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 창녕인물비사㉘>
한국전쟁 참전 미군 병사 러스터 창녕을 찾다
1980년대 영산이나 창녕 장날이면 군복을 입은 키가 크고 오른쪽 팔이 없는 미국 사람을 흔히 보거나 만날 수 있었다. 만나는 장꾼들과 안면을 트고 웃으며 인사도 하고 다가와 악수도 나누고 또 막걸리를 같이 마시면서 격의 없이 말을 주고 받았다. 몇 마디 우리 말도 해 친근한 친구처럼 서로들 반겼다. 그의 이름은 러스터(?~2012.01), 한국에 오래 머물며 노성도라는 한국 이름도 가졌다.
미국의 <한국전쟁교육사>(영문판)에 실린 한국전쟁 중 창녕에서 전상戰傷한 허버트 R. 러스터에 대한 글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 러스터는 6·25전쟁 중 미제1해병임시여단……AR자동소총 사수이며 마산과 진동……전투에 이어 창녕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8월 17일 창녕군 어봉리(남지읍 아지북동쪽)의 “낙동강 돌출부 전투”에서 오른쪽 팔을 잃었다. - 배대균 역저 『창녕 방어전투 실화』 p368 (사진도 수록/가져옴)
낙동강 돌출부 전투는 한국의 마지막 보루 부산을 사수해야 하는 방어선이었다. 창녕지구를 미제24사단이 지키고 있었는데 인민군은 1950년 8월 6일, 남지 시남 이이목 나루로 낙동강을 도강하였다. 전선이 긴박한 상항으로 돌변하자 8월 16일 오후 러스터가 소속된 미해병여단이 장마면 어봉 107~144고지 5곳에 투입되었다.
이튿날(17일) 새벽에 전투가 개시되었다. 포병과 항공기가 선제 공격하였으며 격전 끝에 인민군이 후퇴하자 추격전이 벌어졌다. 해병대는 오후 6시경에는 어봉고지에서 아지 북쪽 산기슭과 고곡 소재미 앞을 거쳐 낙동강이 보이는 지점인 머찔(내곡)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구진산에 있던 적의 포병과 기총소사 등 강력한 반격에 많은 사상자로 내자 항공기 폭격 지원을 받으며 후퇴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러스터는 AR부사수 벅스턴과 함께 농가 2~3채가 있는 고곡마을(산바꿈과 옻고개 사이 머찔 살구정) 근처 작은 언덕 약간 꺼진 곳까지 진격했는데 적을 만났다. 적을 발견한 러스터는 AR자동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30발의 AR 탄창을 한순간에 비우고 새 탄창을 끼워 넣는 순간 전방 적의 기관총 총탄이 날아와 오른쪽 어깨가 크게 들썩했다. 가까이 다가온 적을 보고 수류탄을 빼 던지려 했으나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총탄을 맞은 러스터는 정신을 잃었으며 전우들이 탄막을 뚫고 병원으로 이송하였으나 결국 오른쪽 팔을 잃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피아간 사상자가 많았다. 선두 해병1대대는 전멸상태가 되었고 2대대가 투입되어 4시간여 격전이 벌어졌었다.
러스터는 팔을 잃은 옛 전장을 찾아왔는데 그때가 1980년 1월 22일이었다.
대구에 도착해 지도를 펴놓고 30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격전장 낙동강 돌출부 “어봉리”를 찾았다. 어봉리 119와 114고지의 능선을 찾은 다음 진격 전선을 따라 오른 팔을 잃은 고곡 머찔 뜸 앞 어느 언덕을 기억해 냈고 창아지 산바꿈까지 나아가 차씨 재실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 이튿날부터 며칠간 그는 옛 전장을 찾아 그때의 격전을 되살리며 아지 북쪽에서 고곡수리 들, 적 포병 진지였던 구진산 자락까지 헤매고 다녔다.
들판과 산기슭을 이리저리 무엇을 찾으려는 듯 쏘다니고 있는 군복을 입은 미국인을 발견하고 다가간 사람이 칠현 마을에 사는 박재윤이었다. 그는 손짓발짓 한 두 마디 서툰 영어로 물었다.
“후 아 유? 당신 뭐 할라꼬 댕기요?”
러스터는 ‘아이 러브 코리아’를 연발했고 또 박재윤은 손짓발짓으로 묻고 대답한 끝에 그의 의중을 짐작하여 칠현마을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탱큐! 아이 러브 유!”
아래채 마구간 옆 쇠죽을 끓이는 헛간 방에 머물게 하였다. 그는 가져온 침낭으로 잤는데 박재윤은 추운 겨울이라 항상 군불까지 때서 방을 뜨끈뜨끈하게 했다. 러스터는 헛간 방에 머물며 행복해 했다.
“어릴 적 단돈 5센트가 없어서 보이스카웃에서 퇴출되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이토록 행복하다.” 하고 미소를 지으며 댕큐를 연발했다.
박재윤은 영산 장날이면 러스터를 데리고 장 구경을 가기도 하고 또 남지장이나 창녕장 구경도 시켰다. 러스터는 군청이나 경찰서에 찾아가 인사를 하려 하자 박재윤은 그를 데리고 가서 군수나 서장, 교육장도 만나게 했다. 큰 구경이 난 듯 장꾼들이 둘러싸면 그는 그 새 배운 “안녕하세요.”하고 웃으며 악수를 나누곤 하였다.
러스터는 1980년 1월 처음 남지 칠현마을에 와서 6개월을 머물고 돌아갔다. 이후 1년이면 한번 아니면 두세 번 창녕을 찾았다. 박재윤의 부인은 러스터가 좋아하는 감자요리를 언제고 만들어 대령하고 옷가지를 챙기니 영락없는 한 가족이 되었다. 그는 6·25전쟁, 피난 생활, 적병들과 싸운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들과 언제나 나누며 즐겁게 지냈다.
그는 6·25때 입은 부상을 치료한 후 미국에서 15년 동안 학교 선생님으로, 타계하기 전 10년은 교회 목사로 지냈다. 또 그는 주방위군 사격 코치로 지내기도 했는데 왼팔 하나로 M-1 소총을 쏠 수 있고 45구경 권총도 재빨리 뽑아 총질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번 오면 두 달씩 칠현 마을 박재윤의 헛간 방에 머물기를 2012년 타계할 때까지 20여 년을 계속했다.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 한국에 살다 죽고 싶다.”
하고 죽으면 창녕 땅에 묻히고 싶다면서 묘비까지 만들어 놓았다. 묘비에는 러스터란 이름 외에 노성도란 한국 이름도 새겼다. 그는 대한민국을 항상 그리워했으며 창녕을 진정으로 사랑한 미국사람이었다.
창녕을 찾은 러스터의 발자취는 팔을 잃은 한 미군 병사의 이야기를 넘어 6·25전쟁의 참상과 창녕군민들의 뼈저린 상처 그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다 할 것이다. *
<창녕신문> 2026년 6월 22일 연재분
첫댓글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 자주 오셔서 흔적 남기시는
님들의 아름다운 마음의 향기가 꽃 향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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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칭찬하는 소리엔 저절로 활짝 열리고
남을 욕하는 소리엔 금방 닫히는 그런 예쁜 귀를 가졌으면 좋겠다.
칭찬 보다 욕이 많은 세상에 한쪽 만을 가지더라도
그런 귀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때 사람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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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삶을 살려면, 가슴을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으십시오.하나하나 마음을
여유롭게 갖고 즐거운 생활하세요.
안녕하세요~??.♥
마음속에 이쁜 마음만 가득하시고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그런 좋은 하루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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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친구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가 먼저 그 사람의 기쁨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о♣ Have a Good Time~♡♡
말 한 마디는 마음에서 태어나 마음에서
씨를 뿌리고 생활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의 말 한마디가 소망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늘♡멋진 하루 ^♥^♥Have a nice day~★♡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다루기 어려운 내 마음도 파악하기 힘든
남의 마음도 다스릴 줄 아는 진정 현명한 사람이며
감로수처럼 시원해질 배려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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