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지상의 행복 한 이름, 청춘
『행복의 충격』, 김화영, 문학동네, 2012.
39년 전 김화영이 내 놓은 첫번째 책 『행복의 충격』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었다. 젊은 청춘의 눈에 비치는 지중해의 정경은 경이로움과 충격 그 자체였으며 1969년 처음으로 지중해를 밟은 여정을 시적인 글로 거침없이 써 내려가게 했다.
김화영은 교수, 문학평론가, 번역가로 알베르카뮈 전집 번역에 평생을 바치고 장 그르니에, 생텍쥐베리,미셀투르니에, 앙드레 지드 등 아름다운 프랑스 문학을 끊임없이 어두웠던 이 땅에 햇빛처럼 소개한 사람이다. 또한 저서와 역서를 포함해서 100권이 넘는 책을 열성적으로 펴낸 청춘이기도 하다.
아아 나는 프로방스의 심장에 도착하였다, 라고 속으로 나직이 속삭여보라.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당신의 두 눈 속으로 저 햇빛, 저 하늘이 속으로 천천히 흘러들게 해보라. p33
1975년 그의 나이 29살. 까뮈때문에 유학을 떠났던 곳은 엑상 프로방스(프랑스어 Aix-en-Provence)이다. 마르세유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예전부터 분수가 많고 온천수가 나오는 지역으로 물의 도시라 불리우며 폴 세잔, 에밀졸라가 보냈던 곳으로 유명하다.
오직 행복한 자, 아무도 소유한 것이 없이도 이 땅위에 태어난 것이 못 견디게 기뻐지는 자들만이 올 곳이다. p39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이 한국의 조국이라면 햇빛 하나로 모든 것이 행복한 곳은 이곳 지중해이다. 원주를 떠났던 이방인에게는 고독과 공포의 두려움보다 영원한 청춘을 담을 수 있는 지중해 그곳에서 김화영은 행복의 충격을 온몸으로 느꼈다. 프로방스의 행복한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을 위로할 시간이 없다. 햇빛으로 누려야 할 행복들이 커피잔 위에서 찰랑거리고, 플라타너스 잎사귀에서도 반짝거린다. 아무것도 소유할 것이 없는 자만이 행복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김화영은 아직 쉬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세계의 부조리가 어디 있는가? 이 눈부신 햇빛인가 아니면 햇빛이 없던 때의 추억인가? 기억 속에 이렇게도 많은 햇빛을 담고서 내가 어떻게 무의미에다 걸고 내기를 할 수 있었던가? p59.
1957년 노벨상을 받은 카뮈는 루르마랭에 시골집을 장만하게 되면서 염증을 느꼈던 파리의 생활을 접고 고향 알제리와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기 시작하게 된다. 카뮈의 작품을 막 연구하기 시작한 김화영은 루르마랭 카뮈의 묘지 앞에 서서는 그의 영원한 사랑과 조우하게 된다. 지상의 행복한 땅에는 이렇게 죽음과 고독과 시프레나무가 함께하고 있음을 햇빛때문에 살인을 하게 된 뫼르소를, 생명이 찬란하다는 것을, 찬란한 햇볕아래 삶이 어찌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겠음을 젊은 청춘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프로방스의 여행은 생트빅투아르산을 그린 폴 세잔 영감도, 알퐁스 도데의 고장 아를의 침묵의 공간도 만날 수 있다. 두 개의 사멸한 도시 레보드프로방스와 알제리에 있는 또 하나의 사멸한 도시 제밀라가 소개된다. 마르셀파뇰 <마농의 샘>,<마르셀의 여름>, <마르셀의 추억>, <빵집 마누라> 의 무대도 소개된다.
성벽의 총안과도 같은 이 채광창을 통하여 내다보이는 정경은 가슴에 눈물이 고이게 한다. 여기가 인간의 왕국이다. 살이 썩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임을 다 아는 인간이 건설한 행복의 왕국이다. 수세기의 역사도 승리자도, 패배한 자도, 장군도, 황제도 이 정경을 변모하게 하지는 못하였다.... 인간이 없는 자연, 그 위에 내리는 저녁 빛, 이 세계는 우리의 정신을 잠시 부정한다. 그것도 철저하게 부정한다.p99
여기까지 슬픔이 밀려온다. 청춘의 시절도 곳 죽음 앞에 있음을 작가는 철저하게 알고 있었다. 인간은 죽고 없어도 자연은 영원하게 살아남을 것임을 김화영은 프로방스의 저녁 평원에 버려진 도데의 풍차의 채광창으로 바라 보게 된다. 자연은 인간이 죽고 없어도 상관없다는 듯 철저하게 우리를 잊을 것이다. 인간중심의 사고가 무너지며 인간 또한 자연의 하나임을 애써 알았을 때 인간은 우주에서 고요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아아! 어디다 부릴까. 이 두고 가야 하는 세계에 대한 나의 사랑을, 어디다 부릴까. 이 순간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나는 포르멘테라의 모든 꿈, 모든 사랑의 이야기를 이곳에 다 기록할 수가 없다. p225
이젠 김화영도 지중해의 틈입자가 아닌 지중해의 사람으로 삶을 만끽하게 된다. 청춘과 함께 여행했던 지중해를 이처럼 이 나이에 쓸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지중해는 청춘의 모든 것의 출발이고 모든 것에 이르는 목적지이고, 삶의 씨앗이지만 죽음 또한 돌아온다. 그래서 그 햇빛, 바람, 나무, 돌들의 시원 지중해는 덧없고 모두 익는다. 그리고 마지막 이때 우리는 비로소 청춘을 지나 영원 속에 껴안게 된다.
당신은 혹시 보았는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라나는 그 잘 익은 별을. 혹은 그 넘실거리는 바다를. 그때 나지막이 발음해보라. “청춘”. p229
<포토일기 1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