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족(桓檀族)우리 배달의 선조들이 웅장하고 광활한 동북아 땅을 지배했던 세계 최초의 지역탐사 한국사 지도의
한민족이 잃었던 옛 고토(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 중국동부 지도) 를 다시 회복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기원 하면서 21세기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 책보고님 업적으로 역사에 보존하고 기억될 대작입니다.
땅의 이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유산이요, 문화재라 할 수 있습니다.
전래 지명에는 민족의 이동 경로의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이나라의 최고 역사학자들도 감히 도전도 못한 동북아 지도에 표기된 모든 지명들의 어원을
남득하기 싶게 우리글 문자로 옮겨 주심과 지명의 옛 고토 역사 설명의 위대 하심은 안타깝게 잊어버린
우리민족의 광활한 동북아 옛 고토를 역사적으로 찾게 해주는 위대한 업적 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조선시대 제작된 고려 서경의 옛지도 그림과 북경의 지도가 맞아 떨어지다니 우리 역사 영역을
넓게 보니 진실이 보입니다.강단사학계에서도 반박할 게 없겠군요.
엄밀히 말하면 동북공정은 한국 역사학자들이 한겁니다. 중국은 때는 이때다 해서 70년대 부터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한국 역사학자들이 주장한대로 한결과를 이용 손쉽게 자기들의 역사 영토로 옛 광활한
옛 고토(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 중국동부 지도)고려의 영토를 꿀꺽 씹지도 아니하고 집어 삼켜 먹었습니다.
너무 많이 급하게 집어 삼켰 으니 이제는 토해낼 때가 되었습니다.
중국 역사서(중국사서)를 열어 놓고 설명을 하시니, 정말 훌륭하신 검증 방법입니다
고려 서경은 평양이 아닌 중국의 북경이 고려의 서경 이었군요 .중국 북경이 고구려 시대 평양이자...
고려시대 서경입니다.
묘청의 서경천도는 곧 지금의 북경으로 천도함을 일컬은 거죠
정말 통쾌한 우리 역사탐구의 위대한 성과입니다. 중국사서 고려발해 유민기사에
고려땅에는 3개의 수도가 있으니 송악이 중경,목멱양이 남경 ,평양이 서경이 된다.
삼국사기에는 동북아에 고구려,백제,신라위치를 그리고
마한,진한,변한 삼한통일을 한 왕건 기록이 되어 있다.책보고님 이시대 진정한 영웅입니다.
우리민족의 약 1500여년 (고구려~발해~고려) 역사의 "심장부", 한민족의 평양.
그곳이 지금의 "중국의 수도"라니.....중국이 "우리의 수도"를 빼앗고 자기들의 수도로 삼았다니 ....
고려도경(권3 성읍)에는 뭔가 이상한 내용이 있습니다. 고려에 파견된 송나라의 사신이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선화봉사 고려도경이라는 책을 남긴 서긍이라는 인물입니다
예종의 조문과 인종의 즉위를 축하하기보다는 고려의 정세를 염탐하고 정보를 알아내어 송나라의 중요한
외교자산으로 삼기위해 책을 남겨 휘종에게 바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입니다.
고려의 강역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있던 내용과 전혀 다른 기록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고려의 남쪽은 요해로 막혀있고, 서쪽은 요수에 접해있으며 북쪽은 거란과 맞닿아있으며
동쪽은 여진과 만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려도경에서 설명하는 고려의 강역은 분명 지금의 산동반도에 있는 지명인 등주, 래주, 빈주,
체주와 마주보는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지금 정설로 여기고 있는 일본인들이
그어놓은 고려의 국경선보다는 당시를 직접 보고 들었던 송나라 사람이었던 서긍의 기록에
좀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면서 고려의 영역이 원래 동서 2천리, 남북으로 1천500리였지만 백제와 신라를 합병하면서 땅이
더 커졌으며 동북쪽으로 영역이 확장되고 서북쪽으로 거란과 맞닿았다고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고려도경은 송나라 황제에게 바치는 일종의 보고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기록을
적어놓은 것인데,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고려의 영토는 지금의 압록강을 넘지 못한 작은 국토였다고
알고 있습니다.고려의 강역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우리의 기록과 중국의 기록들이 지금의 한반도도
전부 차지하지 못한 초라한 고려가 아닌, 대륙까지 영토를 가지고 있는 당당한 황제국이었음을
알리고 있는데 왜 우리만 지금까지 일본인 역사학자가 그어놓은
고려의 초라한 국경을 신주처럼 떠받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삼국사기 유사 등 역사 책에 강역이 3천리 강산 으로 기록 되어 있고 현시대에도
3천리 금수강산 등등의 시와 노래, 속에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3천리강산"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애국가와 동요 등으로 대한민국 에
영원히 우리 일상 생활에 삶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 삼천리란 말이 삼국사기 때부터 현대까지
말로 조상대대로 전달 되 어 내려 온 다는것은 옛 고려의 영역을 입증하는 증거로
민족속에 존재하고 함께 간직 하면서 살아 가고 있는것이다.
고려시대의 서경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고려나 고구려의 강역을 정확하게 그린 고지도,
서술한 역사책이 중국 또는 일본 왕실 수장고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봅니다
古朝鮮 고조선 bc 2333 檀君王儉 단군왕검 耽羅國 탐라국 bc 2337 高乙那 고을나 BC 2337년 부터
국호와 초대왕 이름이 한문 이고 한문을 씃다.
원나라가 고려 충렬왕때 서경 즉 지금의 북경을 고려에 돌려준것은
이미 원나라는 고려를 원의 여럿 칸국(차카타이, 오고타이, 킵차크 등등)과 같은 지위를 부여한것입니다
원나라는 충렬왕때부터 고려를 자기들과 같은 피를 나눈 형제라 여겼음
송나라 사신이 기록한 고려, 고려의 강역
★YouTube를 크릭 하시면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