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미(廢墟美)와 능절(凌絶) 그리고 참척(慘慽)
폐허미(廢墟美)
답사(踏査)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은 제 사견(私見)으로 폐사지에서 느끼는 폐허미입니다.
한때는 세상의 중심에서 수많은 중생의 안식처였던 사찰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주춧돌, 축대만이 절터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줄뿐 적막감, 쓸쓸함, 공허감, 무상함등 만감이 교차하는 아름다움....이름하여 폐허미라 합니다.
문화재 답사경력 20여년 이상된 고수들은 사찰보다 폐사지 답사를 우선한답니다.
야은 길재 선생은 회고가에서 이렇게 읊었다.
오백년 도읍지를 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人傑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능절(凌絶)
절망을 뛰어넘는 것을 능절이라 한답니다.
유배의 절망을 넘어서 꽃피운 유배문학을 능절의 미학이라 부릅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김정희, 정약용, 정약전, 김만중, 남구만등 숱하게 많습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지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오늘 집에서 보낸 서신과 선물을 받았소.
당신이 봄밤 내내 바느질했을 시원한 여름옷은
겨울에야 도착을 했고
나는 당신의 마음을 걸치지도 못하고
손에 들고 머리맡에 병풍처럼 둘러놓았소
당신이 먹지 않고 어렵게 구했을 귀한 반찬들은
곰팡이가 슬고 슬어
당신의 고운 이마를 떠올리게 하였소
내 마음은 썩지 않는 당신 정성으로 가득 채워졌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워
집 앞 붉은 동백 아래 거름되라고 묻어주었소
동백이 붉게 타오르는 이유는
당신 눈자위처럼 많이 울어서일 것이오
내 마음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소
문을 열고 어둠 속을 바라보았소
바다가 마당으로 몰려들어 나를 위로하려 하오
섬에는 섬의 노래가 있소
내일은 잘 휘어진 노송 한 그루 만나러
가난한 산책을 오래도록 즐기려 하오
바람이 차오
건강 조심하시오.“
참척(慘慽)
세월호 참사로 못다핀 꽃다운 청춘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슬프고 비통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식을 잃은 것을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근심이란 뜻으로 ‘참척 (慘慽)’이라 합니다.
‘슬프다’의 단계를 넘어 너무도 참혹해서 참척(慘慽)이라고 표현합니다.
너무 처절하고 참담해 가늠조차 안 되는 슬픔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사지가 끊겨 나가고 가슴이 찢겨져 나가는 듯 한 처절한 고통입니다.
바로 단장지애(斷腸之哀)입니다.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지는 듯 한 슬픔입니다.
이순신장군님도 아들 면을 잃었을 때 이러했으리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해주었는데, 열어 보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심기가 혼란해졌다. 겉봉을 뜯어내고 그 속의 편지를 보니 겉에 ‘통곡(痛哭)’이라는 두 글자가 씌어 있었다. 면이 전사하였음을 알고 나도 몰래 간담이 떨려 목 놓아 통곡, 통곡했다.’ 이순신 장군의 1597년 10월 14일자 난중일기 일부다. 명량해전에서 패한 왜적들은 이 장군의 생가인 충남 아산으로 쳐들어가 스무 살의 셋째아들 면을 살해했다.
안편도(현 전남 신안군 장산도)에 머물던 충무공은 통곡했다. 백척간두의 나라를 구한 장수도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비였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한 이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찌 이런 괴상한 이치가 다 있단 말이냐. 천지가 깜깜하고 태양조차 빛을 잃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날 버리고 어딜 갔느냐… 속은 죽고 껍데기만 살아있는 셈이니 그저 울부짖으며 통곡할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