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탈무드 이야기. 죽어가는 공주를 살려낸 세명의 형제이야기로 말을 시작해 보자. 천리밖 먼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짠 볼 수 있는 망원경을 가진 큰아들, 어느 곳이든 휙 날아갈 수 있는 양탄자의 주인 둘째아들, 먹으면 무슨 병이든 고치는 마법사과를 가진 막내아들. 왕은 딸을 누구에게 주어야 할까?
자신이 가진 유일한 보배를 바친 막내에게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진실한 사랑을 가진 사위감을 가리기 위해 2차 시험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주에게도 선택권을 주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도 있다. 포고문을 붙이고 약속을 했으니 세형제의 아버지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왕이 벤처 투자가였다면, 누구에게 딸을 주었을까? 적어도 막내아들은 아닐 것 같다. 마법 사과의 가치는 증명했지만, 가치 지속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계의 후배 경영자들에게 투자유치를 위한 피치를 코칭하곤 한다. 수십가지가 넘은 VC(벤처캐피털리스트)의 투자관점 중에서 벤처투자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결정항목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다섯가지로 푼다. 가치가설, 성장가설, 차별적 우위, 팀 역량 그리고 출구전략(Exit Plan)이 그것이다.
가치가설(Value Hypothesis)은 판매하는 제품이 구매가치가 있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가설에 대한 질문은 “제공하는 솔루션을 구매한 고객이 존재하는가?”로 통한다.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고객이 기꺼이 돈을 지불할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벤처사업의 미래는 없다. 그러므로, 수백의 무료고객 보다는 최초 한명의 유료고객이 더욱 의미가 있다. 당장 시제품을 못 만들었다 하더라도, 제품이 나오면 가장 먼저 구매하겠다는 고객의 선주문 확약서도 이러한 가치가설의 증적이 될 수 있다.
성장가설(Growth Hypothesis)은 확보된 고객이 계속 늘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한다. 이 가설은 “고객이 재구매를 하고, 지속적으로 고객이 증대하는가?”라는 질문과 결을 같이 한다. 한명의 고객이 이탈고객 없이 5명, 20명, 100명으로 지속적으로 팽창을 하고, 충성도 높은 고객이 계속 증가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신규가입자의 수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이탈자의 수가 기하 급수적으로 빠져나간다면 사업모델은 계속될 수 없다. 그러한 이유로 신규가입자의 수를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허무지표’라 부른다. 반면 ‘혁신지표’로 불리는 측정항목은 일정기간 동안 가입한 특정고객군이 얼마나 유지되고, 매번 증가하는가 하는 일명 '코호트(Cohort)분석'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치가설과 성장가설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가설(Most Dangerous Hypothesis)로 일컬어진다. 100개의 회사가 만들어져도, 10년 안에 95개 회사가 없어지는 스타트업 세계에서 장미빛 가치가설과 성장가설은 정말로 무모한 근거없는 가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치가설과 성장가설이 옳은 것으로 판명난 시점이 바로 회사가 신생 벤처 기업의 딱지를 떼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차별적 우위(Unfair Advantage)라 함은 경쟁기업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진입장벽을 말한다. 가치가설과 성장가설을 증명했다고 하더라도, 스타트업은 차별적 우위(Unfair Advantage)를 담보하여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보다 큰 자본력을 가진 경쟁업체에게 추격당하고 선점 시장도 빼앗기는 낭패를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노하우, 특허기술 혹은 따라올 수 없는 비즈니스 스피드와 같은 차별적 우위를 항시 유지하고 강화시켜 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VC는 가치가설이나 성장가설, 차별적 우위 보다도 창업자 그룹의 팀역량을 더욱 중요하게 본다. 좋은 창업팀은 남다른 창의력과 오픈된 마인드를 가지며, 상호 신뢰로 똘똘 뭉쳐 있고, 지향하는 가치와 성공 스토리를 공유한 사람들이다. 팀이 좋으면 비즈니스 모델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새로 만들 수 있지만, 좋은 팀은 쉽게 구성할 수 없고 때로는 하늘이 내리기 때문이다.
이상의 네가지 요건이 만족되었다 하더라도, VC가 요구하는 마지막 투자요건은 출구전략이다. 투자 수익을 도모하는 VC에게 출구전략의 유무는 투자결정의 최종 핫 버튼이 된다. 스타트업 기업이 출구전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투자가 아니라 기부를 해 달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어떤 투자가들은 출구전략으로 M&A 혹은 IPO에 대한 단계별 계획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창업자가 나서서 M&A를 너무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업에 대한 창업자의 몰입에 의구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이성과 감성, 과학과 예술, 노력과 행운이 공존하는 중간지대에 있고 박명(twilight)의 시기에 거처한다. 어스프레한 여명의 시간에는 피아구별이 쉽지 않다. 그래서, 창업기간은 스타트업에게 불안과 걱정의 시간이다. "다섯개의 핫 버튼을 제대로 누른 5%의 기업만이, 지는 해가 아니라 떠오르는 태양을 볼 지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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