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큰 장화 빨강 장화
쿵쿵거리면
감자 싹이 돋아나고
상추 고추 자라고
장화 신은 아기
쿵쿵 뜀박질에
제비꽃 살그머니 피어나
노란 민들레 길 만들고
쿵쿵 찍은 발자국에 웃음꽃 피어나요
자두나무 아래 머위 잎을 뒹굴뒹굴 돌린다
물봉선화 한 무리 곱게 피어나고
고라니 청설모 쫒던 손발에 빨간 물이 들었다
하하하 호호호
누구에게 자랑할까
마당가에 앉은 할미에게
후다닥 뛰어 간다
장독대
종이 버선 오려
거꾸로 붙여 귀신 쫓는 할미
새끼줄 꼬아
솔가지 고추 숯덩이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장 항아리 닦는 엄마
까망 분꽃 씨앗 심고
언니 시집가는 날 잡고
기도 한다
항아리마다 출렁출렁
하늘이 담기고
아침저녁 꽃잎 매만지던 언니
나날이 얼굴 붉어지던
거미
아침 깨우는 가야금 소리
딩동 당동 숲을 울린다
달빛 머금은 이슬방울
딩딩 털어내는가
한 줄 튕겨 소쩍새 재우고
두 줄 튕겨 달빛 묶어
한밤을 타고 놀던
숲속의 향연
딩동 당동 깨어난 아침
줄마다 맺힌 햇살 그네를 탄다
소나무와 참나무를 묶어
숯의 밤을 밝힌 거미
떠오른 햇살에
딩동 당동 가야금 탄다
팥시루떡
도화동 언덕 마을
대문엔 문고리가 없었지
가난과 부자의 담이
어긋나지 않게 나눴어도
경계 없이 온정 주고받았지
동지 맞은 할머니는
팥죽 쑤어 골목을 누비고
일 년의 안녕을 얻었지
시루에 팥떡 안치는 날은
동네잔치가 열려
너도나도 마루에 걸터앉았지
오 남매 앞길 열어주려
장독대에 떡시루 올려놓고
두 손 모았던 할머니
시장에 갈 때마다
떡 가게 앞에 멈춰 큰 소리로 부르면
금방 뛰어나와 얼싸안아 줄까
할머니의 목탁
동족상잔의 난리 속에
시집온 어머니
할머니의 목탁 소리로
나를 키우셨다
방아 찧으며
뱃속에 든 나를 부등켜 안고
할머니 목탁으로 잠을 청했다
화천사 범종 소리 들으며
부처님 말씀 따라 자애가 넘쳐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목탁을 치매 시작한 하루가
골짝을 어둠으로 채워도
할머니 방에서는 목탁 소리가 울려 나왔다
어느새 커버린 손녀와 찾은 신륵사
목탁 소리에 문득 떠오른 할머니
살며시 열어본 법당 안에
다소곳이 앉아 계신다
하얀 나비 되어
멀리 있어
보이지 않아
그리워서 어두운 거야
예쁜 꽃무늬
좋아하시던 울 엄마
빛바랜 환우 복 벗고
송화 향 그윽한 안식처에서
하얀 나비로 부활하여
곤지암천 산책길에
나풀나풀
나와 함께 춤추자 하네
꽃의 대화
이슬비에 젖은 길가
쫑긋쫑긋한 제비꽃
서로 기대어 이름 부른다
가만히 귀 기울이다
주저앉아서
누가 더 예쁘냐고 물으니
서로를 가리키며 웃는다
빗물 털어주며
함께 놀자고 말 걸어 보니
고개 끄덕끄덕하다가
바람 타고 털어내는 물방울
벌떡 일어나
이슬비 내리면 오겠다고 말 걸어오니
그래그래 하면서
깔깔 웃는다
친구
어디 있을까
산책길 끝나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노란 민들레 피어난 길에
나비 날으네
불러도 소식 없는 동무들
애기똥풀 꺾어 노랑 즙 짜내던 시절
서로 어깨 치며 웃었는데
산비둘기 날아가듯
떠나버린 친구들
혼자 걷는 산길에
온갖 새가 반겨 주는데
길고양이 달아나듯
보이지 않는다
징검다리 걷듯 껑충거리며 불러도
숲속에 퍼져 가는 메아리만 외롭다
첫댓글 여운이 잔잔하네요,ㅡ
첫댓글 여운이 잔잔하네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