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소감
문득, 흑백 사진 하나가 떠오른다. 까까머리에 야구 모자를 뒤집어쓰고 두 눈이 안 보이도록 웃고 있는 얼굴, 그리고 풋내 나는 소감… 이천년 봄이었다. 사이버 신춘문예 소설 당선. 친구들이 사이비 신춘문예가 아니냐고 농담을 했던 뜻밖의 사건. 그렇게 어쩌다 쓴 소설 한 편으로 작가 소감을 쓰고 나는 많은 일을 겪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무슨 철학연구소 사람들과 만나 동화 원고를 쓰기도 했다. 동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철학을 담는 동화를 쓴다고, 나는 늦은 밤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쓰고 고치고 또 쓰고 고쳤다(천만다행으로 그것들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영혼을 갉아먹는 것만 같은 그 짓을 일 년 반인가 하고는 나는 스스로 나자빠졌다. 어쩌면 그 때 처음으로 동화란 대체 무엇일까, 묻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동화를 잊고 지냈다. 그러는 동안 알량한 글을 올렸던 웹진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고, 당선 뒤 처음으로 단편을 발표했던 문예지가 폐간되었다. 동시에 나는 한 사람을 만나 커다란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운 좋게도, 동화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살게 된 덕분에 나는 밭을 모두 갈아엎고 새로 시작하는 농부처럼 글밭 농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재미있었지만 힘들고 어려웠다. 매일 씨앗을 심는 마음이었지만 언제쯤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싹을 틔워 열매 맺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글 쓰면서 땀 흘리는 것이 좋았고, 행복했다.
이제 막 틔우기 시작한 새 싹…
모든 싹틈이 그렇듯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새 싹을 틔울 수 있게 부족한 글밭에 따듯한 햇살과 귀한 물, 소중한 거름까지 네 번이나 뿌려준 <어린이와 문학>에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 삶의 넉넉한 바탕이 되어주는 피노키오와 언제나 고맙고 미안한 ‘내가 사랑하는 수박씨’ 울 엄마, 글쓰기의 절박함을 가르쳐준 아버지, 은근한 지지와 격려로 항상 마음 써주시는 어머님 아버님에게도 감사한 마음 전해 드리고 싶다.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글벗들에게 뜨거운 마음 전하며, 가만히 첫 마음 불러본다.
…푸른 기운 잃지 않고 꿋꿋하고 당차게 자라, 아이들과 사람들과 만나고 부대끼며 꽃 피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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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 18기로 동화 쓰기와 인연을 맺었다. 한겨레 동화창작교실에서 임정진 선생님을 만나 야단을 많이 맞았지만 계속 동화를 썼다. 한겨레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동화 사이>, <동동(동화 쓰는 동무들)> 모임을 하며, 좋은 글 쓰고 싶은 꿈을 키우고 있다. 넘어져도 발딱 일어나 다시 달음박질 하는 딸 해랑이처럼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
삶의 전환점을 맞아 지금은 서울을 떠나 구미에 살고 있으며, 금오유치원에서 연구교사로 많은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해랑이와 뱃속 아가, 산들이가 무럭무럭 자라면 함께 일하는 남편과 더불어 아이들 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새롭게 배우고 느끼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이숙현 신인작가님, 축하합니다~! '딸 해랑처럼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함께 좋은 작가'가 꼭 되실 겁니다. 짝짝짝~~~~!!!
축하드립니다. 열심히 해오신 만큼 앞으로도 많은 발전이 있으실 듯해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말 축하해용...*^^*
숙현씨에께 겹경사가 났군요. 축하합니다. 뱃속아가 산들이도 해랑이처럼 사랑스러운 아이일 겁니다.
숙현님. 둘째 아이도 가지셨군요. 더운 날 안동까지 내려오셨던 세 분(아니 네 분)이 기억에 선하네요. 여러가지로 축하드려요.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앞으로도 탱탱볼처럼 탱탱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참, 해랑이는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