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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볕이 바로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있어서 그는 금방 현기증을 느꼈다. 몸이 후끈 달아올라 더이상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그의 몸은 옆으로 비스듬이 기울어졌다. 이대로 한참 있으면 일사병에 쓰러질 것이다. 머리가 멍해지면서 졸음이 밀려왔다. 햇볕은 몸속의 피까지 바짝 말리는 것 같았다.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이 후끈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잠이 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그 자리에 반쯤 눈을 감은 채 앉아있었다. 파리떼가 고기 위에 잔뜩 붙어 있었지만 그는 쫓을 마음이 나지 않았다. 가끔씩 정신이 들 때에야 그는 나무를 휘젖곤했다. 더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되자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동굴 쪽으로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오오에는 총을 한 손에 쥔 채 잠들어 있었다.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려 있었다. 가끔씩 고개를 젖는 것이 아직 깊이 잠들어 있는것 같지가 않았다. 코고는 소리도 그렇게 크지가 않았다. 놈은 깊이 잠들면 코고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대치는 발치에 놓여 있는 돌덩이를 바라보았다. 이것을 집어 던지기 전에 저 놈이 눈을 뜨면 만사는 수포로 돌아간다. 놈은 즉시 총을 발사할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되자 그는 돌아서 나왔다. 다시 배에 고통이 가해 왔다.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시체가 있는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시체는 벌써 썩어가고 잇었다. 고약한 악취가 풍겨왔다. 갈갈이 찢긴 사지와 밖으로 쏟아져나온 창자를 보자 인육을 먹고 싶은 마음이 싹 없어졌다. 그 대신 구역질이 치솟았다. 숨돌리 사이도 없이 그는 아까 먹었던 것을 도로 토해냈다. 내장까지 쓸어낼 듯 토했기 때문에 눈물이 다 나왔다. 이윽고 그것은 진짜 눈물이 되어 그의 볼을 뜨겁게 적셔주기 시작했다. 그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직도 눈물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적이 놀라면서 그는 자꾸만 울었다. 한참 후에 그는 다시 또 동굴 쪽으로 걸어갔다. 절망적인 기분이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나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었다. 동굴 입구에 이르자 안에서 오오에의 코고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동굴 내부가 그의 코고는 소리에 온통 울리고 있었다. 대치는 잠들어 있는 오오에를 한동안 쏘아보았다. 놈의 벌어진 입 사이로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한 손은 여전히 총을 움켜쥐고 있었다. 대치는 아까 보아두었던 머리통만한 돌덩이를 천천히 집어들었다. 절망적인 상태가 그로 하여금 더없이 침착하게 행동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돌덩이를 집어드는 그의 행동은 너무 침착한 나머지 오오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돌덩이를 든 그는 오오에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천장이 낮았기 때문에 돌덩이를 높이 쳐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끓고 앉은 다음 그것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렸다. 지금까지 없던 힘이 두 팔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문득 자는 놈을 그대로 내려치면 고통이 덜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게 하고 고통을 느끼게 해야 한다. 놈이 남들에게 준 고통을 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 최대치에게 죽는다는 것을 놈이 알아야 한다. 이 순간을 내가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이놈! 오오에야!" 대치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어디서 그런 고함이 터져나왔는지 모른다. 오오에가 퍼뜩 눈을 뜨자 대치는 있는 힘을 다해 돌덩이로 내려쳤다. 오오에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확대되는 것이 얼핏 보였다. 돌덩이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오오에의 총끝이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돌덩이는 오오에의 얼굴을 정통으로 내려찍었다. 동시에 오오에의 총끝에 꽂혀 있는 총검이 대치의 왼쪽 눈을 찔렀다. 두 사람의 비병이 처절하게 동굴 안을 울렸다. 대치는 앞이 캄캄해지면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는 돌덩이를 집어들고 다시 오오에의 얼굴을 내려쳤다. 오오에는 으으윽 하고 신음을 토하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치는 무릎을 꿇고 앉아 돌덩이로 계속 오오에의 머리를 내려쳤다. 증오심에 불탄 나머지 그는 정신 없이 내려찍었다. 피가 튀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두개골이 부서져 산산조각이 될 때까지 그는 오오에의 머리를 난타했다. 나중에는 총검으로 오오에의 전신을 마구 찔렀다. 그래도 성이 풀리지 않자 그는 이번에는 대검으로 오오에의 배를 갈랐다. 창자가 쏟아져나왔다. 그는 창자 속을 휘저어 간(肝)을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한쪽 눈으로 그것을 한참동안 들여다 보았다. 피에 젖은 적갈색의 간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었다. 간을 움켜쥔 두 손이 후둘후둘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미친 개처럼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면서 간을 덥석 깨물었다. 순식간에 간은 그의 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간을 먹고 나자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면서 전신이 마구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두 손을 들여다보았다. 두 손은 시뻘건 피로 온통 젖어 있어서 고기덩이처럼 보였다. "히익!" 그는 기묘한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히히히히히히......" 미쳐버린 그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칼로 찔린 한쪽 눈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누더기를 걸친 애꾸눈의 사나이가 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씰룩거리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란 실로 기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갈수록 더 발작이 심해갔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노려보다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모든 것을 다 팽개친 채 그는 무턱대로 걸어갔다. 입에서는 계속 웃음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가 살아날 수 있는 가망이란 이제 없었다. 쓰러지는 곳에서 그는 죽기 마련이었다. 방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의 간을 먹고 미쳐버린 이 조선인 학도병은 무턱대로 걸어갈 뿐이었다. 때때로 그는 눈을 찌르는 통증을 막느라고 손으로 상처난 눈을 비비곤 했다. 아무리 미쳤다고 하지만 역시 기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루종일 방황하던 그는 해가 질 무렵 마침내 더위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한쪽 눈만이 흰창을 드러낸 채 하늘을 향해 부릅떠져 있었다. 다른 눈은 피에 엉겨붙어 있었다. 얼굴은 온통 벗겨져 허연 껍질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밖으로 드러난 부분은 모두 허옇게 벗겨져 있었다. 입 속에서 거품이 조금 끓어오르다가 이내 꺼져버렸다. 손발이 경련하다가 그것마저 곧 멈춰버렸다. 그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끔씩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만이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뿐이었다. 격렬한 증오심과 분노로 자신을 불태우면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사람의 고기까지 먹은 그는 이제 모든 욕망을 잃어버린 채 죽음의 문턱에 놓여 있었다. 그의 목숨은 실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위태했다. 그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다고나 할까, 밤이 되고 자정이 지나자 그때까지 맑던 하늘에 구름이 뒤덮이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것은 소나기가 되어 순식간에 대지를 뒤덮었다. 오랜 가뭄에 타 죽어가던 초목들은 생기를 되찾으면서 빗물을 흠뻑 빨아들였다. 대지와 초목에 부딪치는 빗소리는 흡사 환호소리 같았다. 기뻐 날뛰는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산을 울리고 있었다. 그때까지 대치가 짐승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것은 적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먼저 그의 손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른손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이윽고 그것은 얼굴 위로 올라와 상처난 눈을 비볐다. 이어서 기지개를 켜듯 두 다리가 쭉 펴지는 것과 함께 그의 입에서 긴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의 귀에 맨처음 대지를 울리는 빗소리가 어슴푸레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크게 뚜렷이 들려왔다. 가슴이 훤히 트이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마침내 눈을 번쩍 떴다.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는 입을 크게 벌리면서 우우우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엎드렸다. 그리고 흙탕물이 흐르는 쪽으로 기어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은 마셔도 마셔도 자꾸만 들어갔다. 너무 좋은 나머지 그는 흙탕물 위로 몸을 굴렸다. 웃음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그는 기묘한 소리로 마구 웃어댔다. 이젠 추웠다. 그는 몸을 웅크리면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다리가 후들거려서 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나무가 있는 곳으로 기어갔다. 나무를 붙잡고 겨우 일어선 그는 한동안 몸을 가누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이윽고 그는 나무를 붙잡지 않고서도 서 있을 수가 있었다. 그는 조금씩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러다가 푹 쓰러졌다. 조금 후에 그는 다시 일어났다. "으흐흐흐흐흐흐......" 그는 생각난 듯이 웃곤 했다. 배가 고프다는 것만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몇 걸음 옮기다가 엎드려 아무 벌레나 잡아 먹곤 했다. 한나절이 지났을 때 그는 사람이 다닌 듯한 조그만 오솔길에 이르렀다. 그 길은 불모지가 끝나고 울창한 정글이 다시 시작되는 곳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가 제정신이었다면 그런 곳에 길이 나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상상태에 놓여 있었던 만큼 아무런 의식 없이 그 길을 따라 내려갔다. 비와 함께 밑으로부터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안개는 순식간에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게 퍼지고 있었다. 그 안개를 헤치고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곧이어 두 사람,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 뒤로 이번에는 당나귀들이 나타났다. 당나귀의 등에는 짐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그 뒤로 또 사람들이 보였다. 행렬의 끝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가 않았지만 매우 긴 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가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고 옷은 검은 색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몸은 온통 비에 젖어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들은 인팔로부터 버마 북부 국경지대를 통화하여 중국으로 가고 있는 중국군 수송부대였다. 연합군으로부터 넘겨받은 군수 물자를 수송하는 부대인 만큼 매우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 대치를 보는 순간 그들은 놀란 듯 멈춰섰다. 금방이라도 집중 사격을 가할 듯이 그들은 대치를 향하여 총을 겨누었다. "손을 들어라!" 앞에 선 중국군이 중국말로 소리쳤다. 그러나 대치는 멍청히 서 있기만 했다. 아무런 경계심도 두려움도 없이 쓰러질 듯 흔들거리면서 한쪽 눈으로 중국군들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군들도 한동안 이 괴물처럼 생긴 사내를 바라보기만 했다. 몰골이 하도 흉칙해서 사람인지 짐승인지 얼른 분간이 안 가는 모양이었다. "손을 들어라!" 다시 중국군이 소리쳤지만 대치는 팔을 늘어뜨린 채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발치에 벌레가 기어가자 그는 엎드려 그것을 잡아 먹었다. "쏘지 마라! 미친 모양이다!" 지휘자로 보이는 중국군이 앞으로 나서며 손을 저었다. 그들은 곧 대치의 몸을 수색했다. 몸에서는 무기 하나 나오지 않았고, 죽은 벌레와 이상한 나무뿌리 같은 것만 나왔다. 대치의 몸이 무섭게 마른 것을 본 그들은 몹시 놀라는 것 같았다. 그의 몸은 살이 모두 빠져버려 가죽만이 흐물흐물 늘어져 있었다. 특히 가슴뼈는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드러나 있어, 숨을 쉴 때마다 금방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지휘자이 어깨를 툭 치면서 빵조각을 주자 대치는 한번에 그것을 입속에 틀어넣었다. 그리고 이내 도로 토해 버렸다. "안 됩니다. 너무 굶은 사람한테 처음부터 그런 걸 먹이면 위험합니다. 죽을 쒀서 주어야 할 겁니다." 중국군 병사가 지휘관에게 말했다. 지휘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본군인가?" 지휘관이 물었지만 대치는 여전히 대답할 줄을 몰랐다. 물어 보나마나 몰골로 보아 일본군 패잔병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가 있었다. "내 말 들리나?" "......" "이쪽 눈은 안 떠지나?" "......" "걸을 수 있는가?" 지휘관은 서른댓쯤 된 사내로 교양이 있어 보였다. 그는 대치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얼른 단안이 안 내려져 망설이고 있었다. 길은 아직도 수백 리 남아 있었다. 잘 걷지도 못하는 적군 패잔병을 포로로 데려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정신이 돌아버린 자를 데려가는 것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정신이 돌아버린 자를 데려간들 별로 쓸모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버려두고 지나칠 수도 없었다. 적군에게 위치가 알려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패잔병을 죽이고 가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지휘관은 권총을 들어 올렸다가 도로 내렸다. 아무리 전쟁중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겨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상대는 무기도 없고 게다가 아사(餓死) 직전에 놓여 있는 사람이다. 이런 자를 사살한다는 것은 분명 꺼림칙한 일이었다. 지휘관이 주저하고 있을 때 병사가 구겨진 종이 조각 하나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호주머니에 이런 게 들어 있었습니다. 버리려다가 가져왔습니다." 지휘관은 그 종이를 펴보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었다.
학대는 막심하다. 인생 60이라는데, 나는 서른도 못되어 죽는단 말인가. 원수를 갚지 못하고 죽는다는 게 원통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든 살아서 이 원수를 갚고 조국의 독립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국어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중국어로 쓰여져 있다는 사실에 그는 적이 놀랐다. 그것도 달필(達筆)인 것으로 보아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었다. "이 자는 조선인 아닌가?" "그런 것 같습니다." "중국어를 잘하는 것 같은데...... 혹시 중국에서 교육을 받은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휘관은 대치에 대해 갑자기 동정하는 마음이 일었다. 중국과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받은 같은 피해 민족이다. 따라서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된다. 보아하니 이 청년은 일본군에 끄려온 조선인 학도병인 것 같다. 일본인에게 짓밟힌 가장 전형적인 조선 청년이 아닐까. 일본을 증오하는 그 마음에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곳에 혼자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러나 혼자 내버려두면 얼마 못가 죽고 말 것이다. 버려두고 떠난다는 것은 비겁한 짓이 아닐까. 중국어를 잘하는 것 같으니까 후에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데리고 가보자. 대치에게 호감을 느낀 지휘관은 이렇게 마음을 정한 다음 위생병을 불러 대치의 눈을 치료하게 했다. 대치의 눈을 들여다본 위생병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치료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동공이 완전히 찢어졌습니다. 벌써 썩어가고 있습니다." 위생병의 말에 지휘관은 혀를 찼다. "다른 눈에 번지지 않도록 소독이나 철저히 해둬." 위생병은 솜에 알콜을 묻혀 대치의 상처난 눈을 마구 후볐다. 대치가 고통에 못 이켜 몸부림치는 바람에 다른 중국 병사들이 그를 꼼짝 못하게 붙들어야 했다. 수송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치는 중국 병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갔다. 굶주린 그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물에 적신 빵이 조금씩 주어졌다. 그 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간씩 많아졌다. 굶주림에 뒤틀려버린 그의 위를 바로잡아 주는데도 세심한 배려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인정이 많은 수송대 지휘관은 주의를 기울여 대치를 보살폈다. 대치의 운명은 이렇게 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가게 되었다. 죽음 직전에 목숨을 건지게 된 그는 기막힐 정도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버마 서북부의 죽음의 땅에서 살아났다는 것은 확실히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휘청거리던 그의 다리는 입속에 음식이 들어감에 따라 차차 곧게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그의 의식만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기괴한 웃음을 흘리면서 함부로 아무데나 가려고 했고 그 바람에 그를 부축하고 가는 병사들이 애를 먹었다. 마음이 안 놓인 병사들은 나중에는 그의 몸을 밧줄로 묶고 그 끝을 당나귀에 달아매었다. 험준한 산악지대와 울창한 정글,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습지대를 지나야 하는 만큼 수송대열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극심했다. 그러나 항일(抗日)이라는 대업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선 젊은이들인 만큼 일본군들이 지나고 있는 침략을 위한 독기(毒氣)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두개의 정신적 지주는 하나는 정의 위에 뿌리를 박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불의와 악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장개석 휘하의 중국군은 군기가 엄하면서도 서로 격려하고 도울 줄을 알았다. 장교는 여유있게 부하들을 포용했고 부하들은 그러한 지휘관을 믿고 따랐다. 일본군 같으면 버리고 갈 낙오병들을 그들은 결코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갔다. 수송대가 버마 국경을 넘어 일본군의 손이 미치지 않는 중국대륙으로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서였다. 그때까지 대치는 쓰러지지 않고 행렬의 뒤를 따라갔다. 제정신이 아닌 그가 수백 리에 이르는 험준한 길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전적으로 중국군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 며칠 동안에 그는 전처럼 정상적으로 먹고 마실 수 있게 되었고,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바람에 급속도로 건강을 회복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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