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십자드라이버>(김영하)
1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당신이 제 말을 조금만 들어주었던들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당신은 제게 교양이 없느니, 무식하다느니, 못 배워먹었다느니, 별소리를 다 퍼부어댔죠?
당신이 그랬죠. 콤플렉스 때문에 당신을 좋아하는 거라고. 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그것만은 믿어주세요. 그리고 절 용서해주세요. 정말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당신에게 이렇게 마음 편하게 편지를 쓸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2
사람들마다 가장 아끼는 물건이 하나쯤은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십자드라이버를 사랑합니다. 제가 보기에 인간은 딱 두 종류에요. 십자드라이버 인생하고 안 그런 인생. 이 두 종류의 인간들이 함께 사니까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전 생각해요. 비극이에요.
전자제품이나 기계한테 막 하는 인간치고 제대로 된 인간들이 없어요. 저는 그런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인간들 보면 정말 쏴죽이고 싶어요. 제가 좀 흥분한 것 같습니다. 용서하세요.
3
솔직한 얘기로 저 당신 꿈 많이 꿨습니다. 이상한 꿈이었죠. 당신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제가 그 옷을 다 벗겼죠. 사람 미치겠더라구요. 그런데 제 손에 난데없이 십자드라이버가 들려 있는 거예요. 그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 당신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사들이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그걸 분해하니까 뭐가 나왔는지 아세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당신 몸뚱어리들을 주워 모아 다시 조립하기 시작했어요. 한참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조립을 마쳤을 때, 당신은 전혀 다른 여자가 되어 있었어요.
바로 우리 엄마였어요.
4
엄마는 절 혼자 키웠지요. 엄마는 동네에서 작은 술집을 했어요. 남자 하나 떠날 때마다 늘 화풀이당하는 건 저였어요. 한 번은 돈을 제법 모아서 항공모함 키트를 사가지고 왔는데요. 마지막으로 비행기들을 갑판 위에 붙이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왔어요. 술에 많이 취해있어서 비틀거렸지요. 이 지랄 맞은 놈아. 너만 안 들어섰어도 내가 이 팔자가 안 됐어야. 나가 뒈져라, 뒈져. 나가 뒈지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항공모함은 엄마 손에서 떠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이지 기계가 사람보다 나아요. 정말이에요.
5
당신을 지켜보기만 하면서 제 마음은 더더욱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였어요. 그 여자에게 내가 필요하도록 만들면 되잖아?
어쨌거나 그때의 펑크는 그래서 난 겁니다. 그날 재키로 차를 들어 올리고 스페어타이어로 갈아 끼우는 동안 당신과 나누던 대화를 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전 일부러 천천히 타이어를 갈아 끼웠습니다. 왜 그러세요? 당신 목소리엔 짜증이 섞여 있었습니다. 전 화가 났습니다. 아뇨, 더운 데 하도 오래 있었더니 머리가 좀 어지러워서요. 그제야 당신은 근처 슈퍼에서 게토레이 하나를 사왔습니다. 당신은 그런 여자였습니다. 타이어를 다 갈아 끼우자 이별이었지요. 시계를 보면서 급하게 액셀을 밟는 당신을 보면서 전 알게 됐어요. 이런 짧은 만남으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6
당신은 택시를 잡았습니다. 저도 택시를 잡고 당신을 따라갔습니다. 당신은 ‘어린 왕자’라는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시가 되어서야 당신은 나왔습니다. 머리가 벗어진 남자의 엉덩이를 껴안고 그의 볼에 키스를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건 배신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이해했습니다. 당신도 부모 복이 지지리도 없었겠지요. 당신이 사당동, 하고 부르면서 택시를 잡자 저도 사당동, 하면서 올라탔습니다. 당신은 앞자리에 탄 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내렸고 만취한 당신은 비틀거렸습니다. 그다음은 당신이 아는 바와 같습니다. 아파트 앞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당신은 제 부축을 받고서 저희 집까지 간신히 가서 쓰러진 거지요.
7
옛날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캐리를 끌고 강변에 나왔는데 그때 제 옆에 여자애가 하나 타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쉽지만 캐리는 진짜 완벽한 차였어요. 옆에 앉은 여자애는 쉬지도 않고 줄창 노래를 불렀어요. 지겨웠어요. 액셀 밟을 때마다 엔진 소리 달라지는 거 안 들리냐? 내 짜증이야 어쨌든지 간에 그 여자애는 계속 재잘거렸죠. 그때 암사동 쪽 진입로에서 쓰레기트럭 한 대가 올림픽대로로 진입해서 우리 차선을 막는 거예요. 캐리는 정말 멋진 차였어요. 그렇게 급제동을 했는데도 밀리거나 돌아버리지 않은 거니까요. 쓰레기차 박는 건 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뒤로부터 뭔가 강한 힘이 밀려오는 걸 느꼈죠.
좀 있으니까 견인차가 제일 먼저 오데요. 견인차 운전사란 새끼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저 차 폐차해야 되겠는데요.’ 하는데 정말이지 죽여 버리고 싶었어요.
아니, 다른 사람이 있었잖아? 여잔 거 같은데. 그러니까 그제야 그 여자 생각이 나대요. 치료비야 뭐 저보고는 아무도 돈 달라고 안 하데요. 그 여자야 어찌 됐든 폐차장에 가서 납작하게 찌그러졌을 차 생각만 나는 거예요. 제가 그런 놈이에요.
8
저희 집에서 일어난 당신은 놀란 눈치였어요. 제가 당신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안 했는데 당신은 마치 제가 강도라도 되는 듯이 굴었어요. 제가 당신하고 같이 자자고 그랬습니까? 그냥 하루만 저와 함께 있어달라고. 물론 당신이 제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려고 해서 피치 못하게 얼굴을 한 대 때리긴 했지요. 그건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과하는 김에 마저 하지요. 그 일도 어쩔 수 없었던 겁니다. 당신이 TV나 옆에 놓여 있던 제 자동차와 비행기, 그리고 라디오를 부숴버리지만 않았어도.
화가 나서 다가간 제게 당신은 또 어떻게 했습니까? 십자드라이버를 들고 가까이 오면 죽인다고 했습니다. 당신, 그것만큼은 잡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것만큼은.
9
당신은 꿈속에서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보낸 그 밤. 당신은 저를 거부하지도 않았고 밀어내지도 않았습니다.
사랑입니다. 제 사랑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 차가운 냉장고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용서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