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2살 때 백 일을 만났던 스물 여덟 살 남자 친구는 막 한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눈떴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그보다 두 살인가 많았던
친구와 어울려 다녔는데, 그를 선생님이라 깎듯이 부르며 그 선생님이 하는 모든
말들을 곱씹고 또 씹고 하였다. 그는 그의 친구가 가졌던 모든 사고들을 스펀지
물 빨아 당기듯 흡수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간단하게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 라고 툭 던져 버리듯이 문장을
주었다. 그 선생님인지 친구인지 하는 양반은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스물 여덟 살 남자 친구는, 이뻐져야지 미스트랄, 하고 내게 여러 번 강요하듯
말하면서도, 너는 별로 이쁜 얼굴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너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꿍얼꿍얼 중얼거리기도 했었다. 사실 그는 미학 공부를 따로 할
정도로 완전무결한 미에 대해 관심이 많은 철학자류의 인간으로, 그 당시 막
데뷔했던 김희선을 최고의 미인으로 꼽았다. 김희선이 지금까지 절세 미인으로
롱런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가졌던 미의 기준은 제법 믿을 만 했던 것도
같다. 바보, 나는 스물 여덟 살 되니까 알겠던데, 대체 그 때까지 뭐했던 게냐.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외모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 당신은 내
마음을 보고 있었잖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결정되는 것에는 외모 말고도 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결혼 적령기에 찬 사람들은 그들의 특별한 수요를 나타내기 위해 고유
명사들을 만들어 냈는데, 그들이 서로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무형의 장소는,
(결혼 혹은 맞선) '시장', 그들이 매력적인 짝을 찾기 위해 내거는 요소들을
'조건'이라고 부른다. 이게 무슨 5일 장터도 아니고, 가락시장 경매장 내지는
시애틀 시내 생선 시장도 아니고, 시장에서 왜 서로 조건을 맞바꾸나. 덕분에
'조건'이라는 단어만 불쌍하게 되었다. 원래는 아무 감정 없이 매우 중립적인
단어였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조건'을 속물 같은 단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건 정말 '조건'의 잘못은 아니었는데. 그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잘못이었는데. 딱한 단어 같으니.
어찌 됐건, 간단하게 외모는 조건의 하나이다.
그 외에도 사람들은 상대가 돈을 갖길 바라고, 똑똑했으면 하고, 좀 컸으면
하고, 잘 웃고 재밋는 사람이길 바라고,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길 바라고, 기타
등등 끝도 없이 바란다. 당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다. 하긴 뭐 바래 보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외모가 문젯거리가 되는 것은, 크게 내세울 것 없이 고만고만한 여자들이 가장
쉽게 진전을 볼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쁘고 좋은 옷, 악세서리로 조금만
강세를 줘도 훨씬 나아지고, 화장술로 잘 가려 보면 감쪽같고,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수술이라도 감행하면 잘된 경우, 바로 용으로 꿈틀거리며 환생하여 (용된다
이 말이다) 세상에 멋지게 불 뿜으며 살아볼 수 있으니, 뭇 여자들이 외모를
계발하기 위해 목을 매는 것도 아주 타박할 일만은 아니다.
그 뿐만 아니라, 외모야말로 상대 쪽 남자들이 가장 원하는 조건이라서
여자들이 외모에 목을 매는 것도 있을 것이다. 주식 시장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공부를 대학까지 마친 것과, 박사 과정까지 마친 것의 가격 변동폭이 5 만큼이다
생각해 보면, 아마 성형수술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한 30 정도 날
법한 일인 것이다. 그나마 그 공부주에서 오는 5는 역행이라서, 공부는 많이 하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
하지만, 나는 외모가 절대 조건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이 다 소모품 천지인
슈퍼마켓뿐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분명 시장은 약국 거리도 있고, 귀금속 거리도
있고, 골동품 거리도 있다. 내가 시장 안에서 팔려야 하는 물건이라면, 나를 어느
시장에다 내어놓고 팔 것인가를 잘 결정해서 런칭 해야 한다.
분명 어떤 여자들은 외모에서 매우 자유롭다. 그들은 대부분 외모를 제쳐
두어도 뭔가 엄청난 장점들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외모는 그냥 플러스
알파 정도이지만, 없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신상품 옷들을 입고
무대를 그냥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패션 모델들은, 키가 웬만한 행거 만큼 크다.
그들의 외모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통상적인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얼굴을 가지면, '개성 있다' 칭찬 받는다. 모델 홍진경이 수 십 억 이윤을 남기는
회사 사장이 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매력적이지만, 분명히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다.
길에서 구걸하는 아저씨에게 빵을 먹여 주던 마음 착한 아가씨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 왔을 때, 사람들은 그녀가 이쁘다 이쁘지 않다를 화제로 삼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고운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녀에게
존경심을 보냈다.
홍콩 최고 갑부인 니나 왕 아줌마에게 따라 붙었던 기사는 모두 그녀의 재산이
얼마인가, 그녀가 돈을 어디에서 벌고 어디로 썼는가 였지, 그녀의 외모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바보 같은 인간들은 없었다. 있다면 용감하거나 바보가 맞다. 줄 잘
서서 돈 벌 기회를 한 번이라도 얻어야할 판국에 그녀의 외모를 논평하고 있다가
잘못 보이면 어쩌려구. 여담으로, 죽은 그녀의 재산은 그녀의 전속 풍수사에게로
돌아간다는데, 역시 그분이 가진 예지력이 경쟁력으로 돋보이는 기사다. 아무나
뛰어난 예지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마담 퀴리가 미인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책을 읽어 본 기억이 없다. 쟌
다르크는 성녀라 말해지지, 미녀라 말해지지 않는다.
한 나라 정당의 당수인 박근혜에게 충성하겠다는 뜻으로 그녀는 섹시하다고
말했던 국회의원은 그 경한 언사로 인해 꽤나 질타를 받았다. 룸살롱 드나들던
버릇이 거기서 튀어 나왔겠지 쯧쯧. 마거릿 대처 수상에게 섹시하다 어쩌다
말했던 국회의원이 있었겠는가. 그 국회의원은 그저 주둥이가 웬수다 하고 자기
입을 꿰맬 노릇이다.
나는 그 양반만큼 개념을 상실한 사람을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발견한 적이
있는데, 버지니아 사건을 취재하러 워싱턴에 특파된 것으로 보이는 한 기자
양반이, '이번 사건에 희생된 무슨 양이 한국계인데,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무슨 양은 얼굴도 아주 이뻤다 한다' 이딴 식으로 기사를 써 놓은
것이었다.
이 기자 양반의 어떤 배경이 이 양반으로 하여금 비극적 사건에 희생된
젊은 영혼을 추모해야 할 시점에, 얼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논하게 만드는
것인지, 그렇게 얕은 사람으로 만든 것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점잖게
댓글에다가, '이딴 식으로 쓸 거면 기자를 때려 치시지요. 영어 몇 마디 한다고
다 기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고 올려놓았다. 그냥 읽고 넘어갈 법도 했지만,
그의 경박함을 참기 너무 힘들었다.
아름다움을 초월한 여자들이 분명 지구상에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이
아름다워도 좋고, 안 아름다워도 좋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가치 기준에
도전하여 그것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서 있는 그 '아름다움 배타
구역'은 쉽게 자리잡을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다.
샬롯 브론테는 얼굴이 아름답지 않고 사팔뜨기이기까지 한 제인에어가 천신만고
노력 끝에 행복을 찾는 이야기를 써냈지만, 영국의 평론가들은 샬롯 브론테가
'자기처럼 별로 이쁘지 않은 여자'를 모델로 쓴 것이 분명하다 라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댔다. 시대는 1848년이었으나 현대와 다를 바가 없고, 장소는
여성에게 투표권이 제일 먼저 주어졌다는 나라인 영국이었으나, 유교 사상이
전통으로 오래 자리 잡았던 한국과 그 양상이 어찌나 똑같은지. 그만하면 유명한
작가인데, 얼마나 더 훌륭한 작가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더 작품성 있다고
평가받는 동생 에밀리 브론테가 외모 이야기 도마에 오르지 않았던 것은, 정말
그녀가 더 재주 있는 작가였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녀는 남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썼기 때문인지 알 길이 없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20대로 들어가기 전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혼자 속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30대로 접어들며 가진 소망은, 미를
초월하고 싶다, 이것이었다. 그 초월은 또 다른 무엇을 이루어 내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본다. 나는 무엇에 의지하여 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학업, 일의 성취 이외에도 가정의 평화, 마음의 행복 등이 후보가 될 수
있겠다. 그 무엇이 무엇이 될까는 좀 더 오래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만일 끝내
그 무엇을 못 찾겠거든, 아니면 찾아도 힘들어서 완성을 못 하겠거든, 그냥 자기
전에 부지런히 영양 크림이나 얼굴에 찍어 바를 노릇이다.
설미현/1975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서울대학교산림자원학과 졸업. 산업연구원.
영문 번역 전문요원. 글로벌, 스위트랜 영문 번역가. 현재 University of
Washington 재학 중(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