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정원
강현숙
젊은 연인들이 코스모스꽃 사이에서 사진을 찍는다
바람이 간간이 불어 연인들의 웃음소리를 묻혀 달아난다
농로 길 아래쪽으로 창평천이 흐르고 있고 물길 가장자리에 마치 누군가 잘 가꾸어 놓은 듯한 연분홍 여뀌꽃이 지천에 흩어져 자라고 있다
여뀌꽃은 수질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니 생태학적으로도 참 이로운 식물이며 물가에 자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코스모스 꽃길은 구절로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가는 길에 진마라고 부르는 작은 마을에 있다
마을 입구에서 시작하여 농로 길을 따라 꽃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그 길 따라 반환점 지점에 애향정(愛鄕亭) 정자가 있다.
정자는 몇 해 전에 농업기술센터에서 마을 쉼터 용도로 지어준 것이었다
愛鄕亭이라고 반듯하게 懸板이 걸려있고 정자 둘레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세 그루와 멀리서 보면 마을을 향해 인사하는 듯한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느티나무의 무성한 이파리들을 지붕으로 삼은 정자 바로 아래에는 디딜방앗간이있다
마을에 하나뿐인 디딜방아였지만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되어 거의 터만 남아있었는데 정자를 지으면서 디딜 방앗간도 복원시켜 놓은 것이었다
올여름 태풍과 긴 장마로 디딜방아를 잠시 철거해둔 상태여서 어쩌다 오는 사람들도 방아 찧는 체험은 하지 못한다
코스모스 꽃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재문화체험장을 가는 길에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니는 농로 길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을 보고 웬일인가 싶어 차를 세워 사진을 찍고 정자 위에 올라앉으면 그제야 마을을 한눈에 보게 된다. 멀리 창평저수지와 문수산 따라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키 대기를 하고 황금빛으로 물든 창평 뜰이 시야 가득 풍요로움으로 마음까지 넉넉하게 해준다
사철 마르지 않는 창평천과 여뀌꽃이 머무르는 듯 흘러가는 듯 여유롭게 시간을 채우고, 바람에 쓰러진 코스모스는 누운 채 그대로 또 꽃을 피워 풍성함을 더한다.
이 선생과 나란히 마당이 붙어있는 옥희 할머니 집 앞에도 온갖 꽃들이 즐비하다.
2년 전에 이사 온 이 선생 모친과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꽃을 가꾸고 계시는 옥희할머니 마당가에는 과꽃, 백일홍, 겹 봉숭아 등등 텃밭에 도라지꽃까지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지나다니는 이웃들은 그저 즐겁고 코스모스 꽃길 따라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도 두 집 앞을 아주 오래 머물다 간다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작은 마을, 신작로도 아니고 경운기나 다니고 가끔 트럭들이 덜컹거리며 지나는 이곳에 왜 굳이 노인 일자리에 종사하시는 어른들의 시간을 써가며 꽃을 가꾸는지 묻곤한다
나는 볼거리도 없는 이 마을 농로 길에 코스모스 씨를 뿌리고 가꾸는 데 대해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스스로 마을 정원이라 소개하고 이 동네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얘기해 준다
마을 정원의 기원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신성한 숲을 중심으로 마을의 기상을 높이고 공동체 정신을 키워오는 전통이 있다고도 한다. 애향정 둘레에 느티나무와 소나무도 그런 뜻으로 심었구나, 라는 생각이든다
한 해 두 해 이곳에 살다 보니 아주 작은 봇도랑에서부터 마을 정원은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른 봄 봇도랑에서 시작된 마을 정원은 늦가을 추수가 끝난 텅 빈 들에서, 눈 내리는 겨울까지..... 모두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지나고 나면 기억 속에 남아있을 아름다운 꽃길
애향정에서 여름 더위를 식히고 돌아가는 어른들 뒷모습은 해질녘이었는데
추석 무렵 코스모스꽃 속에서 소곤거리며 사진을 찍는 저 연인들은 이제 막 오전을 열 시쯤인가 싶다
마을 정원의 풍경은 시각이 아니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