 꼽히는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장학금을 받는 등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선수들이 황금 세대의 중심으로 꼽히는 이효진(20·경남개발공사)과 김진실(20·부산시설관리공단), 원선필(20·인천시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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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세대의 중심으로 꼽히는 이효진(오른쪽)과 원선필. 뉴스1 |
협회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핸드볼 코리아리그를 운영했고, 2013년부터 핸드볼 프로화와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여자부에 한해 드래프트를 실시했다. 이 감독은 "핸드볼 코리아리그가 생기기 전까지 절대적인 경기 숫자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많은 경기를 지속적으로 치르면서 경쟁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대표팀은 매년 세계여자청소년대회 등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시야를 넓혀 나갔다.
이제 당면 과제는 새롭게 떠오른 황금 세대를 얼마나 잘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 여부다.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종목인 핸드볼은 중간에 선수 생활을 그만 두는 경우가 다반사다.이계청 감독은 "이제 시작이다. 뛰어난 자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쉽지 않겠지만 핸드볼 관계자들이 미래의 보물들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 관계자는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해외에 보내는 등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지금 당장보다 5년, 10년 뒤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황금 세대가 10년 뒤 한국 핸드볼의 중흥기를 이끌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