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꿈 속에 살 때 즐겨 보던 책이 '아름지기의 한옥 짓는 이야기'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옥' 였습니다. 그 책들에 소개된 도면을 바탕으로 제가 꿈꿔오던 한옥 구조를 구체화 해봅니다...그럼 꿈이 퇴색되는 아쉬운 밤들이 될려나요... 안국동 아름지기 사옥의 전경이랍니다... 그 설계도면 초안인데, 제게는 너무 크니 이 반만 있어도 충분하겠습니다... 아래쪽 반만 있고, '사무공간'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을 대청마루로 깔면 꿈에 그리는 한옥입니다... 프랑스 파리 근교, 센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고암서방(顧庵書房)'이라는 그림 같은 한옥 한 채를 조희환 대목장이 지으셨다고 합니다. 그 도면인데 대청 한칸을 줄이고 욕실앞에 있는 방을 대청으로 바꿔 이으면 그래도 과분한 한옥이 되겠습니다... |
평생 소원인 꿈 같은 집짓기...일단 온라인에서 한채 지어 보고 실행에 옮기는 것도 의미가 있겠습니다...가상 공간에서 꿈에 그리는 집을 지으라하면, 단연 한옥이지요... 안채 도면부터 그립니다... 막상 이렇게 지어 놓고 여기 들어와서 살아라 하면 몇가지 불편하지 않을까요...화장실은 (요강을 쓰나?), 욕실은(겨울에 옛날처럼 얼음 깨서 세수할꺼나?), 운치야 있겠지만 겨울바람이 너무 차지 않을까 등등... 다른 양옥구조하고 비교해서 제 편리에 맞는 도면을 찾아 보고 싶은데...온라인상에서 도면 열어 보기가 쉽지 않네요...혹시 사이트를 알고 계시면 소개 좀 부탁 드립니다...제 세대만 살다 치우면 될 거니까 그렇게 클 필요도 없고 (25평 미만), 방 2개에 모종 키울 조그만 선룸이 햇살 잘 드는 베란다 구조로 있었으면 좋겠고, 나물 다듬을 다용도실이 쬐끔 컸으면 좋겠고... 그러다 보면 욕심이 한이 없겠습니다...그냥 옛날 사랑채 같은 조그만 한옥 한채가 있으면 더 바랄 것 없습니다... 전남도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한옥표준 설계도’를 만들어 한옥 보급에 나섰다. 한옥은 황토를 이용, 건강에 좋은 데다 냉난방에도 효과적이어서 말 그대로 ‘웰빙(well being) 가옥’이다. 또 구조물이 일체형이 아닌 별도형으로 구성돼 지진 등 자연재해 발생시에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전남도는 이를 위해 22개 시·군에 1∼2곳씩 ‘한옥촌(村)’을 만들고 도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지원조례를 제정할 방침이다. 전남도는 한옥촌을 주위 관광지와 연계, ‘체류형 관광’으로 연결시킨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현재 설계도상 건축비가 평당 1000만원에 달해 도민들의 참여가 저조할 것으로 우려되는 데다 숙박료 등 이용료도 비쌀 것으로 예상돼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다. ◆향후 계획 및 지원책=도는 올 상반기 중에 22개 시·군별로 1∼2개소를 한옥촌으로 선정, 4∼6개 지역을 골라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전남도는 전통가옥 문화재 62채가 있는 15개 시·군 가운데 문화재가 몰려 있는 나주·순천시와 담양·장흥군 등에 우선 투자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전남도는 높은 건축비가 한옥촌 조성의 가장 큰 문제로 판단, 공사비 절감을 위해 자재 규격을 표준화하기로 했다. 즉 한옥을 건설하는 데 드는 각종 자재들을 한옥의 유형별로 규격화해 공장에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는 것. 전남도 이를 위해 10월 말까지 자재의 표준화 작업을 마무리해 현재 평당 1000만원인 건축비를 500만원 정도로 줄일 계획이다. 도는 또 비전문가도 시공할 수 있도록 시공설명서를 제작키로 했다. 부재별로 조립순서와 부재 제작방법, 부재의 성질 등을 기록해 순수조립공이라도 시공이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전남도는 현재 전통가옥 건축물에 대한 지원조례가 제정돼 있는 서울시와 전주시, 경주시의 사례를 종합, 각종 지원책을 조례로 제정할 계획이다. 뭐 30억원이 든다면 어떻습니까...어차피 꿈꾸고 말 건데요... |
지금까지 봐 온 한옥 평면도에서 제 마음에 제일 드는 구조를 정합니다...평면도는 윤원태 저 '황토집 따라 짓기'에서 가져 왔습니다. 한옥 25평형인데 뭔가 2% 부족합니다. 한옥 35평형인데 이건 또 너무 크다 싶습니다...그래서 중간 방1을 짤라내고 위 25평형 구조와 비슷하게 좌우를 바꾸어 봅니다... 그래, 이겁니다...이게 제가 꼭 꿈 꾸어 오던 한옥이지요...이제 앞으로 이 집만 꿈 꿀렵니다... 이것보다 훨씬 작지만 대강 이런 모양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한옥의 기초가 되는 우리 건축법은 신라시대 때부터 시작하여 그 명맥이 고려에 이어져 오다가 조선시대 세종 13년에서 성종 9년(1498년)에 완성되어 1910년 일제시대까지 명실 공히 1,000년 이상을 족히 지켜져 온 법규입니다. 여기에 보면 신분에 따라 칸(間) 수의 제한, 방의 넓이, 기둥의 높이, 두께 등 좁은 국토의 산림을 보호하고 신분의 상하를 구별하기 위하여 엄격하게 시행된 강행법이었음을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의 집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전국에 산재한 일제 이후에 건축된 한옥들은 완전히 그 법규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지어지게 되는데 "기둥의 높이가 서민은 8자(240cm) 양반은 9자(270cm), 두께는 서민 4치(12cm), 양반이 5치(15cm)등의 구체적인 규정이 완전히 와해되어 황국신민이다 내선일체다 하는 신 집권층들은 기둥의 높이가 보통은 10자 이상, 두께는 최소가 6치를 넘으니 그 후손들인 현재의 신민들은 뒤를 이어 너도 나도 본을 뜨게 된 것입니다. 방의 넓이 또한 와해되어 서민이나 양반들이 동일하게 9자이던 것이 지금은 앞을 다투어 규모를 키워 지금은 20자를 넘는 것도 허다한 현실이고 여기다 소로는 물론이고 익공집에다 포집까지 궁궐인지 절집인지 어느 문중의 사당인지도 모를 살림집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과거 일제시대는 차라리 점잖았다 싶을 정도로 외형만 커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한옥입니다.
서까래 밑에 도리, 도리 밑에 장여, 장여 밑에 창방, 창방 밑에 상인방, 그 밑에 중인방, 그 밑에 하인방, 이뿐만 아니라 벽선에 문선에 소로에 익공(초익공에다 2익공에다), 심지어 포집까지 또, 또, 뒷산 절집에 있는 부재는 다 넣고 그것도 모자라 대궐집에 있는 수장재는 있는 대로 갖다 발라야 하는 것이 요즘 한옥의 특징입니다. 절에 사는 부처인지 대궐에 사는 임금님인지도 모를 정도로요. 나무가 많이 사용된 집일수록 그 사이 사이로 스미는 찬바람은 많아 질 것이고 양이 많은 것만큼 나무 값과 인건비가 비싸진다는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이 말입니다. 점잖은 옛날 양반님 네도 이런 집은 언감생심입니다.
그러니 각각의 부재 사이에서 틈은 생기게 마련이고 방의 넓이는 커진데다가 기둥이 90cm 이상 높아지고 집의 형태 또한 변화되어 당시에 근간을 이루던 3량 집이 5량, 7량으로 늘어나 전체의 높이가 최소 1.5m~2m 이상 높아졌으니 겨울에 춥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거기다 옛날 굴뚝들을 보면 집안의 연기가 바깥으로 새는 것이 동네에 누가 된다하여 굴뚝을 낮추어 설치하고 마당 가득 은은하게 퍼지는 연기를 바라보면서 마치 신선이 구름을 탄 양 절제하면서도 道를 즐겼던 선조들과는 달리 지붕보다 더 높이 설치하여 아궁이에 든 군불이 금방 타버려 밤 하나을 못 넘기게 만드니 냄비같이 변한 구들장이 새벽녘 찬 공기를 막아낼 수 없는 건 당연하겠습니다. 일제시대의 졸부들이 엄동설한에 남모르게 휑하게 큰 방 안에서 추위와 씨름하며 졸부 품위를 지키려고 애쓰던 모습은 차라리 코메디에 가깝습니다.
"한옥이 비싸다" 이 말도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만 짧고 적당한 두께의 기둥과 도리, 보만 있으면 한 채의 집이 넉넉히 지어 지던 옛날(일제 이전)과는 달리 조선의 건축법이 무너지고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보다 두껍게 보다 길게 보다 많은 치장재를 사용하여 짓다 보니 그걸 치목하는 목수들의 인건비 또한 비싸질 도리 밖에 없습니다.
일반 서민이 살았던 집들은 굳이 말 할 필요도 없고 양동마을이나 하회마을 등의 기품 있던 양반네 동네에 가보면 서까래의 굵기가 팔뚝만한 것에서부터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을 놀라게 하는 건축물들을 많이 볼 것입니다. 저 굵기로 어떻게 지붕위의 그 두꺼운 흙하며 기와의 무게를 버텨낼 수가 있었을까? 그것도 수백 년 동안이나 하고 의구심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작태로는 서까래의 굵기가 옛날엔 보통 좋은 집이라 해야 3치이나 3.5치 이하이던 것이 4치에서 5치로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6치짜리까지 나오는 마당입니다. 한옥을 장려하고 있다는 어느 지방 정부에서 공관으로 지은 한옥에서까지 6치짜리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래도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서까래가 그러하니 다른 부재는 오죽하겠습니까? 한옥을 장려하려는 것인지 일반인들의 기를 죽이려는 것인지? 멀리도 아니고 나라가 망해가던 100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서 그 시절의 지방 감영과 한 번쯤 비교해 보는 양심이 있었으면 합니다. 이렇듯 나무의 양만 예전에 비해 갑절 이상이나 많이 사용하는데 그 인건비 또한 갑절 이상이 비싸질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거주 공간이 가로, 세로, 높이가 한결같이 늘어나니 춥다는 말이 당연합니다. 흔히 단독주택의 난방비가 아파트보다 훨씬 많이 든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동일한 공간이라고 한다면 제대로 지은 한옥과 요즘의 단독주택과의 난방비 차이는 상당할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6~70년대 이후 절집이 우리 한옥의 명맥을 그나마 유지시켜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참 고맙기는 한데, 한 가지 실수한 점은 노동력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스님들의 절묘한 품값 계산법이 어쩌면 한옥을 비싸게 만드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것은 나무의 재적수에 따른 인건비 계산법인데 지금은 일반인들도 덩달아 이런 계산법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나무 한 재(가로×세로×길이=1치×1치×12자)에 인건비를 1500원이다 2000원이다 하는 식의 계산법이 바로 이 것인데 한옥이 대세에 밀려 겨우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던 시기에 목수들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습니다. 이것을 목수들은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3치 서까래나 5치 서까래나 깎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노동력은 별 차이가 없는 것이고 이보다 덩치가 더 큰 쪽으로 가면 예컨대 대들보 쪽으로 가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지는 것이지요. 기술적으로 뛰어난 도목수가 역학적인 구조를 들고 천민근성을 자극시켜 한마디만 부채질하면 부재는 쉽게 커지고 많아지기 딱 십상인 계산법이 바로 이 방법입니다.
어느 2층으로 지은 멋진 한옥을 구경하다 보면 그 집의 서까래 끝에 덧 댄 부연에 놀랍니다. 정확하게 치수를 잴 수는 없었지만(워낙 높아서) 아마도 옛날 양반님 댁의 기둥치수보다 훨씬 커 보입니다. 반면에 벽체는 시멘트 벽돌로 조적을 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는 조화이겠습니다. 부연, 뜻 그대로 서까래 끝에 덧 댄 보조서까래라는 말인데 이것의 크기가 이러하다면 전체적인 부재의 크기는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여기에다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공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값싸고 형식적인 자재를 쓰고 있는 것이 작금의 한옥 건축입니다.
이래서 남들이 물으면 "평당 1,500만원이 들었네, 2,000만원이 들었네" 하며 목수 탓과 더불어 탄식조 비슷한 어조로 은근히 자랑을 하니 내막도 모르는 일반인들이야 껍데기를 보면 탐이 나고 안에 들어가 보면 한겨울에는 찬바람이 쌩쌩 불고 삼복더위에는 기와의 열기가 내려앉아 한증막 같이 더운 것 아니겠습니까? 이리하여 우리의 자랑거리요 세계에서 으뜸가는 목조주택 한옥은 "한옥은 춥다", "비실용적이다" 등등의 부제가 늘 붙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옥 한 채 짓는데 평당 2,000만원이 든다. 요즘 목수들의 인건비가 너무 비싸 한옥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단정 짓기 전에 "몇 평에 몇 치짜리 기둥과 서까래를 써서 한옥을 소박하게 짓는다면 얼마나 들 것인지?"라고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련지요.
이 책 제목은 한옥으로 되어 있지만, 살림집 목적인 한옥 의미가 아니고...
동양대학교 안에 있는 인성교육관으로 쓰이는 '현암정사' 짓는 내용입니다. 이런 것을 한옥이라 한다면 평당 2,000만원 정도 들지요. 100평에 15억 들었다는데, 실제로는 20억 이상 들었을 겁니다...아니면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