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절벽… 천렵… 시골인심… 물빛 추억을 낚다
강원 정선 동남천‘개미들마을’
낙동리의 바위절벽을 굽이쳐 흘러가는 동남천에는 물고기들이 지천이다. 간혹 팔뚝만한 송어가 힘차게 유영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맑은 물에서의 물놀이도 좋지만, 여럿이 어울려 떠들썩하게 첨벙거리며 천렵을 하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장마의 끝 무렵에 여름날의 강변에 섰습니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고 난 뒤에 강변 마을의 텃밭에 심어진 콩포기와 옥수수 잎사귀의 초록색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강물은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흘러가는데, 물가에는 마을 청년들이 여울에 족대를 받쳐놓고 돌을 들추며 미꾸리며 쉬리, 퉁가리 같은 고기들을 잡고 있습니다. 여울을 거슬러 늘씬한 송어 몇마리가 날렵하게 헤엄쳐갑니다. 어느새 강둑의 포플러나무가 진초록으로 싱그러워지고 풀 냄새도 짙어졌습니다. 아, 이제 바야흐로 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함백산 만항재 자락에서 발원한 동남천이 굽이쳐 흘러가는 강원 정선군 남면 낙동리입니다. 마을 이름이 ‘낙동(樂同)’이니 풀어보자면 ‘함께 즐겁다’는 뜻입니다. 별어곡역과 선평역을 지나 정선선 철길을 따라온 동남천은 낙동리로 접어들어 바위절벽을 끼고 이리저리 굽이쳐 흐르다가 가수리쯤에서 정선읍을 돌아나온 조양강과 만나서 비로소 동강이 됩니다.
한때는 ‘숨겨진 비경’으로 일컬어졌던 동강이나 서강 일대는 이제 알려질대로 알려져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북새통을 이룹니다. 그러나 동강을 이루는 실핏줄 같은 동남천은 아직 꼭꼭 숨어있습니다. 물길을 따라 나 있는 번듯한 도로는 굽이굽이 바위절벽을 돌아가다 어느 순간 비포장이 되었다가 물줄기에 막혀 뚝 끊기고 맙니다. 막다른 길인 셈이니, 동남천의 물길은 마을 주민들 외에는 들고 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흘러내리는 물이 있음에도 북적거리는 피서지의 풍경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지요.
동남천은 비록 강(江)의 이름이 아닌 ‘천(川)’의 이름을 갖고 있지만, 수량도 많고 우람한 수직 절벽을 줄줄이 거느리고 있어 여느 강 못지않은 정취를 빚어냅니다. 장맛비가 한번 퍼붓고 난 뒤에 거울처럼 맑은 물이 흘러갑니다. 강변의 마을이며 잘 정돈된 밭의 풍경도 깔끔해서 이국적인 분위기마저 느껴집니다.
동남천이 특히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 ‘개미들마을’이며 ‘미리내마을’ 같은 체험마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미들마을’은 농촌체험 관광지로 강원 일원에서 첫손을 꼽을 만큼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는 곳입니다. 서울에서 교사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찾아든 최법순(55)씨가 마을 주민들과 힘을 합해 만들어낸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은 구색 맞추기식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정성이 담겨 있어 시골마을의 정취를 즐기는 데 모자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알음알음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급기야 지난해부터는 도회지의 중·고교에서 수학여행까지 오는 명소가 됐습니다. 주민들이라야 39가구에 84명이 전부인 산골 마을에 농촌마을의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연간 3만명이 넘고, 올해 마을 순수익만 3억원에 이를 것이라니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지경입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시골마을의 정서가 오롯이 남아 있는 곳 동남천의 개미들마을로 초대합니다. 정선=글·사진 박경일 2009-07-22
오지체험 1박2일… 두메산골이 여행 1번지로.. 강원 정선 동남천 ‘개미들마을’
정선읍에는 동강과 조양강으로 합류되는 실핏줄 같은 물길이 곳곳에 있다. 동남천 인근의 동대천이 조양강과 만나기 직전에 만들어진 보 위를 피서객이 뛰어 건너고 있다. 보 안쪽의 얕은 물은 숲그림자가 드리워진 진초록 빛이다.
개미들마을을 지나 동남천을 따라 내려가면 길은 물길에 막혀 끊어진다. 그 끝에 작은 보가 있는데, 보 아래 돌틈에 음료수 페트병으로 만든 어항을 놓으면 미유기며 미꾸리 등을 제법 잡을 수 있다.
# 오지로 이어진 동남천의 물길을 따라 가다
강원 정선은 산골 마을을 휘감아온 강과 강이 한데 모여 흐르는 땅이다. 태백산맥 줄기인 석병산에서 발원한 골지천은 평창의 도암호에서 내려온 송천과 만나 조양강을 이루고, 조양강은 또 정선읍에서 몰운대를 휘돌아온 동대천과 만난다. 정선읍에서 크게 굽이친 조양강은 다시 정선선 철길을 따라가며 흐르는 동남천과 가수리에서 합류돼 비로소 동강이란 이름을 얻고 어라연으로 흘러간다.
동강이야 익히 알려진 명소이고, 구절리를 따라 흐르는 송천도 물길을 따라 레일바이크가 운영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동대천 역시 몰운대며 정선 소금강이 있는 화암팔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동남천의 물길은 외지인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남천의 물 옆으로 난 길은 막다른 길이다.
굽이굽이 바위절벽을 휘돌다가 조양강과 합류되는 가수리를 앞두고 흐려진 길은 산과 물에 막혀 곧 끊어지고 만다. 막다른 길 안쪽에 숨어 있는 물길이니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었고 지금껏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오롯이 옛 강변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동남천은 여름의 정취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없다. 산간 계곡처럼 좁은 것도, 동강처럼 넓은 것도 아니다. 물놀이를 하거나 반두를 들고 떠들썩하게 천렵을 즐기기에 딱 좋은 정도의 크기다. 물길이 굽어지는 곳마다 우뚝 서 있는 바위절벽의 풍광도 빼어나다. ‘한국의 계림’이라는 마을 주민들의 수사가 허언만은 아닌 듯하다.
웅장한 층암절벽을 만나 굽이치는 물길과 나란히 이어진 길에 오르면 여름날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물길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수정 같은 물 속에서 1급수에 서식하는 연준모치와 금강모치가 지느러미를 흔들며 유영하고 있다.
# 마을 주민 숫자의 350배가 넘는 외지인이 찾아드는 마을
동남천의 물길을 끼고 있는 정선군 남면 낙동2리. 낙동(樂同)이란 마을 이름은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따온 것인데. 예부터 주민들이 서로 돕고 살았음을 뜻한다. 옥토가 적어 먹고살기에는 ‘팍팍한’ 땅이었지만, 예부터 없는 형편에도 서로 나눌 줄 아는 여유를 가진 곳이었다.
마을은 낙동2리란 행정구역명보다 ‘개미들마을’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지난 2003년부터 시작한 농촌관광체험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에는 가족단위뿐만 아니라 각급학교의 수학여행까지 유치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라야 39가구에 84명이지만, 올 한해 3만명 이상이 이 마을을 다녀갈 예정이다.
외지 관광객들의 숫자가 마을 주민의 350배를 훌쩍 넘는다. 개미들마을이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농촌체험프로그램이 다채롭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마을의 공동체가 살아 있어 옛 시골마을의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적한 산골마을을 농촌공동체가 살아 숨쉬는 여행 명소로 끌어올린 것은 도회지에서 교사 일을 하다가 사표를 내고 지난 2001년 귀향한 최법순(55)씨의 노력이 밑바탕이 됐다.
도회지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최씨는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가득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훈훈한 예전의 시골마을을 기대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인심은 사나울대로 사나워져 있었다. 오지의 산골마을까지 물질만능 풍조가 밀려들면서 주민들은 늘 서로 다퉜고, 농사에 절망한 젊은이들은 자포자기 상태였다. 마을 길을 내는 데도 툭하면 소송이 빚어졌고, 마을을 떠난 주민의 경조사비 30만원을 마을 기금으로 낸 것이 문제가 돼 마을 이장과 주민들이 멱살잡이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 공동체의 복원으로 시골마을의 정취를 되찾다
최씨가 귀향한 뒤 세운 목표는 옛 시골마을의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 첫 사업은 마을회관을 짓는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 강원도의 오지개발사업 예산 9000만원을 지원받아 마을회관을 지었다. 그리고 농촌체험관광을 시작했다. 다들 “여기까지 뭘 보겠다고 사람들이 오겠느냐”고 팔짱만 끼고 있던 주민들은 하나 둘씩 외지손님들이 찾아들자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최씨는 “마을이 파편화된 것이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돈(수입)이 해결되자 공동체가 거짓말처럼 회복되기 시작됐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농경박물관을 만들고, 고기잡이 체험과 전통음식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가족 단위 관광객 유치는 물론 각급 학교의 수학여행 유치에도 나섰다. 학교마다 홍보책자와 책을 보냈고 관심을 보이는 학교에는 마을대표단들이 찾아가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그 결과 올 한해 동안 22개 학교의 수학여행을 유치해 7800명의 학생들을 손님으로 받게 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교사들의 호평은 물론이고, 학생들도 농촌마을에서의 수학여행을 잊지 못했다. 수학여행을 다녀간 신동중학교 학생들로부터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학부모 62명이 1박2일 일정으로 마을을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수학여행을 인연으로 마을에서 생산하는 친환경 농산물을 학교 급식으로 납품하는 일도 시작했다. 수익은 마을 주민들이 고루 나눈다. 이렇게 얻어진 농외소득이 3억원에 달한다. 소득이 늘자 마을 주민들은 외지로 나간 젊은이들을 찾아가 귀향을 설득했고, 마을로 되돌아온 가구만 9가구에 이른다. 결혼을 하지 못한 마을 총각을 위해서 베트남 등지에서 신부를 맞이하는 비용을 대주기도 한다. 실제로 3명의 총각이 마을기금으로 500만원씩을 지원받아 결혼을 하기도 했다.
개미들마을에서는 자연풍광도 아름답지만 이렇듯 복원돼가는 농촌마을의 정서를 들여다보는 일도 즐겁다. 마을 일을 제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마을을 찾은 손님들을 제집 손님처럼 대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도회지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살가운 정을 느낄 수 있다.
# 백이산에 올라 층암절벽을 굽이치는 물길을 바라보다
동남천은 물가로 내려서 길을 따라가며 보는 맛도 좋지만, 백이산(971m)에 올라 물길이 구불구불 층암절벽을 휘돌아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도 좋다. 백이산 일대는 조선 건국에 반대한 고려칠현들이 숨어들었던 땅이다. 백이산이란 이름도 수양산에 들어 고사리로 연명했다는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고려 칠현의 이야기는 인근 마을 거칠현동(居七賢洞)에 뚜렷이 남아 있다. 고려가 망하자 조선의 창업을 반대하며 개성 송도의 두문동에 들어가 은거하던 신하 72명 가운데 전오륜, 김충한, 고천우 등 7명이 이곳으로 와서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은거했다고 전한다. 이들은 매일 산정에 올라 옛 도읍지에 절하고 통곡하며 한시를 지어 망국의 한을 달랬다. 그 한시가 인근에 전해지면서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로 시작되는 ‘정선아라리’의 시초가 됐다.
백이산 등산은 선평역의 능선을 타고 오를 수도 있고, 개미들마을 쪽의 등산로를 짚어 오르는 길도 있다. 길이 간명할 뿐더러 마을 주민들이 손수 등산로를 정비해 놓아서 쉽게 등산로를 찾아오를 수 있다. 산세는 제법 거칠다. 선평역 쪽에서 오르면 급경사 바윗길을 만나고, 마을 쪽에서 오르면 숨이 턱에 차는 가파른 흙길을 타고 올라야 한다. 전망은 정상 아래 봉이 가장 빼어나다.
주민들의 말대로 ‘강원 남부내륙의 전망대’라 할 만하다. 부드럽게 솟은 가리왕산(1560.6m)이며 깊은 산세의 고양산(1150.7m)을 비롯해 대간은 기세등등했다. 청옥산(1403,.7m)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산줄기는 바로 옆에 두타산(1352.7m)을 일으켜 세운 다음 매봉(1303.1m)까지 평행선을 그으며 뻗어나가다 금대봉(1418m)을 거쳐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함백산(1572.9m)과 태백산(1567m)을 일으켜 세운 백두대간의 유장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선=글·사진 박경일 2009-07-22
가는 길
동남천·개미들마을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영동고속도로로 여주분기점까지 가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감곡나들목으로 나온다. 나들목을 나와 좌회전해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을 지나 정선군 남면사거리에서 정선 방향으로 좌회전해 59번 국도에 오른다. 여기서부터 동남천을 끼고 정선 쪽으로 향하다가 낙동삼거리에서 남선초등학교 남창분교 쪽으로 좌회전해 물길을 따라가면 개미들마을이다. 마을로 이어지는 길에 층암절벽이 우뚝 선 풍경들이 이어진다.
먹을 것·묵을 곳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개미들마을에서는 마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펜션(010-9591-1641)이 있다. 150명을 동시수용할 수 있는 4동의 펜션을 갖추고 있는데 방 크기에 따라 5만∼10만원에 빌릴 수 있다. 방마다 주방시설 등이 완비돼 있다. 인근의 가리왕산자연휴양림(033-563-1544)은 편리한 콘도식 객실을 갖추고 있지만 이즈음이 휴가철이라 평일에도 예약이 어렵다. 대신 텐트를 준비해가서 취사장과 온수가 나오는 샤워장을 갖춘 오토캠프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차로 40분 거리의 하이원리조트를 이용해도 좋다.
되도록 정선읍에 5일장이 서는 2, 7일에 맞춰 찾아가면 장구경을 겸할 수 있다. 정선읍내 장터 부근의 ‘동광식당’(033-563-0437)은 황기족발과 콧등치기국수가 일품이다. 콧등치기 국수란 메밀면을 된장국물에 말아내놓는 토속음식. 정선의 먹을거리로는 곤드레나물밥이 유명한데 정선에서 평창 쪽으로 가는 길의 ‘동박골’(033-563-2211)이 유명하다. 정선읍내의 ‘정선회관’(033-563-0073)은 곤드레나물밥과 함께 황기삼계탕, 닭백숙 등을 내놓는다.