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계단
초로에 접어들면서 나는 집을 떠나 이곳저곳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얼마 전부터는 여기 서울의 관악산 밑에 아파트의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혼자 살게 되었다. 주인은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인 내외분. 방안엔 난초 분 하나가 고즈넉할 뿐 자녀들은 모두 따로따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노인 내외분은 나를 어찌나 훈훈하게 대해 주는지 대구에 계신 내 부모님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새벽녘이면 숨이 끊어질 듯한 바깥 노인의 기침 소리가 내 아버지 기침 소리 같아 창자가 죄인다.
창문을 열면 관악산 봉우리가 우르르 내 방으로 들이닥치고 눈을 감으면 천리 밖 고향산천이 가슴 그득 밀려온다.
뚜벅, 뚜벅, 아파트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면 언제부턴가 이 계단을 세어 본다. 4층 내 방까진 꼭 마흔아홉 개의 계단을 밟아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내 나이와 맞아떨어진다.
계단을 내려갈 땐 내려가는 거니까 나이를 빼면서 내려간다. 다 내려가고 나면 태아가 된다. 바깥에 나오면 출생한 것으로 친다. 갓난아기의 마음(赤子之心)으로 하루를 보내고자 한다. 올라올 땐 올라오는 거니까 나이를 더해 보되 뺀 나이에서 더하지 못하고 본 나이에서 더해 간다. 온종일 시정(市井)에 떠돌고 나면 어느덧 마흔아홉 살 때묻은 내 모습이 돼 있어서다. 내 방 앞에 이르고 나면 아흔여덟 살의 호호백발이 된다. 잠시 멍해진다.
이럴 때 나는 또 하나의 다른 계단을 생각하게 된다.
이십 년이 훨씬 넘은 옛날,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산속에 집을 지었다. 집이래야 단칸 오막살이였다. 흙을 이기고 벽돌을 박아 그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며 아버지는 이 아들의 공부방을 만든 거다. 산비탈을 깎고 돌을 괴어서 층층이 계단을 만들었다.
어허! 이만하면 절간보다 낫겠구나. 글 읽고 몸 다듬어 세상에 나가거든 계단이 되거라. 이 돌계단 말이다. 알겠느냐?
이러시며 아버지는 그 계단을 쾅, 쾅 구르셨다. 미거한 자식이지만 부명(父命)을 어찌 몰랐으랴!
아버지는 밭 팔고, 논 팔고, 돼지 팔고, 소 팔고, 자존심도 팔고, 어머니는 땔나무꾼이 되고, 저수지 공사판의 인부가 되고, 동생들은 형의 교복이나 만져 보고 입어 보고, 친구는 침대 위에 자고 나는 그 침대 아래 방바닥에 자고……. 비실비실 대학을 마친 뒤, ‘됐다!’ 하고 산방에 틀어박혔다. 촛불을 태우고 젊음을 태웠다.
산방에 틀어박히기 전부터였다. 귓속에서는 늘 벌레 소리 바람소리가 났다. 먹은 음식이 늘 소화가 안 되었다. 시름시름 머리가 아프고 공부가 되질 않았다. 산방에 틀어박혀서도 여전했다. 칼이 짧으면 한 걸음 다가서야 할 텐데 툭하면 며칠씩 드러눕곤 했다. 마디에 옹이라더니 내 앞가림이라도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될 궁박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무슨 생화라도 해야 할 판국, 학철부어(涸轍鮒魚)가 따로 없었다. 뒷날의 기약을랑 입 밖에 내지를 말 것을…. 때 아닌 광풍에 잔화(殘花)가 흐느끼게 될 줄이야! 밥벌이나마 하려고 그 산방을 아주 떠나야 했다. 그때가 산방에 틀어박힌 지 고작 이태를 넘기고서였다.
가랑잎 분분한 지창 너머로 달빛이 대낮 같은 밤이면 괜히 심란해 몸을 뒤척였고, 하얗게 눈 덮인 산등성이 위로 노루가 쉬엄쉬엄 달아날 땐 내 마음도 그 노루를 따라 눈 위로 마냥 달려가고 있었던 그때 그때가, 이십여 년이 흘러간 지금도 광망(光芒)처럼 되살아난다. 육법전서를 베고 자던 그 산방의 적요하고 고독한 추억이 애틋한 사랑처럼 찡하게 내 가슴을 허빈다.
마음은 늘 낮은 데 자리하여 남의 발밑에 깔리고 밟힌다. 그렇게 함으로써 밟는 자를 도우는 그 계단이 되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나는 끝내 이루지 못했다. 다만 세상이 만들어 놓은 계단을 따라 부침(浮沈) 표박(漂泊) 여기까지 이르렀을 뿐이다. 낮에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고 밤에는 대구에 남겨둔 여덟 식구의 생계비를 걱정한다.
할머니 말씀마따나 아들 하나 사람 만들려고 한평생 친구도 모르고 주막집 같은 데에도 한 번 안 가셨던 우리 아버지가 이제는 몸져누우셨다. 몇 해나 더 사실 수가 있을까? 허물어진 산방, 그 돌계단은 아버지의 허물어진 모습이다. 이 아들이 밟고 갈 하나의 계단이라도 되고 싶은 그 비원은 쓸쓸히, 쓸쓸히 허물어져 갔으리라.
허물어진 산방, 그 돌계단을 떠올리면 나는 나 자신의 불운보다 아버지의 허무한 일생을 생각하게 된다. 이 아파트 계단을 대하면, 노인의 기침 소리를 듣게 되면 옛날의 그 산방, 그 돌계단이 여기 아파트 계단에 포개진다. “계단이 되거라. 이 돌계단 말이다. 알겠느냐?” 쾅, 쾅 발을 구르시던 아버지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쿨룩, 쿨룩, 쿨룩……’ 가슴을 저미는 듯한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황량한 이 계단 위에 부서진다. 고독과 회한이 서려 있는 여기 마흔아홉 계단에 서서 오늘따라 나는 왜 이리도 서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