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실적 좋은 놈만이 대접받는 무한경쟁시대. 구역이 붙어있는 마포서와 서대문서는 사사건건 비교당하는 탓에 밥그릇싸움이 치열하다. 반칙의 달인으로 악명을 떨치는 마포서 팀장 ‘황재성’(박중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잡고 보는 검거 실력으로 실적 1위를 달리고, 그를 이기기 위해 서대문서로 입성한 신임 팀장 ‘정의찬’(이선균)은 경찰대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이 무색하게 오자마자 잡은 날치기범을 ‘재성’에게 날치기(!)당해 실적을 깎아먹는다.
경찰대 출신이 아닌 ‘재성’은 승진을 위해, 속도위반으로 예비아빠가 된 ‘의찬’은 포상금 때문에 반드시 ‘체포왕’이 되어야만 하는 절실한 상황. ‘재성’과 ‘의찬’은 ‘체포왕’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뺏고 뺏기는 무한경쟁에 돌입하는데...
이때, 그들 앞에 승점 2000점짜리 로또 사건이 떨어진다. 그것은 바로, 마포와 서대문 일대를 들썩이게 만든 ‘마포 발바리 사건’. 잡기만 하면 지금까지 쌓은 실적을 단번에 엎을 수 있는 막판 뒤집기 찬스가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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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고 달리고 구르고 잡는다. 한국영화 속 형사들은 늘 짝패를 이뤄 발로 뛰어왔다. <투캅스> 이후로 무려 18년이 흘렀지만 무식하게 발로 뛰든 첨단수사기법으로 머리를 굴리든 그것만은 변함이 없다. 형사가 범인을 잡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치 않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속 우 형사(박중훈)의 말처럼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였을 따름이다. 하지만 <체포왕>의 형사들은 드디어 그렇게 미치도록 범인을 잡고 싶었던 까닭을 밝힌다.
무한경쟁시대의 밥그릇 싸움은 공권력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범인 검거에 일일이 등급과 점수를 매기고 실적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 아래에서 구역이 다른 형사는 동료가 아닌 적이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낚아채는 것으로 악명 높은 마포서 팀장 황재성(박중훈)은 검거 실적 1위를 자랑하는 반칙의 달인이다. 그는 순경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품은 채 승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생계를 위해 벼룩시장 신문을 폐지로 판 할머니마저 ‘당연히’ 절도죄로 검거해야 하는 그에게 범인은 사람이 아닌 숫자에 불과하다. 한편 마포서에 번번이 실적을 빼앗기는 서대문서로 발령받은 신임 팀장 정의찬(이선균)은 경찰대 출신이지만, 엘리트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범인이 도망가면 생각도 않고 뒤만 쫓아가는 허당이다. 속도위반으로 예비아빠가 된 그는 전세금 3천만원을 만들기 위해 거액의 포상금이 주어지는 ‘올해의 체포왕’에 도전하며 마포서 황 팀장과 경쟁을 벌인다. 그 와중에 ‘마포 발발이 사건’이라는 승점 2000점짜리 대박 사건이 발생하고 마포서와 서대문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꾸린 합동수사본부 안에서 각자 따로 범인 잡기에 혈안이 되어 연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체포왕>의 형사는 샐러리맨이다. 수치화되지 않는 것, 수치화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숫자로 바꿔 점수를 매기고 앉았으니, 당연 진정성은 생각할 겨를도 없고 공권력의 권위나 정의 따윈 찾아볼 수도 없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형사들의 어이없는 경쟁을 부추기며 웃음을 유도한다. 실적 경쟁에 허덕이며 피해자의 사정 따윈 생각하지도 않는 형사들의 모습에서 분노보다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것은 그들의 비겁함과 부도덕이 아등바등 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초·중반 풍자성 짙은 설정에 더해 주연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와 소소한 에피소드의 충실함은 제법 의미있고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문제는 중반 이후 좌천된 황 팀장과 정 팀장이 형사로서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과정에 있다. 발발이가 아동성폭행까지 저지르는 것을 보며 변화하는 황 팀장의 심경은 쉽게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작위적이다. 문제의 인식과 자각이 없는 무책임한 인물 변화는 엔딩에 이르러 온전히 누려야 할 카타르시스마저 앗아가버린다. 대책없는 해피엔딩에서는 ‘왜’와 ‘어떻게’가 빠져 있다. 영화는 전반에 제시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그저 인간적인 정에 기댄 행복이란 모호한 상태로 봉합해버리는 데 급급하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에 대한 아무런 이의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개인적인 인정과 양심에 책임을 묻는 이러한 엔딩은 결국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는 허무함을 안긴다. 어떻게든 예고된 골인지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이 기껏 깔아놓은 전반의 참신한 설정과 발랄한 전개마저 망쳐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꽤 괜찮았던 추격신 같은 눈에 띄는 몇몇 장면들마저 그저 스타일을 위한 스타일에 갇혀버린다.
하지만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이 영화가 피해자의 얼굴을 전시하는 태도에 있다. 성폭행을 당하는 불우한 가정의 소녀는 등장부터 시종일관 자신이 피해자가 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듯한 우울한 얼굴로만 등장하는데, 피해자로서의 기능에만 충실한 인물 재현은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하고 도리어 관객의 공감을 밀어내게 마련이다. 이러한 시선은 이 영화가 중간중간 드러내는 풍자의 진심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시도와 설정이 신선하고 자잘한 재미가 충분했던 만큼 투박한 연출과 엇박자의 리듬감, 그리고 그 안일한 태도가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