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杏亭朴先生神道碑銘(修正한것)(醴泉文化院發行 金石文은 熙澤內容을 完全訂正)
府君諱訥字如愚號杏亭姓朴氏以新羅宗姓有八大君分封得貫咸陽其後年代초遠不可盡記至麗朝禮部尙書諱善爲上祖四傳諱臣유銀靑光祿大夫判禮部尙書樞密院事封凝川君諡忠質公生諱之彬朝請大夫衛尉尹諡文元公生諱莊軍簿摠郞追封咸陽府院君生諱忠佐號恥菴純誠輔德協贊功臣官至三重大匡判三司事咸陽府院君諡文齊公南海蘭谷書院龍門金谷書院主座享生諱琠密直知申事咸陽君生諱文재知密直府事生諱元擇開城府尹於府君爲高祖曾祖諱規工曹判書大提學始仕李朝祖諱而敬司宰監副正蔚珍縣令贈左通禮考諱紹宗司直贈吏議淑夫人安東權氏舒川郡守恢女以世宗戊辰二月十四日生府君于星州吾道宗里第府君天資俊秀才서超倫早襲鯉庭不煩敎督而文藝通徹蔭仕昌樂道察訪晩年結第亭于利安以奬進後學爲畢生事業湖陰鄭士龍敍之曰世之生五子難五子登科難五子俱文難公家有三難慶莫大焉眞信憑語也卒八十春秋之中宗戊子越六年癸巳以五子貴贈兵曹參判中廟賜祭享咸昌淸巖書院其常享文曰積德君子樂育賢師功存啓佑揭虔式宜又金谷書院配享配贈貞夫人安東金氏寶白堂諡定獻公係行之女墓咸昌儉汗里明堂谷乙坐合封生五子一女子巨鱗掌令金山郡守亨鱗忠州牧使洪鱗兩館大提學司憲府大司憲鵬鱗侍講院說書翰林從鱗弘文校理守吏曹正郞翰林女卞安仁巨鱗子景守亨鱗二子一女子봉宣務郞함通德郞女居昌愼孔達洪鱗二子薑從仕郞菖將仕郞鵬鱗四子二女子菅參奉蓉의 붕女寧越辛壽童全州李師叔從鱗四子二女子기宣務郞贈左通禮芝宣務郞軍資監主簿蕓司馬贈吏參荀贈兵曹佐郞女晉州姜霽申應昌景守二子一女子孝男義男女丹陽張謹봉二子一女子處仁處禮女缶林洪德禧함二子處義處禮出薑子善承菖子應心軍資監主簿蓉三子德元桂元仁元의子崇元초朋 子應元기子守敬司宰監僉正贈左承旨芝五子二女子守成守先司馬守訓司憲府監察守盈守緖歷說書巡撫御史官至承旨享順興陶皐書院女漢陽趙永祿醴泉權文海號草澗左副承旨蕓三子三女子守謙贈吏議守誼司馬薦授監察守謹司瞻寺直長女光山金仲態安東權直養昌原黃有永荀三子三女子守約守儉幷贈義禁府都事孝先中樞府事女申諶金慶建月城李光胤號양西弘文校理봉曾孫成文同樞玄孫挺稷判官薑孫纘先贈軍資監正榮先將仕郞曾孫成彦贈工議成敏號守默齋享咸昌淸巖書院實記行世玄孫挺世從仕郞挺瀛贈掌樂院正子仁恒贈禮議孫文祥贈兵參曾孫尙新同樞應心孫履華生員六代孫申慶號能皐文集三卷行于世守敬三子瑛義禁府都事贈司憲府執義玲贈工參肅廟賜祭出系仲父玲后廷茂守謙子玭護軍 贈左承旨守謹四子瑩從仕郞監+玉龍宮縣監蕩承訓郞예通德郞贈掌樂院正廷薛工參제瑛六子廷莢生員贈左承旨廷蓍歷三郡郡守贈左承旨廷蔡廷華廷莢子世稷贈大司憲廷蓍三子世煥贈吏參世徽通德郞世翰世煥三子希閔司諫院正言希逸希任同知中樞府事希閔二子成玉朝奉大夫司憲部持平成采出成玉二子孫慶號南野薦授英陵參奉童蒙敎官文集五卷行于世金谷書院配享民慶世徽曾孫重慶號東園禮曹正郞歷雲山郡守文集二卷行于世守誼曾孫世重司馬世臣縣令六代孫趾慶號閒睡堂翰薦正言守緖子 副司直守謙孫居華贈注書楊華贈刑曹參判曾孫世元從仕郞世沃同知中樞府事八代孫天寧通政大夫예子大華贈參議子世龍贈刑參兼副摠管二子東贇僉樞東寶資憲同樞居華子世馹僉樞孫慶子漢東號退寢軒薦授昌陵參奉不就有遺稿希任二子成一號性謙僉樞成五孫必慶號倣軒僉樞曾孫漢喆號一笑子南野高弟玄孫箕寧號荷수成均進士文集三卷行于世濟寧生員廷薛六代孫駿寧生員重慶孫弼寧號後齋僉樞三子周鍾號山泉道德行義秉拂儒林文集七卷東園通誌十六卷行于世周雲弘文校理歷漆谷郡守周庠號南泉鄕人推爲義將守訓五代孫成珩號一廂文集行于世守先八代孫顯寧僉樞九代孫周大號羅巖進士守謹九代孫周敎司馬希任曾孫漢翼號北坡有遺稿五代孫周鏞號晩圃有遺稿漢喆曾孫義集號直齋文集二卷行于世蕩曾孫東臣號松圃九代孫鳳鎭號國樵幷文集二卷行于世十代孫斗洙進士守先十代孫祐鎭號後松文集行于世十一代孫祖洙號文溪文集行于世成敏十代孫觀植號薇庵文集行于世瑩十一代孫烈義士殲滅倭首事不如意倭警拿捕獄苦多年曾玄以下槪其著顯登庠文行之子孫修錄矣系之銘
始自天嶺爰泊星鄕又移咸利山高水長松風蘿月不換三公早襲趨庭詩禮貫通肯구茅亭奬進後學五子登科三難家宅中廟賜祭湖陰敍作積德累仁雲仍職職乃착 龜簡吉竪立祖孫左右次第階級大村擁護松林羅列美山磅박兩水活潑吾祖之德與山不滅吾祖之風與水不竭
歲戊寅 四 月 日
十五代孫 暻植 謹撰
杏亭朴先生神道碑銘(醴泉文化院發行 金石文)
府君의 諱는 訥이요 字는 如愚며 號는 杏亭이다. 朴氏姓은 新羅宗姓으로 八大君分封때 咸陽으로 得貫하였다 其後로 年代가 멀어서 盡記할수 없고 麗朝에 이르러 禮部尙書 諱善을 上祖로 하다 四傳하여 諱 臣유는 銀靑光祿大夫判禮部尙書樞密院事로 封 凝川君에 諡는 忠質이다 生 諱 之彬하니 朝請大夫 衛尉尹으로 諡는 文元이다 生 諱 莊하니 軍簿摠郞으로 咸陽府院에 追封되다 生 諱 忠佐하니 號는 恥庵으로 純誠輔德協贊功臣으로 官職이 三重大匡判三司事에 이르고 咸陽府院君에 諡는 文齊이며 南海蘭谷과 龍門金谷 兩書院에 제향되었다 生 諱 琠하니 密直知申事로 咸陽君이며 生 諱 文재하니 知密直府事요 生 諱 元擇하니 開城府尹으로 府君 高祖이다 曾祖 諱 規는 工曹判書 大提學으로 李朝에 始仕하였고 祖 諱 而敬은 司宰監副正 蔚珍縣令 贈左通禮다 考의 諱는 紹宗이니 司直으로 贈吏曺參議며 비 淑夫人은 安東權氏 舒川郡守 恢의 女이다 世宗戊辰二月十四日에 府君이 星州吾道宗里에서 태어나다 府君은 天資가 俊秀하고 才智가 뛰어나니 일찍 敎育을 받아 文藝에 通徹하였다 蔭仕로 昌樂道察訪이되고 晩年에 利安에茅亭을 세워 後學을 爲한 畢生事業으로 하였다 湖陰 鄭士龍이 敍하기를 世上에서 生五子도 難하고 五子登科도 難하고 五子俱文도 難하거늘 公家에 三難이 있어 더없는 慶事라 하였으니 참으로 信憑할 말이다 中宗戊子年에 八十春秋로 卒하고 六年 뒤 癸巳年에 五子貴로 兵曹參判에 追贈되다 中宗이 賜祭하고 淸巖書院에 配享되니 常享文에 曰 積德한 君子요 樂育한 賢師라 啓佑에 세운 功勞 禮대로 精誠 드린다 하였다 또 金谷書院에 配享되다 配 貞夫人은 安東金氏로 寶白堂 諡 定獻公係行의 女이다 墓는 咸昌 儉汗里 明堂谷 乙坐에 合封되었고 五子一女를 두니 巨鱗은 掌令 金山郡守요 亨鱗은 忠州牧使요 洪鱗은 兩館提學 司憲府大司憲이요 鵬鱗은 翰林 侍講院說書요 從鱗은 翰林 弘文校理 吏曹正郞이요 女는 卞安仁이다 巨鱗의 子는 景守요 亨鱗은 二子一女를 두니 봉은 宣務郞함은 通德郞 女는 居昌愼孔達이다 洪鱗은 二子를 두니 薑은 從仕郞 菖은 將仕郞이요 鵬鱗은 四子二女를 두니 菅은 參奉 蓉 의 붕 이요 女는 寧越 辛壽童 全州 李師叔이다 從鱗은 四子二女를 두니 기는 宣務郞 贈左通禮 芝는 宣務郞 軍資監主簿 蕓은 司馬贈吏曺參判 荀은 贈兵曹佐郞 女는 晉州 姜霽 申應昌이다 景守는 二子一女를 두니 孝男 義男이요 女는 丹陽 張謹이다 봉은 二子一女를 두니 處仁 處禮요 女는 缶林 洪德禧다 함은 二子를 두니 處義 處禮는 出이다 薑의 子는 善承이요 菖의 子 應心은 軍資監主簿다 蓉은 三子를 두니 德元 桂元 仁元이요 의의 子 崇元 의 子 應元이다 기의 子 守敬은 司宰監僉正 贈左承旨요 芝는 五子二女를 두니 守成이요, 守先은 司馬 守訓은 司憲府監察이요 守盈이요 守緖는 歷說書 巡撫御史로 承旨에 오르고 順興 陶皐書院에 配享되었다 女는 漢陽 趙永祿이고 醴泉 權文海로 號는 草澗이고 左副承旨다 蕓은 三子三女를 두니 守謙은 贈吏曺參議요 守誼는 司馬로 薦授監察이요 守謹은 司瞻寺直長이고 女는 光山 金仲態이고 安東 權直養이고 昌原 黃有永이다 荀은 三子三女를 두니 守約 守儉은 幷 贈義禁府都事요 孝先은 中樞府事요 女는 申諶이고 金慶建이며 月城 李光胤은 號 양西로 弘文校理다 봉의 曾孫 成文은 同樞이고 玄孫 挺稷은 判官이요 薑의 孫 纘先은 贈軍資監正이요 榮先은 將仕郞이고 曾孫 成彦은 贈工曺參議요 成敏은 號 守默齋로 咸昌 淸巖書院에 配享되었다 玄孫 挺世는 從仕郞이요 挺瀛은 贈掌樂院正으로 子 仁恒은 贈禮曺參議요 孫 文祥은 贈兵曺參判이요 曾孫 尙新은 同樞다 應心의 孫 履華는 生員이고 六代孫 申慶은 號 能皐로 文集三卷이 行于世하다 守敬은 三子를 두니 瑛은 義禁府都事 贈司憲府執義 玲은 贈工曺參判이요 제는 通德郞이요 瑛은 六子를 두니 廷莢은 生員 贈左承旨이고 廷蓍는 歷三郡郡守 贈左承旨요 廷蔡이고 廷華이고 廷薛은 工曺參判으로 肅宗이 賜祭하였고 仲父 玲後로 出系하였고 廷茂이고 守謙의 子 玭은 護軍이요 은 贈左承旨요 守謹은 四子를 두니 瑩은 從仕郞이요 람(監+玉) 은 龍宮縣監이요 蕩은 承訓郞이요 예는 通德郞 贈掌樂院正이요廷莢의 子 世稷은 贈大司憲이요 廷蓍는 三子를 두니 世煥은 贈吏曺參判이요 世徽는 通德郞아요 世翰이요 世煥은 三子를 두니 希閔은 司諫院 正言아고 希逸이요 希任은 同知中樞府事요 希閔은 二子를 두니 成玉은 司憲部持平이요 成采는 出系하고 成玉은 二子를 두니 孫慶은 號 南野로 薦授英陵參奉 童蒙敎官 文集五卷이 行于世하며 金谷書院에 配享되었다 民慶은 仙洞處士이고 世徽의 曾孫 重慶은 號 東園으로 禮曹正郞 雲山郡守 文集二卷이 行于世하고 守誼의 曾孫 世重은 司馬요 世臣은 縣令이다 六代孫 趾慶은號 閒睡堂으로 正言이요 守緖의 子 는 副司直이고 守謙의 孫居華는 贈注書요 楊華는 贈刑曹參判이며 曾孫 世元은 從仕郞이요 世沃은 同樞이고 八代孫 天寧은 通政이요 예의 子 大華는贈戶曹參議이며 子 世龍은 贈刑曺參判에 二子를 두니 東贇은 僉樞요 東寶는 資憲同樞다 居華의 子 世馹은 僉樞요 孫慶의 子 漢東은 號退寢軒으로 薦授昌陵參奉이나 不就하고 有遺稿하며 希任은 二子를 두니 成一은 僉樞요 成五요 孫 必慶은 號 倣軒으로 僉樞요 曾孫 漢喆은 號 一笑子로 南野高弟요 玄孫 箕寧 은 號 荷수로 成均進士며 文集三卷이 行于世하고 濟寧은 生員이요 廷薛의 六代孫 駿寧은 生員이요 重慶의 孫 弼寧은 號 後齋로 僉樞이며 三子를 두니 周鍾은 號 山泉으로 道德行義가 儒林을 秉拂하고 文集七卷과 東園通誌 十六卷이 行于世하고 周雲은 弘文校理요 漆谷郡守 周庠은 號 南泉으로 鄕人이 義兵將으로 推戴하고 守訓의 五代孫 成珩은 號 一우로 文集이 行于世하고 守先 八代孫 顯寧은 僉樞요九代孫 周大는 號羅巖으로 進士 文集이 行于世하고 守謹 周敎는 司馬요 希任 曾孫 漢翼은 號 北坡로 有遺稿 五代孫 周鏞은 號 晩圃로 有遺稿하며 漢喆의 曾孫 義集은 號直齋로 文集二卷이 行于世하고 蕩의 曾孫 東臣은 號 松圃로 文集이 行于世하며 九代孫 鳳鎭은 號 國樵로 文集이 行于世하고 十代孫 斗洙는 進士요 守先 十代孫 祐鎭은 號 後松으로 文集이 行于世하고 十一代孫 祖洙는 號文溪로 文集이 行于世하며 成敏의 十代孫 觀植은 號 薇庵으로 文集이 行于世하고 瑩의 十一代孫 烈은 義士로 日王 暗殺未遂로 多年 獄苦를 치렀다 曾玄以下로는 大槪 顯著한 仕宦과 文行이 있는 子孫을 修錄하였다 이어서 銘하노니
처음 咸陽에서 星州로 흘러들고 다시 咸昌 利安으로 옮겨 왔네山高水長하고 松風과 蘿月은 三公도 부럽지 않네 일찍 받은 敎育 詩와 禮를 貫通했네 茅亭을 세워 後學 이끄니 五子登科로 三難을 얻은 家門 中宗이 賜祭하고 湖陰이 서술하니 積德累仁에 子孫이 繁昌하네 石物을 깎아 좋은 땅 가려 새우니 祖孫이 左右하여차례대로 섰네 大村이 擁護하고 松林이 羅列했다 五美峯이 磅박하고 兩쪽 물 活潑하네 우리 祖上의 蔭德은 山과 더불어 不滅하고 우리 祖上의 遺風은 물과 같이 不竭하리라
歲戊寅 四 月 日 十五代孫 暻植 謹撰
十六代孫 熙澤 謹譯
행정박선생신도비명(예천문화원발행 금석문)
부군의 휘는 눌이요 자는 여우며 호는 행정이다. 박씨성은 신라종성으로 팔대군분봉때 함양으로 득관하였다 기후로 년대가 멀어서 진기할수 없고 려조에 이르러 예부상서 휘 선을 상조로 하다 사전하여 휘 신유는 은청광록대부판예부상서추밀원사로 봉 응천군에 시는 충질이다 생 휘 지빈하니 조청대부 위위윤으로 시는 문원이다 생 휘 장하니 군부총랑으로 함양부원에 추봉되다 생 휘 충좌하니 호는 치암으로 순성보덕협찬공신으로 관직이 삼중대광판삼사사에 이르고 함양부원군에 시는 문제이며 남해란곡과 용문금곡 양서원에 제향되었다 생 휘 전하니 밀직지신사로 함양군이며 생 휘 문재하니 지밀직부사요 생 휘 원택하니 개성부윤으로 부군 고조이다 증조 휘 규는 공조판서 대제학으로 이조에 시사하였고 조 휘 이경은 사재감부정 울진현영 증좌통례다 고의 휘는 소종이니 사직으로 증이조참의며 비 숙부인은 안동권씨 서천군수 회의 녀이다 세종무진二月十四日에 부군이 성주오도종리에서 태어나다 부군은 천자가 준수하고 재지가 뛰어나니 일찍 교육을 받아 문예에 통철하였다 음사로 창락도찰방이되고 만년에 이안에모정을 세워 후학을 위한 필생사업으로 하였다 호음 정사용이 서하기를 세상에서 생오자도 난하고 오자등과도 난하고 오자구문도 난하거늘 공가에 삼난이 있어 더없는 경사라 하였으니 참으로 신빙할 말이다 중종무자년에 팔십춘추로 졸하고 六年 뒤 계사년에 오자귀로 병조참판에 추증되다 중종이 사제하고 청암서원에 배향되니 상향문에 왈 적덕한 군자요 락육한 현사라 계우에 세운 공로 예대로 정성 드린다 하였다 또 금곡서원에 배향되다 배 정부人은 안동김씨로 보백당 시 정헌공계행의 녀이다 묘는 함창 검한리 명당곡 을좌에 합봉되었고 오자일녀를 두니 거린은 장영 금산군수요 형린은 충주목사요 홍린은 양관제학 사헌부대사헌이요 붕린은 한림 시강원설서요 종린은 한림 홍문교리 이조정랑이요 녀는 변안인이다 거린의 子는 경수요 형린은 二子一女를 두니 봉은 선무랑 함은 통덕랑 女는 거창 신공달이다 홍린은 二子를 두니 강은 종사랑 창은 장사랑이요 붕린은 사자이녀를 두니 관은참봉 용의 붕 이요 女는 녕월 신수동 전주 이사숙이다 종린은 사자이녀를 두니 기는 선무랑 증좌통예 지는 선무랑 군자감주부 운은 사마증이조참판 순은 증병조좌랑 녀는 진주 강제 신응창이다 경수는 二子一女를 두니 효남 의남이요 女는 단양 장근이다 봉은 二子一女를 두니 처인 처예요 女는 부림 홍덕희다 함은 二子를 두니 처의 처예는 출이다 강의 子는 선승이요 창의 子 응심은 군자감주부다 용은 三子를 두니 덕원 계원 인원이요 의의 자 숭원 의 子 응원이다 기의 子 수경은 사재감첨정 증좌승지요 지는 五子二女를두니 수성이요 수선은 사마 수훈은 사헌부감찰이요 수영이요 수서는 역설서 순무어사로 승지에 오르고 순흥 도고서원에 배향되었다 女는 한양 조영록이고 예천 권문해로 호는 초간이고 좌부승지다 운은 三子三女를 두니 수겸은 증이조참의요 수의는 사마로 천수감찰이요 수근은 사첨사직장이고 女는 광산 김중태이고 안동 권직양이고 창원 황유영이다 순은 三子三女를 두니 수약 수검은 幷 증의금부도사요 효선은 중추부사요 女는 신심이고 김경건이며 월성이광윤은 호 양서로 홍문교리다 봉의 증손 성문은 동추이고 현손 정직은 판관이요 강의 손 찬선은 증군자감정이요 영선은 장사랑이고 증손 성언은 증공조참의요 성민은 호 수묵재로 함창 청암서원에 배향되었다 현손 정세는 종사랑이요 정영은 증장락원정으로 子 인항은 증예조참의요 손 문상은 증병조참판이요 증손 상신은 동추다 응심의 손 이화는 생원이고 육대손 신경은 호 능고로 문집三卷이 행우세하다 수경은 三子를 두니 영은 의금부도사 증사헌부집의 영은 증공조참판이요 제는 통덕랑이요 영은 六子를 두니 정협은 생원 증좌승지이고 정시는 역삼군군수 증좌승지요 정채이고 정화이고 정설은공조참판으로 숙종이 사제하였고 중부 영후로 출계하였고 정무이고 수겸의 子 빈은 호군이요 은 증좌승지요 수근은 四子를 두니 영은 종사랑이요 은 용궁현감이요 탕은 승훈랑이요 예는 통덕랑 증장락원정이요 정협의 子 세직은 증대사헌이요 정시는 三子를 두니 세환은 증이조참판이요 세휘는 통덕랑아요 세한이요 세환은 三子를 두니 희민은 사간원 정언아고 희일이요 희임은 동지중추부사요 희민은 이자를 두니 성옥은 사헌부지평이요 성채는 출계하고 성옥은 이자를 두니 손경은 호 남야로 천수영능참봉 동몽교관 문집五卷이 행우세하며 금곡서원에 배향되었다 민경은 선동처사이고 세휘의 증손 중경은 호 동원으로 예조정랑 운산군수 문집二卷이 행우세하고 수의의 증손 세중은 사마요 세신은 현령이다 육대손 지경은호 한수당으로 정언이요 수서의 子래는 부사직이고 수겸의 손거화는 증주서요 양화는 증형조참판이며 증손 세원은 종사랑이요 세옥은 동추이고 팔대손 천녕은 통정이요 예의 子 대화는증호조 자 세용은 증형조참판에 二子를 두니 동윤은 첨추요 동보는 자헌동추다 거화의 子 세일은 첨추요 손경의 子 한동은 호퇴침헌으로 천수창능참봉이나 불취하고 유유고하며 희임은 二子를 두니 성일은 첨추요 성오요 손 필경은 호 방헌으로 첨추요 증손 한철은 호 일소자로 남야고제요 현손 기녕 은 호 하수로 성균진사며 문집三卷이 행우세하고 제녕은 생원이요 정설의 육대손 준녕은 생원이요 중경의 손 필녕은 호 후재로 첨추이며 三子를 두니 주종은 호 산천으로 도덕행의가 유림을 병불하고 문집칠권과 동원통지 十六卷이 행우세하고 주운은 홍문교리요 칠곡군수 주상은 호 남천으로 향인이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수훈의 오대손 성형은 호 一우로 문집이 행우세하고 수선 八代孫 현녕은 첨추요구대손 주대는 호라암으로 진사 문집이 행우세하고 수근 주교는사마요 희임 증손 한익은 호 북파로 유유고 오대손 주용은 호 만포로 유유고하며 한철의 증손 의집은
호직재로 문집이권이 행우세하고 탕의 증손 동신은 호 송포로 문집이 행우세하며 구대손 봉진은 호 국초로 문집이 행우세하고 十代孫 두수는 진사요 수선 십대손 우진은 호 후송으로 문집이 행우세하고 十一代孫 조수는 호 문계로 문집이 행우세하며 성민의 十代孫 관식은 호 미암으로 문집이 행우세하고 영의 십일대손 열은 의사로 일왕 암살미수로 다년 옥고를 치렀다 증현以下로는 대개 현저한 사환과 文行이 있는 자손을 수록하였다 이어서 명하노니
처음 함양에서 성주로 흘러들고 다시 함창 이안으로 옮겨 왔네산고수장하고 송풍과 라월은 三公도 부럽지 않네 일찍 받은 교 육 시와 예를 관통했네 모정을 세워 후학 이끄니 오자등과로 삼난을 얻은 가문 중종이 사제하고 호음이 서술하니 적덕누인에자손이 번창하네 석물을 깎아 좋은 땅 가려 새우니 조손이 좌우하여차례대로 섰네 대촌이 옹호하고 송림이 나열했다 오미봉이 방박하고 양쪽 물 활발하네 우리 조상의 음덕은 산과 더불어 불멸하고 우리 조상의 유풍은 물과 같이 불갈하리라
세무인 四 月 日 十五代孫 경식 근찬
十六代孫 희택 근역
첫댓글 十五代孫 경식님은 새랄 아제인 것 같군요.
금곡서원앞에 새워있는 비문에 오자가 다소있음을 확인 바로잡은것을 에천문화원금석문에는 등재했으나 비는 아직 그대로 있어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