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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의 '2011 신년방송좌담회-대통령과의 대화'가 생중계되는 서울역 대합실 TV 옆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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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님, 설 연휴 잘 쇠셨는지요. 대통령께선 설 연휴 직전에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 2011 대한민국은!' 방송좌담회에서 구제역에서부터 개헌 문제까지 한국 사회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 두루 언급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일방통행식 소통이어서 실망이 컸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직접 무상급식을 거론하며 '복지논쟁'에 가세한 것은 의미가 큽니다. 복지와 재정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지역기반으로 나뉜 우리나라 정당이 정책기반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대통령이 일방적인 주장이나 사실 왜곡을 앞세우면 사회적 발전을 위한 건전한 논쟁과 토론이 불가능합니다. 사실 왜곡의 대표적인 사례는 무상급식에 대해 반대하면서 내세운 삼성이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입니다. 대통령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도 ~ 해봤지만'이라는 '체험지상주의 어법'을 써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나도 손자들이 있지만, 특정인을 거론해서 그렇지만 삼성그룹 회장 같은 분의 손자 손녀야 무상급식 안 해도 되지 않겠느냐. 무상으로 가면 (국가 재정이) 감당 못한다."
MB맨들에게 삼성의 손자 손녀는 '전가의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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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왼쪽)과 이재오 특임장관(자료사진)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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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가의 보도'냐고요?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는 이른바 MB맨들이 무상급식 반대논리를 펼 때면 으레 삼성그룹 회장 손자 손녀를 들먹이기 때문입니다. 특정인을 거론해서 뭐하지만, 실은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도 얼마 전에 실명을 거론하며 했던 얘기입니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위해 출범한 자발적 민간기구'라는 동반성장위의 위원장 자격으로 가진 지난달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손자까지 무상급식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나라가 어디 있냐. 나도 굶어 봤지만, 무상급식은 사치다."
역시 MB정부 전직 총리답게 '나도 굶어 봤지만'이라는 '체험지상주의 MB 어법'을 쓴 것이 눈에 띕니다. 아, 이제 보니 이재오 특임장관도 그보다 앞서 한 보수단체가 주최한 신년교례회(1월 6일)에 참석해 이건희 회장의 실명을 거론했네요. 다만, 이 회장만 거론하기가 머쓱했던지 자신의 손자까지 예로 들며 이렇게 말했네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손자와 이재오 특임장관의 손자가 한 달 급식비 3만7천 원을 내지 않고 공짜로 학교급식을 먹어야 하겠느냐. 가난한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하고 그 돈으로 교육시설을 개선하거나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운하건 개헌이건, MB의 뜻이라면 몸을 던져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재오 장관의 허접한 논리는 이미 한반도 대운하 논리에서 깨진 바 있습니다. 그는 한나라당 최고위원 시절에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정책을 "국가 전체의 기를 살리고 국민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뻥'을 친 '전력'이 있습니다.
"우선 돈이 한 푼도 안 든다. 운하를 만들면 옆에 새롭게 500만 평의 땅이 조성되고, 이를 민간기업에 불하나 임대 하면 건설비용이 넘게 나온다. 또 운하를 건설해서 그 이전보다 환경이 파괴된 예는 전세계적으로 없다. 운하에 맞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또 4~5년의 공사기간 동안 실업자 전체를 흡수할 수 있다. 운하 건설정책은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줄 것이다."
경제학자인 정운찬 전 총리의 논리도 허접하긴 '오십보백보'입니다. 여러 말 안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복지문제를 논의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종인 전 의원입니다. 그는 우리나라에 의료보험 제도를 처음 도입한 산파역이었고, 87년 개헌 당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경제분과위원장으로서 이른바 '김종인 조항'(119조 2항 경제 민주화 조항)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이건희 회장 손자 손녀는 사립학교에 다녀 무상급식 대상 아냐
한때 정 전 총리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그는 최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복지 확대 주장을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는 한나라당의 논리를 이렇게 반박했더군요.
"정치적으로 감각이 없다. 흔히 복지 과잉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 복지 때문에 망한 나라는 없다. 강자만 살아남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재분배는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이다."
이처럼 MB맨들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손자 손녀를 앞세운 무상급식 반대논리는 한 마디로 허접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니 대통령까지 이들을 따라 하면 국가적 망신입니다. 왜냐고요?
우선, 이건희 회장 손자손녀는 사립학교에 다니기에 무상급식(공짜점심) 대상조차 아닙니다. 참고로 사립학교 등록금에는 급식비가 포함돼 있습니다. 설령 MB가 나라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는 삼성전자 회장이 너무 고마워 그 손자 손녀들에게 공짜점심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MB맨들과 한나라당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손자 손녀를 들먹이는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잘못된 거증(擧證)입니다. 무지의 오류입니다.
부자라고 해서 급식에 차별을 두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납니다. 흔히 국방, 납세, 교육을 근대국가 국민의 3대 의무라고 합니다. 근로를 합치면 4대 의무이지요. 정부는 근로와 납세 의무를 지우는 대신에 소득에서 부자건 서민이건 똑같이 자녀 공제를 해줍니다. 부자들의 자녀에게 공짜점심이 제공되는 것이 그렇게 문제라면 부자들에게도 자녀만큼 세금이 공짜(면제)인 것은 왜 문제가 안 되나요?
사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대통령께선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손자 손녀까지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3자녀는 모두 사립초등학교인 경기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4자녀 역시 모두 사립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것도 '위장전입'으로 실정법(주민등록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사립학교를 보냈습니다.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위장전입에 대해 잘못했다고 공식사과도 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대통령은 4자녀 중 두 자녀를 자신 소유의 '영포빌딩' 관리업체에 '유령직원'으로 위장 취업시킨 것이 드러나 뒤늦게 관련 세금을 납부하고 지급한 월급은 증여로 처리했습니다. 경선기간에 국민 10명 중 6명이 이 문제가 대통령이 되는 데 문제 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나자 공식 사과했습니다. 수백억대의 재산가이면서도 자녀를 위장 취업시켜 세금을 포탈했던 사람이 '부자의 공짜점심' 운운하는 것은 '악어의 눈물'입니까?
도대체 이건희 회장의 손자손녀가 몇 명이나 되나
설령 이건희 회장의 손자 손녀가 공립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공짜점심 반대논리가 허접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이건희 회장의 손자도 공짜로 밥을 먹이자는 얘기냐"는 주장은 일종의 논점 일탈의 오류이자 국민의 정서에 기댄 포퓰리즘입니다. 왜냐고요?
이렇게 반문하렵니다. 무상급식 아닌 선별급식이라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돈이 많다고 해서 자녀들에게 초등학교 등록금을 받아야 하나요? 그리고 도대체 이건희 회장의 손자 손녀가 몇 명이나 됩니까?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이 이건희 회장의 손자 손녀들에게 공짜점심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국가 재정이 부실합니까?
대통령은 좌담회에서 "무상으로 가면 (국가 재정이) 감당 못한다"면서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의 복지도 사실상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을 콕 집어 "스웨덴 총리가 '한국이 자신들의 복지를 배우겠다고 하는데 자신들도 개혁을 하고 있는 만큼 따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보편적 복지'의 롤 모델이었던 스웨덴의 사민당 정부가 2006년 총선에서 패해 보수연립정부에게 정권을 넘겨준 이래 '수술'이 진행 중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복지가 후퇴하는 선진국의 예로 든 프랑스와 독일, 스웨덴에 견주면 한국의 복지는 여전히 '형편 무인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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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복지는 OECD '꼴찌' 이 대통령은 복지가 후퇴하는 선진국으로 프랑스와 독일, 스웨덴의 예를 들었지만, OECD의 사회적 지출(SOCX) 통계에 따르면 상위 1~2위권인 이 선진국들과 꼴찌에서 1~2위인 한국의 복지는 '천당과 지옥'의 차이나 다름없다. |
ⓒ OEC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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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96년부터 회원국의 복지정책을 분석하기 위해 개발한 '사회적 지출'(Social Expenditure, SOCX)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복지수준은 부끄럽게도 32개 OECD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권입니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SOCX 비중은 7.5%로 그 밑에는 멕시코밖에 없습니다. 정부 총지출액 대비 공공 SOCX 비중은 26.3%로 한국 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참고로 프랑스는 GDP 대비 공공 SOCX 비중이 28.4%로 OECD 회원국 중 1위입니다. 독일 역시 정부 총지출액 대비 공공 SOCX 비중이 57.8%로 이 부문 1위입니다. 스웨덴은 GDP 대비 공공 SOCX 비중은 27.3%, 정부 총지출액 대비 공공 SOCX 비중은 53.6%로 각각 2위와 8위입니다. 요컨대 대통령은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스웨덴을 복지가 후퇴하는 선진국의 예로 들었지만, 복지지출이 상위 1~2위권인 이들과 꼴찌에서 1~2위인 한국의 수준 차이는 '천당과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헌법의 무상 의무교육과 경제 민주화 조항
굳이 외국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건희 회장의 손자 손녀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할 이유는 헌법 정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의무교육을 무상으로 할 것(제31조 3항)과 '공동체 가치'를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경제 민주화'(119조 2항)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무상급식은 단순히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평등한 식생활은 학생들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인격과 자존심이 존중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중요한 공교육 기능의 하나입니다.
그래도 이해가 잘 안 되나요? 그러면 신년 방송좌담회 직전에 <중앙SUNDAY>(1월 31일)에 실린 '고아원에 자녀 데려가는 정용진 부회장'이란 제목의 칼럼을 읽어보면 감이 잡힐 것입니다.
"정 부회장은 몇 년 전부터 '어린이재단'(회장 이제훈)이 운영하는 장애영아원과 노인요양원 등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어린 두 자녀도 데려간다. 어린이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부회장의 아이들은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요샌 잘 어울린다고 한다. 이런 얘기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건 정 부회장 측에서 한사코 취재를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칼럼에 소개된 정용진(43) 신세계백화점 부회장은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외손자로 이건희 회장의 조카입니다. 그러니 정 부회장의 두 자녀는 이건희 회장의 손자 손녀이기도 합니다. 정 부회장은 왜 아이들을 이른바 '불우시설'(不遇施設)에 데려갈까요? 보통사람들과는 '출발선'이 다른 자신의 자녀들을 공립학교에 보내진 않더라도 적어도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을 체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이들의 체험이 누구처럼 '악어의 눈물'로 끝나선 안 되겠지요. 이들이 오래 지속된 자원봉사 체험을 통해 진정성을 가질 때 비로소 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나도 어릴 때부터 불우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해봐서 알지만"이라는 체험담과 함께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조화로운 삶을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건희 회장의 손자 손녀에게도 무상급식(공짜점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