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향기 머금은 당신의 이름은 '菊花'


가을은 쓸쓸한 계절이라지만 국화가 있어 가슴이 따뜻해진다. 늦가을의 추위를 떨쳐 내고 은은한 향을 돋워내는 것이다. 국화를 두고 '가을의 군자'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화려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국화는 소박하고 정겹다. 멋내지 않은, 하얗고 노란 국화를 보노라면 어느새 마음은 너그러워져 있다. 가을, 국화를 온전히 즐겨 보자.
국화 축제로 가을을 즐긴다
이 즈음이면 나라 전체가 국화 향기로 흔들린다. 지난달 말부터 국화 축제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나들이 겸해서 찾아 보면 좋을 듯.
'가고파 국화 축제'(055-225-2341). 오는 6일까지 경남 창원시 마산항 제1부두에서 열린다. 국화 단일 품종으로는 국내 최대 축제로, 올해로 11회째다. 옛 마산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화의 상업적 재배가 시작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국화 한 줄기에 1천300여 송이의 꽃을 피우게 한 다륜대작(多輪大作)이 특히 볼 만하다. 기네스 기록에 등재된 것이다.
'거제섬꽃축제'(055-639-3980). 7일까지 경남 거제시 거제면 농업개발원 일원에 국화꽃을 펼쳐 놓았다. 행사를 위해 수집한 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거제면 농업개발원에서 한해 동안 직접 키운 꽃으로 펼치는 축제다.
그 밖에 부산 근교 국화 관련 행사로는 20일까지 계속되는 '울산 가을꽃 전시회'(울산 북구청 분수광장 일원)를 비롯해 '횡천강 국화 전시회'(6일까지 경남 하동군 횡천강변 일원) 등이 있다.
부산에선 제법 먼 거리지만 호남 지역에 볼 만한 국화 축제가 많다. 그 중 '대한민국 국향대전'(061-322-0011)이 대표적. 13일까지 나비로 유명한 전남 함평군 함평엑스포공원에서 열린다. '가고파 국화 축제'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 국화 축제로 꼽힌다. 100만㎡에 달하는 대지에 펼쳐진 국화 천지가 장관. 그 속을 국화향 맡으며 자전거 타는 재미가 각별하다.
'영암 왕인 국화 축제'(20일까지 전남 영암군 왕인박사유적지 일원), '고창 국화 축제'(13일까지 전북 고창군 성남리 일원), '진도 국화 문화예술축제'(16일까지 전남 진도군 향토문화회관), '정남진국화페스티벌'(6일까지 전남 장흥군 천관산 일원), '익산 천만 송이 국화 축제'(6일까지 전북 익산시 익산중앙체육공원)도 있다.
국화, 종류 따른 분위기 연출법
국화 전문가들은 흔히 스탠더드(Standard) 국화, 스프레이(Spray) 국화라 부르는데 이는 국화의 착화 습성에 따른 분류다. 스탠더드는 하나의 꽃대에 하나의 꽃만 피워 출하하는 국화, 스프레이 국화는 하나의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을 착생시켜서 출하하는 국화다.
하지만 국화는 보통 크기로 구분한다. 대국(大菊). 꽃 지름이 18㎝ 이상의 것을 일컫는다. 국화 중 가장 인기가 높다. 꽃의 색채, 꽃잎의 형태가 다양하며, 크고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꽃 지름이 9~18㎝의 것을 중국(中菊)이라 한다. 화려한 맛이 없어 별반 인기를 끌지 못한다. 9㎝ 미만의 것이 소국(小菊)인데, 품종이나 색채가 가장 다양하다. 분재나 이런저런 모양의 국화 형상을 만들기에 좋다.
국화엔 가을의 색이 모두 담겨 있다. 붉은 단풍의 빛깔에서 금빛 들녘의 색채, 순백의 고결함 등등. 그 밖에도 종류별로 10여 가지 다채로운 색을 띠는 게 국화다.
그 중 황대국이 가장 가을 분위기가 난다. 순수한 노란색보다는 주황색을 곁들여 부피감 있게 조형하면 집안에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가을 색감을 연출할 수 있다. 소박한 자연미를 느끼고 싶다면 흰 소국이 낫다. 흰 소국을 다소 투박하고 작은 토분에 소담하게 심어서 식탁 등에 올려 놓으면 시골 들판에서 자연스레 핀 야생화로서의 매력을 발결할 수 있다.
국화는 홀로 있어도 충분히 매력 있지만 다른 꽃과 어울리게 해놓으면 색다른 분위를 연출할 수 있다. 대국의 경우는 색은 연하고 크기는 작은 꽃을 곁들여 꾸미는 게 낫고, 작은 소국은 그보다 큰 꽃들 사이사이에 도드라지는 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게 존재감을 제대로 살려낼 수 있다.
국화에 어울리는 다른 꽃으로는 세련된 느낌의 달리아 계열이나 강렬한 색감의 맨드라미 등이 주로 추천된다. 예를 들어 주황색 소국이라면 빨강 맨드라미같은 붉은 계열의 다른 꽃 사이에 서너 송이 끼워 놓으면 존재감이 훨씬 살아난다. 화려한 색상을 가진 국화는 그 색상에 대비되는 색의 다른 꽃들과 어울리게 장식하면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
국화, 마시고 먹기도 하는 꽃
좀 쌀쌀하다 싶은 날, 국향 그윽한 국화차 한 잔을 마시면 온몸이 따뜻해 진다. 골치 아픈 일이 많을 때도 국화차는 효과 만점이다. 한방에서는 어지러우면서 머리가 아플 때 국화차를 처방하기도 한다. 이 경우 국화가 피어 있는 동안 찬서리를 보름가량 맞아야 약으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국화차는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다. 부산 중구 광복동 용정다원이 추천하는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소금을 넣은 뜨거운 물에 꽃잎을 2분 정도 데친다. 꽃잎을 건져내 냉수로 헹궈 소금기를 완전히 뺀다. 물기도 빼서 그늘에 2일 정도 말려 밀봉 보관한다.
3~4송이 국화를 찻잔에 넣고 따뜻한(90도 정도) 물에 1분 정도 우려내 마시면 된다. 한 번에 4번 정도 우려 마실 수 있다. 별도로 녹차 위에 띄워 마셔도 독특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말린 국화꽃에 꿀을 버무려 보관해뒀다 끓는 물에 타서 마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 국화나 다 국화차가 되는 건 아니다. 차로 쓰일 수 있는 국화는 소국 중에서도 꽃심이 없고 꽃잎이 아주 부드러워야 한다. 흔히 감국 또는 황국이라 불리는 국화를 차로 많이 애용한다. 들국화처럼, 주변에 피어있는 잡다한 국화로 차를 만들면 자칫 독성을 띨 수도 있다.
시중엔 국화차를 위한 국화를 따로 판다. 국화차는 향도 중요하게 여기므로 만일 야외에서 채취할 경우 꽃이 다 피지 않고 80% 정도 피었을 때 채취하고, 건조시킬 때 저온 건조토록 해야 한다. 그래야 향이 보존된다.
기국차(杞菊茶)라는 것도 있다. 감국같은 국화에 구기자, 참깨나 검은깨, 녹찻잎을 볶거나 건조시켜 가루로 만들어 한데 섞은 후 소금과 우유를 부어 달여 먹는 차다. 국화차와는 또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설기같은 떡을 만드는 데 식용 국화를 이용하면 독특한 향과 맛을 낼 수 있다. 국화꽃 우린 물에 떡반죽으로 하거나 시루에 찔 때 국화꽃잎을 올려 찌면 향이 짙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