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산에서 두이이를 기르며 살고 있는 아줌마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상담을 할수있을까하여 찾았습니다
바쁘시더라도 읽으시고 답변부탁드립니다
저는 23에 아이아빠를 만났습니다
참고로 그와는 10년의 나이차가납니다
첫만남이었는데 그사람은 지갑을 분실하였다며 데이트비용을 제게 내라고 하더군요
저 역시 항상 쪼들리던때라 그리 넉넉한 용돈이 없었습니다(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던중이었습니다)
아이아빠는 미안하다며 꼭 돈을 갚고싶다며 집에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전 그날 언니가 맡긴돈을 써버린 상태라 졸래졸래 따라갔습니다
그의 집은 경기도 화성의 바닷가쪽으로 염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전 갈수가 없었습니다
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걸어나와야 하는 그런 시골은 첨이었는데 그는 돈을 갚기는 커녕 차비도 주지않았습니다
오히려 같이 살자더군요 아니면 죽어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무서워하셨습니다
그가 집에 없을 때면 어머니는 화장실을 가는 나를따라와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시골의 화장실은 거의 밖에 있었는데 그의 집은 화장실이 없어 옆집에서 지어놓은 화장실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울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딸이라고 생각해보세요...그래도 저를 보내주지 않으실건가요??"
어머니는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물론 아이를 낳고난후 당신이 잘못했다고 하셨지만요
요즘의 상식으론 어째 이해가 안가지요
허나 그는 만약 제가 거기서 자기와 같이 살지않는다면 저의 집에 찾아가 부모님을 해한다고 윽박질렀고 급기야몰래 집에 전화를 건 저를 뒷산에 끌고가 나무를 꺾어 매질을 했습니다
그런후 그는 기막히고 이해못한 내게 무덤옆에서 욕정을 채웠습니다
한달가까이를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심했습니다
그냥 가버리면 이놈의 성격에 부모님께 무슨 사단이 날꺼같았고...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는 이사람과 한평생을 살수는 없을꺼 같고...
결국 집에 보내달라는 나의 말에 그는 한밤중에 알몸을 만들어 머리채를 잡고 온동네를 끌고 다녔습니다
칼을 들고 산에 끌고가 찌른다느니 자신이 목매달아 죽는다느니 별별쑈를 다 치른뒤 저는 단념을 했습니다
나때문에 부모님께 좋지못한일이 생길수도 있고 또 죽겠다는 이사람도 기막혀서
단념을 했습니다
그는 그곳의 염부였고 전 그것도 나중에 알았지요
염전사택에 방을 얻은 우리는 허구헌날 연탄이 떨어지고 김치가 떨어지고 쌀이 떨어졌습니다
결국 화성의 다른 염전에서 선금을 준다는 곳으로 이사를했고 큰애를 낳고 둘째애를 가진지 8개월때였습니다
화장실을 간다는 그가 두꺼운 옷까지 껴입고 나갔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여 옆집에 들렀습니다
옆집에는 이제 중학교를 졸업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지능이 떨어진 애였죠
그애가 없었고 며칠 이상한 생각을 하던차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둑방에서 둘이 걸어오더군요
어차피 그한테 물어보면 나만 미친년 취급받을것이기에 그아이를 불러물었습니다
예감은 맞았고 전 기막힌건 둘째고 아직 성년이 되지않은 그애에게 깊은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를 불러 그애앞에 무릎꿇고 용서를 빌라고 했습니다
그는 미안하단 한마디만 간신히 던지고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며칠을 집에 오지않았습니다
염전에서 일을 하지않으면 방을 빌려쓸수도 없고 당장 해산도 해야하는데 막막했습니다
며칠만에 집으로 전화를한 그에게 돌아오라로 했습니다
방도가 없었습니다
뉘우치기를 바란것은 저의 희망사항이었습니다
그는 그애가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에서 그애부모님이 안계시면 그애집으로 들어갔고
제가 집을 비우면 집으로 그애를 끌고왔습니다
물론 모든것은 그애가 얘기를 해준것입니다
화가난 저에게 그는 오히려 화를 내고 폭행을 했고 나중에 저는 깊은 울음을 소리죽여 우는법을 터득했습니다
울음소리를 싫어했으니까요
해산이 가까워진 무렵 아주버님이 불미스럽게 돌아가셨고 큰댁에 그가갔습니다 오늘낼 아기가 나오려는 저는 친정에 가있으라고 했습니다
상우제날 바로 이상한 생각이 들어 큰댁에 전화를 하니 그는 집에 잠깐들러야 한다며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집에 전화를해도 받진않았고 옆집아주머니께 집에 들러보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역시 예감은 맞았고 전 형님의 부고앞에서도 욕정을 버리지 못했던 그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아이를 낳아야했고 둘째애를 낳던새벽에도 그는 병원에 해산을 한 제게 큰애까지 두고 가버렸습니다
눈을 맞추고 젖을빠는 아기의 눈때문에 몇달을 버텼고 우린 이사를 했습니다
그가 방앗간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염전은 겨울엔 일을 하지않습니다 소금이 나오질 않기때문이지요
겨울에 빚을 얻어 생활하고 이듬해는 월급으로 그걸 갚기가 바빴습니다
첫애때는 임신때부터 식당을 다녔고 둘째때는 한달이 못되어서 다시 식당을 다녔습니다
방앗간은 또 추수가 끝나면 일이없었고 이듬해에는 다시 염전으로 추수때는 방앗간으로 그는 일했습니다 그러나 노는날이 많았고 항상부족했습니다
어느날 그는 막일을 한다고 했는데 경기도 포천으로 가야한다더군요
그렇게 한달에 두번정도 집에 들르면서 포천에서 막일을 했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집에 들르면 아이아빠가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새벽이면 없어졌다 들어온다구요
집에서도 늘 그랬던 사람이었고 저 역시 항상 궁금했던 거였는데 그는 제가 꿈꾸면서 헷갈리느거라고 막무가내로 화를 냈기때문에 갸우뚱거리고만 있었습니다
옆에 있는 동료에게도 이런말을 듣는데 이상한 예감이 스치더군요
포천에서 공사를 마치고 일이없는그가 집에서 또 한참을 쉬고 놀게 되었는데
역시나 그는 새벽이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불속으로 들어와 자고 있었습니다
잠이 많은 전 나갈때 그를느끼지만 영락없이 기다리다 다시 잠들곤 했는데
어느날인가 바깥창문에서 인기척을 듣고 잠을 깨게되었습니다
그소리는 남자가 자위행위를 하는소리였습니다
후다닥 밖으로 뛰어갔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고 아직 시동이 꺼지지 않은 차안에 아이아빠가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정신을차리고 그가 나가기를 기다려봤습니다
깊은 밤에 그는 나가고 얼마후 안방창문밖에서 낙엽을 조용히 밟으며 창가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얼굴을 꼬집고 앉아서 귀를기울였습니다
그가..자위를 하면서 내딸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신음소리까지 섞으며 내딸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몇달을 헤어지지고했지만 그는 무시했고 여전히 밥상도 엎었다 별 난리를 쳐댔습니다
어느날 큰맘을 먹고 집을 나왔습니다
친정부모님은 유별히 제게 냉정하셨고 (어릴적부터)동네사람보기 부끄러우니 당장나가라고 하셨습니다
다음날 직업소개소에가서 식당을 물어보니 다방월급이 훨씬많다며 알선을 해주었습니다
한달을 배달다니는 내발자국위에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고 다녔습니다
한달월급을타서 아이들을 찾아갔습니다
옆방에사는 아줌마와의 전화통화로 그가 항상 아침에 나가서 새벽에 온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겨울옷을 준비해서 입히고 아이들을 버린다는 그애게 한달만 더 봐달라는 편지를두고 오기위해서였습니다
12시가넘어 도착했는데 아이들만 배고파서 징징울고있었습니다
겨우 세살이 된 딸아이가 손가락을 빨며 칭얼대고 큰애는 바닥에 엎드려 시체처럼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고 무작정 데리고 나왔습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뒤에서 그가 뛰쳐나올것같은 두려움과 불쌍한 새끼들을 보는 심정이 교차했고 떨고있는 아이들때문에 여관방을 얻었습니다
때가 쩔어있는 아이들의 때를 밀어주었고 아이들은 침대매트리스에서 뛰며 좋아했습니다
아이들이 잠들고 집으로 전화를하니 그가받았습니다
어차피 데려간애들 그냥델고가라는것이었죠
사정을했습니다 한달만 더 봐달라구요
다방을 한달다니는 내내 아이들을 버리지말라고 계속부탁했었고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굴을 보자고 말하는 그에게 여관 호실을 알려주고 밖에서 애들을 싣고 가는것을 확인하고 다시 올라갔습니다
보증금이 거의 없는 월세방을 부랴부랴 얻었지만 가재도구가 없었고 한달을 더 기다려야했습니다
그러던중 아이아빠는 친정에 아이들을 두고 가버렸고 부모님의 성화에 저는 아이들을 어서 데려와야했습니다
그래서 선불금을 땡겼고 가재도구를 마련해 아이들을 데리고왔지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 세월를 어찌 다 늘어놓을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얼마후 아이아빠가 교도소에 갔다는 소식를 들었습니다
죄목은 특수강간이었습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옛말이 들어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다 싶어 교도소를 찾아 이혼을 얘기했고 그는 순순히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다방에선 하루만 빠지면 벌금이 어마했기때문에 시간을 내지못해 동사무소에 신고하는기간을 놓쳤습니다
그렇게 죽기살기로 세월은 흘렀고 저는 아이들과 살기위해서라면 어떤짓도 하면서 살수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해에 딸아기가 간질에 걸렸고 큰아이는 학교에서 늘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때쯤에 아이아빠가 친정에 다녀갔고 연락이 되었는데 이혼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안해줄 이유가 없었는데 그에게 주소와 전화번호를 노출하고 싶지않은 제게 그는 시댁에 핸드폰을 하나 가져다 놓을테니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하면서 그가 나를 죽일거라는둥 처녀를 따먹는 기분이 어땠다는둥
그의 인간성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전화를 정지시켰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와의 전화통화후 꿈속에서 조차 그에게 시달렸습니다
그러다 일년후 아이들과 사는 동네에 그가 나타났고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에게 전화번호를 들려보냈고 연락을했는데 나오라고 하더군요
변함없이 그는 나를 원수취급했고 위기감에 집에서 떨어진곳으로 약속장소를 정했습니다
느낌이 좋지않아 아는 동생과 동생의 남자친구 둘을 데리고 갔습니다
저와 동생만 차에서 내려 그를 만났는데 혼자나오지않았다며 대뜸 화부터 내더군요
자기차에 타라는 그의 목소리는 정말 느낌이 좋지않앗고 거부하는 내게 욕을하며 달려들었고
차안에서 이를보고있던 다른 동생들이 내려와 이를제지했고 저는 간신히 그자리를 피할수 잇었습니다
죽여버린다는 그의말에 파출소에 신고를 했습니다
마침 순찰을 돌던 차가 도난차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아이 아빠였고 저는 파출소에서 그를 다시 만날수있었습니다
파출소였음이 원통해하는 그의 눈빛과 말투를들으며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는 이혼을 원한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해꼬지가 하고 싶은거라고 믿었습니다
얼마전에 다시 친정으로 아이학교로 다녀간 그는 어서 이혼을하자며 독촉을하지만
법원에는 혼자가라는 애매한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급하게 이혼을 해야할 처지로 들립니;다
물론 구체적인것은 모르지만요
저역시 이혼이 깨끗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한마디도 미안하단 말을 건네기는 커녕 오히려 약자앞에서 군림하려는
재수없는 인간임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이를 낳으며 그와 살았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그랬던 제가.
그리고 그럴수밖에 없던 내가..그래서 이렇게 아이들과 힘들게 살아야하는 나와 자식이 불쌍합니다
아이들이 뿔쌍한건 항상이지만 스스로가 불쌍해서 울어본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이들에게 미련이 없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좋아서 키우고 싫어서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하는 저의 말에
콧방귀만날립니다
아이들과 살아온 10년을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통화에서 그는 용서하면 안되는 인간이라고 절실히 느꼈고
정녕 법은 이런사람들때문에 생겼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내자식이 아니고 그래서 한푼의 양육비도 주지못하겠다고 합니다
물론 억지이지요
저는 이렇게 떠들수있는 그에게 벌을주고싶습니다
물론 그에게 바라는것은 없었습니다
그의 얼굴을 보지않을수 있다는것 외엔..
허나 10년을 아이둘을 데리고 산 세월은 한장의 종이로 늘어놓을수 있는것이 아니지요
한마디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않는 그의 인성에 법으로라도 경각심을주고싶습니다
자식은 책임이어야한다는 내신념에 찬물을 끼얹는 그에게 벌을 주고싶습니다
이번주까지 이혼서류접수를 하지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에게 양육비를 받아야겠습니다
꼭 그러고 싶습니다
벌을줄수있다면 그렇게 하고싶습니다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