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애는 여러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데, 세가지로 분류한다고 해서 다 똑 같은 것도 아니고... 세가지 분류 중 다음의 분류가 널리 알려진 편이다.
ⓐ 감각적 대상에 대한 갈애 : kama-tanha
ⓑ 존재에 대한 갈애 : bhava-tanha
ⓒ 존재가 아닌 것에 대한 갈애 : vibhava-tanha
위의 세가지 갈애는, 반드시 그렇게 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의 편의상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 하나의 묶음이고, ⓑ와 ⓒ가 하나의 묶음으로 나뉘는 것이다.
ⓑ와 ⓒ는 bhava(12연기의 '유' : 존재표상을 획득하는 업)과 관련이 있고, 즉 몸을 취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고...
ⓐ는 bhava(12연기의 '유' : 존재표상을 획득하는 업)를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업, 즉 취한 몸을 조건으로 활동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가 있으면, ⓐ가 가능한 ⓑ를 취한다. 감각적 욕망이 있으면, 감각적 욕망이 가능한 몸을 취한다는 뜻이다.
이해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 존재가 아닌 것에 대한 갈애 : vibhava-tanha"이다. 불교를 그릇되게 이해하면, "ⓒ 존재가 아닌 것에 대한 갈애 : vibhava-tanha"를 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단견에 빠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단견에 따른 갈애" 즉 "ⓒ 존재가 아닌 것에 대한 갈애"에는, "열의"등의 이름을 부여해 줄 수 없다. 상좌불교에서도 그러지 않는다.
따라서 "ⓒ 존재가 아닌 것에 대한 갈애"를 내세우면서, 열의를 주장한다면...그것은 열의가 뭔지도 모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존재가 아닌 것에 대한 갈애 : vibhava-tanha"는 뭔가? "bhava가 없으려는 갈애"이다. 즉 "존재 표상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는 갈애"이다. "존재 표상이 없기를 바라는 갈애"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소멸하려는 갈애", "오온의 소멸을 추구하는 갈애"이다.
"소멸하려는 갈애", 즉 "오온의 소멸을 추구하는 갈애"라 이름한다고...곧바로 ['오온의 소멸'이 '괴로움의 소멸이 아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왜 그런가? 정견인 연기의 이치에 따를 때, 우리는 '오온의 형성'과 함께 '오온의 소멸'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온의 소멸'을 아는 것이, 오온의 소멸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아는 것에 그칠 뿐, 추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점을 잘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더이상 태어남은 없다'고 아는 것 ]과 [ '더이상 태어남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 ]은 철저하게 다른 것이다.
첫댓글 위 본글의 세가지 갈애에 맞춰, "열의"라는 것은...연기의 이치에 따라 알아가는 것에 대한 열의이지, 오온의 소멸을 추구하는 갈애가 아니다... 너무나 자명하다...
우리는요. 무언가를 추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견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오온의 소멸을 아는 것, 오온의 소멸을 알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오온의 소멸을 추구하려는 겁니다. "존재를 갈망하는 것"과 "존재가 아닌 것을 갈망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 둘 모두 기존 습관에 따라 갈망하는 것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존재가 아닌 것을 갈망하려면, 존재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하는데요. '오온이 없는 상태'가 알려지지 않은 경우...사실 만구 머리속에서 모호하게 상상하는 것, 말만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오온이 없는 상태'가 알려지지 않은 경우, 실질적으로는 '오온이 있는 상태'를 갈망하는 겁니다.
이 자리의 꼬리말을, 좀 더 유익한 말로 바꿉시다.
우리가요. 소멸을 몰라요. 우리는 보통 상견에 매몰되어 있는 편이예요. 우리는 그러한 조건이므로...상견을 즐기지 않기 위해, 연기를 보다 선명하게 알기 위해..."오온의 소멸(괴로움의 소멸)"이 선명하도록 알려지도록, 수행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수행을 한다고 하여...그러한 수행의 형식에만 매몰된 나머지, 그러한 수행을 왜 하는지도 망각하고 "오온의 소멸을 추구"하는 것은..."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됩니다. 그러한 수행은...이미 괴로움을 즐기는 습관이 있기에, 그러한 습관을 지양하는 것 즉 더이상 괴로움을 즐기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겁니다. 중도예요...
요즘 '눈높이 조절 글쓰기'가 능숙해지신 듯 해요. 독자 입장에서 글이 잘 읽혀서 좋습니다. ^^
그러게요. 지기님 마음 개발 중 하나? ㅎ
iPhone 으로 읽으니 좀 거시기 한데요.
아무튼 잘 읽있습니다.
비존재에 대한 갈애....좀 추상적인 개념...
요즘 게시판을 보면서 예전부터 생각하던 piety vs reasonability..에 대해 다시 생각납니다.
방문객님..
오온의 소멸이 선명하게 알려지도록 해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오온이 뭔지조차 모르니 나아갈 수도 없을듯 하지만..'오온.' 여기저기 글에서 몆번을 반복해서 읽어봐도 아하 이거구나 그렇구나 하면서 이해된듯 하다가도 또 모르겠고 헷깔리고.. 너무 어렵지만.
저는 저를 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건 소멸 뿐이다 라고 할 정도로.
그런데 방문객님 말씀따라 이해해보면 저는 소멸이 뭔지를 모르는게 맞는거 같거든요.
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괴로움을 즐기는 습관이 있기에 그렇다는 표현에 깜짝 놀라서요.
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괴로움을 즐기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거라면 소멸은 차치하고라도
괴로움을 즐기는 원치않는 습관은 버리고 싶어서요.
오온이 뭔지 ..오온을 하나하나 제대로
바르게 알려면 우찌하면 되는지
그리고 이 오온의 소멸이 선명하게 알려지도록 하려면 어떻게 수행하면 좋은지 자세하게 좀 가르쳐주세요..
어디 다른 글에 이미 있다고 가르쳐주셔도 좋구요.
무척 죄송스럽네요...
"오온이 없는 상태"가 직접 알려지면 좋은데요...
우선은 "무상"이 선명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A만 있는 상태"와 같은 집중을 형성하면 좋습니다. 왜 그런 상태가 필요하냐 하면요. "대상만이 아니라, 대상과 함께 한 마음도 무상하다"는 점이 선명하려면, "A만 있는 상태"를 형성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해가 되시죠?
최소한, 무상이 뭔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가 출발점입니다. 이해에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출발점인 겁니다.
"유(bhava)"는요. 쉽게 말해...(대상이 아닌) 자신이, 뭔가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유(bhava)"에 대한 갈애]는요. 자신이, 무언가가 되려는 욕망입니다. 우리 생활이죠.
그러한 ["유(bhava)"에 대한 갈애]에서요. 그 대상이 "오온이 있는 상태냐, 오온이 없는 상태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 무언가가 되려는 욕망이라는 점에서는,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견"이라고 함은요. "연기의 이치에 따라, 오온의 형성은 물론 오온의 소멸의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유"가 없을 수 있고, "마음을 발생시키는 조건이 없다"는 점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이상에서...오온의 소멸만이 아니라 오온의 발생도 잘 알아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 가르침에 따른 바른 알아차림으로...발생과 발생의 조건, 소멸과 소멸의 조건을 알아나가면 됩니다.
저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하니 불교에 대해서 뭘 하나도 모른다해도 누구에게 부끄러워해야하거나 창피해안해도 될건데도 뭔 까닭으로인지 왜이리 부끄러운지 몰것습니다.. 모른다는게 뭔 잘못도 아닌건데..
부끄럽지만 그래도 물어봅니다.
저딴에 아주 무쟈게 용기를 내서.
불교에 초딩 하나 입학했구나 여기시고
"A만 있는 상태"
요거 예 하나 들어서 설명 좀 해주세요.
그리고 '무상' 은 무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요?
제가 순 날로 먹으려고 하는건 아니구요.. 도대체가 뭘 몰라서 말이지요..
마구잡이로 책은 참 잘 보는데요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뭐라했더라??.. 뭐라 했는데 그게 뭐였지?? .. 맨날 요레 되풀이를 하는데요..
입문서 라고 권해주셨던'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도 읽어는 봤구요
여기 맞춤불교에 있는 광명진언 관련 글부터 쭈욱 읽어본 글은 많은데 요모양 입니다..
너무 기초적인걸 물어보는거라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주절거리는건데요
공부를 백년을 했다해도 엉터리면 소용없고..
기본도 안된거면 안된거니까
구슬 바르게 함 꿰어보자 싶어서
여쭈어 보는건데
진짜 억수로 미안하네요..
아이고...
바로 밑에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볼께요
미안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저는 제가 아는 불교를 이야기할 뿐이구요. 시간등 여건이 허용하는 한, 불교와 관련한 지적에 응하는 것은...불자의 의무입니다. 시간등 여건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저의 의무를 행할 뿐이니까요. 저에게는 별로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무상"이라는 말의 의미도 다양합니다. 일단, 아래 "[토막 상식] 알아차림 - 연기를 아는 방법 : 기초가 되는 연기의 모습"에서 제시한 내용은..."A가 생성되었다고 소멸하는 것"이, "A의 무상"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무상의 의미가 선명해지기 위해서는, "A만 있는 의식상태"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구요. 해당 글 본문에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 그처럼 하나의 대상만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A 내지 B 사이에 연속적인 무엇이 있지 않았음을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 또한 위의 꼬리말 내용, ["대상만이 아니라, 대상과 함께 한 마음도 무상하다"는 점이 선명하려면, "A만 있는 상태"를 형성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도 참조하시구요.
"A만 있는 상태"의 예...A에 집중한 건데요... 일상에서 사례를 찾기는 힘든데요. 첫눈에 반할 때, 안개가 몰려오면서 그 사람 얼굴만 보이는 경험이 있다면...바로 그 때가, 찰나적이나마, 그 사람 얼굴만 있는 상태인 거구요. 아주 강렬한 성적 오르가즘에서, 세상이 까매지면서(하얗게 되면서) 막 빨려들어가듯 육체적 쾌락만 있는 상태...
그런 것들을 거론할 수는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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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자가 아닌 분에게는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야, 바르다"는 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교가 아니더라도, 보다 포괄적으로요. 달라이라마께서 말한 "성숙"으로 이끄는 가르침은 많습니다. 그리고 불교를 가지고 논하더라두요, 신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스민님이, 먼저 스스로의 신념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구요. 뭐...신념의 선택에 도움이 되도록, 제가 아는 한도에서, 불교가 어떤건지 설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활동은...스민님에게 불교가 잘 맞는지, 알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을 듯...
한 때 도울선생님 강의를 들은적이 있는데 그 때 그분말이 '이런 곳에 와서 강의 듣는다는 그 자체가 잘 사는 것 입니다' 라는 말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