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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무 태후가 입을 열었다.
“자자, 좀 딱딱한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 화기애애하고 재미난 얘기들이나 나눕시다. 오늘 모인 것은, 종교 강화를 듣기보다, 내가 대당의 선남선녀들과 허물없이 사귀고 싶어서였소.”
무 태후는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조영 옆에 앉은 극시아를 바라다보았다. 아마도 극시아에게 어떤 암시를 주는 것 같았다. 무 태후는 이어서 회의를 쳐다보며 말한다.
“아사! 아사는 속세에 있을 때부터 무술이 뛰어나 무림에서 명성이 자자했다는 소리를 들었소. 이번 기회에 젊은이들에게 아사의 통쾌한 무용담이나 한 토막 들려주시는 게 어때요?”
얼핏 보기에 사십여 세로 보이는 무 태후는, 회의를 대할 때 매우 부드럽고 애교 섞인 태도를 보였는데, 좌중의 젊은이들은 그녀가 육십 넘은 여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과거사는 모두 잊었는데, 새삼 무용담이라뇨?”
회의가 웃음 띤 얼굴로 무 태후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분위기를 좀 돋우기 위해서.”
“으흠! 그렇다면.”
회의는 자세를 바로잡더니, 과거를 회상하는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삼 년 전 속세에 있을 때 어느 도사道士 놈이 내게 도전을 해왔었소. 검술가로 사해에 이름을 날리는 이였죠.”
회의가 도사들을 몹시도 혐오해, 무 태후의 측근으로 세력을 잡은 후, 길에서 도사를 만나기만해도 무작정 두들겨 팼다는 <자치통감>의 기록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회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 놈이 장검長劍을 썼는데, 난 적수공권으로 상대했소. 참으로 힘든 상대였소. 무려 한 시간이 지나 그 놈을 겨우 제압했는데, 나도 두어 군데 상처를 입은 후였소.”
“대사께선 왜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셨나요?”
좌중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무유서였다.
“자신도 있었고, 호기를 부리기도 했소. 또한 부처님의 자비심도 있었고. 내가 무기를 쓰면 그 자가 크게 다칠 것 같았소. 하지만 그 자의 무공이 어찌나 고강한지, 내 생전에 그런 적수는 처음이었소.”
이어서 회의는 어떤 수법으로 그 자를 제압했는지에 관해, 실제로 싸우는 것처럼 상세하게 묘사했다.
손에 땀을 쥐고 듣던 무 태후와 젊은이들이 일제히 손뼉을 쳤다.
“이번에는 무유서 장군의 무용담을 듣고 싶습니다.”
회의대사의 말이다.
“저야 뭐 위인이 변변치 못해, 무용담이랄 게 없습니다. 그저 폐하의 은덕을 입어 요행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겸손의 말씀을 하시는군요. 소승이 속세에 있을 때, 무유서 장군이라면, 흑도黑道(범죄집단)의 고수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무유서는 낙양성 치안대(경찰)인 무후군의 범 같은 장수다. 흑도의 무리들은 그를 저승사자처럼 두려워했다.
“한번은, 낙양의 유명한 도적들이 무유서 장군에게 붙잡힌 바 있소. 칼로 무장하고 덤벼드는 도적들을 무유서 장군이 바람처럼 움직이며 일거에 쓰러뜨렸는데, 그 멋진 광경을 여러 사람이 목격했다 하오.”
무 태후가 회의의 말을 거들었다. 무 태후는 사비우, 연헌성, 서연, 이기원 등의 무용담도 간청해서 들었다.
“천헌성 장군의 활 솜씨는 귀신도 잡는다고 들었소.”
연헌성이 겸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전,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고려인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매일 경당扃堂에서 글과 활을 익혀, 모두 명사수들입니다. 쏘았다 하면 백발백중입니다.”
좌중의 고조영과 사비우, 이기원 등이 모두 동이족 출신이었는데, 연개소문의 손자 연헌성은 자신을 낮추면서도 동이족의 무용을 은근히 자랑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난 후 측천무후(무 태후)는 금은보화를 상금으로 내걸고, 문무백관들을 모아 활쏘기를 겨루게 하고 그 중 명궁名弓 다섯 명을 뽑게 했는데, 일등으로 선택된 게 바로 이 사람 연헌성이었고 다섯 명 중에 한족漢族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구당서/열전/동이>.
좌중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무 태후는 가끔씩 극시아와 조영이 서로 담화하는 광경을 훔쳐보았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저녁 식사와 아울러, 감로주甘露酒, 죽엽청竹葉靑, 소흥주紹興酒를 비롯해, 이름도 알지 못할 각종 술이 들어왔다.
“오늘은 내가 아름다운 남녀들과 만나니 나도 무척 젊어진 것 같아요. 여러분에게 특별한 식사와 술을 대접하니, 모두 영광으로 알고 나와 함께 즐겼으면 좋겠어요.”
오손도손 오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소담하게 담은 채, 낙양 북궁 장생전의 기나긴 가을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술시戌時(저녁8시 전후)가 넘고 해시亥時(열시 전후)가 가까워올 무렵에야 무 태후는 젊은이들을 놓아주었다.
약간의 취기를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선 조영은 무 태후와 극시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극시아도 역시 취기가 감도는 얼굴빛으로 조영에게 부끄러워하는 듯한 웃음을 살포시 던진 후 속삭였다.
“긴 시간 장군님 곁에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또 다시 뵙겠습니다.”
조영은 이루하와 여미아를 집 근처까지 배웅한 다음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어처 극시아는 시녀들을 거느리고 사나흘 걸러 거의 한 번씩, 조영의 집으로 놀러왔다. 만나면 정이 든다고, 그 사이에 조영은 열일곱 살 어처 극시아가 머나먼 곳에서 황궁에 들어와 사는 것이 애처롭게 생각되어, 가끔씩 그녀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곤 했다.
그녀는 여미아의 친동생으로서 얼굴도 무척이나 매혹적이었고 마음씨도 고운 것 같았다.
며칠 후 출근했을 때, 자신전에서 무 태후가 조영에게 은근히 속삭였다.
“고 장군, 도성의 생활이 좀 답답하지 않아요?”
“아닙니다. 폐하의 덕분으로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바람 좀 쐬러 갈 생각이 없나요?”
“······?”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달 동안.”
조영이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에 향긋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며 내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어처 극시아마마를 모시고 왔사옵니다.”
그 말과 함께 극시아가 안으로 들어오며 조영 곁에 다가가 섰는데, 그윽한 향기가 조영의 후각을 강렬히 자극했다.
“그래, 친정에 다녀올 차비는 되었느냐?”
무 태후가 극시아에게 물었다.
“네, 폐하.”
“고 장군이 호위무사로 어처 극시아 수녀를 친정까지 모시고 갔다가 다시 돌아왔으면 하오. 고 장군의 의견은 어떤가?”
조영이 놀라며 반문했다.
“아니, 저 혼자서 말입니까?”
“긴 여행이라 많은 군사를 보낼 수는 없고, 말갈인 장수 사비우四比羽를 데리고 가게. 극시아의 시녀들도 무예에 능하다고 하니 고 장군 혼자만 가더라도 충분할 것 같네.”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사비우는 원래 송막도독 이진영의 수하 장수로서 금년 봄의 무술대회에 출전했다가, 무 태후의 명으로 우림군 장수가 되어 낙양성에 머물고 있었다. 사비우는 위인이 충직하고 믿음직스러웠으며 조영보다 두 살 더 많았으나, 무 태후는 그에게 임시로, 극시아를 수행하는 호위장수 고조영의 부장副將 직을 수여했다.
조영이 평소 사비우와 사귀어보니 성품이 진실하고 정직하며 신뢰할 만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여인들 앞에서는 어찌나 부끄럼을 타는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일단 싸움에 나서면 호랑이처럼 용맹스러웠다.
어처 극시아가 친정으로 떠나기 전 날 무 태후는 그녀를 불러 다시 신신당부했다.
“앞으로 넉 달 기한, 그러니까 내년 이월 초순 안으로 궁에 돌아오되, 그 안에 반드시 조영을 공략해야 한다. 알겠느냐?”
“네, 폐하.”
“만일 이 기간에 그를 점령하지 못하면, 그보다 좋은 기회는 다시 없을 터다. 성공한다면 약속대로 너를 구빈 중 하나로 승진시킬 것이고 많은 상을 내릴 것이다.”
“제가 실패한다면 제게 어떤 벌이 내려지나요?”
“벌은 없다.”
“그렇다면 제가 친정에 가서 설을 쇤 후 곧장 내려오겠습니다.”
“오냐.”
무 태후는 짤막히 대답하고 그녀를 내보냈다.
극시아는 무 태후 전을 물러나면서 하늘에 빌었다.
“하나님, 하나님, 부디 이 길이 황궁에서 영원토록 떠나는 길이 되게 하시고, 간절히 비옵나니 조영공자와 저를 부부로 맺어 주사, 고려 땅에 가서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며, 부모님의 유언을 이루게 하소서.”
무 태후는 극시아를 보내고 침전으로 간 후 승려 회의를 은밀히 불러 들였다.
“아사, 내가 어처 극시아를 넉 달 기한으로 친정에 다녀오도록 조처했소. 내일 떠날 거예요.”
“오, 그래요? 무슨 일로 갑자기 친정엘 갑니까?”
“옛날 집을 떠날 때, 그녀의 조부가, 목숨이 살아있는 한 정해丁亥년 설에는 반드시 집에 들르라고 신신당부했다오.”
“근데 그 얘기를 왜 제게 하십니까?”
“고조영과 사비우가 극시아를 수행해 다녀오기로 했어요. 그런데 만에 하나, 고조영이 흑심을 품고, 그녀를 데리고 고려 땅으로 도망이라도 가면 어떻게 되지?”
회의는 물끄러미 무 태후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앙천대소했다.
“으하하하하······!”
“왜 그렇게 웃는 거지?”
“아니, 웃지 않게 생겼습니까? 왜 하필 고조영을 딸려 보내고 그런 염려를 하십니까?”
회의는 남녀 상사지정相思之情에 매우 밝은 무 태후의 남총으로서, 무태후가 고조영에게 은근히 연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고조영 공략의 수단임도 직감했다.
“아니, 웃지만 말고 좋은 방책이 있으면 말해 봐요.”
회의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사중四重 그물을 친다면, 그들은 결코 폐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사중 그물이라면?”
“고려인들은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 특출하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조부는 거의 하늘처럼 받든다고 합니다.”
“아하! 그의 조부 고승을 인질로 잡아두라는 거지?”
“그럼요. 영주 계성에 살고 있다 하니, 다시 데려오면 됩니다.”
“그럼 둘째는?”
“어처의 친정이 어디인지 모르나, 주소를 입수한 다음 파발마를 띄워 주소지가 소속한 주州 도독에게, 병사들을 보내 어처를 보호하는 척하며 은밀히 감시하라고 명하십시오.”
“영주도독 조문홰에게 즉시 파발마를 보내야 하겠군요. 계속 말해 봐요.”
회의는 계속해서 세 번째 계책을 말했다.
“이것은 상책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을 성 싶습니다. 조영 그놈이 의리가 있는 것 같고, 그와 아주 친밀하게 지내는 이가 바로 송막도독의 딸 이루하와 그녀의 여종 여미아인 것으로 소승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사의 눈초리가 예리하군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 두 년을 잘 감시해서, 낙양성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십시오.”
“득도한 고승이, 어찌 그리 말투가 험하오?”
무 태후가 빙그레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어험! 득도得道 해탈解脫은 마음으로 하는 거지, 입술로 하는 게 아닙니다.”
“아사의 궤변이 여전하군요. 호호호!”
무 태후는 간드러지게 웃으며 물었다.
“넷째 그물은?”
“이건 그물이 아니라, 자비로운 조처입니다.”
회의는 헛기침을 한 다음 부언했다.
“소승이 제도濟度한 중생들을 이십여 명 보내, 도중에 그들로 하여금 친히 조영과 극시아를 부처님께로 제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두 사람이 폐하의 극진한 은덕을 깨닫고 대오각성하여, 폐하로부터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역시 아사는 머리가 참 좋아요. 내가 아사를 제대로 보았다니까.”
회의는 연신 헛기침을 하면서 무 태후에게 말했다.
“다만, 스무 명이 근 네 달을 밖에서 보내려면 경비經費가 좀 필요합니다.”
“그건 염려 마오. 내가 댈 터이니.”
회의도 그만한 돈은 전혀 부담이 되지 않을 만큼 충분한 부富를 갖추고 있었으나, 자신을 향한 무 태후의 애정을 은근히 시험해본 것이다.
무 태후는 이렇게 말한 후 회의를 쏘아보며 속삭였다.
“하지만, 그들더러 조심하라 하세요. 조영과 극시아를 부처님께 귀의하도록 제도濟度하려고 할 때 그들이 말을 듣지 않더라도 결코 폭력을 써선 안 되며, 두 사람의 머리터럭 하나라도 상한다면 자기 목숨으로 대신해야 한다고.”
조영에 대한 회의의 질투심을 잘 알고 있던 무 태후는 조영을 해칠 생각은 꿈에라도 품지 말라고 회의대사를 은근히 협박했다.
“그들이 곁길로 빗나가 무간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나중에 극락세계로 가도록 그들의 길을 잘 제도하겠습니다.”
회의의 말은 뼈를 담고 있었고, 이중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 태후는 감히 회의가 조영을 해칠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판하고 있었다.
회의의 말은 표면적으로, 무술에 능한 자기 부하들, 좋게 말해 자신이 제도한 제자들을 보내 극시아 일행을 미행하고 감시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무 태후도 이렇게 해석했으므로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 날 밤, 이루하의 집에서는 그녀의 시녀인 여미아가 새벽에 일어나 이루하를 깨우고 있었다.
“아씨, 곤하게 주무시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이루하가 자다 말고 일어나 무슨 일인가 하고 멍한 얼굴로 여미아를 쳐다보았다.
여미아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히 얘기했다.
“아씨, 제가 조부 곁을 떠날 때 조부께서 제 가슴에 새겨주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이루하가 느닷없는 여미아의 말에 생뚱한 얼굴로 여미아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말씀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다. 너와 나는 친 자매간이나 마찬가진데, 뭘 망설이느냐?”
이루하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제가 조부 곁을 떠난 지도 어언 수년이 지났습니다. 그 때 조부께서 당부하시길, ‘네가 살아있다면 정해년 설날에 꼭 집에 다녀가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그 날에 오지 못하면 죽은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이르셨습니다.”
“정해년이라면? 내년이 아니냐? 그리고 설날은 앞으로 두어 달 정도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렇습니다.”
“너의 할아버지가 지금 어디에서 사시냐?”
“옛날 제가 집을 떠날 때 영주 계성 남쪽에 사셨습니다.”
“아직도 기억할 수 있느냐?”
“물론입니다. 그 곳이 눈에 선합니다.”
“그렇다면 나도 같이 가면 어떨까?”
“아씨께 어찌 그런 큰 불편을 끼쳐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여자 혼자 몸으로 어떻게 여기서 이천리가 넘는 머나먼 계성까지 다녀올 수 있느냐?”
“저는 괜찮습니다. 아씨를 모시기 전에는 언제나 혼자서 떠돌았는데요.”
“근데 왜 평소의 너답지 않게 새벽부터 나를 깨우고 난리지?”
“밤중 꿈에 제가 섬기는 구주 예수님의 사자使者가 나타나, 오늘 이른 아침에 성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성을 빠져 나가라고 이르셨습니다.”
“어머나, 그게 사실이냐?”
“네, 아마도 저희 신상에 큰 위험이 닥쳐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있을 게 아니구나. 빨리, 행장을 갖추고··· 가만있어라, 영주 계성까지 가려면, 날씨가 추워지고 있어서 마차가 필요할 터인데?”
“아씨, 이 밤중에 어디서 마차를 빌 수 있겠습니까? 그냥 가지고 있는 말을 타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나도 너하고 동행하마. 딴 소리 하지 말거라. 너 혼자 보낼 순 없다.”
이렇게 말한 이루하는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먼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여미아의 평소 언행에 대한 이루하의 신뢰심은 지극했으므로, 이루하는 여미아의 뜬금없는 발언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조영 공자께, 인사도 못하고 가니 어떡하지?”
이루하가 여미아에게 물은 후 재차 말했다.
“날이 새면, 조영 공자에게 들러 작별인사를 한 후 다녀오는 게 어떨까?”
“그러면 늦을 것 같습니다. 성문 안에 대기하고 있다가 문이 열리는 즉시 나가야 합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구나. 다녀와서 이야기하는 수밖에. 부디 우릴 걱정하지 말아야 할 터인데.”
계속 조영을 들먹이는 게, 이루하는 조영에 대한 상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 같았다.
여미아는 속으로 탄식하며 생각했다.
‘아씨께서 조영 공자를 이토록 사모하고 계시는데··· 부디 조영 공자와 아씨가 백년가약을 맺어야 할 터인데··· 오, 하나님, 하나님!’
여미아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 있던 이루하가 놀라서 물었다.
“왜 한숨을 쉬느냐?”
이루하가 여미아의 얼굴을 빤히 쏘아보며 재차 물었다.
“너도 조영 공자를 생각하고 있는 거지? 내 눈은 못 속여.”
“천녀가 어찌 감히 허탄한 망상을 가질 수 있겠사옵니까?”
여미아가 깜짝 놀라 주인을 매우 공경하는 태도로 대답했다.
(다음 장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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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4. 3. 30.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