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오월도 하순에 접어 들었습니다.
신록의 산은 푸르름이 한층 짙어져 초록죽제를 벌입니다.
그 푸르름 속, 여기 저기에 하얀 찔레꽃의 어우러짐이 사뭇 아름답습니다.
하얗게 피어난 찔레꽃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은은한 향기가 감미롭습니다.
걷던 걸음을 멈추고...
찔레꽃술에 코를 대어 봅니다.
청순하고 순결한 모습의 찔레꽃을 보면 웬지 슬퍼집니다.
슬픈 전설을 간직한 꽃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우리집 울타리에 넝쿨 장미꽃이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히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나랑 친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만...
몇해 전, 이맘때...
가을에 가지치기를 해 주었는데..
겨울을 지내고 나니 그래도 여기 저기 죽은 가지가 있어서...
꽃봉우리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즈음에서야...
가시에 찔려가며 마른 가지를 잘라내고 있는데...
"안녕하세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립니다.
돌아다 보니...
훤칠한 키에 선그라스를 낀 청년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넵니다.
누군가 의아해 하는 내게...
"저 전에 이 집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니, 그럼 호주에 사신다는..."
말끝을 흐리며 생각해 보니 아주 오래전...
어느해인가도 왔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정말 젊은 청년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는 오십대의 중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윤식"이라는 그의 이름도 얼핏 생각이 났습니다.
35년 전인가...
기억도 아슴프레한 그 시절, 그의 어머니에게서 이 집을 샀는데...
미소년이었던 중학생의 모습이 언뜻 떠올랐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호주로 이민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이제서야 생각이 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왔었노라고...
와서는 한 바퀴 둘러보고는 돌아가곤 했었노라고...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니...
어머니는 수년 전, 호주에서 한국에 있는 친척을 만나러 왔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 돌아가셨다고...
어머니 돌아가신 때가 이맘때였다고...
안으로 들어오지 그랬느냐고...
언제고 오시면 현관문 열고 들어오시라 하며...
차 대접을 했습니다.
그는 차를 마시며...
산모퉁이 돌아가는 길 옆에 섰던 키 큰 오동나무를 초등 4학년 때...
구성말에서 묘묙을 얻어다 심었는데 오동나무도 안 보이고...
산 비탈에 벗나무도 심었는데...
그것도 안 보인다고...
여간 서운해 했습니다.
그는 또...
"저는 지금도 가끔 이 집 꿈을 꿉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은 잊을수가 없는가봅니다..."
그는 일어나더니...
"집을 잘 가꾸고 살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깍듯이 인사를 합니다.
언제든지 오면 현관문 열고 들어와서 차 한잔 하고 가라 하다가...
괜시리 가슴이 시려오며 눈물이 피잉 돌았습니다.
마치 오랜동안 떠나갔던 고향을 찾은 아들을 보내는 것처럼...
찔레꽃이 피면...
장미꽃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하면...
혹시 나 없는 새 오지 않았었을까...
생각이 나곤 합니다.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입니다만...
그러나 상관이 있는 그 사람...
진딧물이 끼었나...
꽃이 언제쯤이나 피려나...
기웃기웃 넝쿨장미를 들여다 보면...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습니다.
지금쯤 오면 향기로운 햇백목련 차를 대접할텐데...
첫댓글 한동수님 글 읽으며 마치 제가 그 사람이 된 기분입니다.
제가 그랬거든요....몇 해전 까지도 아름다운 추억의 유년시절의 집을 찾아 다니기를 여러 해 했거든요..
추억을 안고 찾아 오는 길손에게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님의 따스함에 감동합니다.
한동수님께 제가 감사드립니다.
찾아오시는 그분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마음안에 고이 간직한 고향집을 찾아 오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시길 기도드립니다. ^^
6월..저는 시간이 많은데요,
백목련 차를 마시러갈까요?..
마치 타사의 정원속에 사시는 행복한 할머니 같아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