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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조선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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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찾기 현 중경(重慶)은 1949년이전 무한삼진(武漢三鎭)이었다
송계 추천 6 조회 630 21.09.30 09:18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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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1.09.30 12:41

    첫댓글 고맙습니다

  • 21.09.30 19:32

    해수면을 올려보니 울릉도나 제주 일본이 더욱 맞아 보입니다

  • 작성자 21.10.01 09:03

    해수면 시물레이션을 통해서도 볼수 있고. 또한 대만에서 발간된 여러 자료에도 구한말 해안선이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자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숨겨지고 감추어진 많은 자료들을 하나씩 우리가 찾고 발굴하여 세상에 내놓는 일에 너나가 없이 같이 동참해야 할 큰 일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21.10.01 08:30

    창경궁에 세워졌던 창경원이 원래 대륙한양에 만들었던 것을 이주후 한반도에 축소 모형으로 만들어진거네요.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역사를 중원대륙으로 시야를 넓혀서 보면 될 것 같네요.

    이래서 지명고찰이 역사연구에 있어서 기본중의 기본이군요. 송계님의 지명고찰이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 작성자 21.10.01 09:05

    그렇습니다. 올바른 지명고찰을 통해 하나씩 우리 선조의 강역을 고증하다 보면 과거 연구의 오류를 솎아내면서 더욱 정밀하게 진실의 모습에 다가설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 21.10.01 22:14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켰던 홍수전과 동학의 창시자인 최수운 선생의 일대기가 어쩜 그리 비슷한 지…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점도, 학원 강사를 한 것 까지, 홍수전은 선교사에게서 어떤 책을 받은 것과 최수운 선생은 금강산에서 온 스님에게서 비전을 받은 것 까지, 전국토를 여행한 것도, 또 사망한 년도까지 똑같죠. 최수운 부친과 최수운 선생의 일대기가 홍수전과 참 일치하는 점이 많이 있네요. 태종 이방원과 영락제의 일대기가 비슷한 점이 많듯이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한쪽의 사실을 다른 쪽에서 베낀 흔적이 너무나 많아 보입니다.

  • 21.10.02 08:21

    하나의 주제로 기준점을 정한후 20세기 초중반에 3개의 버젼(대륙,반도,열도)으로 나눠 자리를 펴게 된거지요.이때의 기준점
    이자 초석이 된 것이 바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태동 시점이라 가능 했습니다.서양사 역시 그래요.모두가 씨족 중심의
    가족사나 가문사의 확대 버젼을 오늘날 각나라의 국사라고 칭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요.그래서 민주주의 사회에선 어울리지
    않는 봉건.독재.세습.지주,독선의 향기가 풀풀 나지요.

  • 21.10.02 11:36

    @상선거사 그럼 20세기 초중반에 24사,25사를 쓸때 동양3국의 역사 아니 세계역사를 다시 쓸때 어떤 기준점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개연성 허구로 소설을 쓴 걸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물론 그 기준점은 진짜 사실 이겠지요.

  • 21.10.02 11:44

    @항하사 상당이 소설이지요.元史와 신원사가 완성되는 때가 1938년쯤 됩니다.세계의 이권을 나누는 자본 세력들의 공로가 컸지요.일본서기를 보면 허구적 소설에 더 가깝지요.우리는 기독교와 서양에 경도되어 백인들이나 서양기준의 역사와 상식을 너무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옛날 서당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삼국사기.고려사.이조실록이 있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 21.10.02 12:02

    @상선거사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우리역사로 알고 배웠다는 말씀이지요. 율곡선생이 조선시대 어린이들이 통감절요를 역사로 공부해야한다고 격몽요걸에서 말씀 하시데요.

  • 21.10.02 16:06

    @항하사 항하사란 數에서 極다음에 오는 갠지스 강가의 모래를 뜻하는 恒河沙 인가요.?

  • 21.10.02 18:28

    @상선거사 원래는 ganges(영어발음은 갠지스, 한글발음은 강에서)의 모래란 의미로 恒河沙로 만들었는데,즉 강가의 모래 수만큼 많은 인연이 있겠다 싶어 만든 이름입니다.

  • 21.10.03 11:59

    @항하사 그렇군요.불가의 얘기군요.자치통감 절요로 역사 공부를 한사례는 율곡 이이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1960년대 학교 안가고 서당과 항교에 다니던 사람들도 같았습니다.율곡도 반도가 아닌 대륙남방의 절강사람이고 이황은 복건 사람이지요.대륙조선사 전부를 반도에 꾸겨 넣다보니 대륙의 대석학들이 반도의 서당 선생들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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