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
사범의 一大일대 보람
사진의 위촉장을 보니 원장님께서 태권도 사범으로서의 공생애가 이미 50년이 넘었습니다.(感歎감탄) 사범으로서 장수군, 군대(육군행정학교), 미동초등학교, 육군사관학교에서는 교관, 국가대표 성인시범단에서는 단장, 계명대학교에서 교수, 그리고 국내, 해외의 굵직한 태권도 연수 강사로서 경력이 대단하십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지 원장님으로서는 늘 새로운 자리에서 도전적인 가르침을 펼치셔서 전 세계 태권도 역사에서 굵직한 자취를 남기셨습니다. 저 역시 20대 초반 대학 시절에 원장님과 사제의 인연을 쌓으면서 원장님의 가르침이 점점 깊어짐을 경험합니다. 첫 번째 질문부터 곤혹스럽겠지만 원장님께서 태권도 사범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얻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질문2
현재의 일상생활
1972년부터 군대에서 인연이 된 미동초등학교에서 33년간 사범 생활 하시고 2005년 퇴임, 이후 계명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로 2013년에 정년퇴임, 국기원 이사와 제 ? 대 국기원 원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질문3
장수군 태권도 관장 시절
예전에 미동초에서 운동할 때 자주 각종 신문이나 잡지사 기자들이 체육관에 방문하여 취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도 각종 시범 준비로 태권도교육에 일분일초가 아까울 텐데, 기자분이 오시면 수업을 부사범에게 맡기시고 미주알고주알 답변하시면서 한 두 시간을 넘기시기도 했습니다. 근데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제가 옆에서 지켜보면, 원장님께서 참을성이 대단하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취재가 한두 번도 아니고 취재 기사가 쌓여있는데도 매번 중복되는 질문이 전개되어 원장님께서 매번 답답하시기 않았을까 짐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달리, 원장님께서는 차분히 상세히 답변하시고 그들을 대접하여 보내셨습니다. 조금이라도 태권도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신 원장님의 깊은 뜻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장님의 태권도 관련 보도가 처음 이루어진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질문4
스승 없는 태권도 獨學독학 修練期수련기
원장님께서 제자들을 향한 사랑은 각별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제자들이 각자 바라는 방향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있도록 당신께서 솔선수범하시고 격려하시고 때로는 훈계하시기도 합니다. 제자들에 대한 지도와 교육, 사랑이 넘치시는 이유에 대해 스승 없이 홀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승의 소중함을 경험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입니다. 저 역시 제 직업에서 뭔가 막혔다는 느낌이 들어 앞서간 자료나 諮問자문할만한 先進의 연구자를 과정에서 의탁할 바가 없으면 더욱 막막합니다. 과연 이런 경우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그동안 매스컴에 알려지지 않은 원장님의 태권도 입문과 스승 없이 성장을 위한 분투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질문5
창의적인 사범이 될 수 있는 까닭
어떤 분야든지 전문가 중에서도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 아래 수준의 높낮이가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높은 수준이 보이지 않을 경우 비로소 스승 없이 前代未聞전대미문의 길을 홀로 가야합니다. 창의적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스승 없는 경지인 최고의 전문가에 펼쳐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원장님께서는 장수군이라는 작은 지역 내에서 고립되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스승 없이 홀로 태권도의 길을 찾고자 분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잠시 동료도 있었고, 비교 대상도 있었지만 홀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기술을 실험하고 시도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좀 더 확고한 기술과 태권도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일 수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스승 있는 제자들은 모방을 통해서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기술 체계를 원장님께서는 홀로 제 길을 찾고자 몇 배의 공력을 들였으니 창의성에서 이미 남다른 성취를 하셨으리라 추측합니다. 배움에 있어서 창의적인 태도가 10대 후반에 우연히 시작된 사범으로서 가르침의 세계에서도 창의성이 발휘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질문6
군대에서의 다양한 활동
기록을 보면 고등학교 졸업 후에 곧바로 군대 가지 않고 ?년 후에 입대합니다. 장수군에서 태권도 지도가 좋아서 입대를 미룬 건지, 군대 가기 싫어서 延期연기한 건지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습니다.
질문7 (미동 퇴임식 사진)
미동초등학교 태권도부 사범 생활
원장님의 태권도 인생에서 미동초등학교 태권도부 사범 생활은 1972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33년에 걸쳐 있습니다. 2005년 계명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로 가신 이후로도 직접 지도는 물론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시지 않으시니 미동은 전 세계 태권도 수련자들에게 태권도 교육의 搖籃요람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태권도 사범 생활의 황금기인 20대에서 50대까지 청장년기 통째를 미동초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2005년에는 떠나시게 되었나요?
질문8 (당시 사진)
군인으로서 미동초등학교에 오게 된 사연
1972년 육군행정학교 태권도 교관 시절에 미동초 태권도부 사범으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군인 신분으로 민간인인 어린이들을 가르쳤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뭔가 사연이 있을 듯한데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질문9
미동초등학교에서의 하루 일상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 미동에서 시범단 활동을 했는데, 큰 시범이 있을 때는 준비를 위해 밤늦게까지 야간 훈련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운동 시작 전에 원장님께서 혼자 체육관에서 청소하시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시 학교에서의 하루 일상이 어땠는가요?
질문
삼십년 전으로 돌아가신 다면,
원장님, 미동 시범단 출신 00기 000입니다. 저는 원장님께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시범단 단원으로 지도 받았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선 태권도를 하지 않았지만 군대 다녀와서 태권도 사범이 되어 이제는 개인 도장도 운영하고 대학도 다니면서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제가 원장님과 나이 차이가 삼십년이 넘게 나네요.(웃음) 일흔을 넘기신 원장님께서 제 나이인 마흔 초반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원장님께서 무엇을 우선적으로 하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