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중은 한시의‘시어’를 성리소설의‘제목’으로
2023년 7월 31일 3시 한글회관 지하강당
설 성 경(연세대 명예교수)
1. <구운몽>의 사상과 주제에 대한 연구사의 성찰
1930년대의 <조선소설사>에서 김태준은 작품의 여러 장면에서 나타나는 민간 신앙에서 유·불·선 삼교의 화합사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이후, 주왕산은 유교의 현실주의, 불교의 은둔사상, 도교의 향락주의가 나타나 삼교가 혼연히 일치된 소설이라고 하였다. 또, 이명구는 양소유는 유교를, 성진은 불교를, 팔선녀는 도교를 각기 표상하고 있어, <구운몽>에는 유·불·선 세 가지의 인생관이 나타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삼교 화합설에 대하여 김만중의 불교에 대한 심취나 작품에 나타나는 불교적 성향을 들어 <구운몽>에 나타난 사상은 오로지 불교사상뿐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박성의는 <구운몽>이 불교적인 제행 무상관을 사상적 배경으로 인생무상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고 하였다. 또, 1970년대에 와서, <구운몽>이 나타내는 사상은 불교사상 중에서도 공사상(空思想)이라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정규복에 따르면, 성진은 팔선녀로 인하여 혼미하였다가 유교적인 부귀공명의 환상을 통하여 육관대사 앞에서 깨달은 성진으로 되돌아갔으니, 이는 미에서 환을 통하여 각인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금강경>을 중심으로 한 공사상과 대응된다고 하였다. 성현경은 넓게는 불교사상, 좁게는 공사상이 서포적으로 변용, 굴절되어 나타났다고 하였고, 정주동은 불교사상 중에서도 <금강경>의 공사상, 곧 ‘공즉시색(空卽是色)·색즉시공(色卽是空)’의‘진공묘유(眞空妙有)’의 사상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견해를 내세웠다. 조동일은 <한국문학통사> 등에서 성진이 <금강경> 사상의 높은 차원의 것을 실행하지는 않았고, 다른 방법으로 그 사상이 작품에 나타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공사상설을 비판하였다. 모양이 있는 것은 허망하다는 정도의 생각은 불교의 기본적인 전제이기에 불교사상설이 오히려 실상에 부합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정규복은 <구운몽>의 종결 부분에 등장하는 육관대사가 성진과의 문답에서 성진의 꿈 속 인물인 양소유와 현실상의 인간인 성진의 2분법을 깨뜨리고 성진과 양소유, 몸과 꿈, 장주와 호접의 2분법으로 되돌리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구운몽>의 주제와 사상은 다시 <금강경>이 바탕이 된 공관(空觀)의 미학임을 재확립하였다.
2. <구운몽>의 환몽구조와 제목의 의미는?
<구운몽>은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쓰여진 작품이지만 대승 불교의 중심인 <금강경>의 가르침을 소설화한 무게감이 실린 작품이다.‘꿈’이라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환몽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환몽구조는 현실과 꿈을 넘나들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현실에서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실현하기도 하는 구조를 가진다. <구운몽>에서 성진과 양소유는 각각 현실 세계와 꿈의 세계로 나누어진 사건을 만들어 간다. 어느날 세상의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한 성진은 꿈속에서 양소유가 되어서 욕망을 마음껏 펼쳐 보이다가 세상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처럼 환몽구조를 통해서 작가는 현실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하면서 작가가 의도했던 교훈을 전달하고자 한다, (주재우, <구운몽>, 계림출판사, 2012, 180~181쪽)
3. 성리소설 <구운몽>의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 바로 알기
서포 김만중은 최고의 학문과 문장을 보장하는 당시의 대제학 출신 시인이요, 소설가로서 1689년 유배지 평안도 선천에서 일반 통속소설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성리소설 <구운몽>을 창작하였다. 작품의 제목으로 내세운‘구운몽(九雲夢)’은 중국과 조선에서 흔히 사용하던 시어였다. 그는 세 음절의 한시 시어를 가져와서, 중국의 어떤 소설도 담아내지 못한 불교철학과 성리철학을 녹여 합친 조선형 이야기 틀을 창안하여, 17세기 한국소설의 수준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리는 놀라운 성과를 드러내었다.
첫째, 아홉의 철학적 의미: 하나와 여덟, 그리고 열 둘째, 구름의 철학적 의미: 현상과 실상 셋째, 꿈의 철학적 의미: 현실과 참선, 그리고 도심과 인심 넷째, 한시의 시어에서는‘인간이 꿈꾸는 최대의 행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