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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발상지 인도 네팔을 다녀와서
이미라 수필가
2024년 3월 11일부터 11박13일 일정으로 꿈에 그리던 인도여행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8시간정도 후에 델리공항에 도착했다. 아열대 기후라서 우리나라의 초여름 날씨처럼 덥게 느껴졌다. 도착비자를 하는데 직원들이 느긋하여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야 공항을 빠져나왔다.
인도 가이드를 만나 37인승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3시간30분 느렸다.
그 다음날 바로 네팔 일정을 위해 2시간 취침후 가이드가 준비해준 도시락을 델리공항에서 먹고 네팔행 비행기를 탔다. 잠도 설치고 피곤했지만 히말라야를 상상하며 나자신을 다독였다. 그런데 카트만두 공항사정이 여의치 않아 바라나시 임시공항에서 2시간정도를 지체하다 예정시간보다 한참을 지나 카트만두공항에 도착했을때는 내몸이 녹초가 돼버린듯했다. 집나오면 고생이란 생각을 하면서 네팔 입국비자를 마치고 입국장을 나오려는 순간 큰망치로 내머리를 세계맞은 기분이었다. 현금이 든 배낭을 비행기에 두고 온것이었다. 나는 헐레벌떡 I left my backpack on the plane please.네팔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내비행기티켓을 보고 전화를 하고 비행기에 있다고 확인을 해주어서 천만다행으로 가방을 찾을수 있게 되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평소에 영어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닌데 간절하다보니 입이 저절로
열려서 기적같은 순간을 경험했다.
네팔 가이드와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카트만두 시내가 오색깃발이 휘날리고 성지 순례자들로 북적이는 모습이 참 이색적이었다. 점심으로 삼겹살을 먹고 나니 힘이 나는 듯했다. 네팔에서 가장 높고 큰 불탑으로 네팔 불교의 중심지이자 197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보다나트에 갔다. 탑의 돔부분은 전체적으로 흰색에 일부를 노랗게 칠했고 황금빛 첨탑에는 지혜의 눈이 그려져있었다. 햇빛이 따가웠는데도 시계방향으로 도는 순례자들이 많았다 높이 올라가니 해발1400미터 분지인 카트만두 시내가 한눈에 다들어왔다. 사람들의 기도와 소원을 담은 오색깃발 (룽다)가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약2000년 전에 아쇼카왕이 카트만두 일대를 순례한 후 세운 스와얌부나트 사원에 갔다. 원숭이들의 천국 같았다. 살아있는 여신을 보러 더르바르 광장인근에 있는 쿠마리사원에 갔다 여신의 자격은 아주 까다로운데 5세 여아를 선발해서 생리 전까지만 그 사원에 기거하면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여신을 보기 위해 2층 정중앙의 창문을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하루에 세번만 얼굴을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9세인 천진한 여자아이가 창문에 두세번 얼굴을 보이고 사라졌다. 순간 인권유린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참 부모님께 어리광도 부리고 자유롭게 뛰어 놀아야할 나이에 희생양이 되다니 가슴 한켠이 시려서 모금함에 기부를 하고 나왔지만 80여만의 신들을 모시는 나라지만 누굴위한 신을 모시는걸까?
호텔 조식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한 관문이자 네팔 대표 휴양지인 포카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데 5장6부까지 뒤흔들리는 것같아 현기증이 날정도였다. 네팔은 물이 부족하다. 펀강 주변으로 터전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10시간여를 곡예하듯 포카라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시장 구경에 나섰다. 네팔사람들은 참 순박하고 한국사람들에게 아주 호의적이었다.
4일차다 이른 새벽 기상 후 사랑콧에서 히말라야 일출 감상을 위해 전용차를 탔다. 1600미터 고지에 도착 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장소를 차지하고 있었다. 1불을 내고 개인집 옥상에 올라가니 히말라야 전경이 바로 눈 앞에 펼쳐졌다. 꿈만 같았다. 어느새 히말라야가 붉은 빛으로 물들더니 설산이 보이고 바로 중앙에 솟은 7000미터 삼각형의 마차푸차레가 선명히 보였다. 이 정상은 아직도 미정복 봉우리며 성지라고 한다. 설산의 기운을 듬뿍 받고 호텔에서 조식을 든든히 하고 또 곡예하듯 7시간여를 달려 룸비니에 도착했다. 기원전 623년 샤키족의 왕비인 마야부인이 당시의 관습에 따라 출산을 하기위해 고향으로 가던중 룸비니에 있는 무우수 나무 아래에서 석가모니를 낳았다고 전해져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성지이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5일차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닌 인도의 신성한 도시 바라나시로 향했다. 갠지스강은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인도 북부를 거쳐 뱅골만으로 흐른다. 우여곡절끝에 바라나시에 도착하니 끝없는 인파행렬 비둘기 소,개들까지 도로에 활보하는모습 그 모이들을 사서주는 모습도 인상적이면서 80여만의 신들을 모시고사는 도시다웠다.
다음날 이른 기상후 힌두교 성지 순례자들의 새벽기도 모습을 참관하기 위해 출발했다. 먼저 일출 감상을 위해 보트를 탔다. 미리 가이드가 준비해준 꽃불(디아)은 종교를 초월해 마음속 기원을 담아 띄웠다 목욕중인 힌두교도 옆으로 사리를 입고 빨래를 하는 아낙네 긴수염을 늘어뜨리고 경전을 읽는 수행자 짜이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 눈을 비비며 하품하는 노숙자들 천태만상 14억이 모인 이곳은 힌두교도의 천국이자 인도인만의 삶이다.
호텔로 돌아와 조식을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뒤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한 초전법륜지 사르나트를 방문하고 5000년의 역사가 이어져 내려온 현지인들의 미로도시를 구경했다. 이곳은 끝없이 자극이 밀려든다. 보고 듣고 싶지않아도 반응하게된다. 미로골목이 더욱 그렇다.
오후 6시반부터 매일 거행되는 힌두교도의 전통의식인 아르띠뿌자를 참관하기 위해 릭샤를 타고 다시 갠지스강으로 향했다. 거리는 맨발의 순례자들 쉼없는 릭샤 경적과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의 쏟아지는 소음이 고막을 때렸다. 6시반이 되자 어김없이 아르띠뿌자가 시작되는 뿔피리 소리가 울려퍼졌다. 가트 변 기단에 일렬로 놓인 우산 모양의 차타리스 아래에서 의식을 진행하는 브라만의 뜻을 알수없는 만트라 외는 소리가 연기와 함께 하늘로 피어오른다. 밤에 오니 갠지스강 한켠에는 매케한 연기와 향냄새가 났다. 인생의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는 화장터가 있었다. 숨을 거둔뒤 화장한 골분을 갠지스강에 흘려보내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때문에 경쟁률이 심하다고한다. 매일 거행되는 의식임에도 인파에 떠밀릴 정도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니 14억 인구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힌두교는 흐르는 강물을 닮았고 흩어지는 연기를 닮았다.
8일차에 카주라호 기차역으로 이동하였다.어딜가나 인산인해다. 기차는 생각보다 깨끗했고 3층 침대였다. 차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밀 보리 망고꽃나무들이 피곤한 눈을 풀어주는것 같았다. 기차안에서 한식도시락을 먹었다. 여고시절 기차타고 수학여행가던 추억이 소환되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인도를 대표하는 사랑의 궁전 세계문화유산인 타지마할을 갔다. 이곳은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기 위해 2만여명이 넘는 장인들을 동원하여 건설했다고 한다. 대리석 하나하나 무늬가 다르고 색깔도 다양하며 문양도 세련되고 정교함이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라 할만하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랍고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할수 밖에 없다. 페르시아 터키 인도및 이슬람 건축양식이 잘조합된 무굴제국의 힘 아그라성도 놀라웠다. 16세기에 만들어진 계단식 우물(아메르 스텝웰)은 그 당시의 물을 저장하고 보존하기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사각형 형태로 깊게 파여있으며 돌로 둘러싸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물을 얻을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시대에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우물이 참 경이로웠다.
해질녘 아름다운 일몰이 유명한 나하르가르성으로 가기 위해 짚차를 탔다. 숲속에 들어서니 원숭이 앵무새 공작새등이 자연스럽게 뛰노는 모습을 보니 과연 모든 동물을 신으로 모시는 나라답다. 우리19명 일행은 맥주를 마시면서 애국가 고래사냥 소양강처녀등 합창하며 외국인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서울에서 출발할때는 13일의 기간이 너무 길지않을까 우려했는데 어느새 11일차다. 인도의 수도 델리로 이동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시크교 사원을 방문했다. 하루에 만명을 무료급식하는 광경도 보았다. 급식을 먹는 사람들은 복을,봉사자들은 세금감면을 해주기에 체계적이면서 모두들 행복해 보였다.
축구장 16배 크기의 악샤르담사원을 관람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인도 국빈 방문시 첫 일정으로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세계최대의 힌두교 사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붉은 사암과 흰대리석에 200여개 화신과 현인의 조각상을 모두 수작업으로 했다니 정말 신에 대한 신앙심으로 이런 걸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그 시대에 음악분수 넓은정원 극장까지 건설하여 현대적 요소도 갖췄다는 점도 놀라웠다. 그야말로 인도의 역사와 예술이 모두 녹아든 곳이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높이 72.5미터인 승전탑 꾸툽미나르를 보러갔다. 5층의 거대한 탑은 술탄 꾸투브가 1193년 델리의 마지막 힌두왕국을 정복한 기념으로 1층은 힌두양식으로 2,3층은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져 독특함과 아름다운 조각이 인상적이다. 인도문 인도 정부빌딩군을 버스로 관람하고 인도의 인기 식당 바비큐 뷔페로 향했다. 탄두리 치킨 각종
꼬치구이와 인도의 전통 음식과 과일 다양한 케익이 있었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식사이니 음미하면서 실컷 먹었다. 음식은 다 입맛에 맞고 건강식이다. 다양한 콩종류 브로콜리 야채커리등을 많이 먹어서 인도인들이 비만인이 없고 허리굽은 사람들을 볼 수 없었다.
벌써 작별의 시간이 되었다. 델리공항에 내렸을때만 해도 걱정이 태산같았다. 치안문제 음식 위생등 긴장을 했던 것과는 다르게 한달살이를 해도 좋을듯 했다. 인더스문명의 사회구조는 다양한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농업이 주 경제활동이지만 축산업도 발달했다. 고대 상업 네트워크 의 중심지이자 금속가공 도자기제조 비단직물등의 수공업 수학 과학 의학 천문학적 지식도 풍부했음을 알게되었다. 거대한 제국의 흔적과 찬란한 문화유산은 가는곳 마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되는 값진 시간이었다. 여행은 자신을 한층 성장하는 시간이다. 작은 나라지만 사계절을 즐길 수 있고 우리만의 문화와 민족 정서가 담긴 우리나라 우리 집이 너무 좋아졌다. 버스로 3천킬로를 달리는 고행길 이었는데도 빙하가 녹아내린 페와호수에서 보트타던 그때가 눈에 아른거린다. 꼭 네팔 인도를 다시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