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초대석(이화영 시인)
‘사랑의 역설을 꿈꾸는 미학적 순간’을 담은 시
시집 『하루종일 밥을 지었다』 출간한 이화영 시인
-본인 소개
저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군 나포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포(羅浦)라는 이름이 예뻐서 지금도 태어난 곳을 물으면 나포라는 지명을 꼭 밝힙니다. 이탈리아 나폴리를 부르는 발음 같아서요. 제가 태어난 나포는 금강을 경계로 장항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물이 오르면 찰랑이는 금강 뒤로 장항제련소 굴뚝에서 기세 좋게 오르던 연기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곳에서 직접적· 간접적 경험이 글을 쓰는 귀한 질료가 되었으며, 2009년 격월간 『정신과표현』 시부문으로 등단하여 2024. 10월 제 3시집 『하루종일 밥을 지었다』를 발간했습니다.
-제 3시집 『하루종일 밥을 지었다』를 소개하면.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적 직관과 감각을 바탕으로 사물 및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개성 있는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 개인사적 경험에서 길어 올린 상처 및 과거의 가치 있는 기억을 의미 있게 재구성한 시, 시적 언어의 본질 및 시인의 정체성 탐구를 통해 깨달은 바를 형상화한 시, 사랑 또는 그리움의 정서를 개성 있는 언어로 형상화한 작품들, 자연 생명과 인간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치매와 섬망의 고통을 건너는 어머니를 다룬 시, 사회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성찰 및 반성을 간접적으로 의인화하여 다룬 시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집을 내게 된 동기와 에피소드
2시집 『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이후 10년 만에 3시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시어도 시간이 흐르면 좀 묵은 느낌이 듭니다. 2023년 11월에 엄마를 멀리 보내드리고 시집 묶는 것에 매달렸습니다. 삶이 텅 빈 듯한 느낌이었고 시로 엄마를 위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3시집은 엄마 시에서 멀어지고자 하였는데 더 가깝고 깊어졌습니다.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일도 인간의 일이 아닌가 봅니다. 시詩도 결국 정의 문학임을 실감합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시는 무엇일까요. 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지는 시간이 많습니다. 시는 다른 어떤 경계의 공간이며 식탁이나 골목·광장·카페·바다·회랑·박물관과 같다는 생각입니다. 시는 어디 있을까요.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하나 어느 선하나가 시야에 들어오며 경계라 속삭이지만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 무형의 존재 같다는 생각입니다. 시를 쓰다 보면 가슴이 뛰고 터지고 옥죄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골몰하는 밤이 지나도 품에 오지 않으나 한순간 우리는 그 빛을 보며 뛰는 심장을 경험합니다. 절실한 이에게 오는 이상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무형의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번 시집을 읽으실 분들에게 팁이 있다면
제 3시집은 소멸과 부재의 순간과, 상처의 흔적을 새로운 원리로 바꾸어내는 “사랑의 역설을 꿈꾸는 미학적 순간”(유성호 선생님 해설)을 담았습니다. 삶과 이별, 죽음과 죽어감에 맞서 싸우는 쇠잔한 육체를 지켜본 경험의 에너지를 언어로 치환하는데 집중하였습니다. 또한 시공간의 친연성을 가지면서 언어의 내면 공간을 보여주는 은유적 표상으로 나비를 투명하고 초월적 이미지로 그렸습니다. 시를 마주하는 시간은 나와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때론 줄에 매달린 광대처럼 위태롭게 흔들려도 보세요. 시를 향한 진정성이 있다면 화자의 목소리를 선연하게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모르는 당신
나는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당신은 모릅니다
당신을 만나서 기쁘지만 언제 당신을 잊을지 모릅니다
당신의 얼굴은
내가 아는 그녀와 많이 닮아서 자꾸 웃게 합니다
왜 이렇게 늦게 만났느냐고
어디 사냐고
묻지만
그 순간에도 난 당신을 잊어갑니다
어느 날은 전혀 모르는
당신이 따뜻했습니다
당신은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든 잊고 잊습니다
잊는 일은 우리를 만나고 웃게 합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합니다
나는 꽃잔디 같은 미소를 짓고
당신은 자꾸 내 손을 만지작거립니다
당신이 떠날 때
당신 얼굴과 이름이 떠올랐지만
나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배웅합니다
모르고 잊고 살다
어느 하루는
당신이 생각나 가만 잠이 듭니다
-앞으로의 계획
저는 2009년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침향』, 『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하루종일 밥을 지었다』 등 3권의 시집과 전자시집 「꽃을 새기다」를 내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세 번째 시집 『하루종일 밥을 지었다』 는 물질문명 속에서 나날이 훼손되어 가는 서정시의 본질을 회복하고 독자의 정서를 따듯하게 어루만져주며, 시 문학의 수준을 높이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마디
새해 2025년 1월호 『뷰티라이프』 ‘저자 초대석’에 초대되어, 독자분들께 저와 제 3시집 『하루종일 밥을 지었다』 를 소개하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건강은 아름다움의 동력이며 내면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운 마음의 현상학입니다. 『뷰티라이프』가 추구하는 궁극은 아름다운 심미성과 건강한 육체일 것입니다.
『뷰티라이프』가족 여러분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에도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는 복된 한 해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많으세요.
<뷰티라이프> 2025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