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검색해서 고른 화이트샌드펜션은 그야말로 코앞에 바다가 있었다. 펜션 앞마당까지 파도가 넘실대는, 그야말로 해변의 펜션이다. 그동안 여름이면 바닷가에 위치한 펜션을 찾아다니긴 했지만 이렇게 코앞에 바다가 있는 펜션을 만나지는 못했었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죽도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이 길기로 유명하다. 서핑을 즐기는 서퍼(surfer)들이 한창 파도에 몸을 싣고 유영(遊泳)을 즐기고 있었다.
시인 정호승은 <바닷가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바다의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그의 말대로 자기만의 바닷가를 하나씩 갖고 있는 게 좋을 것이다. 오늘은 일주일 후면 입대하는 아들을 위해 가족여행을 온 것이다. 펜션 2층 파도룸에 짐을 풀고 우리는 주문진항으로 차를 몰았다. 바다에 왔으니 회를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10분 정도 달리니 주문진항이 나타났다. 어시장에 들어서니 왁자지껄 사람들이 북적인다. 생선 가격을 놓고 흥정이 벌어지고 한쪽 식당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꽤 커보이는 자연산 광어 한 마리가 5만원이란다. 한 마리를 사서 회를 떠달라고 하니 걸죽한 입담을 자랑하는 아주머니가 숙달된 솜씨로 회를 뜬다. 생선비린내와 해풍(海風)에 실려오는 바다냄새가 어우러져 후각을 자극한다. 90cm는 족히 될 방어 한 마리도 5만원이란다. 한 가족이 방어 한 마리를 사들고 떠난다. 다라 안에서는 푸른빛의 청어(靑魚)들이 유유히 헤엄을 치고 큰 문어들이 위용을 자랑하며 손님을 기다린다. 정말 살아 숨쉬는 어시장이다.
숙소로 돌아와 펜션의 테라스에 우리의 만찬식탁이 차려졌다. 회도 푸짐하지만 집에서 재어온 LA갈비도 아주 푸짐하다. 테라스 아래 15M 전방에서는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광어회를 상추와 깻잎에 싸서 양파 한 조각을 얹어 입에 넣으니 그야말로 쫄깃쫄깃 맛이 기막히다. 서울에서 먹던 양식 광어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그러고보니 몇 년 전 부산에 가서 바이넥스 이백천회장님과 먹던 자연산 광어회맛이 생각난다. 그때 내가 “회장님 이제 서울에 가서 양식 광어 못먹겠습니다.”하자 이회장께서 “언제든지 내려오소.”라고 화답하던 기억이 난다.
아내도 그렇고 딸내미와 아들내미도 광어회에 반한 눈치다. 생선회를 워낙 좋아하는 우리 가족이지만 자연산 광어에다가 파도가 넘실대는 해변의 펜션 테라스에서 먹으니 그 맛이 배가(倍加)됐으리라. 다음은 LA갈비 차례다. 그러나 아쉽게도 광어에게 선수를 빼앗기는 바람에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래도 역시 LA갈비다. 집에서 해온 밥과 함께 LA갈비를 뜯으니 정말 일품이다. 밖에 나가면 남자들이 해야한다지만 우리집은 그렇지 않다. 아들녀석도 음식같은 것을 잘 챙기긴 하지만 아내가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남자들은 앉아서 맛있게 먹어주면 된다. LA갈비에 이어서 매운탕이 등장한다. 매운탕에 라면을 넣으니 맛이 더 난다.
“라면스프 넣었지?”
내가 의미있는 눈짓으로 아내에게 묻자 아내가 “아주 조금”이라고 대답한다. 라면스프야말로 TV오락프로에서 연예인들이 요리를 하면서 몰래 넣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아니던가! 굳이 라면스프를 넣지 않았어도 생선매운탕은 맛이 우러났겠지만 소량의 스프가 맛을 더 냈을터였다. 여행을 와서 함께 밥을 먹으면 왜 가족의 정이 새록새록 더해지는 것일까? 여행은 그런 면에서 마약같은 힘을 갖고 있다. 집에서 차린 식탁에 비해 조촐한 메뉴일지라도 그 어느 식탁보다 푸짐하게 느껴진다.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좀 더 자주 가족여행을 즐기지 못한 자신이 후회된다. 특히 부모님 살아계실 때 변변한 여행 한번 시켜드리지 못한 것이 뼈아프다. 시간은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 오늘이란 시간도 한번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것이다. 카르페 디엠!
밤이 됐건만 파도는 잠들지 않는다. 할 이야기가 많은 듯 계속해서 해변으로 몰려와 부서진다. 잠자리에 누워서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가족들은 꿈나라로 향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일생에 단 한 번 가족이란 인연으로 만나 한 세월을 함께 하는 가족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울고 웃으며 희로애락을 함께 겪는 가족들. 억겁의 인연으로 만난다는 부부와 그보다 더한 인연으로 찾아와주는 자식들. 각기 다른 형태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 우리 가족은 그동안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왔을까? 나는 얼마나 좋은 남편이었으며, 얼마나 좋은 아빠였을까? 내가 아내에게 잘못한 것은 무엇이고 아이들에게 못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다고 했지만 나 역시 부족한 남편이었고, 부족한 아빠였으리라. 그러나 그 부족한 점은 앞으로 살면서 채워주면 될 것이다.
침대에서 나란히 누워 자는 아내와 딸. 친구 같은 모녀의 자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서 아빠 키와 비슷하다. 덩치는 오히려 더 좋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며칠 후면 훈련소로 간다. 별탈없이 잘 자라준 두 녀석이 고맙고 대견하다. 두 녀석을 위해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이 삶의 여정(旅情)을 가야 하리라. 3대독자에게 시집을 와서 부모님 살아계실 때 성심성의껏 섬긴 아내. 다른 여자들이 부러움을 느낄 정도로 먼지 한톨 없이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내 입맛에 맞는 요리솜씨를 자랑해준 아내. 늘 고맙게 생각한다. 소중한 인연으로 만났으니 앞으로도 해로(偕老)해야하지 않겠는가! 남자들은 가족여행을 떠나오면 왜 이다지도 생각이 많아지는 것일까?
다음 날 아침을 맞아 어제 미리 사온 갈비탕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펜션 옆의 산책로를 올랐다. 해변에 위치한 조그만 산에 산책로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놓았다. 정상에 오르니 바닷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주문진항도 보인다. 가족들끼리, 친구들과, 모임사람들과 어울린 사람들이 산책로를 따라 펼쳐진 풍광(風光)을 감상하며 걷는다. 바닷가에 이런 산책코스가 있는 곳도 드믈 것이다.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남는 것은 사진 아니던가!
서울로 향하는 길. 아들이 제대하면 꼭 다시 찾아오리라고 다짐한다. 우리 가족이 뿌린 추억의 씨앗이 틔운 싹을 보러 꼭 다시 오리라. 재회의 약속이 있어서 그런지 돌아오는 길이 아쉽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가족 간의 도타운 정을 쌓고 우리는 지금 서울로 간다.
첫댓글 가족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가족을 사랑하십시오. 후회하지 않도록..........
맞습니다. 가족이 가장 중요한 존재입니다.
저도 그 펜션에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